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물보다 귀한 유산이 어디 있겠는가 - 아프리카 농민의 왕 식물유전육종학자 한상기의 90년
한상기 지음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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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긴 피암 한상기의 자서전

 

이 책은 23년 동안 아프리카 대륙의 농업국 나이지리아에 있는 국제열대농학연구소에서 아프리카의 생명줄인 카사바를 슈퍼카사바로 바꿔놓은 한상기 박사가 걸어온 길을 적고 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지

 

“아프리카라고 하셨나요?, 카사바를 연구하신다고요?, 영국이 아니라 나이지리아로 간다고?, 교수님 왜 케임브리지 대학을 포기하신 건가요?”

 

인생은 생사 사이의 선택이라는 사르트르 말을 인용하면서 선생을 끌어당겼던 큰 힘은 농사, 작물, 식물, 종자, 식량으로 집약된다고.

 

자서전은 글쓴이의 연대기다. 자신의 인생경로에서 겪은 큰 사건을 적어나가게 마련이어서 그의 어린 시절, 충청도의 산골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식물육종학자의 길을 걷게 된 배경으로 시작된다.

 

우장춘 박사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마음속에 늘 새겨놓은 그만의 영웅, 대학선택도 농대로 대학원에서 스승을 만나게 되는데, 지영린과 존 E 그래피우스, 류달영, 이렇게 세 분이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 피암선생의 글에서도 강조된다. 자신의 결연한 의지도 의지지만, 꽃을 피워줄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아주 대단한 행운이다. 그에게는 좋은 스승들이 있었다.

 

이 책을 읽는 가운데, 아프리카의 식량 사정을 알게 되면서 겹쳐지는 인물이 떠오른다. 농학자 김순권 박사, 1976년 아시아 최초로 생산량이 세 배나 되는 하이브리드 옥수수를 개발했다. 이후 나이지리아에서 아프리카 적응 하이브리드 옥수수 개발, 위축 바이러스 저항성 품종 개발, 스트라이가(Striga) 공생 저항성 품종 개발 등 아프리카 대륙의 식량난 해결에 이바지했다. 북한에 슈퍼옥수수를….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공유주연의 영화<용의자> 북한 식량난을 해결하려는 월남한 기업가의 집념 결실은 슈퍼 볍씨가 되는데, 이를 신종 화학무기의 공식으로 오인한 국정원 간부와 외국의 검은 세력들의 이야기, 여기서도 키워드는 “슈퍼” 카사바, 옥수수와 벼.

 

피암 선생과 김순권 선생이 나이지리아에서 같은 시기, 겹치는 시기에 한쪽에서는 카사바와 얌을, 또 한쪽에서는 옥수수를 연구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이 두 분 모두, 학창시절의 꿈은 육종학자 우장춘 선생이다. 우장춘 선생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아버지의 나라 한국 땅에 돌아와 농업, 녹색혁명을 시작했다면 이들은 우장춘의 뜻을 잇는 후예다. 피암 선생은 명예보다는 의미 있는 일을 위해, 케임브리지대학연구소와 서울대를 뒤로하고 나이지리아를 택했을까, 그는 국위 선양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때로는 이런 인간의 허영심이 세상을 이롭게 하기도 한다.

 

피암선생이 아프리카에 남긴 것은 슈퍼 카사바만은 아니다. 바로 인재들을 남겼다, 현장활동가와 연구자를 찾아내고, 이들에게 학습의 기회를, 단지 현장에서 종자 보급하는 것, 이상으로 체계구축에도 힘을 썼다. 나아지리아 사람들은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가져다 준 선생을 추장으로 받들었다(나이지리아 이키레읍, 세리키 아그베-농민의 왕-으로)

 

자서전이란 게, 자칫 잘못하면 자화자찬으로, 자신의 생애를 반추하며,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선택하리라는 선택에 관한 확신, 그리고 수많은 고충을 회고하는 대목은 절제.

 

수백 장이 넘는 탑승권을 간직하고 있는 선생은 그 탑승권 한 장 한 장에 담긴 기억을 소중히 여기는 듯하다. 선생에게는 가족을 잃은 슬픔과는 또 다른 슬픔이 있다. 국제농업발전에 기여 이에게 주는 “한상기상”의 수상자이자 아끼는 제자 두 명이 아프리카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내전으로 모두 죽었다.

 

위대한 인물이 우리에게 남긴 것들

 

한때, 대한민국을 세계만방에 알린 위대한 업적의 인물, 한상기 선생, 세계적인 권위의 상을 받거나 추천되거나 했지만, 그에게는 이런 명예보다 그를 연구자의 길로 끌어준 스승들과 동료, 제자들, 여전히 아프리카의 식량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기억한다.

 

큰 사람, 된 사람, 든 사람, 난 사람의 길을 모두 걸었던 그는 인생의 매 순간을 기록했던 200권의 노트 속에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내가 잘났노라는 말보다는 여전히 굶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라고 여전히 그들을 향한 따뜻한 눈길,

 

이 책은 한상기 선생의 아프리카 식량난 해결 분투기다. 누군가에게 인생의 이정표로 남겨질 만한 그의 행적은 오로지 그만의 것이 아니다. 그가 우장춘 박사를 흠모, 그 길을 따라가려 했던 것처럼….

 

선생은 2022년 농업진흥청 제2회 농업기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그가 아프리카로 떠날 때, 스승 류달영 선생에게 받았던 편액 “가교사해 홍익인간 架橋四海 弘益人間(세상에 다리를 놓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을 농업유전자원센터에 건넸다. 후학들이여, 이 말을 잊지 말라고….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식량이고, 제일 아쉬운 것이 사랑입니다" 피암 선생이 우리에게 주는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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