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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계약서는 만기 되지 않는다
리러하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8월
평점 :
악마와 계약은 끝나지 않았다.
작가 리러화, 90년대 학급문고에서 스릴러와 호러, 순정만화를 주로 읽으며 작가의 꿈을 키운 듯, 그리고 필명 리러화는 늑골의 영어 첫머리 글자 리와 폐를 뜻하는 러, 심장인 하트, ‘리러화’, 여기에는 어떤 식으로든 가슴에 닿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희망을 담았다.
기발한 발상, 세상이 지옥이요. 지옥이 세상이란 뜻일까, 이 소설은 제1회 K-스토리 공모전 대상 수상작이다. 무려 350:1의 경쟁을 뚫고, “지옥에 세를 주다.” 대체불가 미스터리 로맨스라, NFMRF(대체불가 미스터리 로맨스 판타지), 모든 장르의 요소가 들어간 종합선물세트라는 표현이 적확할지도 모르겠다.
이야기의 씨줄과 날줄은 지옥의 리모델링, 마치 TV 드라마 <내일>에서 지옥은 이제 더는 수용할 수 없는 포화 지경에 이르러,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미리 막아서, 지옥의 수용인원이 더는 늘어나지 않도록….
지옥사람들과 함께 산다.
철거촌 안의 커다란 건물, 낡고 오래돼 집안 곳곳에 곰팡이와 습기에 찬 빈방들, 뭔가 사연 있는 세입자 둘에 팔순의 노인과 어렸을 적에 이곳에 들어와 함께 살게 된 주인공 서주, 대학을 휴학하고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하고…. 할머니는 우연히 옆집 오래된 대추나무 밑동으로 들랑거리는 지옥 사람들을 보고, 우리 집 빈방을 쓰라며 악마와 빈방을 빌려주는 임대차 계약을 맺는데….
지옥에서 온 사람들은 이승에서 못다 한 일이나 행동을 반복적으로 한다. 매일같이 음식 찌꺼기를 양푼을 들고 먹어대는 사람, 보일러실로 들어가…. 한편, 그 집 지하실에서는 지옥 사람들을 고문하는데, 가끔은 심한 건망증 증세를 보이는 할머니, 피붙이도 아니고, 신분상으로는 전혀 타인인 서주와 할머니의 대화, 서주는 할머니의 입버릇처럼 되뇌는 잔소리를 들어가면서 아웅다웅 살아가는데….
이들 생활 속으로 귀여운 뿔이 달린 악마가 끼어든다.
돈이 힘인 할머니와 아르바이트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손녀, 서주, 서주에게 미숫가루를 타주던 악마는 우연히 지옥(丁) 구역을 담당하는 악마가 됐다. 악마는 서주와의 만남을 통해 인간 세상을 배우고, 서주는 악마에게 미주알고주알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고 울기도 하고…. 서주가 아르바이트 가는 길을 따라가기도 하고, 늦은 밤, 그녀의 귀가를 기다리기도 하는 악마, 할머니와 서주를 위해 음식을 만들기도 하는 악마….
할머니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모두 할머니 등골을 빼먹고, 장남은 교통사고로, 차남은 여기저기 사기를 치고 다니다가 사채업자들에게 쫓겨 다니다가 어느 날 할머니 집에서 사고로 죽게 되고, 사채업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악마….
악마는 인간 세상일에 끼어들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고, 지옥 관리자 자리를 빼앗기고, 귀엽게 보이던 머리에 난 작은 뿔도 사라졌다. 물론 지옥도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악마와의 거래를…. 지옥에서 온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가?
할머니도 저세상으로, 장례식장을 찾아온 악마는 서주에게 “난 당신을 보고 싶어서 여기 왔어요. 하지만 오는 길 내내 의문이 들었습니다. 나는 어쩌면 ‘우는’ 당신을 보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하고”…. 악마는 “당신이 다 울 수 있을 때까지 옆에 있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그 빈 자리를 채울 수 있게 하락해주세요.”라고,
내가 죽어서 지옥에 갈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간다면…. 사후에 소원을 들어줄 테니 지금의 당신을 달라는 악마의 속삭임,
서주는 지옥으로부터 얻은 남자, 악마와 약속을….
판타지와 현실 속을 오가는 이야기들, 이야기는 지옥에서 온 악마와 임대차 계약을 맺은 할머니, 서주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 악마와 서주의 이야기…. 이 모든 서사, 우리 삶이 지옥이라는 이야기인가, 리러화 작가의 재치 있는 말솜씨가 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원동력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톡톡 튄다.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지옥과 악마는 공포스럽기보다는 유머러스하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