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61
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봄날은 간다>를 보며 사랑에 빠진 소년은 남자가 되고 사랑이 사라진 남자는 어른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더 리더』를 읽으며 비밀은 소년을 남자로 만들고, 비밀이 깨진 후 남자는 어른이 된다는 것을 배웠다. 『침묵의 시간』을 읽은 후 다시 알게 된다. 비밀이 깊을수록 사랑은 달콤하고 사랑이 달콤할수록 외로움도 깊어진다는 것을. 

 

 

여기, 사랑에 빠진 한 소년이 있다. 소년은 아직 소년이라 부를 수 밖에 없을만큼 어리고 어리숙하다. 책의 처음, 소년은 그 사랑을 잃는다. 잃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잃는 것으로 끝나는 사랑이다. 소년은 어떻게 사랑에 빠지고 어떻게 사랑을 잃게 되었을까. 소년이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아니다, 이 가정은 너무나 어리석다, 소년이 사랑을 잃지 않았다면 그 사랑은 가시적인 결실을 맺을 수 있었을까.

 

아니다, 소년은 사랑에 빠졌지만 그 사랑은 은밀하다. 그것은 소년이 사랑하는 대상이 그의 선생님이기 때문이며 그 선생님이 소년과 나이 차이가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소년은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친구, 부모, 그리고 당사자인 그녀에게조차 쉬이 말하지 못한다. 자기 자신만이 자기 사랑의 증인인 사랑인 것이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모두가 수다스러운 동시에 고집스러워지는 법이거늘, 소년의 은밀한 사랑은 자신을 침묵하게 하고 넓어지게 한다. 대신 소년은 오래오래 생각한다. 그녀와 함께 할 수 있는 방법, 그녀를 위해 자신을 자라게 할 방법, 그녀에게 더 다가갈 수 있는 방법. 아마도 그녀, 슈텔라는 소년, 크리스티안과의 '현재'를 떠올릴망정 '미래'는 생각하지 않았을텐데. 크리스티안은 그녀의 미래를, 자신의 미래를, 정확히는 그녀와 함께 하는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고 예측하고 꿈꾼다.

 

이 사랑은 깨진 사랑이다. 언젠가 깨어질 사랑이 아니라 이미 깨져버린 사랑이다. 소년은 그녀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지 못했고 그녀의 의견을 듣지 못했다. 더 이상 그녀를 안고 사랑한다고 속삭여줄 기회도, 이 사람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누군가에게 공언할 수 조차 없다. 이미 떠나버린 사랑, 끝나버린 과거는 돌아보지 않는다. 크리스티안의 사랑의 무게와는 무관하게 그녀는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랑이 되어버렸으니까.

 

단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사랑의 눈빛, 은밀한 맹세, 장난스런 눈빛, 함의가 담긴 표정들. 소년은 그것을 누군가에게 한 번도 내비칠 기회를 받지 못한다. 마치 없던 일이 되는 것처럼, 마치 모두가 깨고 나면 사라지는 백일몽처럼. 그녀는 정말 나를 사랑했을까. 소년은 바다를 볼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었을 것이다. 그녀는 정말 나를 사랑했을 거야. 소년은 바다를 볼 때마다 스스로에게 위안했을 것이다. 그렇게 소년의 사랑은 늘 침묵의 골에 괴여있다. 사랑을 처음 느꼈던 찰나도, 사랑을 확신한 순간도, 그녀를 향해 달려가는 호흡도 모두 침묵 속에 있거늘. 그는 설렘도 기다림도 비애와 애통도 모두 침묵 속에 버려둘 수 밖에 없었다. 네가 없으면 내 사랑을 증명할 방법이 어디에도 없는데, 그의 사랑은 네가 사라진 순간 모든 증거와 증인이 사라지는 사랑이었다. 아스라지는, 봄날의 햇살처럼 여름의 더위처럼 가을의 낙엽과 겨울의 눈처럼 시간 속에 스미는 사랑.

 

 

나는 이 통속적이고 비극적인 멜로 앞에 안타깝고 가엾고 뻔해서 마음이 짠했거늘. 작가는 한없이 냉정하고 과묵하고 덤덤하다. 마치 오래 전, 그런 일이 있었지, 라고 아주 먼 곳을 보며 말하는 이처럼. 그게 내가 마지막 했던 사랑이었지, 또 다른 소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노인의 눈길처럼. 지크프리트 렌츠는 이렇게나 덤덤하다.

 

하긴, 그는 언제나 그랬다. 『독일어 시간』에서는 날카롭고 맹렬하더니 『아르네가 남긴 것』으로는 탄식만 남기게 했고 『줄라이켄 사람들』에서는 따뜻하고 귀여웠다. 그 모든 순간에 그는 덤덤했다. 두어발자국 멀리 떨어져서 기록을 남기듯 무엇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되 어떤 것도 관여하지 않듯이. 『침묵의 시간』에서는 그 덤덤함이 절정으로 치닫는다. 통속적이고 뻔한 멜로, 금단의 사랑, 같은 선전적인 문구와는 관련없다는 듯이. 그 무연함과 묵묵함이 사람을 더 아프게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는지.

 

 

이 책은 그가 여든의 나이에 쓴 글이다, 라는 글을 읽기 전까진 짐작도 못했다. 맙소사. 젊은이가 나이듦을 그럴듯하게 흉내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이미 많은 것을 지나버린 이가 마치 처음 겪는 것처럼 쓰는 것 또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이 책 어디에도 그런 기색은 없다. 노인의 젊음에 대한 찬미도, 자신의 시간에 대한 과시도. 그저 어쩔 수 없는 사랑에 빠져버린, 침묵 속에 사랑을 빠뜨린, 가끔씩 심장을 파르르 떠는 소년의 가슴이 있을 뿐이다.

 

아! 지크프리트 렌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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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8-01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여든 살의 지크프리트 렌츠라니. <줄라이켄 사람들> 귀엽고 <아르네가 남긴 것> 탄식만 남았고, 제 느낌을 꼭 짚어주셨네요. <독일어 시간>은 볼까 망설이다 두 권짜리라 여태 미뤄뒀지 뭐에요. (하하하하하하;;) 이 책 얼른 담아갈게요, Shining님 :)

그나저나 저 여태 <밀양>을 다시 못 보고 있어요. 시간은 많다고 생각하는데 왜 늘 금방 지나가는 걸까요...

Shining 2012-08-05 14:06   좋아요 0 | URL
글 올려두고 방치해뒀어요, 며칠ㅠ 미안해요 수다쟁이님, 이제 답글 다네요;

연륜이란 이런 거구나, 하면서도 마치 내가 소년이 된 것처럼 풋내나고 설레기도 했어요. 어떻게 이렇게 완숙하면서도 서툴게 쓸 수 있을까요? 멋졌어요^^

괜찮아요, <밀양>은 워낙 다시 보기 어려운 영화니까, 꼭 다시 보라고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영화니까요(웃음). 도서관 일지 안 써요?+_+ 저 그거 팬 될 것 같은데, 그거 쓰면 모두 다 이해할게요(ㅎㅎ).

비로그인 2012-08-05 22:07   좋아요 0 | URL
ㅋㅋ 저도 요즘 글 올려두고 방치해두기 일쑤랍니다, Shining님! (ㅠㅠ) 지크프리트 렌츠는 소 뒷걸음질 치듯이 만난 작가라서 이렇게 다시 만나서 무척 반가웠어요. 아마 내일 도서관 출근하면 바로 수중에 넣을 것 같아요! 도서관 일지... 계속 써봐야겠네요 ^ㅡ^ㅋ

Shining 2012-08-07 20:50   좋아요 0 | URL
와, 도서관에 출근(!)해서 바로(!!) 손에 넣을 수 있다니(!!!). 수다쟁이님 짱이에요-_-b(척)
도서관 일지, 기다리고 있는 팬이 있다는 것만 알아주심...(부담되죠?ㅎㅎ)

아이리시스 2012-08-05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 책..평가단 할 때 받아서 누군지 몰랐고 왜 1318을 보내주냐면서 투덜투덜 투덜투덜 이랬는데 누구? 지크프리트 렌츠? 그게 누구야..( '') 아..저도 있을 거예요, 이 책. 그럼 저도 한 번 먼지 털고 읽어볼게요 :)

Shining 2012-08-07 20:52   좋아요 0 | URL
와! 아이님은 찾으면 막 책이 쑥 그러시구나... 없는 책이 없으셔-_ㅠ
완전 도라에몽이잖아요!(아이에몽이라 불러드리죠ㅋㅋ) 부럽습니다용 :)
 
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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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여러분 제가 엊그제도 글을 쓰고 오늘도 글을 쓰고 있어요. 이건 마감을 앞둔 레포트 쓸 때와 일 외에 거의 처음인 것 같아요. 게다가 이 글도 꽤 장문이 될 것 같은데 말이죠. 제 안에 이런 성실함과 열정(!)이 있었다니. 스스로에게 감동과 배신감을 함께 느끼는 중입니다. 저는 이 영광을 미용사 언니(어제 미스코리아 대회가 있었다더니 잠시 착각했어요)... 아니죠, 다카노 가즈아키 씨에게 돌립니다. 게다가 이 말투, 네, 오랜만에 구어체 리뷰에 도전해볼까 합니다. 오랜만에 하려니까 쑥스...럼을 느껴야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거 모르겠습니다! 저 지금 굉장히 흥분했거든요!!(느낌표 빵빵) 여지껏 제가 구어체 리뷰를 택할때는 거의 이 이유였죠. 리뷰를 쓰는 것이 아니라 말해야 하는 책이기 때문. 이 책도 누군가에게, 안 되면 혼자라도 말해야 할 그런 책입니다. 하하. 정확히는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책이기도 하죠. 아, 시작하기 전에 제가 읽느라 정신을 팔려 메모를 (정말)하나도 못했기에 인용은 단 한 문장도 없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알려야겠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요, 아 장점이 너무 많아서 어떤 점부터 꼽아야할지 모르겠군요. 그래, 스토리를 이야기해볼까요. 『제노사이드』는 크게 세 군데의 물리적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이야깁니다. 하나는 미국, 주로 펜타곤이라 불리는 높은 분들의 영역이 되겠구요. 또 하나는 일본, 고가 겐토라는 약학대학원생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미지의 인류가 살고 있는 콩고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the Congo)이 되겠습니다. 이 세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차례차례 비춰가는데 물론 대부분은 동시간대에 이뤄지는 일이고요, 전혀 상관 없는 일들로 비춰지는 몇몇 사건들이 실은 서로간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형식입니다. 

