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도 직업이다 커리어북스 직업 시리즈 1
최광현 지음 / 커리어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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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도 직업이다. 때로는 사제, 문화예술인으로

이 책<무당도 직업입니다>은 커리어북스 직업 시리즈 1편으로 무속인 최광현과 같은 출판사 편집부가 공동작업으로 펴낸 것이다. 

 

무당(巫堂)이란 어떤 존재인가, 

 

이 책에서는 영화<만신>의 감독 박찬경의 입을 빌어 ‘무당’이란 존재에 관한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을 보여줬다. 신의 세계와 인간 세계를 잇는 중개자로서 사제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왜 하필 무당을 소재로 한 것인가? “왜 무속을 다루나”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한다. 목사나 신부 혹은 스님을 소재로 다뤘다면, 이런 질문이 나오겠느냐며…. 무속은 양지는 아니라고 했지만, 이는 결국, 네거티브라는 말이다. 성속의 중개자로서 근엄하거나, 뭔가 있어 보이는 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그저 신비주의에 가려진 때로는 사기꾼 같은, 그래서 헷갈리는 게 사실이다. 

 

무속, 이 말이 맞는 건지 사실 잘 모르겠다. 아무튼 <무당>에 관한 정의는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서 비교적 명확하게 다루고 있다. 무당이란, 무속의 사제자로, 길흉화복을 점치고 굿을 주관하는 사람의 총칭이라 한다. 그렇다면 이 무당은 이 책에서도 그 역사를 간단하게 정리해주고 있지만 크게 3개의 시기, 한국 사회의 발전과정(정치와 지배이념과 사상에 따라서)에서 기능에 따라 사회적 위상(대우 등)이 달랐음을…. 뭐 수난사라 해도 좋겠지만, 우선 그 변화의 역사를 보자, 고대사회에는 제사장으로 정치에 관여, 고려 시대는 불교에 밀리고, 조선 시대에는 유교에 밀려 미신으로, 천한 것들의 혹세무민으로 몰아간다. 일제 강점기에는 아주 말살, 무당은 공동체의 힘을 결집할 수 있는 유럽식 표현으로 ‘마녀’였던 것이다. 조정래의 <태맥산맥>에 나오는 무당 ‘소화’를 대하는 태도를 생각해보면 또한 그럴 것이다. 잘못 건드리면 탈난다는 사람들의 표현 말이다. 경원의 대상이다.

 

 

 

몽골어로 영화<칭기즈칸>에서 그가 하늘을 보고 외치는 말 ‘텡그리(하늘)’가 당고르에서 당골로 또 단군으로 변화,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무당으로 자리한다. 그리고 요즘 쓰는 말로 단골(우리 집에 자주 오는 귀한 손님)이란 뜻으로까지 쓰이게 됐다(어원에 관해서는 <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단군과 단골과 당골”(프레시안 2020.4.10.자)

 

무당의 어원 단군왕검 현대어로는 ‘당골임금’ 당골=제사장 왕검=임검=임금=위정자

 

단군신화 시기였던 신석기 시대부터 역사기인 삼국 시대까지 무속은 국가와 사회 전체를 이끌어 가는 중요한 이데올로기로 기능했다. 이 시기에는 고대국가의 지배자들이 무속의 권위를 빌어 정치 권력을 정당화하고자 했으며, 스스로 무당처럼 사제자적 역할을 했다. 왕호(王號)인 단군이나 차차웅(次次雄)이 무당을 뜻했다. 

불교수용 이후, 무속의 지위는 도전을 받게 되고, 통일신라기에 접어들면서 불교에 지배적 종교 자리를 넘겨주게 되고 밑으로 가라앉는다.

 

통일신라를 거쳐 조선 중기 16세기, 불교에서 유학, 유교로

 

7세기 통일신라 시대부터 조선 중기인 16세기까지는 국가조직에서는 물론 국가 의례에서도 배척됐던 무당들, 지역사회에서는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 시기에 지역사회에는 지역 나름의 독특한 신앙이 있었고, 이러한 신앙을 중심으로 지역사회는 정체성을 확인하고 내부의 통합과 결속을 유지하고 있었다. 12세기부터는 무속에 대한 배척의 움직임, 유교 국가 조선왕조의 건국으로 강도, 불교와 더불어 완전히 멸시대상이 됐다. 외세사상, 철학이 민족의 고유한 풍습을 말살하는 도구로, 이는 양반사회의 건설을 위한 체제 수립과 통제다. 동서활인서에 무녀를 배치 굿이 아닌 간호를 하도록 하여, 사실상 무당에 관한 인식 자체의 변화를 유도했다. 

