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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동 중인 119구급대원입니다 - 세상을 구하는 한마디
윤현정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0월
평점 :
세상을 구하는 한마디
“출동 중인 119구급대원입니다.”
이 책은 소방관이라는 직업 세계의 흥미와 보람 그리고 고통을 다룬 에세이다. 소방관이 하는 일이 불만 끄는 일이 아님을 알린다. 지령실에서 떨어지는 출동지령, 심정지 추정, 사고와 화재현장, 교통사고 등, 곳곳에서 사고가 일어나면 크든 작든 우선 “119”를 찾는다. 우리 사회의 필요치 않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만 특히 소방관은 라이프라인(생명줄)을 쥐고 있는 필수직업군이다.
이들에게 명절은 그림의 떡이다. 24시간 근무 후, 하루 쉬고 또다시 24시간, 보통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다르다.
영어로는 파이어파이터(불과 싸우는 사람), 느낌이 꽤 강렬하다. 소방관과 구급대원을 다룬 영화도 심심치 않게 나왔지만, 이 책처럼 현직 소방관이 자신의 업무일지에 느낌을 더한 진솔한 이야기는 내 기억으로는 많지 않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내용은 불을 끄는 강인한 파이터, 험난한 곳에서도 척척 임무를 수행하는 구조대원들의 영웅담을 다루지 않는다. 대신에 그들의 속내를 다루고 있다. 아마도 소방본부에서 소방관이 하는 일이란 이런 거에요라는 딱딱한 내용의 홍보 책자보다 이 책을 홍보용으로 쓰는 게 좋을 정도다. 소방관도 사람이랍니다. 여러분이 힘들 때, 소방관도 힘들어한답니다. 서로 돕는 그런 사회를, 적어도 소방관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이라도 바꿔주세요. 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니 말이다.
지은이는 160센티가 안 되는 작은 체구에 가냘픈 몸매, 소방관의 신체조건으로서는 썩 좋은 편은 아닌 듯하다. 1급 응급구조사 자격을 따서 경채(경력 채용)를 거쳐서 소방관이 됐고, 배치받은 곳에 선임 구조사가 없어 병아리 소방관이 구급팀을 이끄는 반장(?),[거꾸로 말하면 인력이 딸려서 막 들어온 현장경험이 없는 이가 구급팀을 이끈다는 현실을 말하고 있다(소방제도의 문제를 논하는 글이 아니니, 더는 사족이다.)] 허둥지둥, 긴장돼 어쩔 줄 몰라하는 장면, 119를 부르면 응급실에서도 우선 진료를 받을 수 있겠거니 하는 얌체족들의 이야기도 담겨있어, 읽는 동안 머릿속으로 상상하면 웃음이 나온다. 이 책은 4장 편제다. 1장 세상 모든 이야기는, 현장에 있습니다. 2장 그런데도 출동합니다. 3장 내가 단단해야 누군가도 돕습니다. 4장. 함께여서 오늘도 행복합니다. 각 장에는 6~7개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나 홀로 가족, 취약계층 등 돌봄이 필요한 이들의 사례에서부터, 부부싸움, 연인 간의 다툼,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SNS, 웃고 넘길 수만 없는 일들도 많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삶의 모습, 천태만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전체 소방출동 중에 구급 출동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구급 출동이 유난히 많은 날
(중략)‘와 많이 했다. 밥값은 했다’하는 뿌듯함에 스스로가 대견하다. 동시에 몸에 진이 다 빠져 혈관 속 혈액이 다 말라버린 것 같은 느낌도 뒤따른다. 이러한 육체적 힘듦이야 얼마든지 괜찮다. (중략) 하지만 견딜 수 없는 것은 현장에서 나의 무능을 마주했을 때다. 몸은 허둥지둥, 머릿속은 뒤죽박죽, 병원에서 간호사가 왜 이것도 안 했냐고 쏘아붙이거나 체력적인 한계를 보일 때는 부끄러움에 견딜 수가 없다. (126쪽)
지은이는 천상 소방관이다. 구급대원이다. 그의 말한 대로 지령실의 지령, 하나하나가 가볍지 않다.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나는 훌륭한 소방관일까? 능력 있는 구급대원일까? 만약 이 환자가 더 능력이 출중하고 처지에 능한 구급대원을 만났더라면 이 사람의 예후가 바뀌었을까?
구급대원에게 현장은 도착하는 순간부터 실전이다. 그곳에 연습 같은 것은 없다. 구급대원이 현장에서 연습한다는 것은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연습하는 것과 같다. 이때 필요한 건 평소에 갈고닦은 지식과 체력, 그리고 무거운 책임감뿐. 지금 내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삶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자. (127쪽)
이 책을 읽는 동안, 아하~ 그렇구나, 그랬었구나라는 끄덕임. 나는 오랫동안 일본에서 살았다. 그때 살던 집 근처에 소방서가 있었는데, 토요일 일요일이고 건물 위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고, 무거운 산소통 장비를 갖춘, 완전 군장한 군인들 모습을 하고, 앞마당에서 달려 다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봐온 터라, 늘 훈련을 하는구나. 참 열심히 하네라고 여겼던 기억이 새롭다. 한 꼭지 더, 구급대에 대한 기억이다. 바로 옆집 쌍둥이 엄마, 남편이 유학생이다. 일본어도 서툴러 아이들 몸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는 남편을 기다릴 수도 없어, 119를 부른다. 그럴 때마다 119대원들은 군말 없이, 그를 안심시킨다. 더러 우리는 콜택시가 아닙니다. 하지만, 매번 택시를 부르는 것도 부담이 될 테니 진짜 급할 때만 부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이런 통역은 내가 도맡아 해야했다).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매몰차지 못한 이유를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지은이는 기초에 충실, 기본부터 다져야 한다고 말한다. 사정이 얼마나 급한지는 현장에 가서 보기 전까지 예단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 일 밖이라고 내팽개쳐두고도 올 수 없는 이들 구급대원들, 이들의 땀값은 어떻게 해야 갚을 수 있을까?
<출판사에서 도서를 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