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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재건 - 시민 공동체가 주체가 되는 민주주의
찰스 테일러.파트리지아 난츠.매들린 보비언 테일러 지음, 이정화 옮김 / 북스힐 / 2022년 1월
평점 :
민주주의 재건
시민공동체가 주체가 되는 민주주의
이 책은 제조업 중심지의 사양화를 맞이한 지역들,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지역을 그 대상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지만, 탈공업화에서 서비스산업으로의 전환이 여의치 못한 생산현장 중심지역들의 지역경제 파탄과 지역 공동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민주주의 퇴보는 지역공동체 문제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어서, 이런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우선 민주주의 회복이 필요하며, 그 민주주의 재건, 그 주체는 시민공동체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AI를 상징으로 도래하는 제4차 산업혁명의 파도 속에서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의 러스트 벨트(Rust Belt:미국의 중서부 지역과 북동부 지역의 일부 영역을 표현하는 호칭,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인 디트로이트, 철강 산업의 피츠버그를 비롯해 필라델피아, 볼티모어, 멤피스 등이 이에 속한다)처럼, 적어도 선진국 대열에 든 나라들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문제다.
이 책에서 말하기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주주의 퇴보는 지역공동체의 점진적 붕괴와 밀접한 관련하게 관련된다. 위에서 예를 들었던 미국의 러스트 벨트를 비롯해 동부 애팔래치아, 독일의 라우지츠 등 제조업 쇠퇴지역이 외국이 혐오적 포퓰리즘의 근거지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즉, 제조업의 황금기를 구가했던 지역들이 쇠퇴해감에 따라 지역공동체 또한 황폐해져 간다는 것이다.
지역공동체 재건은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정치적 활동에서 시작….
정치 활동의 방향은 두 가지다. 하나는 공동체의 요구사항과 목표에 대한 합의점을 찾고 합의된 요구사항과 목표를 이룰 방법을 찾기 위한 지역 차원의 자주적 조직화, 또 하나는 공동의 일반 시민과 함께하는 정부 주도형 협의 방식의 활동이다. 지은이는 이런 일련의 과정은 지역 정치공동체 재결성을 통해 민주주의를 정치체제로 재건, 새롭게 하려고 작동할 수 있는 메커니즘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지역공동체 재구축을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정치공동체의 재설립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하는 과제가 전면에 떠오른다.
현재 민주주의 위기와 한계점, 우선 대의민주주의가 방향성을 잃고 표류하고 있으며, 그 원인은 금권정치의 노골화와 사회의 불평등해소를 방해하고, 자본주의 시장의 본질을 왜곡하는 신자유주의 환상과 이 전염이다. 여기에 외국인 혐오가 더해지고 외부인 의심, 이민에 대한 저항 등 저열한 문화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애초 인류가 생각했던 ‘민주주의 이념’은 무엇이었을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민주주의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인민이 주인이 되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고, 그들의 공동체의 미래를 함께 결정하고 또 함께 책임지는 것이 민주주의다. 대의민주주의는 이미 피곤함에 찌들어있다. 정부 또한 국민을 피선거권자로(정치 행위의 대상)만 본다. 그들이 충성을 다해야 하는 국민은 없다. 즉, 민주주의는 이미 유명무실해졌다는 말이다.
민주주의 재건의 주체는 ‘보통사람들’
이 책은 민주주의 재건 주체가 대의민주주의 질서 속에서 나온 엘리트 정치인이 아닌 보통사람들이어야 하고, 또, 혁신적이어야 한다. 지역사회 밑바탕을 이루는 시민(주민)들이 자신의 힘을 발견하고 문제해결 과정을 보여주려 한다.
지역주민들이 한마음으로 동시에 그들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고이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연대할 수 있다면, 그들은 국회의원 등 대표자들이 반드시 귀 기울여야 하는 정치세력이 될 수 있다. 이런 주장은 매우 긍정적이지만 그 실현과정에서 넘어야 할 산, 즉 매우 곤란한 과정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사회 저변에서 민주주의 재건을 달리 설명할 수도 있는데, 한나 아렌트가 주장하는 정치영역의 확대가 그것이다. 그가 제시한 열림 심의는 동등한 위치에 있는 시민들이 공동 목표와 행동에 대해 세심하게 생각하고 심도 있게 토의하는 것을 의미한다. 열린 심의 관점에서는 정치영역이 전격적으로 확대되어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해박하고 새로운 시민 그룹이 그 영역 안에 들어올 것이며, 이로 인해 정치 행위가 확장될 것이다. 이런 이론들이 현장에서는 어떻게 적용, 응용되어 살아나는가, 아래에서 그 사례를 보자.