 

사림파 집권, 유교의 지배 질서 강화, 무속인 미신으로 사람을 현혹하는 천한 것들로

 

사림은 기반은 향촌 즉, 지방이다. 이들에게 공동체의 정신적인 의지처였던 무당의 존재는 기실 무섭다. 여론이다. 피지배층의 농군이나 머슴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양반의 영향력 행사에 즉 그들만의 리그 운영에 방해되는 모든 것들을 배척, 배제해야 하니까, 이런 과정에서 무속 말살 정책은 지속해서 이어졌다. 무속은 사회적 기능을 상실, 마을의 제사(기원, 축원 등)가 무격이 배제된 유교식 마을제로 바뀐다.(영화<혈의누>에서 보이듯 마을사람을 황당무계한 언설로 선동하는 저 천한 것....마녀다) 

 

무당의 정체성

 

무당이라는 사회 정체성을 종교인, 전문직업인, 문화예술인이라는 세 갈래로 이 책은 살피고 있는데, 굿거리 일부는 국가무형문화재로 무속은 2019년 민족종교로 인정돼, 굿당 혹은 이 단체 소속 무당은 종교시설 혹은 종교인으로서 조세특례 대상이 됐다. 

이 책에서 말하는 핵심은 무당을 우리 사회의 태도에 따라 전통문화의 보존 여부가 결정될 것이란다. 

기실, 프로테스탄트 종파라고 할까, 100여 개가 넘고, 불교 종파도 100여 개 넘는다. 그런데 무당이 모시는 신이 100인들 1,000인들 뭐가 문제가 되겠는가, 가톨릭의 구마를 하는 신부는 성직자요. 귀신을 몰아내는 무당은 혹세무민인가? 이런 잣대 자체가 매우 서양 중심이라는 점 또한 지적해둬야 한다. 

 

 

 

종교란 말 그대로 “으뜸이 되는 가르침” 혹은 “으뜸 가르침”이다, 으뜸의 정의는 상대적이다. 절대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 무당을 대하는 사회 태도 변화의 역사를 이해한다면 본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채택되지 못하면, 탄압과 말살의 과정이 뒤따를 수밖에, 일제 강점기의 한글 말살정책과도 같은 것이다. 정신세계와 가치관의 통일을 기하지 않고서 그 집단의 통일과 단합을 유지할 수 없듯이, 무당은 오래전부터 무시당하고 멸시의 대상이 되어, 이제는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성직자, 사제로서가 아니라 길흉화복을 점치는 기능에 머물게 되고 만 것이다. 

 

공동지은이인 최광현은 무당이란 직업, 참으로 안 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다. 내 자식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다. 하지만 운명인데, 굿 값으로 환산되는 경제적가치 역시 싫다. 어쨌든 세상 사람들이 편하도록 신도들의 평안을 빌어주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노력한다고. 

 

한편, 무당은 종교인인가, 전문직업인인가, 아니면 문화예술인인가, 이 점도 즉시 답하기 어려운 과제도 누군가는 사회적 가치로 인정해주는 국가무형문화재 그것도 중요라는 딱지가 붙으면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고, 그에 걸맞은 예우가 따를 것이라고, 이를 뭐라 탓할 생각은 없다. 여느 날 운명처럼 천형처럼 내 삶 속으로 날아든 신병, 이를 거부할 수도 받을 수도 없어 수많은 나날의 고민 끝에 받아도 고통이요, 안 받아도 고통인 것, 기왕이면 사회적으로 존경대상이 되는 그런 모습으로 비친다고, 이 역시, 무당으로서 그릇의 문제라기보다는 가치관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참으로 좋은 주제의 책을 읽으면서, 답답함을 느끼는 대목이 많다. 이 책의 기획출판 의도와는 달리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들, 한꺼번에 많은 것을 설명하려는 조급함이 엿보인다. 오히려 위에서 적었듯이 역사의 흐름과 함께 변천해 온 ‘무당’에 관한 설명에서 시작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질적연구니 뭐니 하는 이런 표현은 과학적인 연구의 뒷받침이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이기까지…. 나만 그렇게 생각했다면 다행이겠다. 넘침은 부족함만 못한데….

 

일본의 '신도' 역시, 조상신과 자연신을 모신다. 신관 양성기관으로 2개 대학이 있다. 지역 커뮤니티의 '동제, 마을제'는 신관이 나선다. 우리의 무당과 신관은 또 무엇이 다른가, 민족종교로서 '신도' 이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일본사회에서 무당, 무속인을 보는 태도도 우리와는 사뭇다르다. 전문 직업인으로서 경외심을 갖는다. 이 책에서 소개한 독일에서 활동하는 무당들 또한, 특수한 직업인들로서 대우를 받는다.

 

 

 

아무튼 이 책<무당도 직업입니다>은 우리 사회에서 조금씩 그 존재감이 커지는 무당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종교인, 사제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민족종교의 시민권 회복의 길은 여전히 요원할까, 적어도 우리 사회가 자기 사고, 자기 사상, 이 땅에 살았던 선조들이 왜 무당을 통해 소원을 빌고, 그들은 중심으로….“마녀사냥”의 진실을 밝히듯, 우리에게도 “무당차별사”를 통해 왜곡된 사실들을 바로 잡아야 할 계기와 기회, 그리고 사회적 화두를 던진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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