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상호부조론 - 자선이 아닌 연대 니케북스 사회과학 시리즈
딘 스페이드 지음, 장석준 옮김 / 니케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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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상호부조론

 

상호부조는 인간의 본성인 군집 생활의 바탕을 이루는 행동 양식이다. 집단사냥, 농경 등등에서 나타난다. 우리 전통사회의 두레, 품앗이 문화가 그것이다. 이 책은 1902년에 표트르 크로폿킨의 <상호부조: 진화의 한 요소>와 같은 제목이다. 크로폿킨의 상호부조는 19세기 후반 마을, 노동 운동 및 가난한 사람들에서 번영과 생존을 위한 상호 원조의 중요성을 고려한다. 그는 특히 사유 재산의 부과를 통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상호 원조 기관을 파괴한 국가를 비판한다. <상호부조>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우승열패, 적자생존의 신화에서 해방하려는 시도로 유명, 단재 신채호도 크로폿킨의 <상호부조>를 읽고 사화 진화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다.

 

 

 

지은이 딘 스페이드는 트렌스젠더 운동가다. 이 책 <21세기 상호부조론>에서 짐작할 수 있듯 21세기의 상호 부조론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가, 핵심은 자선이 아닌 연대라는 점을 강조한다. 

 

미국 사회에서 연대의 움직임, 국가적 재난에 대응한 정부 등 제도권의 늑장 대응을 대신에 이재민을 도운 이들의 활동은 상호부조에 터 잡은 것이라는 점을 예로 들면서 상호부조와 자선의 경계선, 외형상 유사하게 보이더라도 경계가 모호하더라도 이 둘은 질적으로 다름을 말한다. 그는 펜데믹을 비롯해 최근 겪는 각종 재해, 인종차별이나 이주민 억압에 맞선 시위현장, 가난한 이들과 소수자들이 밀집한 지역사회의 자구 노력 등에서 실제 경험을 통해 상호부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상호부조와 자선의 질적으로 다르다

 

지은이는 상호부조 조직인 것과 아닌 것을 엄격히 구분해야 하는데 이는 조직의 기본원리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상호부조 조직의 기본원리는 연대다. 따라서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배운 자와 배우지 못한 자 등의 차별이나 위계를 경계하고 구성원들 사이의 평등한 교류, 최대한 적극적 참여, 민주적 소통과 합의를 지향한다. 

 

상호부조의 세 가지 핵심 요소, 첫째는 공동의 인식이다. 상호부조는 생존과 관련된 필요를 충족하며, 사람들이 왜 필요한 것을 얻지 못하는 지 그 이유에 관한 공동의 인식을 구축, 둘째, 사람들이 운동에 참여하고 연대를 확장하며, 운동을 구축한다. 셋째는 집단행동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참여적 성격을 갖는다. 

 

그렇다면 자선은 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활동하는 단체 중 상호부조를 표방하더라도 실제로는 자선의 원리를 추종한다. 부유층이나 국가의 후원을 받아 조직을 운영하며 도움의 손길을 바라는 이들에게 시혜를 베풀려 한다.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의 도움을 받다 보니 그들의 세계관이나 이해관계에 거스르는 실천을 하기 힘들고, 재난을 당한 이들에게 도움을 베푼다고 여기다 보니 도움받을 자격과 조건을 따지며 권력을 좇는 데 동원할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이를 학습된 지배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이미 누군가의 의견을 감정을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는 자기검열과 통제가 내재화된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이렇게 상호부조는 야성의 본성을 벗어나 제도권의 세련된 통제 아래 들어가고 만다. 지은이는 이를 경계하자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나, 라는 대목에서 당황스러울 정도로 구체적인 조직 활동의 내용을 적고 있다. 

 

 

구체적인 실천 지침

 

이 책의 특징이기도 하다. 현상과 이론, 그리고 논쟁거리를 화두 삼아 공박하고 논리를 전개하기보다는, 간명한 주장과 아울러 이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지침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리더십, 조직, 운동가 활동가의 소진, 조직의 갈등요인 등 실제 상호부조 관련 단체 운영에서 실천 활동까지 조직을 건강하게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지적하면서 그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절대로 능력을 넘어서는 일을 당위성만으로 대응하지 말라고 한다. 당장에 해결해야 할 일도 있지만, 사회변혁은 하루 이틀 사이에 해결할 일이 아니니 조직의 역량과 운동가 활동가의 준비 정도에 따라서 대응하라고 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늘 경계를 넘나드는 현실….

 

 

재정은 늘 문제다. 우리 사회에도 한 때(아니다. 앞으로 지속해서 심심치 않게 제기될 문제이기도 하다)…. 제도권에서는 상호부조 활동을 문제 삼고 순치, 길들이려 할 때, 걸고넘어지는 도덕과 윤리성 운운….

 

조직 내로 돌아가 보자. 조직 분란, 그거도 감정이 얽힌 분쟁, 단체가 공동체를 표방하며 기성 사회와는 다른 대안적인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공동체를 꿈꿀수록 회원들 가운데 상당수는 소속 단체에서 가족을 대신할 또 다른 가족을 찾으려 한다. 정서적 만족감을 찾으려는 욕구가 강할수록 이 욕구 충족되지 못할 때 생기는 충격이나 상처도 크다. 이런 기대들이 결국 분열하거나 해산하는 단체들도 있다. 

 

상호 부조론에 모든 기대를 걸 수 있을까?

 

지은이는 국가의 역할과 가능성을 축소하고 자발적인 상호부조 네트워크에 미래 사회 건설 임무를 떠맡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생각도 든다. 이 책과 함께 읽어볼 책으로 더 케어 컬렉티브의 <돌봄 선언>(정소영 옮김, 니케북스, 2021)을 추천한다. 이 책은 국가의 적극적인 기능과 상호부조의 네트워크의 역할을 종합하는 쪽이다. 변혁 운동은 동태적이다. 국가의 기능과 상호부조 네트워크 기능의 길항작용(늘 대응하는 항상성), 긴장성을 지닌 것이어야 한다. 사회학, 정치학적 접근이다.

 

 

 

표트르 크로폿킨의 <상호부조>론이 20세기 초, 사회진화론에 한 방 날렸듯이, 지은이의 이 책은 21세기의 상호부조의 방향을…. 그러나 장애물도 만만치 않다. 특히 학습된 지배 행동의 덫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가, 지자체의 보조금을 받는 단체에는 특히 그렇다. 어디서 보조금을 받는지도 몰라도 될 구조, 사회단체 활동 지원기금 등이 있다면, 사회단체의 본래 활동에 충실하라는 사회적 연대로…. 이 책은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과제가 많음을 시사한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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