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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영원한 청년 미하일 바쿠닌 - 2023 경기도 우수출판물 제작지원 선정작
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2023년 6월
평점 :
오월의 청춘, 마하일 바쿠닌
우리 사회의 지성인이자 어른으로서의 자세를 흐트러짐 없이 꿋꿋하게 지켜나가려는 박홍규 선생, 그가 이번에는 <오월의 청춘, 마하일 바쿠닌> 들여다보기를 한다. 미하일 바쿠닌(1814-1876)의 평전 쓰는 것은 바쿠닌에 관한 세상의 오해와 악의에 찬 이야기를 최소한 중립적으로 아니, 그의 사상만 놓고 보자고, 그래서 바쿠닌의 아나키즘의 핵심인 비판 정신을 제대로 보자고. 왜 지금, 미하일 바쿠닌을 살펴봐야 하는가, 지은이는 단지, 제대로 된 그의 사상을 이해하자는데 그쳤을까, 아니다. 세계는 리더십의 부재상황이다. 세계는 인재부재상황이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여전히 강고하다. 이를 극복할 그 무엇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역사 속에서 찾아야 한다. 반추의 역사 속에서... 애초 왜 단추를 잘못끼우게 된 것인지를...
“사회주의 없는 자유는 특권이자 불의이며, 자유 없는 사회주의는 노예제이자 야만이다.”라는 바쿠닌의 이 한 문장 안에 모든 게 담겨있다.
우리 서점가에 소개된 바쿠닌의 책은 저명한 역사가 E.H.카가 1937년에 쓴 것으로 1989년 우리말로 번역됐다. 이후, 2012년에 재번역되어 출판됐으니, 우리가 아는 바쿠닌은 E.H.카가 쓴 것 하나뿐이다. 아무튼,
바쿠닌에 관한 이해를 위하여, 마르크스 시대에 철저하게 외면, 봉쇄당하다
지은이는 바쿠닌의 삶과 생각이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모든 형태의 권력에 저항하고 비판하는 정신이야말로 아나키즘의 핵심이니까, 이 책은 2부로 이루어졌고, 1부에서는 청춘의 낭만객 바쿠닌을 그린다. 출생과 교육, 그리고 반항의 시작, 21살 때 군대를 탈영하여 귀향, 26살 때 베를린대학에서 연구를, 29살 때 독일을 도망쳐 나와 스위스로, 이후 파리에서 터진 1848년 2월혁명에 참가, 체포되어 시베리아 유형, 2부, 자유의 혁명가 아나키스트 바쿠닌의 이야기는 시베리아 탈출과 이탈리아 시대, 국제혁명협회를 조직한다. 이후 <연방주의, 사회주의 및 반신학>을 주장, 제1인터내셔널을 통해 마르크스와 만나지만, 대립하게 되고, 파리코뮌을 거치면서 바쿠닌의 사회주의와 마르크스 공산주의는 대립, 인터내셔널은 바쿠닌을 제명하고. 바쿠닌은 신과 국가를 통해서 신을 비판하고 인간해방을 주장했다.
이러한 연대기 중, 시계열적 흐름을 따르다 보면, 사회주의자 바쿠닌과 공산주의자 마르크스의 대립이 눈에 띈다. 이들의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왜 이들은 함께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애초, 사회주의자 E.H.카가 바쿠닌의 주요 저작인 <국가주의와 아나키즘>(1873)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무튼 마르크스주의가 대세, 우위를 차지하던 시절, 바쿠닌의 아나키즘은 별 볼 일 없는 궤변에 불과했던 것일까?
바쿠닌의 사회주의와 마르크스 공산주의의 대립
바쿠닌에 의하면 미래 사회는 국가도 주인도 없이 아래로부터 위로, 노동자의 자유로운 결사와 연맹에 의해, 처음에는 노동조합에서 그다음에는 코뮌에서, 그리고 지역과 국가, 마지막에는 위대한 국제사회에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여기서 그는 모든 사람에게 내재한 물질적, 지적, 도덕적 힘의 완전한 발현으로 구성된 자유야말로 진정으로 그 이름에 합당한 유일한 자유라는 것이다.
바쿠닌은 자유에는 평등이 필요하고, 이는 노동과 집단 재산의 자발적 조직, 자유롭게 조직되고 연합된 공동체 생산자 연합에 의해서만 이를 달성할 수 있다고, 이는 국가를 통해서 달성될 수 없고, 사회주의자 또는 혁명적 집단주의자를 권위주의적 공산주의자와 분리해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주장을 보자. 그가 생각하는 자유와 평등에서 권위주의적 공산주의자는 이미 떼어내어야 할 존재가 됐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바쿠닌의 눈에 비친 권위주의적 공산주의자들은 노동계급 정치 권력의 발전과 조직화에 의해서 평등이 달성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아나키스트들은 노동계급에 정치적 강령을 강요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반동적이며, 모든 정치조직은 계급과 인민에게 손해를 끼치는 지배 조직이라고 봤다. 그래서, 프롤레타리아가 국가를 장악하더라도 그 자체로 지배계급이 되고 착취계급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바쿠닌은 바로 이렇게 생각했고, 아무리 과도기적 단계에 있다 하더라도 소수의 손에 권력이 집중되는 상황에 반기를 들어야 한다면서 반동은 불가피하기에 국민대회, 구성 의회, 또 이른바 혁명독재라는 개념을 거부했다. 이 대목이 아나키스트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반추하는 역사
이런 말들은 어디선가 들었던 듯한 느낌, 귀에 익은 듯하지 않나, 혁명독재, 그 이후 이행과정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실패했다. 적어도 한 모델의 실패라고 해두자. 그렇지만 왜 실패했을까, 이 점은 별론으로 하고, 결국 역사적으로 보면 권위주의나 국가사회주의, 혁명 국가의 본성에 관한 경고도 옳았다.
100년 전에 바쿠닌을 비롯한 아나키스트들이 이야기한 것들이 포스트 모더니스트,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장 속에서 나타난다. 오늘날 세상은 99%의 희생 위에 1%의 부를 가능하게 한 배타적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이렇게 된 데는 거대한 기업과 국가조직이 필요했다.
이제 아나키스트 바쿠닌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볼 때다. 그가 어떤 생각을 했으며, 왜 그런 판단을 한 것인지, 그리고 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 말을 귀담아듣지도 동의하지도 않았는지를 말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다만, 다른 현상으로 나타날 뿐, 그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이 책은 2023년 경기도 우수출판물 제작 지원 선정 작품이 될 만큼, 좋은 책이다. 우리의 왜곡된 사고를 바로 잡아줄 수 있는 양서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