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역사
제임스 수즈먼 지음, 박한선.김병화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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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역사

 

일과 인간의 관계를 파고드는 꽤 엉뚱한 발상이다. 인류의 본성을 거스르던 것들에 대한 반박, 부정의 근거를 들이대고 있다. 인류 탄생 이래 일이란 도대체 뭘까, 원제목에서 그 힌트를 찾는다. 일, 우리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에 대한 역사. 이 책<일의 역사>의 지은이 제임스 수즈먼은 거대한 인류사를 통틀어 우리가 시간과 에너지를 가장 많이 할애하는 ‘일’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과학기술이 진보하면 인간은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일 중독에 빠진다. 심하면 과로사라는 웃지 못할 참으로 서글픈 일이 일어난다. 도대체 일과 인간의 관계는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AI의 출현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다 아니다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라는 논쟁은 세상을 뒤바꾸는 변화의 시기 이른바 혁명의 시기마다 반복됐다. 농업혁명, 산업혁명, 그리고 러시아혁명….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이 그러하다. 

 

일과 인간관계의 역사를 생각해 보자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이진우 역, 한길사, 2019)에서 인간의 조건을 위한 근본적인 세 가지 활동 형식에 관한 현상학적 분석에 있는데, 동물로서 인간의 생물학적 삶에 부합하는 노동, 인간이 지상에 건립하는 대상들의 인공세계에 부합하는 작업, 그리고 별개의 개인으로서 우리의 다원성에 부합하는 행위 즉 활동이다. 아렌트는 이 구별들과 철학과 종교적 우선권 내에서 형성된 지적 전통 안에서 무시됐다고 말한다. 노동과 작업 그리고 활동, 이를 구분하고 여기에 사유하는 것, 바로 이것이 인간의 조건이라는 말이다. 이런 문제의식과 맥락적인 면에서는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을 듯 보이는 <일의 역사>라는 이 책은 흥미롭다. 

이 책은 4부 체제이고, 1부에서는 인류의 출현과 함께 힘든 노동이라는 개념의 등장 시기, 2부 공생하는 환경 속에서 풍요한 사회의 근원은, 3부 끝없는 노역, 시간은 돈이라는 개념의 등장, 최초의 기계…. 4부 도시의 유물, 끝없는 욕망과 월급쟁이의 죽음을 불러일으키는 일….

 

일은 중독성이 있는 것인가?

 

일에 치여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휴식의 욕구가 강렬해질 때, 근무시간을 줄이고 휴가를 더 받으면 행복할 것 같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또, 임금이 어느 정도 오르면 여가를 즐기겠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임금도 올라도 여전히 여가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왜 그럴까, 일 중독 때문일까, 이 책 첫머리에서 인용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한 구절을 보자. 무거운 것이 무엇인가? 중력을 견디어 내는 정신은 이렇게 묻고는 낙타처럼 무릎을 꿇고 앉아, 충분히 많은 짐이 실리기를 원한다…. 정신은 무거운 짐을 지고 서둘러 사막으로 들어가는 낙타처럼 자신의 사막으로 서둘러 가는 것이다. 낙타의 행복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으로 가는 것이기에 그렇다….

 

우리는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불안감을 느낀다. 근면과 성실이 우리 스스로 부여하는 낙타의 짐이다. 인류도 신석기 혁명-수렵에서 정착하게 되면서 스스로 가축화되어 가는-과정에서 묵묵한 인내의 가치를 체화해왔다는 것이다. 

 

일과 여가 경계의 모호성

 

어디까지가 일이고 어디서부터 여가인가? 케인스는 21세기에 들어서면 자본의 성장, 생산성 개선, 기술 발전으로 모든 사람의 기본적 욕구나 필요가 쉽게 충족될 것이기에 아마도 1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하지 않는 경제적 약속의 땅 기슭에 있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는데,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아니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대다수 사람이 아닌 일부의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케인스의 유토피아적 발상은 소유와 부의 추구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부정적 평가와 조롱을 받는 사회를 전제로 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도덕적, 윤리적…. 그것이 프로테스탄트적이든 유교적이든 간에….

 

욕구와 희소성의 충족이 인류를 영원히 구속하는 조건이라는 생각을 포기하면, 일의 정의는 생계유지 수단 이상으로 확대되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른바 활동을 포괄하는 것으로 확장될 것이기에 세상이 달리 보일 것이다. 경제학의 경계를 넘어 진화생물학, 동물학, 물리학의 세계로….

