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언어의 기쁨과 슬픔 - 한 언어심리학자의 자아 상실과 회복에 관한 이야기
줄리 세디비 지음, 김혜림 옮김 / 지와사랑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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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인간의 자아 형성에 끼치는 영향

 

이 책 <이중언어의 기쁨과 슬픔>의 부제, 한 언어심리학자의 자아 상실과 회복에 관한 이야기다. 왜 하나의 언어가 어떤 사람의 정신에 뿌리를 내렸다가 나중에 시들 수 있는지, 이 쇠퇴는 어떤 모습인지, 언어의 이지러짐이 어떻게 개인적 고통을 넘어 집단 위기의 규모로 증폭되는지를 톺아보려 한다. 국제시대에서 잃어버린 모국어(제1언어)의 귀중함에 관한 이야기다.

 

지은이 줄리 세디비는 제1 언어가 체코어였고, 그가 성인이 될 때까지 습득, 접촉했던 프랑스, 영어 등은 제2, 제3 언어였다. 언어의 탄생과 죽음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다언어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뭘 해야할지, 이 책 속에 담긴 숙제들을 곰곰히 생각하면서 이 책을 썼다. 화석언어가 돼버린 체코어, 아버지는 사고와 문화는 체코어의 세상이고, 지은이는 그 밖에 영어의 세계관과 문화,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사용언어의 차이는 문화의 차이보다, 다른 세상이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하다.

 

언어 상실의 중심에 존재하는 잔인한 역설

 

한 언어의 약화는 종종 더 나은 삶- 풍요, 안전, 주류 문화로의 진출-을 향한 꿈으로 바뀐다. 언어는 그저 지식을 공유하는 수단이 아니라 사원이요. 피난처자 영지고 집이다.

 

현대 사회에서 언어의 역학은 전통적 평등주의(각 집단에서 서로 소통하기 위해 다른 언어 몇 개를 배우는 시스템)에서 한참 벗어났다. 6~7천 개의 언어가 200개 나라(지역포함)에 밀집돼 있으나, 하나의 공용어, 지배적 언어를 중심에 놓는다. 영어를 하는 사람들은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영어의 세계화, 영어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주류 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단지 말하는 정도 수준이 아니라 그것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 마치 모국어(제1 언어)처럼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정서다. 지배적인 언어는 사회적 애착, 동일화, 자신보다 큰 문화를 향한 충성을 갈망하는 인간의 탐욕을 채우기 시작한다.

 

언어, 지배원리, 지배 논리

 

인간 마음속에서 하나가 다른 것을 지배하지 않고 두 개 이상의 언어가 공존하는 것이 가능할까? 한 사람이 생각과 마음으로도 둘 이상의 언어에 충성할 수 있을까? 경쟁 언어들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생태계가 필요할까?, 또 이런 생태계가 현대 사회에서 가능할까?

 

일본어의 예를 생각해보련다. 오사카에서 나고 자라 도쿄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서 그곳에서 일자리를 잡았거나, 일자리를 찾아 도쿄로 갔거나 하는 경우, 이들은 공용어(이른바 방송어, 사투리를 쓰지 않고)도쿄억양으로 언어생활을 하다가, 명절에 오사카로 돌아올 때, 바로 오사카 사투리가 튀어나온다. 이중언어도 이와 같다. 한국어를 배운 일본사람이 화가 나거나 누군가에게 불만을 터놓을 때, 한국어만큼 시원스러운 언어가 없다고 말한다. 욕이 많으니…. 이 책에서는 왜 이런가에 대해서 연구논문을 가져와 설명하고 있다.

 

화교, 유대인 등 아예 태어난 곳이 외국, 즉 제1 언어가 중국어나 히브리어가 아닌 곳이다. 화교 중에서 중국어를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보통 이민 1.5세대는 어릴 때 배운 제1 언어 잊어버리기 쉽다고, 언어습관은 청년기까지 형성되는 것이라. (6세 이전에 새로운 나라에 도착한 사람 중 97%는 그 나라에서 쓰는 언어를 선호한다.)

 

이 책에서는 영어권(미국, 캐나다 등 영미 계통), 프랑스어권으로 간 이민자의 언어생활이 어떻게 바뀌고, 언어가 사고방식 형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는데, 문제는 영어의 세계화, 영어를 쓰면 다른 언어를 배울 필요가 없고, 세계 어디서든 다 통한다고.

 

이 지배원리를 뒷받침하는 실험들, 우선 인종(나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에 관한 편견은 언제부터 형성될까, 세 살짜리 백인 여자아이에게 백인 아이와 흑인 아이 사진을 보여주고 사진들을 해석해보게 했다(발달심리학자 필리스 카츠의 실험). 바닥에 쓰레기가 어지럽게 널려있는 사진을 보고, 아이는 흑인 아이가 쓰레기를 버렸으며 선생님에게 혼날 거라고 해석한다. 카츠가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아이는 “저 애가 흑인이니까요”라고, 이와 마찬가지로 언어사용에서 그렇단다. 원주민처럼 영어를 쓰는 사람과 외국어 영향이 남아있는 영어를 쓰는 사람, 어느 쪽을 친근하게 여기는가의 문제였다.

 

언어적 편견, 사회 집단 구분

 

언어가 특정 집단의 구성원임을 표시하는 강력한 단서라는 주장도 있다. 언어적 편견이 사회를 구분 짓는다.

언어가 한 사람의 본질에 그렇게 가깝다면, 무엇이 아이에게 자기 본성의 기본 구조를 그렇게 극적으로 바꾸게 만드는가?

 

아이들에게 언어란, 곧 사회 집단을 나누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경향은 분명히 사회의 권력 구조를 뒷받침하는 언어의 역할에 의해 강화된다. 프랑스 부르디외는 언어가 단지 소통수단을 넘어 특정 행동을 한 대가로 상징적인 혜택을 나누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대단히 중요한 지적인데, 지은이는 이에 관해 논하면서 다수의 사례를 들고 있다.

 

언어는 한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낸다고 했을 때, 아마도 이런 측면에서 일본의 몇몇 자치단체에서 진행하는 제1 언어 사용커뮤니티 장려 프로그램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겠다. 부모가 니케이진(우리 조선족처럼 자신의 조상이 주로 1930년대 남미 농업 이민을 떠난 일본인이 자신의 부계, 모계라면 일본에서의 정주권을 얻고 일을 할 수 있는데, 이들을 부르는 명칭)으로 일본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 이들은 학교에서도 이상한 일본어를 한다고 멸시, 차별, 소외를 당하고, 심리적으로는 트라우마가, 지자체는 각 출신국 커뮤니티가 운영하는 토요학교 등지에서 제1 언어로 놀이와 학습을 하도록 지원한다. 언어와 정체성의 관계는 어떻게...

 

언어는 소통의 수단뿐만 아니라 사회 집단을 구분하는 기준으로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책은 영어, 프랑스어, 체코어, 토착 언어 등….

 

우리 사회 역시 지역방언 물론 그 지역에서는 공용어겠지만. 전라도 말씨냐 경상도 말씨냐에 따라 선입견을 품기도 하는데. 이런 언어와 관련된 현상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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