 

그러니까, 마치 헐리웃 블록버스터 영화 같은 진행이에요. 동시간의 다른 곳에서 이뤄지는 일들을 보여주는 영화들 있잖습니까. <아모레스 페로스>나 <바벨>같은? 아니면 <크래쉬>나 <밴티지 포인트>같은 영화들이요. 아니지, 헐리웃 영화 같을 뿐 아니라 영미문학 같기도 합니다. 등장인물이 외국인이고 배경이 외국이라서, 다카노 가즈아키 씨가 미국에서 체류한 적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저도 앞날개 보고 알았답니다, 영화 연출을 한 적도 있더군요. 그래서 헐리웃 영화스러운 진행도 자연스러운 걸까요?) 이야기의 굵기나 둘레, 진행, 묘사, 설명, 서사까지 모든 것이 그렇군요. 그런데 이 책의 장르가 뭘까요. 으으으음, SF가 가장 무난할까요. 아니면 과학 어드벤처나 스릴러, 액션(?) 어떤 면에서는 재난물일수도 있겠습니다.

 

 

장르소설을 쓰는 분들, 특히 영미권 작가들은 자신의 전직이나 경험을 살려 글을 쓰는 경우가 꽤 있죠. 존 그리샴과 제프리 디버는 변호사였고 마이클 코넬리는 기자였고 퍼트리샤 콘웰은 법의관이었으며 존 르 카레는 MI6에서 일한 사람이죠. 헌데 다카노 가즈아키 씨는 약학은 커녕 컴퓨터를 전공한 이력이 전혀 없으며 당연히 특수부대원으로 근무한 적도 없을 것에요. 그런데도 약에 대해 설명하고 컴퓨터 알고리즘을 해석하며 특수부대원들의 촉각을 묘사하는 것을 어떻게 이렇게 잘할까요. 아는 것을 말하는 것과 잘 모르는 것을 언급하는 것은 차이가 있죠. 말투, 어투, 쓰는 단어, 서술, 무엇보다 숨길 수 없는 자신감과 확신이 그렇죠. 잘 모르겠지만 그런다더라, 내가 알기론 그렇던데, 가 아니라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자, 내가 아는 것을 당신에게 들려줄게" 라며 거들먹거리는 게 아니라 "제가 아는 건 이런 겁니다", 라고 공손하게 말하죠. 작품을 위해 작가가 리서치를 철저히 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 해도 이 정도의 내용을, 이렇게 말하려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을까요. 품을 팔아 책을 찾고 독학을 하고 여기저기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겠죠. 그 다음에는 그들이 설명하는 것을 자신의 머리로 옮기고 해석하고 확신한 다음 자기 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머리가 아프고)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요. 저는 거의 경외의 감정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다카노 닐슨이라고 불러줘야 합니다. 암요.

 

 

게다가 『제노사이드』는 문장력도 좋고 진행의 속도나 이야기를 꾸려가는 방식 또한 좋습니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고 때로는 그들의 어릴적부터 현재까지, 또는 현재의 거의 모든 상황을 설명합니다. 가끔은 딱 한 번만 등장하는 인물도 나옵니다. 그런데도 굳이 이 인물의 시점이 필요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지 않더군요. 페이지수가 상당하고 이야기의 둘레가 나무로 치자면 오백년 거대한 나무 정도 되는데도 사족이라고 느낄만한 부분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어요. 물론 이건 제 생각입니다, 게다가 저는 책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사람이니 믿지 못하셔도 제가 할 말은 없습니다요. 특히 소년병의 이야기 같은 경우는 짧은 이야기인데도 임팩트가 굉장히 컸어요. 아마 그 이유는 작가의 균형감각과 연결된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균형감각, 사람의 신체에서는 달팽이관이 그 역할을 한다죠. 그렇다면 사고의 균형감각은 어떨까요. 다카노 가즈아키 씨에게 제가 이 책으로 호감을 물씬 느꼈던 것은 그 부분이었습니다. 상당히 완벽주의자군, 오호 글도 잘 쓰네, 이런 객관적 감탄이 아니라 존경할만한 사람이라는 감상을 갖게 된 부분이죠. 이 책으로 비춰본 완벽한 편견에 따르자면 다카노 가즈아키 씨는 첫째로,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졌고요, 두 번째로 많이 배운 사람 같아요. 고학력이라거나 명문대를 나왔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많이 오래 배운 사람 말이죠. 왜, 배운 사람일수록 오히려 편협함이나 선입견이 견고해지고 자신의 지식에 틀에 갇히는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이 더 보수적인 것 말이죠. 그런데 이 분은 자신의 지식과 사고를 더 많이 배우고 고민하도록 '지성'으로 끌어올려진 매우 드문 경우 같았습니다. 어떤 문제를 다각도에서 보려고 노력하고 그 중 어떤 것에 동의를 표할 것인지 진지하고 꼼꼼하게 결정하는 사람 같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그건 작가로서도, 성인(成人)으로서, 원론적으로는 한 인간으로서 엄청나게 중요한 자질이잖아요? 갖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고요. 

 

 

제가 갖는 호오(好惡)가 작가가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사람이라서는 아닙니다, 전혀. 오히려 눈에 띄게 한국인, 한국에 대해 우호적이서 되레 의심을 했죠. 감상적인 이유에서는 아닌가, 조국에 대한 정서적 반작용이 아닌가 해서요. 헌데 이 분은 단지 한국인이 좋아요, 오, 김치 맛있어요, 그런 게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고, 일본인으로서 한국의 역사에 대해 수치심과 죄책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일본의 과거에 대해 책임감과 비판을 서슴지 않더군요(때문에 자국에서는 좌익이라는 비판을 받았다고 하죠). 그건 한국이 좋아서, 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으로 비춰볼 때 이건 일본이, 나의 조국이, 비록 나의 조국이라 해도 그 일(들)은 잘못했기에, 라는 뉘앙스로 읽혔어요. 비단 일본 뿐 아니라 미국이나 여러 강대국들의 제노사이드에 대해서 심한 혐오감과 탄식을 갖고 있는 듯 보이더군요. 그리고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전쟁과 테러와 학살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고양이처럼 눈을 치켜뜨고 오랜 시간 관찰해온 것 같았습니다. 자, 이래이래서 너희는 나빠, 가 아니라 이런 사람들이 이런 결정을 해서 이런 일들이 일어난 거야, 라고 -결코 무심코 넘길 수 없는 픽션으로- 묘사합니다. 학살당한 쪽과 학살하는 쪽을 함께 비춥니다. 그러면 독자들은 좀 더 큰 책임감을 갖게 되며 더 깊게 생각하게 되죠.

 

소년병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볼까요. 영화 <그을린 사랑>을 볼 때 저는 '충격의 반전'보다도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러버린 그 남자의 삶에 더 신경이 쓰였거든요. 나는 평화롭고 문명화 된 환경에서 충분한 교육을 받았으니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라고요. 저 남자는 저런 환경에서 어릴 때부터 보고 듣고 당한 것이 그것이니.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폭력과 살인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구나, 하는 것 말이죠. 그런 환경에서 존엄함을 지키기 위해 폭력이나 살인을 하지 않을 자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 저 남자의 지극한 선의(善意)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가. 등등의 생각 말이죠. 소년병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그 생각이 들더군요. 이 잔인한 꼬마, 가엾은 꼬마, 결국 이 꼬마도 이기가 만든 피해자였음을 말이죠. 때문에 더욱 이 현실에 입각한 사실에 잔인한 것이라는 생각에 몸서리쳤습니다.

