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ㅣ 에세이&
백수린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평점 :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백수린의 에세이, 작가의 글쓰기 스타일에 익숙지 않아서인지 시간의 흐름이 헷갈려 인지 두세 번을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었다. 작가가 미혼인지 비혼인지도 알 수 없다. 반려견 봉봉과 함께 살았던 시간, 독립해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한 곳이 성곽 밑이란다. 읽다 보면 어느새 작가와 함께 걷는 봉봉을 상상하면서 서울 인왕산 자락의 성곽을 떠올려본다. 새로 단장한 성곽 밑으로 보이는 조그만 집들 사이로 보이는 것들….
작가가 사는 집 또한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창문이 많은 집, 골목길 안쪽 깊숙한 곳에 자리한 양옥풍이지 않을까…. 옥상도 있고, 거기에 화분을 올려놓았다니 말이다. 그녀에게는 새로운 세계인 듯하다. 가족과 함께 살다 홀로 떨어져, 살면서 작업인 글쓰기도 하는 공간일까, 아니면 작업실 전용으로 삼을까 하는 대목도 있다.
에세이는 3부로 구성됐고, 1부에서는 나의 작고 환한 방이라는 제목 아래 마당이 없는 집과 단출한 살림…. 가끔 외국 여행 이야기가 나오는데, 유학한 듯한데. 끝이 희미한 게 오히려 상상을 더 해볼 수 있어 나름 흥미로웠다. 2부 산책하는 기분, 3부 멀리, 조금 더 멀리, 여기에는 “봄의 일기”라는 글이 여기저기 고장 난 삭신처럼 집도 여기저기 말썽을 부린다. 우리네 인생이 그러하듯….
몇 년에 걸쳐 쓴 글을 모아 엮은 듯, 시간의 흐름이 이어지다, 과거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마흔 즈음,
이번 달에는 프레지어를 한 단 샀다. 봉봉을 떠나보내면서 생긴 나만의 의식, 사랑하는 강아지가 구름다리를 건너 저세상으로 먼 여행을 떠난 날을 잊지 않고 환한 꽃송이로 기억하는 것.
할머니의 유품 자개농, 시간이 멈춘 듯한 성곽 아랫마을, 시내까지 나가려면 한참을…. 폐지 줍는 할머니, 한겨울 옥상으로 연결해놓은 수돗물이 세서 길바닥까지 흘러, 얼어버리고, 이를 어떻게 해보라고 찾아온 할아버지, 얼어붙은 곳에 소금 뿌렸어…. 추운데 어서 들어가 하는 이웃집 할머니.
이곳은 시간이 가지 않는 이상한 나라인 것처럼. 병으로 세상을 뜬 M 이모, 경건한 신앙생활, 그리고 수녀원을 떠나 세상으로 나온 한동네에 살게 된 아는 언니.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산자락의 봄날과 싱그러운 여름날 그리고 눈 내리는 겨울이면 엄청 추운 곳,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이 눈앞에 선하다. 아마도 작가의 세계로 빠져든 모양이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일본 나고야에서 인천까지 불과 2시간이 채 안 돼서…. 짧은 글 속에 담아낸 영상 같은 글, 눈으로 따라가다 어느덧 상상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데,
이렇게 혼자 사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백수린 작가는 이야기꾼이다. 신변잡기를 읽을 때 비행기가 이륙하듯…. 그리고 구름 속으로 나를 데려가듯 이 책이 그러하다.
안희연 시인은 인간이 집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집이 사람을 선택한다고. 꽤 멋진 말이다. 그렇다. 집과 사람, 자연과 사람, 풍수까지 들먹일 필요조차 없지만, 잠을 편히 잘 수 있고, 아늑하고 평온, 편안한 마음이 든다면, 명당이다. 장소가 어디건 사람이 살 곳이라는 말이다.
사람들과 섞여 살기보다는 고즈넉한 풍광과 글쓰기, 자유로움. 우리가 늘 그리던 그런 세계, 공간이다.
누구나 마음의 집을 짓고 그곳에 또 다른 나를 고이 모셔놓고, 나만 나돌아다닌다. 때때로 또 다른 나에게 말을 걸면서…. 이렇게 사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대체 불가능한 나를 소중히 여기는 “자중자애”의 마음, 세상을 눈으로 가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작가, 재미있고도 깊은 여운이 남는 절대 가볍지 않은 사색이 필요하다.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