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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섬
쥴퓌 리바넬리 지음, 오진혁 옮김 / 호밀밭 / 2022년 11월
평점 :
마지막 섬
이 소설<마지막 섬>의 작가 쥴퓌 리바넬리는 튀르키예(구 터키)의 군부독재와 이슬람 정권의 장기 집권, 그리고 여전히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통치, 사회 저변의 문화 등 그리 안정되지 못한 채로 동, 서양을 잇는 미묘한 흐름, 여성, 정의, 평화 등의 메시지를 작품 속에 녹아내고 있다. 한국에 소개되는 작가의 네 번째 작품인 이 책은 꽤 흥미롭다 못해, 상어 대가리로 표현한 전 대통령…. 이 대목은 번역자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문어 대가리 전두환으로 자꾸 읽힌다.
튀르키예의 현대사는 우리의 그것과 닮아있다. 60년, 80년대의 쿠데타가 있었다. 권위주의와 국민의 무관심이 사회공동체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는 우화다. 같은 경험을 했던 한국과 튀르키예의 미래 진로 방향은 어디서부터 달라졌나. 물론 상대적으로 민주주의가 조금은 진전된 한국-이렇게 말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십보백보라고 말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등장한 전 대통령 상어 대가리
정권에서 밀려나게 된 전직 대통령이 가공의 섬, 등장인물들은 이 섬을 머나먼 섬이라 부른다. 갈매기와 공존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도시의 시간과 달리 천천히 흐르는 별세계인 이곳에 전 대통령이 찾아들면서, 사건은 시작되는데….
이웃들과 자연스레 배려하고 적당하게 거리를 두면서 서로 존중하는 삶, 누구의 삶에도 관여하지 않고서도 평화롭게 굴러가는 공동체, 아마도 이런 것이 이상향일지도 모른다.
평화스럽게 천천히 흘러가는 삶 속에 이방인으로 등장한 전 대통령은 이곳을 장악하려 든다. 검은 색안경의 경호원들을 데리고, 작은 왕국을 만들기 위해서 늘 하던 대로 이미 습관이 된 자신 외에는 모두 의심하는 모습, 어린 손녀에게 갈매기가 위협을 가했다고, 밤에 자신의 집 주변을 시끄럽게 돌아다녔다고. 갈매기와 전쟁을 선포한 전 대통령,
운영위원회 만들고, 이 자연 속에 “문명”을 건설해야 한다고 지금까지 제 나름대로 유지되는 자연스러운 공동체의 질서를 전 대통령의 잣대로 가치를 평가하고 제멋대로 바꾸는데, 섬사람들은 그저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이곳에서 입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 소설가가 전 대통령의 횡포에 맞서는데….
전 대통령에게 학살당한 갈매기 떼, 이들의 복수가 시작되고, 갈매기 떼한테 애꿎은 마을 사람이 희생을 당하면서, 섬사람들은 이성을 잃고, 마치 독일인들이 나치에게 경도되고, 기대하면서 환영을 하듯,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하는데, 지금까지 지켜오던 섬의 암묵적 평화는 금이 가고 갈매기를 공존할 수 없는 것 제거해야 할 적으로…. 갈매기 떼를 몰아내기 위해 여우를 들여오고, 섬 안에 독사들은 지금까지 갈매기의 먹이로…. 일정한 개체 수 이상으로는 늘지 않았듯 보이지 않는 자연의 균형이 깨지면서 섬은 지옥으로 변해가는데….
이 이야기의 전반적인 흐름 속에서 용기 있는 지식인과 가늘고 연약해 보이는 여성, 섬사람들 손에 크다시피 한 장애가 있는 소년, 그리고 이 소설의 화자인 나,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공증인 등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상징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들이 어디까지 휘둘림을 당하고, 어떻게 사고가 변하는지, 권위주의 앞에 어떻게 굴종적인 자세를 취하는지, 이들에게 대항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섬사람들을 갈라서게 하고 누군가를 질시, 배척하는 구도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는 모습, 이이제이(以夷制夷-오랑캐를 오랑캐로 무찌른다-)의 전술까지, 뭉치지 못하게 분열시키는 공작 정치까지 현대 정치판과 우리 사회와 놀랄 정도로 닮은 모습이다. 이 소설은 군부독재의 탄압을 받던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커다란 사회를 무대로 했다면 아마도 이 소설은 그리 와닿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이상향인 섬마을에서 지금까지 없던 권력이 등장하고, 권력을 향하는 해바라기와 이를 거부하고 비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 본디 이런 갈등이 잠재돼 있었다는 암시도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지만, 역시 인간의 본능, 집단동조, 집단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에 대한 공격…. 우리 사회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민주시민교육이니, 촛불 행동을 왜 해야 하는지 열 마디 스무 마디 말 보다, 이 책을 읽게 하는 게 오히려 큰 효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싶다.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속에 무엇이 개입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그 변화를 사람들을 어떻게 변하게 하는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제대로 보여준다. 아마도 나치독일에 관한 이해와 우리나라의 군부독재 쿠데타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쿠데타가 왜 일어났는지를 자연스레 알게 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재난을 겪는 과정에서 그간 수면 아래 잠들어 있어 그 모든 것들이 수면 위로 자연스레 떠 오르게 된, 문제들 ?돌봄, 그리자 노동, 필수노동자군-, 우리 사회는 어떻게 연대를 하고,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 지금 검찰 공화국 체제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이 소설은 참으로 많은 것을 시사한다.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