 

 

이렇게 『제노사이드』에는 사람 울컥하게 만드는 부분이 꽤 있습니다. 다카노 가즈아키 씨는 심리학에도 탁월하신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무엇이 사람을 욱하게 만드는지를 잘 아시더군요. 그리고 그것을 글로 옮길 재간까지 있다니, 부러울 따름입니다. 그런데 실은 제가 이 무시무시한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좀 엉뚱할지 모르지만, 소설의 의미였어요. 대체 소설이 뭐냐고, 소설을 읽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냐고 누군가 물을 때마다 저는 나름대로의 대답을 했지만 그건 어쩌면 스스로에게 하는 변명 같았어요. 나는. 나는 이것 때문에 소설을 읽는다는 스스로의 정당함이었죠. 하지만 어떻게 그 정당함으로 타인을 설득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확실히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작 이 책 한 권을 읽으며 저는 어떤 이론서나 철학책 못지 않은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폭력이 나쁜 것은 누구나 아는 문제이며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어떤 의미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제는 압니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강자가 약자를, 권력이 이성을 어떤 식으로 눌러왔는지 문명화된 세계이기에 우리는 어느정도는 압니다. 수많은 책들이, 이론서들이, 언론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인지하고 받아들이죠. 하지만 그 인지와 받아들이는 것에는 개인차가 있고 그것을 접하는데는 -불편한 사실이지만- 계층과 계급차이가 분명 있을 겁니다. 같은 글을 읽는다한들 어떻습니까. 지나치게 어렵거나 낯설거나 막연하죠. 혹은 이해할 수 없거나 납득하기 어렵거나 설득되기 힘든 것들이 있죠. 하지만 소설은 그것을 보다 쉽고 보편적으로, 설득적으로 보여줍니다.

 

다소 단편적인 예를 들자면, 저는 그 전에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들어온 것보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으며 그 곳의 심각성을 짐작해봤고, 그때까지 재미삼아 읽었던 모든 꽃말책보다『꽃으로 말해줘』로 더 많은 꽃말을 외울 수 있었고, 그저 뉴스의 한 꼭지로 흘려듣던 과테말라 내전에 대해서는『나무소녀』를 읽으며 충격을 받았고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과『염소의 축제』를 통해 트루히요 정권에 대해 보다 면밀히 알게 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소설로 쓰여졌다고 진실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사실에 입각한 글, 그리고 그 사실에 입각한 글임을 믿기 위해 제가 스스로 찾아 보고 공부하고 읽어보게 하는 경각심만은 진실일 것입니다.

 

저는 이따금 소설을 읽으며 더 큰 진실, 혹은 진실을 가장한 거짓과 마주하곤 합니다. 때문에 현실 세계에 대해 더 촉각을 세우게 되고 세상을 보는 눈을 좀 더 키워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눈 앞의 것들에 현혹되지 않고 내 눈으로 세상을 보겠다고 생각합니다. 소설. 네, 소설(小說). 작은 이야기입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의 이 작은 세상이 때로는 어떤 이론서보다 어떤 과학책보다 인간의 마음을 쉽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으며 동시에 스스로 어떤 사람인가를 증명하게 하는 것. 그것이 소설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저는 다카노 가즈아키 씨의 등단작『13계단』도 좋았고 단편집인 『6시간 후 너는 죽는다』도 괜찮았어요. 『그레이브 디거』도 아쉬운 점은 있었지만 모터 달린 듯 읽게 되는 가독성과 사람을 집중하게 하는 강렬한 매력에 끌렸었죠. 『제노사이드』의 유일한-굳이 꼽자면- 단점은 결말부분이 다소 싱겁다는 것? 그 외에는 소설이 갖춰야 할 모든 미덕을 다 가졌다고 감히 말해봅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니 궁금하시죠? 정작 내용은 말 안 해주니 간질간질하시죠? 대체 뭔데 그래? 내가 한 번 읽고 말해주지, 싶으시죠? 후후후후. 그런 마음이 드신다면 제가 이 글을 매우 잘 쓴 거군요. 제가 어떤 말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그냥 읽으세요, 이 책. 그 말 외엔 모두 사족이 될 뿐이라고, 저답지 않게 단호하게 말해봅니다. 그럼 다시 구어체 리뷰로 만날 날까지. 저는 이만 총총.

 

 

 

 

 

 

덧) 저는 여태껏 '다카노 카즈야키'라고 발음했는데 이 책에 '다카노 가즈아키'라고 써있더군요. 이 책을 존중, 리뷰에는 다카노 가즈아키로 통일하고자 했습니다. 혹시 잘못 쓴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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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2-07-08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샤이닝님 리뷰를 보고 어제 서점에 갔었어야 했는데 ㅡㅡ;; 자꾸 만지작거리다가 안샀거든요. 13계단 좋았는데 결말이 밍밍했던 기억땜에 ㅠ 근데 이 리뷰가 제 맘을 흔드네여 ㅎㅎ

Shining 2012-07-10 11:00   좋아요 0 | URL
크, 아쉽다ㅠ 뽀님, 사실 이 책도 결말의 분량이 적고 단순해요, 그 앞의 과정이 너무 방대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요^^; 하지만요, 이 책 정말 멋져요! 아니지, 멋진 작가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게 해요ㅎㅎ 읽어보셔도 후회하지 않으실거라, 저답지 않게 단호하게 말합니다!_-*

마녀고양이 2012-07-09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카노 가즈아키는 제가 참 좋아하는 작가이고,
이 책 역시 장바구니에서 만지막거리고 있다지요. 관심이 가는 책인지라 열심히 읽었답니다.
제가 오랫동안 IT를 하다보니, 프로그래밍, 알고리즘 이런거 나오면 참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제프리 디버의 <브로큰 윈도우>가 너무 재미있기도 했구요. <모든 것은 F로 끝난다>도 참 좋아했는데
후속작 번역이 안 되네요............. 여하간, 이 책 사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불끈!

Shining 2012-07-10 11:06   좋아요 0 | URL
그렇구나, 마고님은 프로그래밍, 알고리즘 이런 거 좋아하시는구나ㅠ 저는 사실 촘 머리가 아팠어요;; 약에 대한 설명도 어찌나 자세한지-_ㅠ(문과계 사람ㅋㅋ) 그렇다면 이 책 취향에 맞으실 것 같아요>_< 감탄의 연속이었거든요, 저는ㅎㅎ <모든 것은 F로 끝난다>, 국내 번역작이에요?+_+ 처음 들어보는데; 제목이 팍팍 끌려요~

아이리시스 2012-07-12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샤이닝님! 이거 읽어본 사람들은 다 좋대요! 리뷰도 칭찬일색, 마케팅도 완전 자신만만. 그래서 저도 곧 읽을 거예요. 책이 생기거든요. 읽고나서 리뷰 읽어볼게요. 히히히히히히.

다음 책은 뭡니까!

Shining 2012-07-12 22:47   좋아요 0 | URL
이게 누구에요?>_< 아이님 오셨군요! 이 책 좋아요, 재밌고 깊고 배울 점도 많아요! 믿고 추천합니다(그런데 이렇게 강추받다가 실망하실까봐 촘 걱정ㅠ) 읽고 꼭 리뷰 써주세요~ 다음 책은 저도 잘..ㅋㅋ

2012-07-12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샤이닝님이 이렇게 극찬을 하시니 저도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이 리뷰 읽으려다 말았어요. 다 읽고 나서 읽을래요. ^^
샤이닝님, 역시, 최다 뽐뿌 유발자입니다. 아, 이 책은 도서관에 주문을 넣도록 하겠습니다~. 도서관 김비서가 알아서 잘 해 줄 겁니다.ㅎㅎㅎ

Shining 2012-07-13 00:23   좋아요 0 | URL
아, 소심한 저는 살짝 걱정이 들어요; 아이님 댓글에 쓴것처럼 이러다 실망하실까봐...그런데 이 책은 객관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책이라서요!(다시 자신감 회복!) 좋겠다, 제 도서관의 김비서는 일 너무 많이 시킨다고 울면서 그만뒀어요, 제가 시 예산을 너무 많이 써서 눈치도 보인대요, 흑.

2012-08-06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이 책 다 읽었어요. 샤이닝님이 찬사를 뿜을 만한 책이네요.
저는 '정훈'의 캐릭터와 국적이 뜬금없다 생각했는데, 다카노 가즈아키 인터뷰에서 그는 그런 말을 했대요. 철길에 뛰어들어 다른 이를 구하고 스스로를 희생한 이수인이라는 한국인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인간에게 있는 그런 무조건적인 선의의 모습을 소설 속에 담고 싶었기에, 이수인을 기념하는 마음으로, 한국인 '정훈'을 만들었다고. 그 말을 읽으니 이해가 갔어요. 그래서 저는 이 소설의 결말이 좋았답니다. 작가는 제노사이드를 할 줄 아는 종족으로 인간을 보지만, 또한 인간에게 있는 그런 무조건적인 선의에 주목하며, 인간이라는 종족에 대해 시니컬한 결론을 내리고 싶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카리와 에마의 재회가 아닌, 겐토 부분을 끝으로 삼았다고 생각을... 그리고 저는 아버지 메일의 마지막 부분에 살짝 감동했어요.^^

여튼 (샤이닝님 말대로) 소설가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존경하고 싶은 작가예요. 이승우씨가 말한 강을 건너는 방법을 놓치지 않은 소설가이기도 하고, 또한 (샤이닝님 말대로) 균형잡힌 사고를 할 줄 아는, 오랫동안 깊이 배운 사람이기도 하고..