 

일과 인간의 관계

 

일과 인간의 관계는 에너지와 관계와 진화와 문화가 가려는 방향을 따라간다는 점이 교차하게 된다는 것인데, 인간이 불을 다루게 됨으로써 이 에너지로 식량을 찾으러 다니지 않고도 구하게 되어, 생명 유지 시간을 늘리고, 식량이 풍부해짐으로써 에너지 소모가 많은 두뇌에 연료를 공급하게 됐다고…. 또, 농경사회에서 환경, 타인, 결핍 상황 등과의 관계가 일과의 관계를 변화시켰고, 오늘날 우리 삶을 관리하는 공식적인 경제구조 안에 얼마나 많은 부분이 농경사회에서 유래했는지…. 우리의 관념이 일에 관한 우리의 태도에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된 것인지, 그리고 도시화로 인간은 상상할 수 없는 변화를 겪는데, 새로운 기술과 직업, 전문성과 업종들이 발생할 씨앗을 뿌렸다. 도시의 형성과 등장은 경제문제와 희소성의 역학관계를 바꾸는 역할을 하게 된다. 마지막, 공장출현…. 이어서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의 주역으로 불리게 될 AI와 일의 관계….

 

이런 커다란 흐름을 이야기 속에 함께 등장하는 진화생물학, 우리가 상식이라고 믿는 것들이 실은 아무런 근거 없음을…. 숫공작의 꼬리는 암컷에게 멋있고 보이고 생존율 높은 튼튼한 후세를 낳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고…. 

뻬짜기 새가 둥지를 짓고, 부수는 행동은 혹독한 시련을 견디기 위한 훈련….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정원에 갖다 두는 모이를 먹는 다양한 참새목의 새들이 날씬함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마치 인간이 스포츠를 하고 달리기를 하면서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과 비슷하다. 유기체 즉 살아있는 것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는 의미다. 

 

자동화, 그리고 더 나아가서…. 케인스의 유토피아적 미래

 

한나 아렌트는 자동화의 함의를 이렇게 보고 있다. 최근 몇 세기 동안 인간세계에 대한 가장 주요한 위협은 모든 안정성을 파괴하고 모든 것을 움직이게 만든 경제적 현대화라고, 그리고, 생산과 소비의 과정은 자연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수준을 훨씬 넘어섰는데 이는 세계의 한복판에서 진행되는 생물학적 과정이자 세계를 둘러싼 순환적 자연 과정이라는 이중적 의미의 자연으로부터, 사람의 손으로 만든 구조물인 세계를 보호하고 분리하는 경계선을 우리가 억지로 무너뜨려서 항상 위협받는 세계의 안정성을 자연에 내맡기고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경제적 관심사들이 공공의 관심과 공동 정책의 핵심이 된 이후, 세계의 대대적인 파괴 그리고 스스로를 소비 욕망의 관점에서 생각하려는 경향의 증가가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이라는 것이다. 결론은 생각 좀 하고 삽시다라는 말이다. 이 말과 제임스 수즈먼의 자동화 세계의 확장은, 표현은 다르지만, 맥락적으로는 꽤 유사하다. 비숙련 노동자와 반숙련 노동자가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을 기회가 줄어들게 돼, 국가 내부의 불평등은 심화할 것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일과 인간의 관계는, 자동화이든 AI이든 , 대처해 나갈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이 책은 우리 사회의 경제 제도와 노동문화의 진부함을 폭로하며, 어떤 직업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지를 되묻게 한다. 우리가 핵심적인 혹은 전통적으로 인식하는 직업보다 무의미하거나 기생적인 직업들(금융자산의 출현으로 남의 돈으로 자신의 부를 늘리는 이상한 현상들)에 시장이 보상해주는 기이한 현상, 이대로 두어도 되나 싶을 정도다. 인간은 변화가 강요될 때 놀랄 정도로 다재다능해질 수 있다. 인간은 사물에 대해 매우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새로운 방식에 재빨리 적응할 수도 있기에…. 불평등과 부의 쏠림(1%대 99% 혹은 99%대 1%)에 대해서도 대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이 책을 읽을 때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도 함께 읽어도 좋을 듯싶다. 노동, 작업, 활동, 일과 인간의 관계 등…. 물론 전자는 정치철학을 바탕에 깔고 있지만, 인간이라면 “생각 좀 하고 살자”라는 메시지와 후자의 인간 변화 적응력과 사고력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나갈 수 있다는 비전을 함께 읽어보면 어떤 모습의 사회가 보일까 궁금하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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