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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 호텔 ㅣ 스토리콜렉터 101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지음, 김미정 옮김 / 북로드 / 2022년 5월
평점 :
글래스 호텔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의 5번째 장편소설 2008년 미국에서 폰지사기로 체포돼 15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유대인 버나드 메이도프와 그의 사기행각을 다룬 작품이다. 폰지사기 혹은 폰지게임은 실제로는 아무 사업도 하지 않으면서 나중에 투자한 사람의 돈으로 먼저 투자한 사람에게 원금과 이자를 갚아나가는 일종의 금융 다단계 사기수법이다. 1925년 미국 전역에서 8개월 만에 4만여 명으로부터 1,500만 달러를 끌어모은 사기범 찰스 폰지의 이름을 따서 폰지사기라 불린다.
38년간 메이도프가 만든 “돈의 왕국”의 빛과 그림자를 통해 인간의 허영과 욕망의 이중성을…. 이는 단지 미국의 이야기도 캐나다, 유럽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 한국 사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상초유의 폰지사기, 2008년 금융위기때 사건이 밝혀지면서... 그 뒤안길 속에 숨겨지고 가려진 관련자와 피해자들의 삶을 퍼즐처럼...

뭔가 환상을 좇은 날마다 ‘로또’를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도…. 이 소설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폰지게임의 주도자 조너선 알카이티스의 트로피 와이프인 빈센트, 이리저리 모든 이들이 얽히고설킨 “돈의 왕국”, 이 왕국에도 일관되게 그 밑바닥을 관통하는 것이 있다. “불안”, “어두운 그림자”, “거짓말” “양심” 이다.
바닷속 빈센트의 2018년 12월,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어둠을 가르며, 배의 측면에서 바다로 곤두박질친다…. 로 시작된 이야기는
종말의 시작, 배의 측면에서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수평선이 뒤집힌다. 한 번, 두 번,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가 날아간다…. 로 끝을 맺는데….
밴쿠버섬 가장 북쪽에 자리한 특급호텔 카이에트에서 시작되는, 적어도 알카이티스가 체포되기 몇 년 전인 2005년에 시작된 이야기, 주인공 빈센트와 그 이복오빠 폴이, 카이에트호텔에서 일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알카이티스의 사기행각을 꿰뚫어 본 엘라 캐스퍼스키이 둘 다 이 호텔을 좋아했다. 한때, 알카이티스에게 투자 상담을 했던 캐스퍼스키가 이익배당률에 의혹을 제기하면서, 감독기관에 신고하기도 했던 터라, 이곳에서 둘이 마주치는 일은…. 여기에 폴이 끼어들게 되고…. 통유리창에 “깨어진 유리 조각을 삼켜라”라는 낙서를…. 이 일로 폴은 호텔을 떠나, 음악가로 대성하지만, 약물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호텔 낙서 사건의 시말은 나중에 그 이유가 밝혀진다. 무려 13년 후에….
호텔 지배인 월터, 해운회사 중역 리언 프레반트, 누군가에 기대어 산다는 느낌이 뭔가를 알게 되는 빈센트 “돈의 왕국” 금수저의 생활, 서른 살 이상의 나이 차이가 나는 알카이티스의 트로피 와이프로 그녀의 젊음과 그저 분위기를 잡아주면 되는 대신 한도 없는 카드를 맘껏 사용할 수 있는 자유, 파우스트에게 영혼을 판 누구처럼…. 빈센트는 알카이티스의 사기극에 협력하고 있음을…. 그리고 알카이티스의 폰지사기가 가능할 수 있게 협력했던 공범들인 재산관리팀 5명 역시….
이들 모두 “돈의 왕국”에서 살게 하는 것은 돈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아예 없다는 전제 조건 때문이다. 양심이고 뭐고는 왕국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유효했을지도 모른다. 왕국에 들어서는 순간, 자기기만이 시작되는데 이는 에스컬레이트되고, 악순환이 이어지는데, 돈에 한 번이라도 쪼들려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런 자유가 얼마나 심오한 것인지, 이것이 어떻게 삶을 뒤바꿔놓는지를 등장인물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들여다본다.
자산관리팀 관련자들이 사기에 합류한 이유는 ‘알면서도 모르는 게 가능하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면서도 모른 척 외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지?, 때로는 말이다. 적어도 이런 불행은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 아무런 근거 없이 피해갈 것이라는 믿음….

알카이티스의 형과 함께 작품활동을 했던 칠순의 올리비아의 투자금, 인간적인 고민과 죄책감?, 또 폰지사기를 당했던 수많은 이들은 그들의 미래, 노년에 안정된 생활을 그리다가 절벽 끝으로 내몰린 현실, 이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나가고 있는지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가는 이야기들….
주인공 빈센트는 컨테이너선 보조요리사로 승선, 몇 년 후 풍랑이 거센 바다를 찍겠다고 캠코더를 들고 갑판에 오르는데, 저 멀리 보이는 올리비아…. 젊은 날의 올리비아가 보이고, 갑판에서 떨어지는데…. 이 사건 조사를 하게 된 리언은 컨설턴트로 참여하는데….
글래스호텔을 무대로 이리저리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앞뒤로 왔다 갔다. 2029년 12월 한배에 탔던 그들의 모습은…. 알카이티스의 비서, 리셉셔니스트로서 일했던 시몬의 회상이 이어진다.
밖에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유리, 산산조각이 나는 순간 깨진 유리 조각을 삼켜라…. 라고 쓰인 낙서의 의미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저쪽 세상, 넘어설 수 없는 “돈의 왕국”, 그 경계였던 유리가 깨지는 순간, 왕국의 사람들은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준비했던 이들은 깨진 유리 조각을 삼킬 수밖에…. 목젖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고, 목숨까지도 앗아가는 것들….
인간의 욕망, “돈의 왕국”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나?, 선악과처럼, 먹는 순간 세상의 선과 악의 구별, 그리고 고통이란 의미를…. 물질숭배 세상을 향한 경고다. 폰지사기 사건이라는 배경으로 사건 피해자들의 욕망과 좌절, 극복의 길을 들여다보는 이 이야기는 마치 우리 사회의 큰 화제가 됐던 조희팔 사건처럼 그저 사상 초유 운운하면서 사회 담론에서 모습을 감췄다. 없어졌다. 지금도 힘들게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는 다단계 금융사기 피해자들의 삶을 상상해본다. 장밋빛 환상은 유리 조각이 돼 목젖을 갈기갈기 찢고….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