Shining 2012-08-07 20:57   좋아요 0 | URL
섬님이 이 책을 읽으셨다니, 괜히 제가 다 뿌듯한 건 왜일까요?ㅎㅎ

저도 인터뷰에서 읽었어요, 故 이수현 씨를 담은 인물을 넣었다는 말이요^^ 그런데 이수현 씨 뿐 아니라 한국, 한국인, 한국의 정서 같은 것에도 관심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

제가 먼저 공언을 해버려서 세뇌되신건...ㅎㅎㅎ 노력을 많이 했구나, 애썼구나, 하는 감탄과 오랫동안 생각을 해온 사람이구나, 싶은 감명 같은 것까지 받았어요. 저 너무 오버하는 걸까요?(웃음)
 
혼자 책 읽는 시간 -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때
니나 상코비치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특별히 사회성이 나쁘거나 협동심이 없는 것은 아닌데(혹 그렇다해도 그걸 숨길 수 있을 정도는 되는데) 고르자면 혼자인 쪽이 좋았다. 또는 혼자인 것이 싫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혼자임을 두려워 한 적이 없다고 해야겠다. 영화도 미술관도 연극도 도서관도 산책도 사실 혼자인 편이 좋을 때가 더 많았다. 운동도 구기종목이나 단체운동에는 흥미가 없고 그보단 조깅이나 수영, 자전거 등을 선호. 내가 가장 자주 하는 일 중 가장 좋아하는 일들 -책과 영화와 직소퍼즐과 각종 정리정돈;;- 은 모두 혼자 하는 것이 아니냐고 친구가 지적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입을 다물었고 어쩐지 비난받은 기분이 되어 울적했지만 생각해보면 궁극적으로 남과 같이 하는 일이 몇 가지나 될까?

 

혼자서 책 읽는 시간, 이라는 제목을 보며 난데없이 그때의 울분을 터트린다. 이봐이봐. 책을 같이 읽을 수가 있는거야? 만약 누

군가 책을 읽어주거나 함께 페이지를 넘겨가며 읽는다해도 결국 책은 혼자만의 것 아니냐고. 좀 더 나가서 말하자면 궁극적으로 남과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몇 가지나 된다고! 그렇다면 어째서 그녀는 혼자 책을 읽기 시작했을까.

 

저자인 니나는 세 자매의 막내딸이다. 저자의 말을 빌어 '형제간의 역학관계에서 볼 때 나타샤는 같이 노는 언니, 앤 마리는 신경 쓰이는 언니' 중 앤 마리를 병으로 잃게 된다. 언니를 잃고 삼 년, 그녀는 자신이 쉴 새 없이 뛰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자신이 도망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하루만에 읽은 그 날 그녀는 결심한다. 365일 프로젝트. 하루에 한 권 책 읽기. 그렇게 이 책은 티끌로 태산을 만든, 아니지 태산이 된 티끌들의 이야기다.

 

서평집과 독서 에세이 중간쯤 위치하고 있기에 책의 내용을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게다가 그녀가 읽는 책들, 언급하는 책들이 국내에 번역이 안 된 책들이 수두룩해서 '서평집'으로의 기능을 기대한다면 글쎄. 하지만 이 책에는 분명 애서가들에게 각별하게 다가올 부분이 있다. 정확히는, 우리가 어째서 책을 읽는지 혹은 어떻게 책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겪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있다.

 

당장 생각나는 챕터는 이것. 책을 빌리는 것과 빌려주는 것. 그녀는 지인으로부터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빌려 읽었던 적이 있는데 그 책을 읽고 논리적인 허점과 비판을 하는 바람에 그녀와 멀어졌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책을 빌려주는 것, 혹은 누군가에게 책을 빌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말한다. 친구가 책을 권할 때는 훨씬 더 많은 것이 걸려 있다. 책을 권하는 것은 손을 내미는 것이고, 저편이 손을 잡아주지 않아 거절당할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어떤 책을 권했는데 거절당한다. 그게 우정을 망가뜨릴 수 있는가?

 

하하. 나는 여지껏 책선물을 거의 한 번도 임의로 해본적이 없다. 내 자신조차 책선물을 받을 때 어떤 책이라고 명확히 지칭하는데 (가끔 선택의 가능성을 두기 위해 두 세가지 책을 말할 때는 있다) 친구에게는 어떠랴. 읽고 싶은 책을 말해달라고 하거나 정 아니면 A와 B 중 어떤 책을 받는 것이 낫겠냐고 물어본다. 물론, 서프라이즈한 즐거움은 포장지보다도 적지만 책이라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이며 주관적이기에, 책장을 채우는 것은 소유주의 허락없이 할 일이 아니라는 판단하에 그쪽이 나은 것 같다. 

 

책추천도 안 한다. 밑도 끝도 없이 책 좀 추천해줘봐, 이런 사람 싫다. 내가 자신의 북마스터도 아닌데 웬 이래라저래라야? 싶은 것도 있지만(성격 나온다_-) 본인의 취향도 기호도 관심도 전혀 모르는데. 대체 내가 어떻게 추천을 해주냐고. 게다가 책추천이라는게 밑져야 본전인데 왜 나는 안절부절 못해야지? 이 사람이 맘에 들지 안 들지 생각하고 고민하고 결정했는데 그 뒤엔 나쁜 피드백이 돌아올까봐 염려하고. 책 추천은 어렵고 민감하다. 그 책이 나한테 좋았어, 와 너도 그 책을 읽어봐, 는 결코 같은 말이 아니니까.

 

 

독서를 통해 나는 삶이란 고통이 고르지도 않고 무한정 부담을 져야 하는 것임을 발견했다. 비극은 제멋대로, 불공정하게 떠안겨진다. 편안한 시간이 오리라고 약속했지만 거짓이 될 수도 있다.

 

이 두 책은, 그리고 내가 읽고 있는 모든 훌륭한 책들은 인간의 경험이 가진 복잡성과 전체성을 다룬다. 우리가 잊고 싶어하는 것들과 더 많이 원하는 것들에 대해 다룬다.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반응하기를 원하는지를 다룬다. 책들이 바로 경험이다. 그것은 사랑이 주는 위안, 가족의 성취, 전쟁의 고통, 기억의 지혜를 입증하는 저다들의 말이다. 기쁨과 눈물, 즐거움과 고통, 모든 것이 보랏빛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동안 내게 왔다. 나는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그토록 많은 것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온갖 무지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경험 중에는 내가 느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사건들이 있다. 그것은 독서의 힘을 통해 이루어진다. 책은 그런 마법을 어떻게 발휘하는가?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기에, 자신들이 만들어낸 캐릭터들을 독자들과 그토록 단단하게 묶어놓고, 책을 읽어나가는 우리를 그 캐릭터로 변화시키는가? 캐릭터와 플롯이 우리의 삶과 그토록 다른 경우에도, 특히 그럴 때일수록 왜 그렇게 될까?

 

책을 읽을 때, 나는 누구보다 나인 동시에 누구보다 내가 아닌 사람이 된다. 더운 여름날에도 나는 겨울의 구소련으로 날아가고, 여름밤의 베네수엘라로, 초봄의 도쿄와 늦가을의 코펜하겐으로 간다. 내 방에 앉아서도 체코와 케냐와 아르헨티나와 캐나다를 함께 여행한다. 70살의 할머니도 되어보고 9살 남자아이도 되어본다. 전쟁통의 화염속에서 콜록거리기도 하고 광활한 대지 위를 걷는 탐험가가 되었다가 코르셋을 입은 귀족아가씨가 되기도 한다. 어느 순간에는 아버지이고 어머니이며 할머니가 되고 또 어느 순간에는 아들이며 딸이자 동생이며 자식이 된다. 죽음의 비통함과 삶의 단애와 생의 무연함을 사랑의 떨림과 애증의 긴장을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이 모두 연인이거나 가족임은 아니며 헤어진다고 사랑하지 않는것도 아니고, 헤어짐이 만남보다 나은 순간도 만남이 헤어짐보다 어려운 시간도 온다는 것을 알게 한다.

 

작가의 아버지는 어릴 적 형제 셋을 한꺼번에 잃은 적이 있다. 아버지의 어머니, 그러니까 작가의 외할머니는 하룻밤에 한순간에 같은 집에서 당신 자신이 전혀 짐작도 못한 순간에 자식 셋을 잃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라고 작가는 자문한다. 나는 거기서 삶이 죽음보다 어렵고 용감한 것임을 또 한 번 느낀다. 이렇게 책은 감정의 진폭을 넓힌다. 책 속에 일어난 모든 일은 나를 꿈꾸게 하며 현실을 자각케 한다. 내가 결코 나이기에 알 수 없었던 것과 알게 되었던 것을 함께 인지하게 한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생각지 못한,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모를 세계와 상황 고민속으로 들어간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라면 무엇을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어떤 것을 선택하고 결정하고 행동할지가 곧 내가 됨을 알게한다. 그렇게 내가 어떤 사람임을 주지하게 한다. 팔십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해도 전쟁을 겪지 않아도 남자가 되거나 부모가 되지 않아도. 그 모든 것들을 알게 한다. 작가의 말처럼 단지 보랏빛 의자에 앉아서.

 

내가 잘못 생각한게다. 이 책의 제목은 탁월하다. 책은 혼자서만 읽을 수 있고, 책 읽는 순간 우리는 전적으로 혼자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택한 고독이고 그 고독의 대가는 배울 것이 충분하다. 이런 고독이라면, 얼마든지 선택할 만하다.

 

 

 

 

 

 

덧) 6월 중순에 읽고 이제야 쓰는 리뷰. 뭔가 특별하게 쓰고 싶어서 썼다 지웠다만 반복했다; 서평집으로서의 기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되는 책이다. 객관적으로 매우 좋다고 하긴 어려운데 몇 문장, 몇 문단 애서가들의 격한 공감을 얻을 구절들이 보인다. 당신이 애서가라고 자부한다면 읽어도 괜찮을 책.

