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학 선언 - 노사 현장에서 만나는 노동법 이야기
이동만 지음 / 청년정신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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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학 선언, 제목이 마치 '공산당선언'처럼 들린다.

지은이는 현재 울산노동권익센터에서 센터장으로 일하는 22년 차의 베테랑 노무사다. 나는 노무사란 말에 묻어 있는 왜색을 싫어한다. 일본의 사회보험노무사(약칭:사로사, 사로시라 발음한다)제도를 본떠 만든 자격제도다. 앞에 공인이란 말이 붙어, 회사의 노무를 담당하는 이가 아니라 공적으로 인정된 자격임을 나타낸다.

현장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움직이는 노동권익센터에서 일하는 지은이가 얼마나 부지런히 움직이고, 밤잠도 못 자면서 책을 냈을까 하는 생각에 몇 장을 넘겨 보다, 크게 오해했음을 깨달았다. "꾸준함이 영특함보다 낫다"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이었다. 22년간 꾸준히 자기 일상을 메모했다. 그 메모를 바탕으로 엮어낸 게 이 책이라니, 적어도 생각하고 쓰고 지우고, 또다시 생각하고 했던 지난 22년간의 기록과 사고들…. 이렇게 해서 태어난 게 바로 이 책 "노동학"선언이다.

이 책은 지은이가 노무사가 되어, 노동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하나하나 풀어내고, 또 한 올 한 올 엮은 것이다. 그가 말하는 것은 두 가지, 한 가지는 노동전문가로서 미래 비전, 노동법을 넘어 노동학으로, 또 한 가지는 노사공정, 상생과 평화다. 제로섬게임이 아닌 상생의 무대로 평화를 향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뼈대와 살을 이루는 것이 2장 현장에서 기록한 노동학 이슈들로 지금도 민감한 사안이며, 민주노총에서도 표어로 내걸고 있는 사업들이기도 하다. "상시근로자 수 5인 미만 사업(장)과 노동법" 등을 비롯하여 여기에 실린 14개의 쟁점이 압축적으로 한국 노동시장의 현실과 노동자들의 처지를 말해준다. 아울러 현장 노동자들이 여전히 헷갈리고, 또 모호하게 여기는 노동자와 사용자의 경계(예를 들면, 특수형태노동자 이른바 특수형태고용 "특고"다), 통상임금의 포함범위, 1년 만근 퇴사자의 연차수당 26일 지급 등, 법 해석을 둘러싸고 여전히 격렬한 논쟁 중이다.


사법부는 여전히 노동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며칠 전(2021. 10. 14)에 나온 1년 만근 퇴사자의 연차수당은 11일인가, 26일인가 하는 쟁점에 대한 대법원판결(대법원 제2부 2021다227100 손해배상)을 보면, 1년 만근 퇴사자는 계약이 1년이라 계약기간 만료돼 계속근로를 전제로 하지 않기에 연차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고용노동부의 연차보장 확대 관련 개정 근로기준법 설명자료에서 "1년 기간제 노동자의 계약기간이 만료될 때는 최대 26일분의 연차휴가 미사용 수당을 지급하여야 함이라고 기재됐다(1년 미만의 경우 월에 1회 휴가 부여 1년 11일, 여기에 연차 15일을 더해 26일이 된다), 이 사건의 원고는 회사이고 피고는 국가다. 고용노동부가 비정규직 800만 명, 대한민국 노동자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현실을 반영하여, 만든 휴가제도를, 사법부는 간단히 물리친다. 연차수당의 개념을 가지고 판단한 것이다. 현실과의 괴리를(이 논쟁의 유사사례 이 책 129~139쪽을 참조할 것)

그리고 3장에서 미래 비전, 하나로, 진실과 화해와 협력의 관계를 만들어 가자고 한다. 이 바탕에는 정의, 평등, 평화, 연대의 정신이 깔려있음은 물론이다.


<대법원 대법원 제2부 2021다227100 손해배상(국)>

이 책의 독특함, 노동학 선언을 보자

내가 이 책을 주목한 것은 바로 "노동학"이라는 표현 때문이고, 학자가 아닌 현장 실천가로서의 경험을 살려 지금은 노동권익센터에서 노사정을 아우르는 균형과 중심을 잡으면서 공공의 선을 지향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사실 학제 간의 협업은 과거부터 있었고, 90년 중반부터는 학제 간의 영역을 넘어서 융합의 움직임도 나타났다. 어느 한 곳에만 머물러서는 현실 세계를 파악하고 연구하는 데 한계가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법과 사회학, 법과 경제학, 감정노동을 키워드로 한 감정 사회학, 노동을 주제로 한 노동사회학 등이 말이다.

