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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보다 - 불안을 다스리고 진정한 나를 만나는 침묵의 순간들
마크 C. 테일러 지음, 임상훈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22년 4월
평점 :
불안을 다스리고, 진정한 나를 만나는 “침묵을 보다”
겁쟁이에 소심한 개는 움직이는 모든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몸 안의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마구 짖는다. 짖다 보면, 두려움이 사라지는 듯하다.
침묵하는 개는 눈에 들어오는 들려오는 소리로 감지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귀를 기울인다. 여차하면, 뛰어나가 목줄을 물어버릴 심산으로…. 개의 침묵은 단순히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라. 준비를 하는 것이다. 민감하게….
꽤 철학적인 주제, 14꼭지로 침묵을 갈파한다.
이 책은 침묵에 관한 사유를 담고 있다. 침묵을 듣는다는 것은 죽음 앞의 무력함을 받아들일 힘을, 불안한 마음속의 고요를 찾는 것이다.
침묵은 금이다. 침묵은 따발총같이 입을 여는 순간, 밥을 먹으면서도 반찬 삼아 쉼 없이 말하는, 재잘거리는 것은 은, 동, 아니 흙에도 못 미친다.
자크 라캉은 모리스 블랑쇼의 말을 빌려서 말한다. “말은 사물의 죽음이다.” 생명이 있는 것, 살아서 움직이는 것은 침묵을 즐긴다. 쓸데없이 나불거려, 주의 경계를 흩트린다. 라캉은 ‘말은 사물의 죽음이다’라는 의미 말과 이미지는 사라짐을 만들고 이 사라짐 없이 외양은 절대 등장할 수 없다…….
진정한 언어가 시작되려면 이 언어를 실어 나르는 삶이 반드시 무(없음)를 경험해야만 하며, ‘깊은 곳에서 떨고, 그 안의 고정되고 안정되어 있던 모든 것이 송두리째 흔들려 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 즉 언어는 빈 곳이 있어야만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소음이 중독돼 침묵하는 법을 잊어버렸을까?
우리는 왜 침묵을 두려워하면 그것을 피하려 할까?
우리는 왜 소음을 갈망하고, 소음을 필요로 할까? 라는 문제의식, 이에 해당하는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바로 이 책의 흐름이다.
침묵의 소리를 듣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다. 침묵은 고요함이요. 고요함은 침묵이다. 단순히 소리, 소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침묵은 모든 소리와 메아리 속에서 울리고 퍼지는 고요함이다.
침묵의 두 가지 유형
침묵은 무를 동경한다. 또 다른 침묵은 전부를 동경한다. 전자는 상관물의 숫자이며, 후자는 상관물의 행위다. 이 두 양식은 프로이트가 인간의 삶의 바탕이라고 생각했던 두 가지 기본적인 욕망 <타나토스>(죽음의 본능)와 에로스(삶의 본능)에 조응한다.
시끄러운 스타일로 침묵을 옹호하는 것은 충만함과 텅 빔의 불안정한 대조에서 비롯된다. 침묵은 감각적이고 황홀하며, 초언어적인 충만함으로 가득 차 있다고 흥분하다가 부정적 침묵의 텅 빔 속으로 순식간에 떨어져 붕괴할 수 있다는 점은 이미 악명이 높다.
침묵은 말에서 소리를 없애는 것이다. 말이란 낱말을 삽입할 수 있는 문장을 당연한 의미하겠지만 조르쥬 바타유는 침묵이라는 말에 한정하려 했다.
독재자들의 명령에 복종하는 침묵, 소리 없는 침묵 속에서 꿈틀거리는 혁명의 기운, 모두 침묵이라는 외향을 띄고 있지만, 질에서는 다르다.
우리가 침묵에 천착하고 침묵을 깊이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는 침묵의 가치와 무게다. 소리 내서 말을 할 때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다면…. 침묵이다. 내면의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 마구 떠들어대는 알맹이 없는 소리보다 침묵이 가치가 있을 때, 그래서 침묵은 금이라는 금언이 나오지 않았던가….
참으로 어려운 개념인 “침묵‘, 우리가 관념하는 침묵은 어떤 것일까, 부정적일까, 긍정적일까, 아니면 새로운 뭔가를 소리 없이 외치는 것일까? 소음보다 더 시끄러운 침묵….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