정치공동체의 재설립 지원 사례
랑케네크는 오스트리아의 스위스 국경 근처에 있는 인구 1,100명의 정착촌이다. 지역 내 삶이 멈춰가면서 청년층은 이곳을 떠나고, 마을의 상가는 하나둘씩 문을 닫게 되자, 랑케네크 시장은 농촌 인구 이탈을 막고자 여러 건의 용역을 의뢰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간단한 방식으로 실험을 하기로….
마을을 탈바꿈을 조절하고 통제할 권한을 주민에게 이양했다. 이 실험에는 무작위로 선정된 주민 15명이 초기 단계에 참여했다. 첫 번째 모임에서 참가자들이 원하는 변화 목록을 작성하는 대신에 랑케네크에서 삶의 긍정적인 면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는 <커뮤니티 프로파일링>(김영란 외, 공동체, 2016)의 방식과 같은 맥락이다. 예를 들어, 제과점 점원들이 여전히 고객 이름을 불러주고, 동네에서 일하면 출퇴근이 필요 없어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내용 등이다. 참가자 그룹은 마을에서 삶의 질을 높이는데 이바지한 사람들의 명단을 만들었다. 200명이 명단에 올랐고 마을 모꼬지(한마당) 때,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참가자 그룹은 몇 달 사이에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지역 탈바꿈 과정에 참여했다. 소규모로 다양한 조정팀이 만들어졌고, 시장은 그저 지켜보면서 적극적인 주민들이 지역 탈바꿈 과정을 주도적으로 이끌도록 만들었다. 그 후, 20년, 지역 계획에 자기 조직화가 체계적으로 자리했고, 이는 구조적 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2010년 유럽 마을 재생상을 받았다. 이런 사례는 유럽 곳곳에서 실험 중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 이런 실험을 하다면, 지금 진행되는 도시재생, 마을 만들기는 어떻게해야 할까, 그 원칙은?
자,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뭘 얻을 것인가, 첫째, 보여주기식, 성과주의식, 즉 인풋 하면 아웃풋이 단 시간 내 보기 좋은 결과표로 나와야 한다는 ‘조급성’에서 벗어나야 함을 알게 된다. 둘째로 성급하게 주민들의 결정을 행정가의 눈으로 쳐다 보지 말아라, 분석하고 평가하려 들지 말라. 주민들이 마을 공동체(커뮤니티)의 운명을 결정하도록 신뢰하며 여유를 가지고 지켜봐라. 중간에 뭔가 어긋난 듯하면 즉시 행정력을 동원하고, 짜놓은 틀(누가 짰는지도 모를 아주 우습거나 형편없는 그런 계획들, 특히 커뮤니티 프로파일링 즉, 주민 스스로가 조사에 참여하고 그 결과를 공유하는 절차가 없이 진행된 용역은 절대 무용이다)에 따라, 이렇게 되면 마을공동체 만들기에서 주체인 주민은 소외된다. 누구를 위한 마을 탈바꿈인가, 본말전도 현상이 벌어진다. 쇠퇴과정을 밟아온 시간 만큼, 회복에 걸리는 시간도 오래 걸릴 것이라는 전제에서 여유를 가져야 한다. 셋째, 누구를 위한 변화인가에 대해서 늘 고민해야 한다. 누구를 위한 것인가, 바로 나, 너 그리고 우리를 이라는 사고가 사라지는 순간, 본질은 왜곡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자, 이렇게 생각해보자. 우리가 만약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전제는 탈공업화 혹은 지역의 중심 생산 시설 등 제조업의 쇠퇴로 활력을 잃고, 청년들이 떠나고 노인만 남는 지역으로 변해간다고 해보자. 그 해결방안은…. 정답은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개선사항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좋았던 과거, 그리고 남겨야 할 전통과 문화들을 먼저 생각해보기 등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성공사례들은 따로 묶어서 상세하게 설명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우선 계기와 아이디어 제공 차원에서는 얇지만 충분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타산지석, 반면교사도 작동돼야겠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소개된 사례 속에서 보편성, 일반성을 찾아내는 것이 과제일 듯하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