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청년 - 청춘을 논할 때 슬그머니 제외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쓰는 사람들 지음 / 호밀밭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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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러지는 말들

 

미끄러지는 말은 행동 안에서 자신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침묵은 자신의 표현 안으로 그리고 자신의 표현을 통해 물러나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드러낸다(마크 C. 테일러<침묵을 보다>예문아카이브, 2022)

 

이 책의 제목 <미끄러진 말들>- 사회언어학자가 펼쳐 보이는 낯선 한국어의 세계-, 단일민족, 한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 때문인지 순혈주의라는 착각 속에 사는 이들이 아직도 존재한다. 언어계통으로는 우랄 알타이어 계통이며, 인종적으로는 몽골 유목민들처럼 아이가 태어날 때, 엉덩이에 푸른 멍처럼 보이는 몽고점이 선명한 걸 보면, 국경으로만 대한민국일 뿐, 이미 언어로는 여러 코리언(중국의 조선족-중국 국적의 우리 동포, 일본의 조선적- 남과 북 어느 쪽도 국적으로 택하지 않은 상태의 재일동포, 고려인-구 소련 역내에 흩어져 사는 조선인으로 해당 나라의 국적 혹은 무국적자, 1945년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이민한 사람들, 그리고 북조선 사람들)이 쓰는 한국어다. 실제 말에는 국가도 없고, 국경도 없어, 말들은 수시로 국경을 넘는다.

 

이 책의 내용은 사회언어학을 연구하는 학자답게, 우리 사회에서 시민권을 획득하고 생활 속에서 사용되는 말을 톺아보면서, 그 안에서 펼쳐지는 권력과 차별, 혐오를 구별해내고 있다. 예리하게…. 또한 이 책은 지은이의 기고문 등을 한데 묶어 새롭게 펴낸 책이어서, 이슈에 관한 시좌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책 속에 담긴 많은 주제가 흥미롭고, 읽는 이로 하여금 낯부끄럽게 만드는 대목들이 많다.

 

표준어와 일상어를 대하는 우리들의 온도 차

 

전북지역방언 조사결과보고에 관련된 이야기(32쪽 ’사전에 빵꾸내기‘)는 촌철살인이다. 표준어와 방언, 사회언어의 관계, 사전, 더 나아가서 언어학의 본질을 함께 살펴보는데,

 

전북 방언 사전에 다라이, 빵꾸, 공구리, 구루마 같은 일본어가 전북 방언으로 둔갑했다고 한 도의원이 문제 제기, 문화관광국장이 “개인적으로 수치스럽다”라고 한 말…. 과연 이들은 방언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언어=영토=국민이라는 수식이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어떤 말이 든 그 사회의 인구에 회자하면서 시민권을 얻게 되면, 사회의 언어가 되기마련이고, 이것이 표준말로 사전에 오르고 안 오르고는 별개의 문제다. 균질한 언어가 사용돼야 한다는 사고 자체가 획일적이고, 정태적이며, 발전을 거부하는 것임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현실…. 표준어제정과정에서 우생학과 위생학이 개입된 것을, 서울말은 우등한 것으로 지역어는 열등한 것으로 만들어 표준어에서 지역어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다음은 위생학적 처리 과정. 이 과정에서 토착어가 아닌 외래어는 ’오염된 말’로 배제하고, 이런 가공에서 한반도라는 명확한 영토와 경계를 가진 ’한국어‘가 발명된다. 우수하고 순수한 한국어가, 그런데 우리말에 한자어가 7할가량이라면 이건 어떻게…. 중국말인데, 모두 배제?,

 

말은 일상에서….

 

막노동판에서 군대에서 행정관청에서 법원에서 쓰는 용어들은 명암이 존재한다. 용어로서의 의미와 소통의 수단으로서 의미, 이 모두를 함께 쓰는 것이 사회언어다. 일제의 잔재라고 해서 쓰지 말자고 하는 말도 옳다. 그런데 언어학자들이 현장에서 그 말들이 사용되는 장면을 살펴봤는지?, 지은이는 말한다. 건설현장에서 사용되는 큰 망치, 해머의 사용법을 보자. 영어로 해머라 하면 있어 보인다. 그런데 일본어의 전성인 오함마라고 하면 큰 망치란 의미다. 오함마라는 말을 쓰면 꽤 숙련공으로 보인다. 해머라 쓰면 기술자로 보이는가?, 그런데 큰 망치라고 쓰면, 잡역부…. 알게 모르게 우리 안에 있는 말 사용에 따른 구분법이다. 지은이는 오함마라고 쓰면 어떻고, 해머라 쓰면 어떤가, 대상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현장에서 숙련이니 기술자니 하는 상징적 이미지와 관련된다는 맥락을 살펴보라는 것이다. 이 말도 또한 공감한다.

