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감 중독 사회 - 분노는 어떻게 정의감을 내세운 마녀사냥이 되었나?
안도 슌스케 지음, 송지현 옮김 / 또다른우주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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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감 중독 사회

 

지은이는 분노는 어떻게 정의감을 내세운 마녀사냥이 되었나? 라는 물음을 던지고, 정의감 중독의 메커니즘과 중독감의 유형, 그 대응법까지를 짚어본다. 이 책의 핵심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해법이다. 앵거 매니지먼트(분노조절)차원에서 정의감의 대척점은 분노다. 사적, 공적으로 느끼는 분노, 분노의 바탕에는 핵심적인 믿음, 내 생각은 옳다. 변함없는 진리, 사필귀정, 권선징악의 도그마가 자리한다. 

 

우선 사전에 실린 정의(正義)란,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사적 정의). 또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공적 정의), 그렇다면 도리((道理)는, 사람이 어떤 처지나 상황에서 마땅히 하여야 할 바른길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이해하는 게 정의라 치자면 이 책<정의 중독사회>에서 관념하는 정의는 꽤 포괄적인 느낌이다. 정의와 상식(일반인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있어야 할 보통의 지식), 공정…. 이렇게 보자면 정의감은 정의를 지향하는 생각이나 믿음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정의와 불의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결론은 매우 어렵다. 자신의 핵심믿음(진리라고 믿는 것들)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 여기서 분노와 연결 지어 생각해보자. 정도의 차이가 있다. 코로나 19 재난 상황에서 지하철 안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을 발견했다. 당신의 분노 게이지는? 왜 마스크를 쓰지 않았을까 하는 사정을 듣지 않았다면, 또 알았다 할지라도 같은 정도의 분노를 드러낼까, 이것이 정의감인가, 꽤 어려운 문제다. 

 

지은이는 우리 사회에 횡행하는 특히 정의감 중독이라는 관념 혹은 개념은 코로나 19 재난 상황 이전에는 검색되지 않았던 표현이었다고, 적어도 2020년 전까지는. 그런데 이후, 보이기 시작한 정의감, 정의. 이는 달리 표현하면 분노 게이지가 높아졌다는 말이다. 사회적 비이성적으로 변해간다는 말이기도 덧붙이자면, 배려와 관용, 여유가 없어지는 사회, 눈에 보이는 것이 다인 세상으로…. 유튜버를 공격하는 악성 댓글(악플)로 자살에 이르게 한 사건들의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세계적인 현상인지 어떤지. 이게 정의, 불의일까?

 

지은이는 윤리학 분야의 사고 실험으로 유명한 ‘트롤리 딜레마’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와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정의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이른바 “똘레랑스”하자.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 함께 사는 세상은 내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자리한 생각들을 바꿔보자는 것이다. 절대적 정의 글쎄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 맞다. 그런데 이미 사람이라는 정의(定義)의 범위를 넘어서 그 이상의 다른 무엇인 된 상태를 사람이라 할 수 없으므로 죽여도 된다는 말인가 이 문제를 생각하는 데는 콜버그 도덕발달론에서 말하는 인습 이전과 이후, 4단계(법과 질서를 준수하는 도덕성의 단계, 도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에서 6단계의 보편적 도덕원리에 대한 확신, 이러한 보편 원리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자유, 평등, 정의 등과 같은 포괄적 개념이어야 한다.

 

공공의 정의를 판별하는 기준, 빅 퀘스천

 

사적인 분노와 공적인 분노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 앵거 매니지먼트(분노조절)에서 빅퀘스천은 “긴 안목으로 보았을 때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건전한가?”(37쪽)

 

또 보자, 정의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정의감은 가치관에서 나온다. 즉 핵심믿음이다. 정의감에도 정도가 있는 것인가, 지은이는 보행 중 흡연에 관한 세 사람의 태도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A는 보행 중 흡연 금지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단순명쾌하다. B는 흡연자이고 흡연자가 많이 사는 지역에 살고 있다. 그는 보행 중 흡연 금지구역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흡연자의 권리는 무시돼도 좋은가?, 흡연권을 무시하는 세상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C는 보행 중에 흡연은 해서는 안 될 행위라고 생각하지만, 당장에 나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는 것은 아니니 상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들 중 누가 옳다고 생각하는가?, 답은 핵심 믿음(가치관)에 대해 어느 정도 유연성이 있는가에 달렸다. 자신의 정의감이 무엇에 반응하여 일어나는지를 알게 된다면, 분노 조절이 가능하다. 