 

보랏빛 의자에 앉아서 모든 곳을 갈 수 있다 해도 가끔씩은 다른 곳에서 읽고 싶을 때도 있다. 예를 들면 고성(古城)의 벨벳 의자에서 산도르 마라이나 슈테판 츠바이크를 읽는다면, 노천카페에서 피츠제럴드를 읽는다면, 햇살이 부서지는 강가에서 발을 담그고 헤세나 지드를 읽거나 덜컹이는 야간열차 안에서 온다 리쿠를 읽는다면 어떨까. 보랏빛 의자에 앉아서도 이토록 멋진데 그곳에서 그들을 읽는다면 말도 못하게 멋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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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7-02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임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함께'라는 단어도 받아들일 수 있는게 아닐까 하는게
최근의 제 결론입니다. 물론 이 결론은 앞으로 다양한 경험과 함께 또다시 변화하겠지만요~ ^^

보라빛 의자였나보네요. 보라빛, 환상, 권위, 엄숙함, 손에 닿을 수 없는... 독서와 어울리는군요.
이제 겨우 숨돌리는 시간들, 저는 제프리 디버를 펴들었네요, 링컨 라임에게 가보려구요.
즐거운 한주되셔요, 샤이닝님.

Shining 2012-07-02 16:27   좋아요 0 | URL
혼자인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혼자이고 싶어하는 것은 분명 다른 말 같은데, 주변 사람들에게는 냉정한 사람으로 비추기도 하더군요_- 그런데! 마고님께서 진리의 말씀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제야 짬이 좀 생기셨나봐요, 다행이고 부럽습니다(하하). 전 지크프리트 렌츠를 읽으려고 합니다.
링컨 라임과 함께 부디 마고님도 즐거운 한 주 보내시길 :-)

아이리시스 2012-07-02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스물 세살 즈음에요. 데이트하다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커피숍 갔거든요. 뭐 진득하게 독서하는 시간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여튼 좋잖아요, 수다도 떨지만 군데군데 책도 좀 보고 차도 마시는 광경^^

책을 보긴 보는데 따로 읽어도, 같이 읽어도, 이건 그런 짜증이 없는 거예요. 책을 같이 읽는다거나 읽어준다거나 다 저리 꺼지라고 해요!!! 그게 영화니까 멋있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회의적)

책읽는 시간이 고독이란 건 안 읽는 사람들이나 하는 소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근데 샤이닝님은 이런 책 안 좋아할 것 같은데, 저는, 목차보고 목록만 작성하는 걸로 읽은 걸로 치거든요ㅋㅋㅋ

Shining 2012-07-03 11:47   좋아요 0 | URL
좋죠ㅎㅎ 왠지 생산적인것처럼 느껴지고^^ 저는 책 빌리면 바로 집에 가려고 해서_- 아님 카페에서 읽는데 진짜 책만 읽어서 압수당했어요; 책 읽으면서 걷다 가로수에 머리 받은 후론 거의 몰수당했어요;

맞아요! 실제로는 다 읽었어? 아직이야? 아 나 궁금해죽겠는데 언제 다 읽는거임_- 이러면서 레이저 쏘고 서로 짜증내고... 영화니까 멋지죠ㅋㅋㅋ 그리고 사랑에 홀딱 빠졌을 땐 아마 무슨 책을 읽어주든 그 사람만 보이겠죠, 뭐_-(저도 회의적ㅋ)

그럴지도 몰라요 :-) 근데 저는 고독은 고독인데 선택적 고독인 것 같아요. 법정 스님 말씀처럼 고립하고도 다른 아주 필요한, 생산적인 고독말이죠^^ 좋아하진 않은데 워낙 호평이라 궁금해서... 전체적으로 만족스럽기보단 몇몇 문단이나 문장 때문에 퍽 좋아지는 책이었어요 :-)

프레이야 2012-07-03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편이랄까요.^^
저 책을 사서는 읽지 못하고 바로 어느 여선생님에게 선물했는데 아주 흡족해 하시더군요.
이른 새벽 펼쳤는데 아침 내내 눈 못 떼고 있다고 문자가 와서 저도 기뻤었지요.
저는 재구매하려구요. ^^
님의 리뷰 읽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책을 읽는 장소에 대한 거에요. 멋진 풍경 속에 들어앉아 책이 읽어질까
싶기도 하지만 정말 그런 낭만을 즐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마구...ㅎㅎ
해변에서 책 읽는 서양인들 보면 참 그럴싸 하던데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Shining 2012-07-03 12:0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프레이야님 :)

책 선물한 사람으로 그보다 기쁜 말은 없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읽지도 않고 완벽한 추천을!
대단하십니다+_+ 맞아요, 전 어떤 책을 읽으면 바다로 가는 기차안에서의 소금내와 덜컹거림과
꼬마들이 소근대는 소리가 함께 기억나거든요^^ 전 야간열차 안에서 미스터리 읽는게 로망이에요ㅎㅎ
프레이야 님께서 반갑게 인사해주셔서 좋은 하루 될 것 같아요, 후훗^^ 즐거운 화요일 보내세요 :-)

양철나무꾼 2012-07-06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가지고는 있는데, 아직 시작을 못했어요.
여기저기서 괜찮다는 평을 보니 불끈~이예요.

'산도르 마라이'를 보게 돼서 반가운 마음에 참견을 합니다.
왜였는진 모르는데...두고 두고 오래 오래 남는 작품이었던 것 같거든요, 제 경우엔~.

Shining 2012-07-07 21:22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 오랜만이에요>_<

서평집으로서 도움이 되진 않았어요 사실ㅎㅎ 대신 맘을 강하게 이끄는 구절이 숨어있었어요, 특히 저 '하룻밤에 셋'이야기ㅠ 가지고 계시다니! 어서 시작해보세요+_+

맞다, 나무꾼님 산도르 마라이 좋아하시죠. 저한테 처음 말 걸어주신 것도 마라이 덕분이었잖아요^^ 산도르 마라이, 저도 각별한 작가에요. 책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양철나무꾼님 만나게 해준 것도 모두요 :-)
 
활자 잔혹극
루스 렌들 지음, 이동윤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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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되지 않은 글처럼 답답한 것이 없고 정리될 수 없는 파일처럼 막막한 것이 없다. 하고 싶은 말은 분명 거기 있었으나 모든 말이 글이 되지는 않는 법. 망설이고 지우고 다시 쓰고 조각난 말들을 가여이 여기다 이렇게라도 너희에게 자유를 베푸노라. 주먹을 쥐며 결심하는 바, 조각난 것들을 옮긴다. 그렇게 탄생한 자유만 있고 자비라고는 없는 리뷰, 를 가장한 단상(斷想)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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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란 공평한 존재라고 생각해왔다. 읽지 않는 것과 읽는 것을 택할 수 있고, 신문과 잡지 중 고를 수 있고, 어떤 종류를 어떻게 읽을 것인지 나눌 수 있고,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의지만 있다면 누구든 비교적 평등하게 글을 읽을 수 있으니까. 교수든 학생이든 목수이든 농부이든 변호사이든 가수이든 글을 접할 수 있고 애서가가 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의지만 가지면 모두가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정말로 (어디까지나 예로서) 교수와 농부가 공평하게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는건가? 사람이 책을 차별하지 않는다하여 책 자신이 자신을 고를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가? 새삼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그건 당연하게도

 

유니스 파치먼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에 커버데일 일가를 죽였다.

 

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 덕분이다.  

 

그러니 우선 유니스 피치먼이라는 여자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녀는 모래가 모여 돌이 된 사람이 아니라 그냥 운석과 같은 사람이다. 거대하고 고요하다. 감정이 거세 된, 아니 애초에 결여된 것과 같은 여자. 아버지를 질식시켜 죽게 했고 사람들의 약점을 잡거나 협박하는 데는 가히 능하다. 그리고 그녀는 -작가 자신이 첫 문장에서 밝히듯- 문맹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 사실 때문에 커버데일 일가를 죽였다. 문맹과 살인 사이에 물론 무수한 간극과 그 간극을 채울 자잘한 돌멩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녀는 커버데일 가에 온 순간부터 온갖 가구와 식기에 황홀경을 느낄 정도였지만 동시에 엄청난 위협감을 느꼈다. 방을 가득 채운 서재, 늘 책을 달고 사는 막내 아들, 신문과 책을 들고 여기저기 앉은 가족들, 그녀에게 남기는 메모, 서류를 찾아달라는 부탁. 그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스트레스 이상의 것, 즉 위협이다.