 

언어와 그 너머의 것들

 

정규 vs 비정규의 구분법, 무엇이 정규인가, 정규는 우등이고 비정규는 열등인가, 그렇다. 이미 이데올로기가 됐다. 정규는 승리자요. 비정규는 패배자라고, 애써서 자신이 일하는 곳에서 정규직임을 강조하는 표현이 귀에 거슬린다. 지은이는 국회의원들에게 보내는 글을 썼다.

 

“근로하지 말고 노동하라”

 

21대 비정규 국회의원 노동자들께 쓴다고 시작한 이 글은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에게 비정규란 말을 붙이는 것이 불편할 수 있겠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제자에게 진로에 관해서 묻자, “저는 정규직은 바라지도 않아요. 아마 비정규직이라도 들어가서 잘리지 않고 일할 수만 있으면 좋겠어요”라는 대답 앞에 그는 한없이 한심한 선생임을 느꼈다고….

 

근로라는 말은 그저 열심히 일한다는 말이다. 고용주 처지에서 보면 근면하게 일한다, 즉, 근로라는 말 속의 진짜 주인은 일하는 이가 아니라 그를 관찰하는 고용주란다. 사장이 보고 있을 때 정말로 일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여러분이 하는 일이 노동이라는 것을 명심하면 된다. 우리 모두 근로하지 않고 노동한다는 것을 깨달으면 된다. 노동-가치를 만들어 내는 활동-은 자유민이 하는 것이고, 노동의 주인은 바로 일하는 이 자신이다. 따라서 근로는 노예가 하는 것이다. 즉, 가치를 만들어 내든 어찌하든 그저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고, 현대적 의미에서 이를 누군가 관리하거나 관찰하는 이에게 ’보이는‘것이 근로이기 때문이다.

 

‘근로’라는 이름은 수많은 이들의 노동을 지워낸다. 노동은 하지만 근로자는 아니란다. 가사와 육아 노동은 그림자 취급을 당하고, 청소년노동자들은 실습이라는 명목 아래 부당한 노동을 강요받고, 작가들의 작품활동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왜일까?, ’근로’라는 이름을 노동을 지워내기 때문에 그렇다. 노동은 하지만 근로자는 아니라는 논리가 탄생한다. 여기에는 이데올로기도 작용한다. 즉, 세뇌, 노동은 전문적이지 않고, 몸을 쓰며, 결코 많은 돈을 받을 수 없다는 프레임…. 그래서 복잡한 용어가 생겨난다. 노동자와 근로자는 같은 것인가?, 근로기준법을 노동기준법이라고 명확하게 말하면 안 되나. 뭐가 뭔지….

 

국회의원들에게 다시 말한다. 여러분들의 노동은 많은 이의 삶을 바꾸고 무겁고도 무서운 노동이다. 그렇기에 여러분은 국민이나 국가라는 거대하고 추상적인 이름을 위해 복무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은 추상이 아닌 이 땅의 구체적인 삶들을 이해 복무하길 바란다. 철탑 위의 노동자들, 살기 위해 일하러 간 사람들이 죽어서 돌아오는 걸 막기 바란다. 국회의원 노동자 여러분, 제발, 근로하지 말고 노동하라고….

 

이 책 곳곳이 지뢰밭이다. 밝으면 터져버리는, 머릿속이 하얘지도록, 알게 모르게 우리 속에 자리한 무의식적인 편견들, 모두 한 면만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밝은 곳이 있으면 반드시 어두운 곳이 있게 마련이다. 즉 명암이 존재하고 동전처럼 양면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써야 할 말들이 미끄러지고, 침묵으로 떠 밀려 나간다. 방송에서 나오는 경상도 억양과 사투리는 권력의 표현이다. 전라도 억양과 사투리는 상대적으로 지역적인 것처럼 취급당한다는 지은이의 말의 울림이 크다….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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