 

정의감 중독과 메커니즘

 

중독은 두 가지의 의미로 첫째는 의존 상태, 뭔가가 없으면 못 견디는 병적인 상태다. 일 중독, 알코올 중독, 약물 중독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둘째는 이른바 급성중독으로 체내에 독성을 가진 물질이 일정량 이상 들어와 기능에 이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식중독, 가스중독 급성 알코올 중독 등을 말한다. 그렇다면 정의감 중독은 어디에 속할까, 

 

지은이는 이 모두에 속한다고 본다. 급성중독, 사람들이 내세우는 정의가 세상에 만연된 결과, 온갖 정의를 단시간에 접한 사람들은 허용치가 넘는 정의를 갑자기 받아들이는 바람에 중독이 된 상태고, 만성 중독은 정의를 내세워 다른 사람과 세상을 심판하는 것이 하나의 정체성이 되면서 내면화된 상태다. 

 

정의감은 중독성이 강하다. 만성 중독은 정의감을 내세울 때 활력을 느끼고, 정의의 기준이 같은 사람들에게 일체감을 느낀다(메아리방 효과-유유상종론). 그리고 내면의 갈등과 혼란을 막아준다. 그렇다면 왜 중독성은 강한가, 중독에 약한 사람들의 심리상태는 동조압력에 약하다. 내가 틀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가슴이 답답할 때가 많다. 즉 만성 중독효과와 반대되는 현상이다. 

 

정의감의 중독의 다섯 가지 유형

 

자신이 어떤 유형의 정의감에 중독된 것인지를 알아보는 방법도 중독감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을 수 있다. 고독한 유형, 질투 유형, 독선가 유형, 집단심리 유형, 열등감 유형(144쪽)

 

정의감 중독인 사람과 잘 지내는 법은 다섯 가지 유형을 우선 이해하고, 이 책에 실린 적절한 대응 방법을 잘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토머스 제퍼슨의 말 “분노를 느낀다면 말하기 전에 열까지 세라. 만약 화가 아주 많이 났다면 백까지 세라.”

 

정의에 대한 오해 세 가지 

 

첫째 ‘손님은 왕?’ 땅콩 회항, 마트 직원 무릎 꿇린 모녀. 진상 고객의 경우를 왕이라 부를 수 있는 손님인가(70쪽), 

 

둘째 ‘목소리 높이는 소수에게 마이크를 넘기지 말자’ 당위성을 주장하는 소수, 부당한 주장까지도 목소리를 높이면서 정의라고, 침묵하는 다수가 마치 그에 동의한 것처럼 여기며 정치적 영향력까지 행사하는데, 그것이 정의인가? (94쪽), 

 

셋째 ‘공정한 세계 가설에 사로잡힌 사람들’ 2020.3 요미우리 신문은 권선징악, 사필귀정 즉, 정의는 보상받고, 악은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다. 성실한 사람은 행복해지고, 게으른 사람은 불행해진다는 가설, “공정한 세계”는 존재하는가를 묻는 여론조사 결과, 그렇다고 생각한 사람이 76%, 그렇지 않다 23%였다. 1964년에 조사한 결과는 그렇다. 41%, 그렇지 않다 40%…. 지은이는 이 결과는 무겁게 받아들인다. 성실한 사람이 행복해진다면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불성실했다는 셈이다. 언젠가부터 ‘자기 책임’이란 말이 판단기준으로 등장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을 때가 있다. 부족한 자원과 불충분한 기회를 두고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사람들은 잘 풀리지 않는 것이 내 노력이 부족한 탓으로 여기거나 다른 사람의 노력이 부족한 탓으로 자신의 성공을 합리화하게 되어서는 아닐까라고….

 

정의감 중독사회는 피로 사회? 

 

이 대목에서 재독철학자 한병철 선생의 <피로 사회>의 한 대목을 떠 오른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성과사회’다. 할 수 있다는 것이 최상의 가치가 된 긍정의 사회, 사회에서는 성공하라는 것이 남아있는 유일한 규율이며, 성공을 위해 가장 강조되는 것이 긍정 정신인데, 부정성(금기의 사회 ‘해서는 안 된다’)에 의해 제약받지 않는 긍정성은 긍정성의 과잉으로 귀결, 다른 사람의 위협이나 억압과는 다른 의미에서 자아를 짓누른다. 오직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통해서 주체로서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자아는 피로해지고, 스스로 설정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좌절감은 우울증을 낳는다. 한병철은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 낸다”라고(한병철<피로 사회> 문학과지성사, 2012).

 

정의감의 중독 또한 초조와 조급성, 우울에서 비롯된 분노일 수도, 고립된 고독감, 질투, 독선, 집단심리, 열등감을 일으키는 사회에서 벗어나는 길은 우리 사회에 놓인 환경을 잘 아는 데서부터이다. 

 

정의감을 내세운 공격은 “바람”, 공감과 배려는 “해”다. 이솝 우화에서 거센 공격으로 외투를 날려버리려 했던 바람은 지고, 따뜻하게 행인을 비춰 스스로 벗게 한 해가 내기에서 이겼다고….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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