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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하는 나날들 - 조현병에 맞서 마음의 현을 맞추는 어느 소설가의 기록
에즈메이 웨이준 왕 지음, 이유진 옮김 / 북트리거 / 2023년 2월
평점 :
조율하는 나날들
이 책의 지은이 에즈메이 웨이준 왕은 예일대에 입학했지만, 정신질환을 이유로 퇴학, 이후 스탠퍼드를 거쳐 그 대학의 뇌영상 연구원으로 일했다. 지금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소설을 쓰며 살고 있다. 이 첫 에세이, 그녀는 정신질환 중에서도 특히 치명적이라고 알려진 조현병에 관해 당사자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한다.
조현(調絃)이란 사전적인 의미로 현악기의 줄을 고르다는 뜻으로, 조현병 환자의 모습이 마치 현악기가 정상적으로 조율되지 못했을 때의 모습처럼 혼란스러운 상태를 보이는 것, 이른바 불협화음의 상태다. 조현병의 원인을 한가지로 설명하기는 어려우며, 생물학적인 원인 및 유전적인 원인, 스트레스 등 심리학적 원인들 또한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망상, 환청, 와해된 언어, 와해된 행동, 정서적 둔마 등의 증상이 주로 나타나고, 사회적 기능에 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는 질환으로, 일부 환자의 경우 예후가 좋지 않고 만성적인 경과를 보여 환자나 가족들에게 상당한 고통을 주지만, 최근 약물 요법을 포함한 치료법에 뚜렷한 발전이 있어 조기 진단과 치료에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한 질환이다. 2011년에 정신분열병(정신분열증)이란 병명이 바뀐 것 이다. 정신분열이란 병명이 사회적인 이질감과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한다. 일본에서도 정신분열증 대신에 "통합실조증"이라고 부른다.
조현병증의 원인은 생물학적, 유전적인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 여전히 조율하는 나날을 보낼 수 밖에...
생물학적인 원인의 경우, 뇌에 있는 도파민 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너무 많이 분비되어 조현병이 발생한다는 가설이 가장 유력하며, 뇌에서 왜 이러한 물질들의 이상이 일어나는지는 아직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외에도 전두엽, 변연계, 기저핵 등의 뇌 부위에서 다양한 이상 소견이 관찰되어, 이러한 뇌 부위들의 이상이 조현병의 원인과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유전적인 원인의 경우, 조현병이 다른 여러 만성질환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유전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조현병의 원인 유전자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완벽하게 같은 유전자를 가지는 일란성 쌍둥이에서도 한 쌍둥이가 조현병을 갖고 있을때, 나머지 쌍둥이가 조현병이 발병할 확률은 50퍼센트 정도라고 알려져 있고, 조현병을 앓은 친족이 없어도 조현병이 걸릴 수 있어 유전병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유전적인 원인이 전부는 아닌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31쪽).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는 미국 성인 인구의 1.1퍼센트가 조현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미국정신질환협회는 미국인구의 0.3퍼센트가 조현정동장애(환각, 망상 등 조현병 증상과 조증, 우울증 등 비정상적인 기분으로 인해 일어나는 질병인 기분장애 증상이 합쳐서 나타나는 정신질환)로 진단됐다고... 지은이는 조현정동장애 양극형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 책은 조현병이 영혼을 잠식당하는 병이라는 생각, 악령 들린 자들의 병리학, 고기능... 경계너머로 등 12개의 에피소드를 싣고 있다. 34살의 남성 맬컴 테이트는 여동생에게 총살을 당했다. 무려 12발을 맞았다. 그의 어머니, 여동생은 테이트에게서 악령들린 사람의 모습, 악마의 형상을 소름끼칠 정도로 느낀 것이다. 여동생의 2살 박이 딸을 지긋이 바라보는 오빠, 언제 악마로 돌변해서 딸아이를 죽여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공포감... 이런 불행의 원인은 조현병때문인가, 아니면 이를 돌봐야 할 사회적 책임때문인가, 논점은 다양할 수 있다.
