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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고통 - 고통과 쾌락, 그 최적의 지점에서
폴 블룸 지음, 김태훈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4월
평점 :
달콤한 고통
마조히스트들의 심리학 “최선의 고통”
무의식적인 편견의 탓인지 몰라도 ‘최고의 선택’이나 ‘최고의 희망’ ‘최선의 행복’ 등은 귀에 익숙한데 최선의 고통, 고통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은 별로 긍정적이지 않다. 아니 부정적이다. 고통을 피하려고 뭘 어쨌다는 문맥이 익숙한데….
지은이 폴블룸은 단도직입적으로 이 책 머리말에서 ‘행복한’ 삶이란 환상이란 제목으로 우리의 인생이 굴곡이나 막힘이 없이 물 흐르듯 할 때는 우리가 얼마나 취약한지 잊고 산다. 아니 의식을 못 한다. 그러다가 고통이라는 걸림돌과 조우했을 때, 멘탈에 문제가 생긴다. 세상이 고통의 늪으로 보인다. 어제까지 순탄했던 그 모든 것들이 밤사이에 변한다. 물론 내 마음의 변화이지만, 이 책은 적당한 고통은 이후에 더 나은 쾌락을 얻기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고난은 단편적인가? 그 하나를 응집, 결집체로서 보기에 그 속마저 들여다볼 필요도 없다고 하고 있지 않을까 될 수 있으면 피해서 가라고, 하지만, 지은이는 고난을 달리 해석한다. 자, 아이를 갖기로 마음을 정한 남녀(부부이든 뭐든), 출생의 고통을 이미 알고 있다. 그뿐이랴 아이를 키우면서 행여나 큰일이라도 생길까 싶어 마음졸이는 그 모든 것이 고통임을 하지만, 이런 것들을 후회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삶의 중심이 되는 일에는 고난과 희생이 따른다. 마냥 쉬운 일이라면 굳이 노력할 의미가 있을까?, 고생 끝이 낙이 온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고난의 중요성
고난은 인간의 원죄 때문에 평생 고생한다는 창세기 이야기를 비롯하여 많은 종교적 전통의 일부다. 불교도 그러하고 막스베버가 말하는 청교도적인 노동윤리에서도 핵심을 차지한다. 고난은 지은이 말대로 더 나은 쾌락을 위해서,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과 유사하다. 사람들은 왜 무서운 귀신영화를 좋아할까, 왜 청소년은 자해를 일삼는가?, BDSM(구속/훈육/지배/굴복)의 매력은 무엇일까? 비 선택적 고난(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자식이 죽음 등-)은 아픔을 극복하는 능력을 키워줄까? 이 책은 이런 것들에 대해서 말한다. 미하이칙센트 미하이의<몰입>, 빅터프랭클의<빅터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두 책 모두 인간 본성과 인간 번영을 주장,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점에서 영감을 준다-,지은이가 중요하게 본 것은 쾌락에 방점을 찍어서 강조하면, 고난, 고통은 영원히 마이너스라는 것이다. 쾌락의 정도는 상대적일까, 아니면 절대적일까, 아무튼 고통의 대척점으로서의 쾌락, 자기계발서에서 나오는 것들에 그는 반대한다. 행복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최선의 고통이란 혹시, 토마토를 먹을 때, 약간의 소금을 곁들이면 단맛이 강해지는 원리와 같은 것일까?
지은이는 이 책에서 쾌락주의에 반기를 들고, 노력을 넘어서 몰입을, 어떤 고난을 택할 것인가, 달콤한 고통을 인생에 활용하라고 한다. 고통은 말 그대로 통증이기도 하지만, 고생이기도 하다. 고생과 고통, 고난을 구분해서 쓸 필요가 없다. 고생 끝에 낙은 참으로 크게 보인다. 고생 없이 얻어진 열매는 그저 운이 좋아 주웠을 뿐이다. 그러니 거기에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지은이의 핵심은 바로 이 대목이다. 쾌락을 좇지 말라. 일부러 쾌락을 얻기 위해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글쎄다. 이 부분은 헷갈리는데 내가 생각하는 쾌락과는 다소 느낌이 다를질도 아니 결이 다를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환희라고 해두자. 아마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쾌락의 장르가 달라서였을지도….

인간의 본성, 본능은 쾌락이다?
인간의 복잡한 욕구 체계를 보자. 보통 인간이라면 여러 개의 욕구가 있다. 첫째로 생존본능에 따른, 식욕, 성욕, 갈증 해소, 거기에 비교적 약한 적절한 고통(이 기준은 나도 모르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도덕적이며, 선, 공정, 정의를 추구하려는 욕구, 거기에 의미나 목적과 관련된(이른바 오데모니아적). 전쟁에 참여하거나, 산에 오르거나, 부모가 되는 것 등은 어찌 보면, 물론 쾌락도 포함해서, 자신의 삶에 쾌락을 더하고, 몰입을 선사하고(어디에 미친다는 표현, 한때 내가 낚시에, 산에 미쳐 방방곡곡의 산을 올랐다는 등의 것),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는 고통 혹은 고생, 조선말 테니스가 들어왔을 때, 우리네 양반님들의 하는 소리 들어보소, 외국의 고관대작-대사쯤이거나 대표부, 혹은 공사-이 이렇게 더운 날 몸소 저리 공을 치고 그런단 말인가, 저런 천한 일은 종놈들한테 시키고 이리 올라와 앉아 구경해도 좋으련만, 이들은 스포츠를 알까,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도 모른 이들이었을 테니, 이렇듯 같은 현상과 경험을 놓고도 어떤 이는 고통, 고생으로 어떤 이는 쾌락을 느낀다는 것이다. 테니스를 하면서 몸은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땀을 흘리고 상대방과 겨루며, 얻는 느낌, 쾌락이나 승리감 등등의 것들….

지극히 힘겨운 순간 우리는 온전히 몰입한다
참선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보리수나무 밑에서 고행하는 싯다르타를 말하는 것인가, 취준생활 여름에 엉덩이에 땀에 고여, 욕창이 생길 만큼…. 이 또한 고행이다. 고통, 고생이다. 힘겨운 이 순간에 몰입해 공부 삼매경에 빠져들면, 합격은…. 바로 이런 장면이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이 책은 여러 연구 결과들을 소개하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