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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 : 내 안의 참나를 만나는 가장 빠른 길 ㅣ 요가 수트라 1
오쇼 지음, 손민규 옮김 / 태일출판사 / 2022년 6월
평점 :
조르바 붓다- 세속의 즐거움을 누리면서 부처처럼 내면의 평화를 가진 인간
내 안의 참나를 만나는 가장 빠른 길- 비움

런던 <선데이 타임스>는 20세기를 빛낸 인물로, 인도의 <선데이 미드데이> 운명을 바꿀 열 명의 인물, 미국의 작가 톰 로빈슨은 예수 이후 가장 위험한 남자라고 평했다. 한마디로 오쇼[(화상)和尙, 수행을 많이 한 승려]라즈니쉬는 현자의 반열에 든 현세의 뛰어난 사상가라는 말이겠다. 라즈니쉬는 자기 일에 대해 새로운 인간의 탄생 기반조성이라 말한다. 새로운 인간상은 ‘조르바 붓다’인데, 니코스 카잔차키스 소설 속 주인공 조르바처럼 세속의 즐거움을 누리면서 부처처럼 내면의 평화를 겸비한 존재를 말한다.
이 책은 라즈니쉬의 제자로 수행, 오쇼코리아를 열어서 활동하는 손민규 선생이 옮긴 것이다. 라즈니쉬는 책을 직접 쓰는 게 아니라 말로 풀어내고, 이를 녹음하거나 기록한 것을 정리해서 제자 등이 책으로 엮어낸다.
오쇼 의 가르침을 관통하는 정신은, 예부터 전해 내려온 시대 초월의 지혜와 현대 과학 문명이 지닌 궁극적인 가능성을 통합하는 것이다. 그는 현대인의 생활환경에 맞는 명상법을 도입, 인간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데 공헌, ”역동 명상법“이란 독창적인 방법을 통해 심신 스트레스를 해소, 일상생활 속에서 수월하게 평화와 고요함을….
이 책<비움>은 13장으로 구성됐다. 1장, 요가의 입문에서 13장 죽음과 수행까지, 지혜에 관해서 말하고, 명상과 해탈, 각성, 요가의 8수족을 담고 있다. 비움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요. 그의 또 다른 책 <쉼> 은 마음을 비우는 순간 내면의 깊숙한 곳으로부터 쉼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비우고 쉬고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된다.
요가의 길 입문-자신의 마음에 대한 완전 절망 때만이 요가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오쇼는 인간은 희망과 미래, 내일이라는 깊은 환영 속에 산다고 했다. 또한 인간은 밤이고 낮이고 꿈을 꾼다. 꿈꾸지 않는 상태에서 꿈꾸는 상태로 또 그 반대로 끊임없이 움직인다. 현재는 항상 지옥의 연속이다. 이는 희망을 미래에 투사하기 때문이란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며, 내일은 뭔가 좋은 일이, 또 천국의 문이 열리면 좋겠다고 꿈을 꾼다. 그러나 오늘은 천국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인간의 지금 여기 곁에 있는 진짜(현실)를 살지 않는다. 항상 내일로 미래로 뛰어간다. 이를 천국이라 부른다. 과거를 사는 것 또한 꿈이다. 이미 지나버린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요가는 꿈 없는 마음으로 가는 방법이다. 요가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과학이다. 요가란 마음이 더는 미래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희망하지도, 자신의 존재를 앞서가지도 않는 것이다. 요가란 실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요가란 더는 희망도, 미래도, 욕망도 없는 상태를 말한다. 무엇을 하고, 무엇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떨어져 나간다. 그래서 내 내면으로 향해 들어간다. 그리고 멈추는 것이다.
그릇된 지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거짓 관념
바른 지혜의 요소는 직접 인식(프라티악샤-명상이 깊어져야 감각을 초월하고, 그 어떤 감각에도 의존하지 않을 때만 가능하다)과 추론(아누만), 깨달은 자(아가마)의 말, 이 세 가지다. 마음을 지배하는 것이 요가다. 부처의 마음은 사라졌다. 그래서 부처는 전체성으로 현존한다. 정신병자의 존재는 사라졌다. 그래서 마음이 정신병자를 지배한다. 마음은 속박의 근원이 되기도 하고 자유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세상사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다. 마음을 올바로 이용하면 명상이 되고, 그릇되게 이용하면 지옥이 된다. 편견과 지식, 관념을 내려놓고 다시 어린아이가 돼 새로운 눈으로 보라는 오쇼의 말(수트라).
우주의 소리
옴(염송하는 신성한 소리- 그럴지어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은 우주 소리의 상징, 마음의 작용이 멈출 때 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사람들의 내면에서 너무 많은 말들이 오가기에 우주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옴을 염송하고 명상하라, 이를 하면 모든 장애물이 사라지고 새로운 의식이 깨어난다. 힌두교도는 상징적인 언어인 옴이라는 이름으로 힌두교 신자를 불렀다. 파탄잘리(요가 철학의 창시자)는 말한다. "신은 옴으로 알려졌다"
옴의 소리가 몸 전체로 퍼지면서 의식이 깨어나는 자신의 모습을 지켜본다.
명상, 내 안으로 들어가 거기에 자리한 또 다른 나(혹은 어린 자아)를 마주하고 소통하고 씻어내리고 하는 등등의 마음(심리학적 접근과도 비슷)을 지워버리는 것, 하지만, 아마도 관성의 법칙이랄까, 오랫동안 무의식 속에서 지배해 온 것들이 한두 번의 명상만으로는 없어지거나 치유(?)되지 않을 것이기에, 날마다 몸을 씻듯 마음도 씻어내는 게 필요하다는 말이다.
마음의 병, 세상사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고,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갈리기도 한다는 말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느낌, 우리 선조들께서 하신 말뜻들이다. 밥상머리에서 했던 이런 말씀들….

자, 자신이 불만족을 느낄 때는 어떻게 하는가? 또, 해야할까?
파탄잘리는 그 반대로 보라고, 불만족을 느낄 때, 만족을 생각하라고, 화가 났을 때, 사랑의 마음을 불러오면 화는 사랑의 에너지로 변한다. 따라서 화가 났을 때, 사랑을 깊이 생각하라…. (이런 마음 조정의 훈련법이 요가이기도) 또, 그는 신의 존재 여부는 중요치 않다. 신은 귀의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고 했다. 신 없이 귀의할 수 있다면 굳이 신을 강요하지 않는다. 핵심은 귀의이기에….
오쇼 수트라에 요가란 단지 전통적인 심신 수련법에 그치지 아니하고, 마음을 헤아리고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의 연결을, 요가 하면 그저 심신 수련보다는 건강과 미용을 위해라고. 이는 절반밖에, 아니 뭐 그럴 수도 있다. 심과 신, 마음과 몸, 어디서 시작하든지 하나로 이어지면 되는 것인데 굳이 순서를 따져야 할 필요는 없겠다.
오랜만에 오쇼 수트라를 읽는 것만으로 여름날의 더위를 덜 느끼니. 독서삼매경이란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겠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