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성주의 - 우리의 자화상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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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은 누군든 현명, 합리적이지만, 집단의 일원이 되면 바로 바보가 된다

(버나드 바루크)

 

참으로 맞는 말이다. 이상하게도 현명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국회의원 뱃지 달고 너의섬(汝矣島=여의도)에 있는 우주선같이 생긴 묘한 건물 안에 들어갔다 하면 그야말로 구케우언(구식케케묵고 어리석은 말을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아무튼 이 책<반지성주의>을 논하려는 강준만 선생은 부제로 “우리의 자화상”이라 썼다. 이를테면 비판과 공격이 아닌 우리 모두 성찰해보자는 말이다. 평화와 소통을 지향하는 길은 무엇인지를. 좌파건 우파건 제 하고픈 말만 앵무새처럼 녹음기와 같이 떠들기만 할 뿐, 자신의 주장에 공명하지 않은 목소리를 모조리 듣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 책에서는 4장 체제다. 우리 사회에서 비교적 낯선 “반지성적”이란 표현을 제대로 정의하려 한다. 이런 맥락에서 1장은 총론 격으로 왜 대중은 반지성주의에 매료되는가, 2장은 사례연구로 탁현민이 연출한 문재인의 이미지 정치, 3장 민형배의 위장 탈당은 순교자 정치인가, 4장 왜 윤석열과 김건희는 자주 상식을 초월하는가다. 

 

왜 대중은 반지성주의에 매료되는가?

 

반지성적이란 말은 지식인에 대한 경멸과 증오를 의미한다. 이 말은 호프스태터<미국의 반지성주의>(1963)가 1950년대 미국 사회를 휩쓸었던 매카시즘의 광풍을 고발하기 위한 역사적 분석 목적으로 이 개념을 썼다. 즉, 정신적 삶과 그것을 대표한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의심이며 그러한 삶의 가치를 언제나 얕보려는 경향이다. 사회학자 대니얼 리그니는 1991년 위 의<미국의 반지성주의>를 토대로 3개 유형(종교, 정치, 기업), 종교적 반합리주의, 기득권세력과 지식인의 반평등 우월주의에 비판적인 ‘인민주의적 반엘리트주의’, 친자본주의적이면서 실용적 지식을 선호하는 ‘무분별한 도구주의’다. 

 

이에 강준만은 한국의 반지성주의를 이성적, 합리적 소통을 수용하지 않는 정신상태나 태도로 정의하면서 3대 요소를 신앙적 확신(어떤 상태에서 움직일 수 없는 정답을 가지고 있는 상태), 성찰 불능(신앙적 확신 때문에 성찰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상태로 소통의 무의미), 적대적 표현(정답을 실천하기 위해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적대적으로 대하면서 욕설과 인신공격도 불사)을 꼽는다. 꽤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여기에 각종 편향이 덧붙이면서 현란 신공이 펼쳐지는 것이다. 행동, 가용성, 확증, 부정성, 이야기 등의 편향이….

 

그렇다면 탁현민이 연출한 문재인의 이미지 정치란, 마키아벨리가 말했듯이 속이고자 하는 군주는 항상 속고자 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기 마련이다. 지금도 이 논리는 작동한다. 

 

정치는 쇼 비즈니스와 같아서,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말에도 높은 지지율을 유지한다는 것은 정치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미지 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쉽게 풀린다. 문재인 정권이 성찰하는 대신 문제를 감추거나 호도하는 이미지 연출에 집착했던 심리의 바탕에는 자신들만이 선하고 정의롭다는 독선과 오만이 자리하고 있었고, 이게 바로 내로남불의 온상이 됐다고 강준만은 분석한다. 이 분석을 지지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렇게 작동되는 것이 이미지 연출이고, 이미지 정치의 또 다른 면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민형배의 위장 탈당은 순교자 정치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보탤 말이 없다. 있어서는 안 될 행동을 한 것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국회의원 뱃지달고 우주선에 들어가면 쿠케우언이 된다는 말을 입증하는 하나의 예일뿐이라서….

 

윤석열, 건희의 남자로 만족하는가?

 

이 대목은 최근에 여기서 말하든 말하지 않든 간에 모두 사람이 다 아는 사실이다. 다만, 김건희에 대한 비판의 상당 부분은 여성 혐오적 편견에서 비롯됐다는 점은 유념해야 한다. 줄리 논란에 대한 여성계의 대응이 피해 호소인 사건과 더불어 한국 페미니즘이 흑역사로 기록될 것이라는 점 역시 그렇다. 

 

다만, 이런 책임은 윤석열에게 있다. 강준만은 이 대목에서 케케묵은 구식의 강상의 법도 운운하는 “아내(혹은 며느리)도 간수 못 해 가문에 먹칠하는 날엔 가만두지 않겠다.” 식의 이야기로 와전될 가능성이 있어서 조심스럽다고….

공사 구분이 안 되는 이런 일은 적어도 미리 막 아야 했다. 김건희 비리가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학위논문 표절부터 시작해서 대통령궁인지 관사인지 몰라도 왜 자신이 나서서 계약하고. 아무튼 이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꼴이 영락 왕조시대의 누구를 보는 것 같다. 

 

윤석열은 왜 대통령이 되려고 했을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반지성적, 지성이란 뭔가. 비슷한 말뭉치에는 이성, 이지, 지혜, 오성, 교양 등이 있다. 이번에는 사전에 실린 정의를 보자. 지성은 지각된 것을 정리하고 통일하여, 이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식을 낳게 하는 정신 작용. 넓은 뜻으로는 지각이나 직관, 오성(깨우치는) 따위의 지적 능력을 말한다. 그리고 심리 면에서는 새로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 맹목적이거나 본능적 방법에 따르지 아니하고 지적인 사고에 근거하여 그 상황에 적응하고 과제를 해결하는 성질이라 했다. 그러면 답은 뻔하지 않은가, 반지성이면 이런 능력이나 성질이 없다는 말이다. 이런 능력은 후천적으로 충분히 갖출 수 있다. 

 

반지성주의는 지식인에 대한 경멸과 증오가 아니라 지식 기사에 대한 경멸과 증오로 읽어야 할 듯하다. 지식인에도 ‘참’자를 붙여서 참지식인이라고까지 표현하고 싶지 않다. 상위, 최상위로 위계를 가르는 것도 이성적이지 못하니….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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