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일제 침략사 - 칼과 여자
임종국 지음 / 청년정신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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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일제 침략사

 

 

1945년 일제가 8.15의 패전 선언을 하는 일왕 쇼와의 항복 방송이 그날 정오, 조선 땅에 울려 퍼지는 순간, 조선에는 일본군 36만 5천 명이 있었다. 이들에게 이날은 폐전했고, 항복한 날이었다. 우리에게는 광복(진짜 그런지는 모르겠다. 아직도, 남북분단과 한국전쟁이라는 불행의 역사가 서서히 시작된 날이기도 했다)

 

지금 일본은 전쟁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하자고 난리다. 하지만 여전히 개정반대여론이 높다. 왜, 무력행사를 포기했나, 어떠한 이유로도, 일본국민은 무력행사에 동의하지 않는다. 1945년 패전, 조선을 침략하고, 국민들을 만주개척단으로 내몰고, 중국에서 학살을 했던 역사를 알고 있기에 “악마를 봤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일본국민은 전쟁이라는 지옥을 경험했다. 원자탄도 맞았다. 원폭 피해자들이 여전히 신음하고 있다. 해마다 8.15 종전기념일 행사를 히로시마 원폭기념관 앞에서 연다.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이른바 평화헌법이라고 부르는 일본 헌법 제9조, 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희구하며, 국권발동의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포기한다. 이어서 2항에 전항의 목적달성을 위해 육해공군 그 밖의 전력은 이를 유지하지 아니한다. 국가의 교전권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즉 일본 헌법 제2장 전쟁포기는 9조 단일조항으로 이뤄졌고 1항의 전쟁포기, 2항의 전력 비유지, 교전권 부인에서 평화헌법이라는 표현이 유래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임진왜란, 그리고 조선 정벌

1592년 시작된 7년 전쟁, 282년 후인 1880년 조선 상륙 이후 65년

 

 

 

이들 군대는 1880년 일본 공사관의 경비병 수 명에서 시작돼, 1945년 수 개의 군단 병력으로 주둔, 그간 22명의 사령관 중 20명의 대장, 2명이 중장, 통감(3명)에서 총독(9명, 이 중 3대 통감과 1대 총독은 겹친다) 11명은 일본은 정치인, 관료, 육군 대신 혹은 수상을 거친 자들이었다. 을사오적과 정미칠적 등 친일파의 행적과 일본군 강제위안부 위안부 운용 등 이미 세상이 알려진 것과 아직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선생의 연구 노트인 이 책을 통해서 엿볼 수 있게 됐다. 정일성의 <인물로 본 일제 조선 지배 40년> 지식산업사, 2010)을 통해 통감과 총독 기별로 다루고 있는데 이와 함께 봐도 좋을듯하다.

 

일본군의 조선 상륙, 이들과 함께 온 밤의 요화들, 이 책은 지병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일생을 바쳐 ‘친일역사’를 연구했던 임종국 선생의 글이다. 33년 전에 돌아가셨으니 적어도 34~5년 전에 쓴 문장들이다. 지금은 생경한 한문투의 문장도 눈에 띄지만, 내용은 선생이 꾸준히 찾아낸 자료들을 토대로 쓰고 있어, 신뢰할만하다.

 

우리에게 알려진 일제강점기에 관한 정보는 교과서에 실린 정설 혹은 통설로 선생은 이를 낮의 역사라 했다. 메이지유신 개혁파 1.5세대인 이토 히로부미는 수상을 역임, 공작의 작위를 받은 자다. 일본 사회에서는 능력 있는 지도자로 평가받았지만, 밤의 역사에서 그는 난봉꾼이다. 하룻밤에 물 쓰듯, 물도 이보다는 더 쓸 수 없을 정도의 천문학적인 금액을 여인들과 노는 데 썼다. 이 돈은 조선에서 나온 돈 들이다. 친일파와 작당하여 일본 정부를 적당히 등치고, 조선 왕실의 친일협잡꾼들과 손을 잡아, 대한차관입네 뭡네하면서 차용증서만 남기고, 돈을 홀라당…. 철도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조선인 노동자 수백 명에게 지급하는 임금이 이토 히로부미의 한 끼 저녁값만도 못했다니….

