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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눈을 감는 시간에 ㅣ 걷는사람 소설집 5
조영한 지음 / 걷는사람 / 2022년 8월
평점 :
그들이 눈을 감는 시간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조영한 소설집, 첫 페이지부터 쳐진다. 결코, 유쾌한 내용이 아니다.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회피하고픈 것들. 구토 유발인가…. 그들이 눈을 감는 시간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외면하고픈 것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눈을 감는다... 그저 이름 없는 사람들의 수동적인 몸짓일 뿐... 너도 나도 모두 그렇다.
사회가 외면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 자주 토기(구역질이 나올 듯)를 느낀다. 하지만, 틀림없는 현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애써 보지 않으려 눈길을 돌리는 현실을 자꾸 정면으로 들여보라 한다. 주장도 없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아마도 조영한은 눈 부릅뜨고 우리 앞에 펼쳐진 현실을 마주 보고, 이들의 짐승처럼 몸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울음을 들어야 한다고…. 그래야 비로소 눈에 보이는 것들 너머 뭔가가 보일 것이라고….
이 소설집에 실린 8편의 단편, 오늘, 묻혀있는 것들, 그들이 눈을 감는 시간에, 식탁 위의 사람들, S대, 검은 쥐, 매직, 그들의 가나안….
오늘, 오늘은 등을 달러간다. 아르바이트하러 간다. 일당을 받아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하고 함께 저녁을 먹고, 선물을 주련다. 택시 운전사인 아버지…. 서른 몇 살을 먹도록 변변한 직장이 없다. 부모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면서…. 오늘도 등을 달러간다…. 등장 인물에게는 이름이 없다. 특정된 사람이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 누구나가 될 수 있다. 고졸로, 사장으로, 기사로, 혹은 민머리로, 남편, 아내로만…. 이름이 없는 것은 그들이 맞닥뜨린 현실이 그들만의 것이 아님을…. 우리가 모두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음을….
묻혀있는 것들…. 고졸의 바람은 살 만큼 살다가 일이라도 안 하는 날에, 아무런 고통 없이 편안히 떠나는 것이란다. 함께 일하는 기사는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공장 내놓아 둔 컨테이너 안에서 잠을 잔다….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따뜻한 남쪽으로….
식탁 위의 사람들…. 커다란 식탁 좁은 아파트에 어울리지 않는다. 다리 한 개가 흔들거린다. 식탁 위에는 하루하루 쌓여만 간다. 대학의 비정규직 교수의 삶을…. 병원에 입원한 아이, 그리고 아내, 힘겹게 살다가 허망하게 세상을 뜬 대학 강사의 죽음…. 주인공의 삶은 네 다리를 지면에 안전하게 붙이지를 못하고 붕 뜬 상태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그의 인생은 그렇게 기울어진 식탁이었고, 그 위에 가족들의 무게가 얹힌다…. 이제 와르르…. 노트북, 향수, 인형과 라면 냄비가 떨어진 소리가 울려 퍼진다.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언제까지 희망을 안고 살아갈 수 있을까….
S대, 사람은 적당하게 주변 눈치를 보면서 “중립”이라 부르는 조금은 멋있어 보이는 단어로 당장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들에게 피할 곳을 마련해준다. S대의 조교들과 계약 강사들이 농성한다. 이도 저도 아닌 조교…. 그들이 눈감을 감는 시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묻힌 것들…. AI 살처분의 위기에 몰린 오리…. 이산화탄소를 불어넣어도 숨이 붙어있는 새끼오리들 질긴 목숨을…. 오리 신세와 같은 이들은, 여전히 숨을 할딱거리며, 살처분을 피해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그들이 눈을 감는 시간에, 남편과 아내는 연달아 수술을 받았다. 자궁 안에서 태아가 죽었다. 남편은 정관수술을 받았다... 수술의 고통보다 더한 삶의 고통, 피임에 실패, 아니 부주의한 것이다. 출산은 이들에게 대책없이 삶을 더 힘들게 한 때문인가, 저출산고령사회의 모습이 보인다. 꼬끼오라고 외치는 아내...
매직의 직원이 하는 일은 폭력적인 고객으로부터 성매매 여성들을 보호하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현장을 보호하는 일이기도 하다.
검은 쥐, 군대 매점의 판매병은 부적응자나 비정상, 환자나 열외자가 가득한 군부대에서 자신을 일종의 예외적 존재로 여기는데…. 그의 눈에 폭언하는 관리관과 과체중의 고문관은 그저 검은 쥐로 보일 뿐이다….
자, 이렇게 보면 조영한의 소설은 결코 밝지 않은, 유쾌하지도 않은, 보기 거북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인다. 화자의 입을 통해서….
살처분 당하는 새끼 오리들…. 헐떡이며 힘겹게 몰아쉬는 숨, 노동자의 임금인상은 늘 보는 풍경이지만, 대학의 조교 엄연한 노동자 이들이 처우개선을 요구하고, 불안정함과 긴장감 속에서 늘 쫓기고 힘들어하는 지식노동자인 대학 강사, 이런 이들이 우리 사회에는 넘쳐난다. 아이들 낳아 키울 자신이 없는 처지인 사람들….
그저 보여준다. 이런 현실이 있음을 보고 느끼고 뭔가 말하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어설픈 훈계나 논리 비약의 해결책도 말하지 않는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삶이 우리,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일상이라고…. 애써 외면하지 말고 이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나 혼자만 탈출해버리면 그만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두 눈을 똑똑히 뜨고 보라고, 한두 사람의 의지와 노력으로 해결될 일이 아님을…. 소설적 사실 이면에 숨겨진 것들을 찾아보라고 말하는 듯…. 기울어진 식탁 다리, 비틀어진 새끼 오리의 목, 대학 비정규직들의 항의와 농성….
인간 존엄이 사라지는 시대, 다양한 줄거리의 단편들은 한 곳으로 수렴되는데, 불평등, 양극화, 그림자 노동, 차별, 부조리, 부조화, 비정상을 눈여겨본다. 불편한 진실 그 자체가 이 소설에 담겨있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일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