 

만약 그들이 평균 이상의 고학력자들이 아니었다면,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고매한 집안이 아니었다면. 유니스 파치먼은 그 집안에 발을 들일 이유가 없었을 것이고 그녀는 그들을 죽이지 않았을 것이며 그들 또한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니스 파치먼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에 커버데일 일가를 죽였을 뿐 아니라 커버데일 일가는 지나치게 읽거나 쓰는 일을 자주 했기 때문에 유니스 파치먼에게 죽임을 당했다, 라고 두 문장으로 표현했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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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에서 가해자, 피해자, 사건과 동기까지 밝혀졌기 때문에 당연히 이 소설은 '어쩌다'로 초점이 맞춰져있다. 어쩌다 그 지경이 됐을까. 그들의 무엇이 그녀를 자극했을까. 무엇 때문에 그녀는 글을 모르고 모르는 것의 어떤 감정 -요컨대 저 문장 만으로는 그녀의 살인의 이유가 복수인지 수치인지 알 수 없기에- 때문에 살인을 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파격적인 방법은 상당히 자극적일 뿐 아니라 옳았다. 모든 것이 다 서문에서 밝혀졌기에 맥이 빠지기 쉬운데, 오히려 이 책은 '감정'과 '진행'에 그 의미가 있기에 독자들은 더 면밀하게 책을 읽게 된다. 여기저리 놓인 부비트랩을 발견하고 그 부비트랩의 강도가 커지는 것을 찾아내며, 가해자와 피해자 중 어떤 쪽을 조금이나마 더 비난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작가는 이 점을 이용해 발군의 심리묘사를 선보인다. 들어봐 봐, 이 사람들이 이런 사람이고 이 여자는 이렇게 살았어. 자 너라면 어떨 것 같아? 네가 이 여자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 거지? 네가 이 사람들이라면 이 여자는 어떻게 보일까? 라고 묻는 것처럼 작가는 끊임없이 궁금해한다. 그리고 그 질문은 책이 보여주는 것보다 많이, 어쩌면 작가가 의도한 것 이상으로 뻗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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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씨의 발문처럼 나 역시 『더 리더』의 한나를 떠올렸다.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을 수치스러워했던 여자,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진급을 앞둔 직장을 그만두고 미하엘의 앞에서 자취를 감춘 여자, 더 큰 은폐를 위해 자신의 무고함을 항변하지 않은 여자. 그런데 그녀는 아우슈비츠의 간수였고 자신의 행동이 일조 한 학살의 흔적에 대해서 태연하다. 물론 인간이란 때로는 개인적인 약점을 단체의 또는 공적인 오류보다 더 수치스럽거나 크게 여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신의 단점을 자신이 속한 사회나 단체의 (때로는 더 큰) 단점보다 더 부끄럽게 여기거나 숨기고 싶어하는 경향 말이다. 그렇다손쳐도, 이 여자는 어딘가가 이상했다. 그래서 그때도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정말이지 혹여나 이 여자가 어떤 죄책감이나 일상적인 도덕성을 잃어버린 것과 문맹인 것은 관계가 있을까?

  

한나와 유니스는 비슷하다. 문맹임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 하지만 살인이나 살인 방조에 큰 죄악감은 없다. 자신이 문맹이라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뿐 아니라 때로는 더 큰 희생을 감수하지만 자신들의 행위(유니스는 이미 아버지를 살인한 후 커버데일 가로 오며 한나는 공개 재판에서 그 때 내가 어떻게 했어야 하냐고 묻는다)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는다.

 

게다가 유니스 파치먼은 읽고 쓰지 못했기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 라고 작가 스스로가 맨 처음에 공표했다. 달리 말해 그녀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는 문맹이기 때문이야, 라고 독자의 손에 쥐어주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그녀는 문맹임이 밝혀졌기 때문에 살인을 했는가? 아니면 문맹이 결과적으로 가져온 도덕적 해이와 결여 때문에 살인을 했는가?

 

여기서 우리는 의문을 품어야 한다. 그녀들의 오묘한 도덕성 혹은 죄악감의 결여는 우연에 근거한 개개인의 문제인가, 아니면 문맹이라는 결핍에서 파생된 결과인가? 활자를 읽고 글자를 접하는 것이 지적 능력 뿐 아니라 정서적 능력을 좌우하게 되는 것일까. 단지 활자를 읽을 수 없다는 원인이 인간의 감정 발달을 거세시켜 필연적인 감정을 부여받지를 못하는 걸까. 흥미롭게도 작가인 루스 렌들은 아주 얇은 표피 아래의 어딘가에서 외친다. 유니스가 괴물이 되어버린 건 문맹이기 때문이라고. 문맹인 괴물이 아니라 문맹이기에 괴물이 되었다고. 내 자신이 그 의견에 동의하는가 아닌가는 차치하고 적어도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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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나로 하여금 다른 시대를 동시에 살게 하고 내가 결코 겪지 못했던 않았던 없었던 일들을 경험하게 한다. 타인의 경험과 사고에 빠져들며 그것을 내게로 투영하고 다시 현실로 환치한다. 내가 미처 하지 못했던, 할 수 없었거나 하지 않으려 했던 생각들을 저절로 때로는 기어코 하게 만든다. 세상에는 무수한 삶과 방식과 고난이 있고 그 순간이 만약 내게 왔다면 나는 어떻게 할지를 예상해보고 결정해보게 한다, 는 걸 다시금 실감했다.

 

여태 나는 책이 있어서 영화를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타인의 어떤 말로도 행동으로도 내 마음을 설명할 수 없었을 때, 나는 작가들에게 도망쳤다. 상처받은 어린애가 엄마 치맛폭으로 뛰어들듯 달려가 안겼다. 세상의 모든 말이 있었지만 그 모든 말은 지금의 나를 설명하기에 부족했기에. 현실세계의 말은 너무나 달콤하게 쉽게 부서지는 웨하스 같았기에. 현재를, 십년 전을, 백년 전을 살던 이들. 내가 모르는 고통, 갈등의 세계로 달려갔다. 삶이란 얼마나 가벼운가, 또 얼마나 무거운가. 내가 듣고 싶은 말은 그 곳에 모두 있었고 때로는 아무 곳에도 없었다. 그래도 그것이 현실보다 나았기에 위기의 순간, 나는 친구들이나 가족이나 연인이 아닌 책이나 영화에게 달렸다.

 

책은 나를 위로했을까.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오히려 내 고통의 진위를, 층위를, 면모를 더 자세하게 쪼개고 객관적으로 성찰하게 하지는 않았을까. 그렇게, 어쩌면 더 괴로워하게 되지는 않았을까. 책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토록 내 고통을 분석하지 못했을텐데. 그래도 책은 나를 위로만 한 것일까. 책이 아니었으면 그렇게 구체적인 위로를 받을 수 없었겠지만 내가 그렇게까지 구체적으로 괴로워할 수 있었던 건 책의 탓은 아니었을까. 책이 아니었다면 구태여 몰랐을 것들, 감정과 전조와 갈등들. 그것들을 배웠고 현실세계에 적용하고 다시 감정을 분석하고 그렇게 더 체계적으로 아파한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 그저 '괴롭다' 혹은 '기쁘다' ,'불안하다'처럼 뭉뚱그려 말할 수 있는 감정들을 '나는 지금 무엇때문에 괴롭고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이것이 아니라 이것 때문에 힘든 것이다', '지금 나의 행복은 언젠가 이것이 사라진다는 일회성 혹은 소멸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타자화 하는 동시에 방관자로 만들어 더 자학하게 만들지는 않았는가.

 

책을 읽는 나는 책을 읽지 못하는 나보다 영리해진걸까, 불행해진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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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인 내 생각에 이 책은 영리하고 다의적인 소설이다. 굳이 장르를 구별하자면 추리가 되겠지만 서문에 추리소설의 모든 것을 밝히기 때문에 사실 그보다 더 큰 것을 노렸다고도 할 수 있다. 작가의 뒤를 쫓아가며 범인이 누군지 '맞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알기 때문에 어떤 편에 설 것인지를 결정하게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아마 작가는 두 가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하나는 문맹이라는 것이 개인에게 얼마나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지, 그 중에서도 악영향에 대한 것. 또 하나는 가진 자, 배운 자, 더 위에 있는 자들이 과연 가지지 않은 자, 배우지 못한 자, 더 아래 있는 자들을 이해할 수 있는가. 누군가에는 너무 당연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당연하지 않는 일일 때, 당연한 자는 아닌 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게다가,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의도에서든 혹여 선의에 의한 것이라 해도 무언가를 타인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 값싼 연민은 이기심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것.

 

그러나 나는 둘 중의 어느 편에서도 구태여 서고 싶지 않았다. 커버데일 일가는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었기에 이기적이지만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것을 몰랐으니 그건 위선이 아니라 차라리 기만이었을 테고. 커버데일 일가가 기만행위를 했기에 그들이 유니스 파치먼에게 살해당할 만 하다고 당연히 생각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유니스 파치먼의 폭력적 도덕성이 오롯이 문맹의 결과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다만 이 책은 잘 써진 책이 주는 쾌감이나 단순한 즐거움 이상으로 이 책은 나를 생각하게 하기에 좋은 평점을 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 책을 읽고 있다. 즉 우리는 모두 문맹이 아니고 그 중 몇몇은 애서가라는 점이 가장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유니스가 되지 않았고 커버데일 일가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지만 그것 역시 값싼 동정이나 부끄러운 안도감일지 모른다. 활자는, 아니 활자도 잔인하다.

 

 

 

덧) 유니스 파치먼의 공범인 조앤 스미스. 흥미로울 뿐 아니라 중요한 인물인 이 사람을 판단하기에는 아니, 그런 글을 쓰기에는 다분히 조심스럽다는 이유에서 그녀의 이야기는 고의적으로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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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6-13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수다쟁이님 리뷰 읽고 이 책 리뷰 두 번째. 예전에 기사를 하나 읽었었는데요, 영화도 있다던데요? 소재가 흥미롭다고 생각하면서도 대부분의 책이 그렇듯이 패스했는데. 다시 보게 되다니 나도 울집 옆에 도서관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ㅜㅜ (지어달라 지어달라!)

문맹이어도 행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글 말고 다른 것들이 발달할 것도 같아요. 예를들어, 말의 예절이나 말하는 방법, 말의 경제성 등이요. 하지만 지금 저는 문맹이 아니라서 행복한 건 맞는 것 같아요. 책읽기 싫을때조차도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좋으니까요.

