MBC의 흑역사 - 방송의 중립에는 좌우가 없다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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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생리학>의 지은이 발자크를 소환한다

 

세상이 엄혹하면 늘 기자의 자격을 묻는다(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홍성일 연구원) 자격 시비 의도는 정치적 의도, 언론 권력과 정치 권력의 공모 관계도 포함된다. 이 구도에 강준만 선생의 이 책<MBC의 흑역사>은 어떤 면에서는 딱 들어맞는다. MBC의 흑역사는 문재인 정권의 동안 그리고 윤석열 정권에 들어서 그 보도 태도를 주요 이슈를 들어 설명한다.

 

MBC사령답이 바뀐 후, 이명박, 박근혜 때 회사에서 해고됐거나, 노조 활동으로 탄압과 핍박을 받았던 그룹이 화려하게 사장으로 주요 간부로 복귀하면서, 언론노조,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던 88명의 기자를, 뺑뺑이 돌리고, 보직해임, 창가 옆에 책상과 의자 종이 명패, 전화기 한 대, 불만이면 얼른 나가셔…. 이런 꼴 보고 싶지 않거들랑,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다. 한술 더떠보자, 출입처에 따라 붙여진 이름 예를 들면 법조팀을 인권사법팀으로 바꿔 ‘인권’을 강조하면서, 노조 파업 미참가자들을. 그들이 당했던 것과 똑같이 갚아주었다고한다. 이는 또 다른 차별과 혐오를 만들어 내는 게 아닌가, 그들이 그렇게 싫어했던 그 짓을, 그들이 하고 있다. 아마도 지은이는 이 대목에서 화가 난 듯하다.

 

강준만, MBC는 왜 선전, 선동하는 공영방송이 되었는가?라는 분석

 

아마도 이는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이지 않을까, 마치 화두처럼, 공영방송 MBC가 이명박, 박근혜시기 동안 얼마나 얻어터졌는지를. 그런데 방송이 공영방송이 정파적이면 안 되지. 공영이란 이름을 지켜야지. 글쎄다.

 

1984년의 발자크를 소환해보자. 그는 당시 유행했던 ~생리학이라는 제목을 붙이는 이른바 풍자 장르의 트랜드에 따라 공무원과 기자를 풍자한 글을 썼다. <기자생리학> 벌써 백 수십 년 전의 현상이고 일이다.

강준만 선생이 단단히 별렀나 보다. 책 제목이 MBC의 흑역사니 그 중심은 당연히 MBC이겠지만, 채널A 이동재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의 짝짜꿍 설과 윤석열 때리기, 이재명 밀어주기, 조국 구원하기. 등 거의 종교적 구원파 수준에서 정파적으로 어용의 입이 된 MBC라고, PD수첩이고, 스트레이트고, 해서는 안 될 일, 참으로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참언론인과 기레기의 기막힌 경계선에서.

 

발자크는 말한다. 우선, 때리고 변명은 나중에, 헛다리 짚었다면, 죄송합니다. 대신에 아니면 말고, 뻔뻔한 얼굴로 무신 일 있어 하는 표정으로…. 이게 기자의 생리학이라고,

 

언론의 자유라고? 부끄럽게도 이들은 오지 약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에 대해서만 자유롭다

 

백 수십년 년 전에 발자크가 한 이 말, 언론의 딜레마와 역설을 주장하는 정준희 등의 주장도 이와 아주 흡사하다. 언론의 자유의 생래적으로 이러하기에 이를 지키려는 자들은 늘 자신을 돌아보고 경계해야 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들린다. 마치 “펜과 칼”처럼, 모순(세계에서 가장 강한 창으로 못 뚫는 방패가 없다고, 또 한편으로 이 방패는 세계에서 가장 강해서 제아무리 강한 창이라도 뚫을 수 없다고)이기에, 늘 외줄을 타듯,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말이다.

 

한국 언론 세계의 이중적 구조

 

정준희 등은 <언론자유의 역설과 저널리즘의 딜레마>(멀리깊이,2022) 언론자유는 그 자체로 모순과 역설을 품고 있다며, 그 역설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로 언론이 더 많은 자유를 향유 할수록 오히려 시민의 자유가, 특히 약자의 권리가 침해되는 경향을 마주한다. 둘째, 언론은 억압하는 권력에 자유를 헌납하고, 관용하는 주권자와 그 대행자에게는 자신의 자유를 남용한다. 셋째, 언론은 정치 권력과 시민에 대해서는 자유를 달라고 하지만 자본이나 언론사주가 통제하는 자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딱 이 말이다. 이 책에서 MBC를 질타하는 것은 이 역설에 해당한다.

 

MBC는 사회적 흉기-기자협회 윤리강령 “공정 보도” 의무 위반

 

그렇다. 보도 태도도 문제지만, 여러 사정으로 언론의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위해 함께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같은 조직에서 일하던, 일했던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요즘 TV 드라마<D.P.>의 약한 자를 괴롭히는 비겁자들과 뭐가 다른가?, 내 뜻과 다르면 모두 배반자인가, 공영방송의 개념은 누가 만들었나, 생각과 가치가 다른 사람이 함께 모여 공동의 목표를 향해가는 그 과정이 언론자유의 과정이다. 이를 조금 넓혀 사회로 확대해보면, 왜 사회적 흉기라고까지 말하는지 이해가 조금은 될 듯하다. 지은이의 주장을 다 이해하라는 건 아니다.

 

MBC의 반론의 무기로 한국기자협회의 윤리강령과 이를 실천하는 실천요강을 들고나올 수도 있다. 이 요강의 맨 앞에 오는 것이 언론자유다. 회원(기자)은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내, 외부의 어떤 간섭과 압력에도 굴하지 않으며, 언론자유를 위협하는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서 단호하게 대처한다. 이를 해석하면 어떻게 될까?, 조직 내에서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는 개인이나 집단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게 그런 처분이었다면, 일벌백계, 하지만, 돌고 돌 것이다.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싶은 충동은 어떤 권력자이든 공통된다. 반대로 입신양명을 지상의 최고가치로 여기는 기자도 있어, 이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 어떤 화학적 반응이 일어날까?

 

마지막으로 조금 길지만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전문을 적어둔다. 새삼스럽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본디 이런 각오로 기자가 되고, 활동하고, 이런 계율을 지키면서...

 

“기자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진실을 알릴 의무를 가진 언론의 최일선 핵심 존재로서 공정 보도를 실천할 사명을 띠고 있으며, 이를 위해 국민으로부터 언론이 위임받은 편집-편성권을 공유할 권리를 갖는다. 기자는 자유로운 언론 활동을 통해 나라의 민주화에 기여하고 국가발전을 위해 국민들을 올바르게 계도할 책임과 함께, 평화통일·민족화합·민족의 동질성 회복에 기여해야 할 시대적 소명을 안고 있다. 이와같이 막중한 책임과 사명을 갖고 있는 기자에게는 다른 어떤 직종의 종사자들보다도 투철한 직업윤리가 요구된다. 이에 한국기자협회는 회원들이 지켜야 할 행동기준으로서 윤리강령과 그 실천요강을 제정하여 이의 준수와 실천을 선언한다.”(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여기에 하나 더, 방송의 중립에는 좌우가 없다는 지은이 말에, 생각나는 책, 리영희 선생의<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두레,1994) 머리말에 “진보의 날개만으로는 안정이 없고, 보수의 날개만으로는 앞으로 갈 수 없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균형잡힌 인식으로만 인정과 발전이 가능하다”는 말...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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