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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과 배신의 시대 - 격동의 20세기, 한·중·일의 빛과 그림자 ㅣ 역사의 시그니처 1
정태헌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9월
평점 :
20세기 한, 중, 일 사상사- 가치 중심에 놓였던 것들, 이기와 이타의 경계선에서
지은이 정태헌은 경제사를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하며, 남북 역사학 교류와 적대적 분단체제 해체에 관한 연구하고 있다. 이 책<혁명과 배신의 시대>은 시대정신을 통해 본 20세기 한·중·일 사상사다. 근대와 함께 시작된 거대 담론들은(아니 거대 담론과 함께 시작된 근대-1, 2차 세계대전 전후의 제국주의, 민족주의 진화론 등-) 20세기 초 동아시아의 사상적 지형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침략전쟁의 시기, 인종주의를 동반한 유럽제국과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수탈은 사회진화론, 자유와 평등,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현실을 속에서 희망과 평화를 찾으려 했던 루쉰, 조소앙, 후세 다쓰지와 침략전쟁에 나서거나 동조하며 조국을 버린 왕징웨이, 이광수, 도조 히데키의 삶은 20세기 동아시아가 걸어온 길을….
이 책은 일본의 우파논리를 옹호하는 이영훈 김낙연 등이 쓴 <반일종족주의>(미래사, 2019)에 반박하는 호사카 유지 의<신친일파>(봄이아트북스, 2020)를 생각나게 한다.
친일파, 신친일파, 일본이 한국 근대화에 미친 영향이 과소평가돼서는 안 된다?, 마치 이광수의 논리를 보는 듯…. 식민사학의 복사판인 식민지 근대화론을 들먹이고, 유럽까지 몰려가서 소녀의 상을 철거하라고….
오늘의 일본은 구제국주의 국가 중 과거사 정리 수준이 가장 뒤떨어진 곳이다. 이 책에 소개된 후세 다쓰지와(박열의 변호사)처럼 생각하는 이는 극소수?- 이 책에서 극소수라는 표현의 근거는 아마도 일본에서의 사고 경향이나 흐름을 이야기한 듯한데 일본 국민 대다수가 그러하다는 뜻은 아님을-, 도조 히데키에 동조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라고 한 지적 역시, 일본의 우익세력을 뜻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일본 헌법 제9조는 전쟁 포기를 선언하고 있다. 해마다 8.15일(일본의 2대 명절-불교 ‘우란분회’, ‘중원’으로 음력 7월15일을 양력으로 센다)이면 원폭 피해지 히로시마에서 평화를 다짐한다. 일본의 우파는 여전히 전쟁 포기조항을 개헌하자고….
자 이쯤 되면, 반일종족주의의 논리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루쉰과 조소앙- 사회진화론의 벽을 넘어서
루쉰과 조소앙은 사회진화론- 근대주의와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다. 이들은 중국과 조선의 처참한 현실에서 희망과 민중의 역동성을 찾고 평화를 추구했다.
루쉰(본명은 저우수런이다) 1902년 중국의 국비유학생으로 일본에 유학, 1904년 센다이 의학전문학교(의대)에 입학한 최초의 중국인 유학생으로 7년 반 동안 일본에 살면서, 동유럽 피압박민족의 문학작품을 번역하기도 했다. 중국에 돌아와 중국 최초 근대소설<광인일기>을 발표, 이후 1923년 그의 첫 소설<외침>에 등장하는 환등기 사건에서 일본군이 중국인의 목을 칠 참인데도 물끄러미 구경만 하는 동포를 보면서 큰 충격을 받고, 의학도의 길을 포기하고 중국인의 정신을 뜯어고치는 일을 제일 먼저 해야 할 일로 생각했다. 그는 삶과 사상은 “자득자결”로 함축된다….
루쉰과 같은 시기에 일본에 있었던 조소앙은 당대의 이데올로기이자 담론이었던 ‘사회진화론’ - 강자가 약자를 이끌며 자행되는 약탈과 학살을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며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에서 거꾸로 평화 개념을 도출함으로써 당시 아시아 청년들을 주저앉혔던 사회진화론이란 큰 장애물을 넘어설 수 있었다. 이 점에서 루쉰과 조소앙은 사상적 연대를…. 이광수와 왕징웨이도 헤어나지 못한 함정일 만큼
조소앙은 강자라고 약자를 삼킬 권리는 없다는 생각은 사회진화론을 부정하고 평화로…. 아울러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조소앙의 삼균주의에 입각한 대한민국건국강령을 발표, 신국가 건설계획으로 보통선거를 통해 민주공화국 건설, 토지개혁, 주요 산업 국유화, 남녀평등, 의무제도교육 등의 주장을 담고 있다.