그러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무플방지댓글인 걸로.(이건 장동건 말투 따라한 걸로)

Shining 2012-06-15 11:37   좋아요 0 | URL
언제나 예쁜 아이리시스 님, 안녕:-)

책 자체보다 책을 읽으면서 하게 되는 생각들이 재밌었어요, 이 책^^ 맞다, 도서관에 새 책 많이 들어온다고 제가 지난 번 페이퍼에 썼잖아요. 진짜 많이 들어왔어요! 세보진 못했지만 한... 이백권 넘게?ㅋㅋ 그래서 저 요즘 엄청 바빠요_-* 빨리 읽고 반납해야해서ㅎㅎ 제가 신청한 책도 여섯 권이나 왔어요>_< 미안해요, 자랑해서;; 자랑할 데가 없어서 하고 싶었어요ㅠ

맞아요, 문맹이라 삶이 불행할 거라고 예상하는 건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시선이지만 아이님 말처럼 내가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건 다행인 것 같아요 :-)

근데, 이건? 무슨 말이에요?ㅠ 전 TV, 특히 드라마를 전혀 안 봐서-_ㅠ

2012-06-20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자가 없는 문명, 혹은 현대문명의 체험이 없는 삶을 저는 동경해요.
예전에 이지누 씨 강연을 들었는데, 옛날 문화를 채록하는데 가장 좋은 조건은, 학교를 다니지 않은 시골 공동체의 사람이래요. 거기엔 주로 시골 할머니들이 속한다지요. 이분들의 말에는 오염이 없대요. (한자말, 일본식 말 등등) 그래서 그 공동체의 생동감있는 전통 문화를 잘 간직하고 있다고 하지요. 전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이런 걸 좀 느껴요. 초등학교만 나오셨고, 44년생이신데, 어찌나 말의 표현이 재미있고, 또 그 내용이 지혜로운지... 혼자만 듣기 아깝다니까요. 근데 울 어머니 뿐 아니라, 이런 분들이 많지요.

그리고 예전에 없어진 혹은 현재까지 살아남은 토착 문명 중에는 문자 없이 아름답고 지혜롭고 개성적인 문명을 가진 경우가 많지요. 이건, 문자가 없어서 그런 것도 있어요. (현대의 표준어 문화, 글 위주의 문화가 얼마나 많은 토착문화를 죽였는지 말입니다..) 신화에 관한 책에서 읽은 건데요. 문자 없는 어떤 사회에선 진짜 긴 서사시를 통째로 외는 직책을 가진 사람이 있대요. 다 외면 몇박 몇날이 걸릴만큼 긴 서사시를. 근데 이게 외워진다네요. 문자가 없기 땜에 기억력이 상대적으로 더 발달한대요.. 이거 읽고, 아 그럴 수 있겠다, 진짜 신기하다. 그랬었죠. (이 책, 본가에 있는데 제목이 격이 안 나네요.)

어쨌든 이런 지식을 저는 '책'에서 얻었다는 것! 이미 전 문자문명에 찌들고 말았어요! 허허허~

Shining 2012-06-21 11:50   좋아요 0 | URL
아, 섬님 말씀이 어떤 예인지 저도 알 것 같아요.

저는 지금 그 장면 생각나네요(이런, 하필 책에서의 장면이에요ㅎㅎ) 에서 겐지이야기를 외우는 후카에리의 모습이요, 구전문학이란 참으로 전달하기 난해하지만 어쩌면 궁극의 아름다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핀지랩 사람들이요. 그 섬의 사람들은 전색맹이 대부분이고 그 때문에 낮에는 밝을 나올 수 없고 때문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문맹이지만 대신 몇 가지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놀라운 기억력이래요. 물론 이 사람들의 문맹과 기억력에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확실치는 않지만^^; 섬님의 말씀을 들으니 생각나는 이야기에요ㅎㅎ

다만 아이리시스님이 하신 말씀처럼 지금 제가 문맹이 아니라 다행인 건 맞는 것 같아요, 물론 문맹인 삶은 어떤 것인지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갖는 일방적인 시각일수도 있지만^^; 섬님과 저도 문맹이 아닌 덕분에 이렇게 친해지고 이야기할 수 있었으니까요 :-)
 
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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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허영의 시장>을 사랑하는 두 사람이 새커리 스타일의 어울리지 않는 남녀보다 잘 지낼 것이라는 편견, 같은 대상에서 같은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 심리적 조화라는 편견, 어떤 책을 이해하는 것이 그 책을 읽은 다른 독자를 이해하는 길이라는 편견 때문에 그의 문학적 반응에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처음 만났으면서도 우리를 환대하는 주인이 읽는 책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파티 분위기가 가라앉을 때 서재를 기웃거리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것도 그런 식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화이트 와인을 홀짝이며 속으로 그들을 어두운 콘래드주의자, 퇴폐적인 피츠제럴드주의자, 삭막한 카버주의자라고 낙인찍곤 한다. - 알랭 드 보통, 키스할 때 우리가 하는 말들

 

  편견이란 편견이기 때문에 허황되고 편견이기 때문에 견고하다. 편견이기에 쉽게 천착되고 편견이기에 쉽게 닳지 않는다. 당신이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누군인지 말해줄 수 있다. 라고 말하는 당신의 말을 듣고 나는 웃는다. 나는, 당신은, 우리는, 다른 사람을 곧잘 취향으로 책으로 음악으로 영화로 역사를 점쳐보지만 정작 자신이 탐험을 당하면 불쾌해한다. 고작 내가 좋아하는 책 몇 권 혹은 영화 몇 편으로 나를 안다고 생각하지 마, 라는 생각한다. 그러니 나 이제 당신을 책으로, 한 권의 책으로서 들여다 볼 것이 자명하다해도 그래서 당신이 속상하다 해도 별 수 없다. 불행하게도 당신은 글이자 책이자 작가이고 나는 독자니까.

 

당신의 표제작인「위험한 독서」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글이다. 독서치료라는 것에 놀란 것이 아니다. 학위, 자격, 상대가 없을 뿐 내가 나에게 늘 하고 있는 것이 실은 그것이니까. 내가 의외라 생각했던 것은 그가 사람들에게 추천한 책들이 너무 전형적이었기 때문이다. 원조교제를 하는 여학생에게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방화를 하는 소년에게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를,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이라 여기는 그녀에게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과 『사양』을 읽게 하는 것이 옳았을까. 당신은 그 책들이 그들에게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지만 글쎄, 나라면 누군가 내게 작위적으로 어떤 책을 그것도 현재의 나와 유사한 것을 내밀었다면 분노하거나 불쾌하거나 모욕당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기부정과 자기긍정을 동시에 담은 어떤 책을 만난 것은 분명 도움이 될지 모르나, 그것을 남으로부터 받았다면, '이것이 네 삶이다' 라고 말한다면, 어떤 수치로 다가오지 않을까. 그들은 어떻게 수치심이나 공격성을 갖지 않고 그의 독서 '치료'를 받아들였을까.

 

당신은 그녀가 작가의 삶을 작품에 대입시키는 점을 지적했다. 작품과 작가는 동일하지 않다, 고 그는 그녀에게 충고한다. 책날개에 의지하지 말고 읽으라고. 나는 다시 웃는다. 다자이 오사무의 이야기를 읽을 때 미수와 성공에 이른(?) 그의 자살을 떠올리지 않고, 미시마 유키오의 글을 읽되 극우주의와 할복을 생각하지 말고, 공산당에서 탈퇴 당하고 체코에서 프랑스로 망명을 감행한 쿤데라의 삶을 무시하고, 루 살로메에 대한 릴케의 사랑을 짐작하지 않고. 그럴 수 있을까. 그 사람의 전부를 담은 책이라 해도 그 사람은 아니기에, 어떤 텍스트도 상대방을 완벽히 재현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독자인 우리는 그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 삶의 흔적들에 대한 궁금증이 너무도 강해서 작가의 삶과 작가의 글을 떼어놓는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지, 와 이런 글은 어떻게 나왔는지, 는 비슷하지만 다른, 중요한 의문이 아니던가.

 

당신의 「천년여왕」과 같은 글을 좋아한다. 안과 밖이 없고 사실과 허구를 구별하지 않고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섬뜩한 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시작되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이야기. 이 글에 담긴 우화적이면서도 동화적인 요소들이 좋았다. 아내는 정말 사람일까.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책을 읽고 기억할 수 있을까. 아내가 사람이 아니라면 그녀는 왜 이곳에, 영원에 갇혀 살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묻게 되는 오묘한 상황들. 하지만 어디에서 왔는가가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명예의 근거로 삼아야 해요. 라는 말처럼 그런 것은 상관없다. 오히려 이 단편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표절에 대한 두려움, 창작에 대한 고뇌, 수많은 책들에 대한 당신의 열등감 같은 것이었다.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길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든가 모든 책을 다 읽든가. 가난한 내 독서는 전자를 불가능하게 했고 후자를 난망하게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독서에 열을 올렸다. 익히 들어본 작품들을 독서목록의 우선순위에 올렸다.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이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처럼 정작 완독한 적은 없지만 읽었다고 착각하는 책들.