조현병에 관한 명확한 이해는 어려울지 모르겠다. 조현병은 전형적인 광기의 병이라고 말하면서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그의 이웃들에게는 예측불가능의 시한폭탄같은 존재다. 경주에서 일어났던 아파트 화재사건, 조현병은 광기다. 환청에 시달리며 누군가가, 아니 악마의 속삭임을 듣고 광기, 미쳐날뛰는 살아있는 병기요. 무기라고... 이런 표현에 정신건강의학자들은 오해라고, 약물치료를 통해 충분히 통제가 가능하며, 연쇄살인범같이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고 애써 강변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들을 밀어낸다. 조현병을 앓고 있는 이들의 삶은 매일매일 조율하는 나날을 보낼 수 밖에...
조현병은 창조적, 진화적이란 관점에서 볼 수 있을까?
조현병 자체에 진화적 장점이 있다(스티브 도루스 등이 말하는 조현병의 진화적 지속성)고 말할 수도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하지만, 조현병을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얻을 수 있다는 관문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우려한다. 이 병을 건강하지 못한 방향으로 미화하면서 고통받는 조현병 환자들이 도움을 구하는 데 방해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때문이란다. 조현병의 원인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컬트적으로 해석하거나, 창조적, 진화적 관점에서의 접근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불행, 안도의 한숨, 지은이의 일상이다. 약을 먹고, 조율을 해야하는 시간들, 지은이는 경계너머로... 눈을 감은 채 세상을 볼 수 있음을 깨닫기도, 정신증과 싸우면서 세상을 일관되게 바라보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에서 말이다. 지은이는 친구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면서 조언을 부탁했다. 친구는 그에게 불분명하게라도 보였던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곰곰이 떠올려 보라고... 지은이는 이렇게 했다. 그 이후로 이런 능력을 다시 경험한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이게 비범한 능력인가, 정신질환 때문인가, 영적징후인가,
조현병이 영혼이 마치 빠져나가는 듯하면, 이를 잡아두기 위해서 나는 내 리본(부적끈)을 찾아 손목에 묶는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망상이 찾아오거나 환각이 감각을 다시 어지럽히면, 그 무감각의 혼란 속에서 감각을 도로 끄집어 낼 수 있을 것이라 되뇌어 본다. 이렇게 스스로 빠져나가는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만 한다면 나는 그것을 붙들어 둘 수 있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고... 되뇌인다.
결국, 자기가 경험했던 그 모든 것들 떠올리고, 어떤 상태에서 발현되는지를... 사실을 떠올리는 것 조차 힘들 수 있겠지만, 그 방아쇠를 당기지 않도록, 그 징후가 나타날 때, 바로 묶어두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고...
이 책은 조현병 세계를 뇌영상 연구원 시절의 경험과 자신의 상태인 조현정동장애 양극형과 함께 할 것인가, 물리치고, 벗어나고 하는 것 보다, 우선은 조현병을 조율하면서 어떻게 함께 할 것인가를 찾아내는 것... 지은이는 대학 4학년 이던 20대 초반에 처음 환각을 경험했다. 기숙사 샤워실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나는 네가 싫어"라고, 환각은 감각을 앗아가는 놀라운 효력이 있다. 나를 싫어한다고 말한 그 목소리는 거기서 들은 그 어느 소리 보다 실감이 났다. 실제로는 배수 시스템과 관련된 현상이거나 다른 층에서 말하는 소리를 들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궁리해봐도 그 목소리는 바닥으로부터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지은이는 수년간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했다. 그 목소리는 좋은 치료사를 찾지 못하면 자기 파괴성으로 결국에는 큰 위험에 빠질 것이라는 경고일 수도...
표면너머를 볼 줄 알아야
조현병을 매일 조율하면서, 생활하는 지은이, 조현병을 앓고 있는 모든 이가 이런 경험을 다 하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공통의 경험에 관해서는 지은이의 경험이... 또 조현병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관한 넘쳐나는 시사...
이 책은 우리 주변에서 조현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이해하고 이웃으로 어떻게 함께할 것인지를 생각해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성적인 것을 가치 있게 여기는 한편, 비이성적인 것을 꺼린다. 비이성적인 것을 이해하려면 표면 너머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