왕징웨이와 이광수- 천재들의 자기변명, 과시욕으로….
왕징웨이는 신해혁명의 지도자 쑨원의 정치적 후계자로서 혁명에 투신했으나, 권력만 좇다가 끝내 중국을 배반한다. 쑨원사망 후 13년간 장제스와 정치적 동맹(장, 왕 합작)의 시도와 분열, 외유와 귀국을 반복, 1938년 장제스 국민정부를 말살시키겠다는 일본의 분열정책에 동조, 별도의 괴뢰정부를 세우는 밀약을 일본과 맺기도 했다. 만주족의 청나라를 뒤엎고 한족의 나라를 만들자, 두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는 제국주의의 본질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인가, 아니면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 자신을 저버린 것인가, 이 역시 역사다.
춘원 이광수는 지금도 논쟁거리다. 근대의 힘을 추종하며 내선일체를…. 조선인은 희망이 없다. 민족개조만이 살길이라는 이광수는 아버지처럼 따르던 안창호를 등지고, 조선인은 피와 삶까지 일본인이 돼야 한다고, 천황에게 모든 걸 바쳐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내 친일은 민족을 위한 희생이었다는 변명까지…. 이 모든 것이 다 사회진화론에 바탕으로 둔 것이다. 너무나도 천재여서 자가당착에 빠지기 쉬웠던 것인가, 강한 지도자를 갈망하다가 파시즘에 공감한….
한국과 중국의 근대문학에서 이광수와 루쉰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루쉰과 정반대의 길을 걸은 이광수, 그리고 그의 생각은 여전히 오늘날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죽어서까지 친일파의 정신적 지주가 된 것인가?
후세 다쓰지와 도조히데키- 평화와 전쟁-
후세다쓰지는 2004년 한국 정부로부터 일본인 최초로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민족을 넘어 보편적 인권과 평화를 옹호하고, 박열을 비롯한 조선의 독립운동가를 변호하며, 애초 일본의 조선 침략은 부당한 것이라고, 일한합병은 부당하다, 쌀 생산이 늘어도 조선 농민은 가난하다고 했던 그는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셋째 아들은 반전운동을 하다가 1944년에 옥사하기도, 그는 세계 평화주의자다. 그는 전후 일본의 우경화를 우려하면서 관동대지진(1923.9)으로 희생당한 조선인 "대지진 학살"사건의 진상을 규명, 무고한 학살에 대한 면죄부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패전 후 <세계평론>에 “조선건국헌법 초안 사고”를 발표했다. 이글은 감옥에서 풀려난 박열이 헌법 초안을 조국 해방 선물로 갖고 싶다고 하자 두 사람이 함께 의견을 나눠 작성했다고 한다. 이 글은 반전사상을 담고 있다. 전쟁 포기 조항(일본 헌법)보다 적극적이고 명확하게 전쟁 반대를, 또 하나는 국민의 자격을 헌법으로 정했다. 지속해서 10년간 혹은 단속적으로 20년간 조선 영토에 생활 본거지를 둔 정주자는 조선 국민으로 규정하자고…. 이는 일본 헌법에 대한 그의 주장과 일치한다. 세계적 평화운동, 즉 재일 조선인 인권문제를 해결하자는 구상이 담겨있기도 한 것이었다.
후세의 이런 사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한, 일 관계는 여전히 후진적이어서, 학습된 제한 행동이 관성화돼버린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전범 도조히데키,
하나회, 12.12쿠데타 주역들의 사모임이다. 놀랍게도…. 50년 전에 일본의 새 세대 정치군인의 등장, 30대 육군 사조직이 침략전쟁의 판을 짰던 이들과 닮았다. 도조는 군부 중심의 국가 총동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1936년 2.26 군사 천황 친정 국가를 만들자는 황도파의 청년 장교가 중심으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실패한 후, 도조는 군부의 핵심이 된다.
도조는 생각은 하나다. 권한은 한 몸에, 책임은 부하에게…. 1941년 총리에 올라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A급 전범, 군부의 힘을 키워 만주와 몽골을 직접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범재판소에서 그는 열강에게 침탈당하는 동아시아의 정세를 이야기하면 자위권발동이라 주장한다..
도조는 1948년 도쿄전범재판소에서 A급 전범으로 다른 13명의 전범과 함께 교수형을 당했다. 이들은 30년이 지난 1978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됐다. 아직도 침략전쟁을 반성하지 못한 이들….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