지은이가 말하는 노동학을 살펴보자

노동법률을 주축으로 여기에 수학, 사회학 경제학, 경영학, 공학, 의학, 통계학 등 다양한 학문과 연결되기에 이를 한데 묶어 실사구시학으로서의 노동학을 정립해야 한다는 입론이다. 한 번 살펴보자. 노동법은 민법의 특별법이다.(노동력 거래, 즉 계약관계를 다루고 있어서다, 또한 노조법 및 근로기준법 위반은 노동 형법의 영역과 민법 계약영역이 함께 존재한다. 산업재해보험 보상법(이하 산재법) 역시 민법의 손해배상이나 채무불이행을 근거로 하며, 산재 등급 결정 시에는 의학(주로 직업환경의학 혹은 직업재활 의학 등), 노동경제학, 노동사회학, 노무관리론, 노사관계론 등이 모두 관련성을 맺고 있어서다. 이렇듯 필요에 따라 계속 만들어진 법들과 노동시장을 포함한 노동 세계를 아우르는 법과 제도, 이들 뒷받침하는 학제들을 융합하는 "학"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사실 노동이란 단어는 꽤 어렵다. 한자로는 힘쓸로(勞) 움직일 동(動)으로 움직이고 힘을 쓰는 정도를 의미한다. 이를 Work로 부르던 Labor로 부르든 간에 각각 표상한 내용이 담겨있게 마련이다. 굳이 구분하자면 전자는 일, 활동을, 후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일을 하는 것을 가리키는 노동이다. 요즘에는 일(Work)라는 표현을 노동과 구분하여 일부러 쓰기도 한다(이에 대한 현상 문제는 별론으로 하고).

노동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1958년의 저작)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는 노동으로부터 소외됐다고 한다. 도대체 소외됐다는 의미는 뭔가 그렇다면 "노동"이란 무엇인가 백과사전(네이버)의 정의를 보자 노동은 "자연 상태의 물질을 인간 생활에 필요한 것으로 변화시키는 활동"이라고 한다. 아렌트가 말하는 노동으로부터 소외란 노동자가 노동을 통해 자연 상태의 물질 등에 뭔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고 그 가치는 노동의 결과이지만, 이의 소유권은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로 옮아가는 것으로 노동은 즐거움이 아니라 고난이요. 하루빨리 이에서 벗어나 자아실현을 위한 활동을 해야 한다는 논지다. 꽤 어려운 이야기다.

또, 마르크스는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과정으로서 이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과 자연 사이의 신진대사를 자신의 행위로 매개하고 규제하고 통제한다."[ <자본론> 1(상),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1989, 225~226쪽], 이 결과물에 대한 소유권 역시 자본가에게로 넘어가기에 착취라는 표현을 쓴다.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노동"이란 단어 그 개념 역시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의미하는 바가 조금씩 달라져야 하는데, 그 달라짐(변화)의 주체가 바로 사회구성원, 즉, 노동자와 사용자, 정부 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은이가 지향하는 노동학은 딱딱한 법률, 어려운 수학과 통계, 경제, 노무관리 헷갈리기만 한 모든 모호한 것들을 한데 모아서 노동이란 키워드로 묶어서 이해하자는 것이다. "노동"은 블루칼라(푸른 작업복을 입기에)의 상징이 아니다. 화이트칼라(흰 와이셔츠를 입기에)가 하는 것은 노동인가, 아닌가, 노동자란 말은 여전히 레드 퍼지(공산당, 좌파 추방)이데올로기의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모호한 근로자란 말을 쓴다. 이 책 또한 노동자란 말이 주는 이미지들 때문에 법률용어인 근로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가치중립적인지 아닌지는 별론으로 하고, 다양한 계층을 염두에 두고 편하게 쓴 글이라 여겨두자.



공정한 사회에서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 공정하지 못한 처사에 대해 저항알 권리가 있다.

또 하나의 관점

국민 자격 차원에서의 노동자 보호는 노동법이 아닌 사회복지 차원에서라는 주장

국가사회가 보편적 복지로 책임을 사용자에게 전가하면 안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47쪽). 이는 기업복지에서 노동복지로의 이행을 말하는 것이다. 다소 논쟁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으나, 어디까지나 입론으로서는 제기할만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국민 자격 차원에서의 노동자란 어떤 의미인지, 이 책 어디에서도 구체적으로 이를 설명하고 있지 않아서 정확한 의미를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주장하고자 하는 맥락은 이해한다. 이는 다음 기회로 미뤄둔다.

지은이가 구상하는 노동학은 이론 학이 아닌 실용 학을 지향한다.

이렇게 보면, 현재 이 책은 선언에 불과하다. 실용적으로 노동법률, 노동사회학, 노동경제학, 통계학 등 이름만 떠올려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그것들로 기억할 게 아니라, 사회구성원은 모두 노동한다는 전제에서 출발, 적극적으로 노동에 관한 생각들을 해보자는 제안이라 보인다. 하지만, "노동학"이란 학문적 접근, 통합, 종합적인 학문으로서의 노동학을 설계한다는 것은 역시 야무진 꿈이요.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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