 

 

일제 침략, 밤의 문화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 아닐까?

 

 

아마도 70년대 말 80대 고등학생이었던 이들은 이때 유행했던 <브라이트 요코하마>라는 노래를 기억할지 모르겠다. 당시에는 일본문화 수입금지의 시대였다. 적어도 김대중 정권에 이르기까지는 김대중과 당시 일본 총리 오부치 사이의 문화개방협정이 맺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통신사로 문호개방을 이후 일제강점기, 또다시 1965년의 한일국교 정상화, 1990년대 후반 문화개방, 이러한 단절, 개방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지 자세히는 모르겠다.

다만, 임종국 선생의 이 책은 군데군데 왜색문화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음을 짐작게 하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 퍼진 왜색문화의 연원들, 기생문화라 일컫는 지금의 유흥주점 등의 술놀음 문화는 여전히 일제강점기의 그것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참으로 무섭다. 적어도 2세대에 걸쳐 진행된 조선문화 말살과 왜색문화의 침투는 우리의 사고 틀마저 바꿔놓았다. 해방정국, 미, 소로 상징되는 다른 진영 간의 경쟁과 대립의 대척점 한반도, 1945년 8.15 후 한 달, 여운형 등의 장악했던 해방정국, 햇빛을 피해 어둠으로 숨어들었던 친일 적극 부역자들은 다시 이름만 대한민국으로 바뀐 조선총독부 그 자리로 되돌아오고, 만주벌판에서 풍찬노숙하면 일본군과 싸웠던 독립군들은 무장해제, 독립군으로 귀국을 못 하고 그저 재외국민으로…. 비극의 씨앗을 제거 못 하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매국노 이완용의 후손들이 자신의 조상 땅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하고, 일제강점기를 거치지 않았던들 조선, 한국의 경제토대는 여전히 미개했을 것이라는 몰상식의 극치를 달리는 신종 친일부역자들에 이르기까지, 이번에 이들은 학문의 자유라는 우산 속으로 숨어들어서 비겁한 소리를 해댄다.

 

이런 역사 아래로 스며든 밤, 어둠이 찾아오면 시작된 문화가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변형된 형태로 존재한다. 뿌리도 알 수 없을 만큼. 이 책의 가장 큰 공헌은 우리 문화는 어디까지 왜색에 물들어 있나를 다시금 생각게 하는 계기 부여에 있지 않을까 싶다. 자칫하면 국수주의 편에 선다는 오해도 받을 수 있겠지만, 진실 밝히기의 하나로서 이해됐으면 한다.

 

또 하나, 통감, 총독부터 앞장선 밤 유흥문화는 식민지에 파견된 일본군, 관료들에게 아무렇게나 제 맘대로 해도 좋다는 묵언의 사인과도 같았다. 이런 문화는 쉽게 종군위안부 제공 시스템으로 자연스레 아무런 죄의식 없이 옮아갔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종군위안부는 없다고 하는 이들, 성을 팔기 위해 나선 여성들이 피해자라 주장하는 건 얼토당토않은 낭설이라고는 이른바 종족주의파들,

 

이 책이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또 하나의 유력하고도 구체적인 자료를 찾는 단서가 될 수 있다. 동남아 전쟁터에서 소개하던 일본군이 현장에서 총이나 폭탄을 터트려 죽였던 위안부들이 있었음을 증언하는 문건이나 문서들,

 

위안부 문제는 한국, 대만, 중국, 필리핀, 호주 등 일본군이 스치고 지나갔던 지역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일본 아시아 여성기금이라는 단체(무라야마 전 수상이 이사장을 역임했던)의 홈페이지는 한국말로 이런 역사적 내용이 실려있다.

이 책<밤의 일제 침략사>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진중하다. 무겁지만 알아야 할 역사의 이면이다. 일제가 두 세대에 걸쳐 한반도 구석구석에 뿌려 놓고간 문화들, 이제라도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는 선생의 바람이 들어있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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