 

내가 쓰고자 했던 것은 이미 누군가 다 한 것이더군, 라고 말한 사람 누구였던가. 나 역시 가난한 독서력을 가진 자로서 모두 읽은 자가 될 수 없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읽지 않은 자가 되기를 바랐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또한 이미 너무 늦었다. 당신은 아마 작가이기에 창작자이자 독자일 수 밖에 없기에. 이 말은 꼭 당신 자신의 갈애나 괴리감처럼 느껴졌다.

 

두 편의 단편으로 나는 당신을 독서한다. 그가 그녀를, 그의 환자들을 책처럼 읽어냈듯이. 나 역시 당신을 읽는다. 아마도 당신은 작위적인 것을 싫어할 것이다. 하지만 진실을 버틸만큼 강하지 못하다. 거짓말에 능숙하진 않지만 순간적으로 둘러댈 수 있을 정도의 재치는 갖고 있다. 남들은 자신을 이성적인 사람이라 여기지만 스스로는 감성적인 때론 감상적인 사람이라고까지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 나는 두 편의 단편에서는 당신의 낭만성이나 고뇌를 일부 들여다보았다 넘겨짚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허황된 로맨티스트인가? 아니다, 오히려 현실의 핍진성에 근거한 리얼리스트일지도 모른다.

 

「맥도날드 사수 대작전」은 「달팽이를 삼킨 사나이」와 닮은 면이 있다. 「맥도날드 사수 대작전」은 현실의 견고함에 바탕을 두지만 우화와 풍자를 끌어들였고 「달팽이를 삼킨 사나이」역시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어나고 있는 일을 다루며 있을법하기에 더 섬짓한 통각을 예민하게 다루었다. 「게임의 규칙」은「황홀한 사춘기」와 닮았다. 이미 지나가버린 어떤 시대를 현재의 어떤 시절에서 바라본다는 것. 과거는 참혹하거나 영광이거나 오류이나 어쨌든 그것들 모두가 현재와는 관련없다는 것. 나는 당신의 조언을 무시하고 당신의 나이를 떠올렸고 당신이 떠올렸을 이십대를 짐작해본다. 책날개를 무시하라고 당신은 말했지만 건방진 독자인 나는 역시 그럴 수가 없었다. 당신이 지금 내 나이였다면 내 부모님의 나이였다면 이 책과는 다른 내용이었을거라 짐작하는 것. 그것 역시 자만이자 오류일까. 나는 당신의「공중관람차 타는 여자」는「고독을 빌려드립니다」에서도 비슷한 향수를 느꼈다. 여유로움을 빌리는 자, 과거를 그리워하는 자. 영화 <박하사탕>의 주인공이 그랬듯 "나 돌아갈래"라고 외칠법하다고. 여유로움을 갖기 위해 고독을 없애기 위해 많은 길을 걸었는데 정작 이제와 가장 고독하고 여유로웠던 그러나 그것이 있는줄도 몰랐던 시절을 떠올리는 자.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명징함이 주는 달콤쌉싸래한 사실의 맛. 거기에「공중관람차 타는 여자」는 향수 위에 사랑을 얹었다. 페넬로페와 오디세우스의 이야기. 나는 엉뚱하게도 거절의 방식과 사랑의 운명에 대해 회의적으로 떠올리고 있었다.

 

이제 나는 당신을 다 읽었다. 겨우 한 권의 책을 읽은 것 아니냐, 당신은 반문할 것이다. 당신이 읽는 책이 당신의 전부는 아닌 것처럼, 당신이 쓴 책도 당신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책이라는 매개체 내지는 대체물을 읽으면서 타인을 짐작한다. 그리고 그것을 읽은 독자는 다시 또 그 책의 역사를 갖게 된다. 책은 인생의 자서전이 되고 역사의 침전물이 된다. 역시 독서는 위험하다.「위험한 독서」의 그는 그녀에게 책을 쥐어줌으로써 그녀의 고통을 일소시키는데 도움을 줬지만 그녀는 그에게서 독립한다. 나는, 당신을 읽으며 김경욱이라는 책의 앞뒤가 궁금해졌다. 마치 사랑에 빠진 것처럼 더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당신이 쓴 책을 기다리게 된다. 그렇게 당신은 내게 책이 되고 책은 내게 당신이 된다.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 당신이라는 책, 그리고 당신이 쓴 책을.

 

 

  

 

 

 

* 문학동네 카페와 동시 게재하는 글로, 그림은 구스타프 아돌프 헤니히, <책 읽는 소녀> (1828) 입니다.

전체적인 형식은 『위험한 독서』의 표제작에서 빌리려.. 노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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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2-26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읽기 전에 추천을 누르고 스크롤을 올렸는데,
글을 모두 읽고나서 놀란 나머지 깜빡잊고 또다시 추천을 눌렀습니다, 그려 ㅎㅎ
<위험한 독서>라는 표제부터 작가에 리뷰까지도 아주 매혹적인 작품인것 같습니다.
저는 언젠가 리뷰를 쓸 때 수많은 책의 이름이 거론되는 사람은 무척이나 존경해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오늘로서 샤이닝님을, 아니 언제나 그래왔지만 존경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려 ㅎㅎ

Shining 2012-02-27 11:11   좋아요 0 | URL
음? 읽기도 전에 추천을_- 그러면 아니되옵니다ㅋ 읽고 나서 마음에 와닿는 글만 해주시면 됩니다요^^
그런데 저 오늘 소이진님 말이 이해가 잘 안가요ㅠ 수많은 책이 거론되는 사람...아, 제 이해력은
이정도입니다ㅠ 저를 이해시켜주쎄요! 흑ㅠ 그나저나 존경이라니, 쑥스럽습니다 그려ㅋㅋ

아이리시스 2012-03-03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샤이닝님, 안녕.

이 책 재밌죠? 저도 역시 표제작이 짱 ^_____^ 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널리 알려진 책들을 소개하는데 그중에도 못 읽어본 게 상당해서 저 막 책장 뒤져서 다 꺼내온 기억이 나요.

소이진님 말은 샤이닝님이 글 쓰실 때 이것과 연관된 다른 책들을 많이 거론한다는 애기 같은데(그럼 사람을 존경해야 한다고) 저도 동의해요. 못 들어본 것도, 들어봤지만 읽지 못한 것도 참 많이 나와요. 샤이닝님 리뷰나 페이퍼에는요. 살짝 질투^^

Shining 2012-03-03 20:12   좋아요 0 | URL
아이리시스님, 안녕^^

표제작은 흥미로웠고 <천년여왕>은 재밌었어요. 저 이런 소설 좋아하거든요ㅋ 맞아요, 반가운 책들이 꽤 많이 나오더라구요. 특히 <금각사>는 저도 참 좋아하는 소설!

제가 얼버무린 말도 철썩같이 알아들으시고! 소이진님 말씀까지! 역시 아이리시스님^^b 저도 다른 분들 글 읽으면서 몰래 폭풍질투와 좌절해요, 당연히 아이리시스님도ㅋㅋ 다 똑같군요, 후훗:-)

맥거핀 2012-03-05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늦게 글을 읽었어요. 김경욱 작가..새 소설집이 나오면 무엇에라도 홀린 듯 사기는 하는데, 뭐랄까요. 성실한 작가라는 인상이 일단 있구요(뭐 외모 탓일수도 있고). 이런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으나(이런 말을 미리 붙일수록 적절하지 않은 때가 많지만), 남을 웃길 줄 모르는 사람이 어딘가에서 배워서 성실하게 하는 유머들을 보는 기분이랄까요. 유머가 웃겨야 하는데, 웃기기 보다는 웃기기위해 애쓰는 모습 그 자체가 더 보인달까요. 얘기도 매우 흥미로운 경우도 많고,문장도 꽤 감탄하게 하지만, 너무 꽉 채우려드는 느낌이 조금은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이 작품보고 꽤나 감탄하기는 했어요.^^)

Shining 2012-03-05 16:57   좋아요 0 | URL
아, 왠지 맥거핀님의 말씀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아요. 맞아요, 성실. 김연수 작가의 외적인
성실함하고는 다른 뭔가 문장에서 느껴지는 조심스러움이랄까 섬세함이랄까. 그런데 가끔은
지나치게 성실하다는 느낌도 있고요^^ 오호, 그 책 아직 읽지 못했는데 읽어봐야겠군요+_+

<휴고>가 CGV 단독개봉도 모자라 제가 사는 곳에선 3D는 물론 2D도 제대로 상영을 안 하더군요.
이 영화가 이렇게 규모가 작은 영화였나요?ㅠ 당혹과 당황과 황당의 쓰리콤보입니다ㅠ 속상한 마음에
많이 늦었지만 <범죄와의 전쟁>을 봤습니다.

(저는 맥거핀님을 보면 책 얘기 하다가도 저절로 영화 얘기로 넘어가게 되네요^^;)

맥거핀 2012-03-06 12:50   좋아요 0 | URL
아..그런가요. <휴고>가 예술영화로 분류될 쪽은 아니라고 보는데,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들이 대중적이지 않던 때가 있었나요. 그의 영화들이 예술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아니라(오히려 그 극반대죠), 가장 대중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특유의 감각이 충만한 영화들이었는데..아무튼 우리나라의 영화상영 기준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역으로 작은 개봉을 해야할 영화들이, 거대개봉을 하다가 그대로 골로가는 경우들도 있고요. 댓글을 읽다보니 왠지 걱정이 되는게 빨리 달려가서 봐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요즘에 어..어..하다가 놓친 영화들이 부지기수라.

Shining 2012-03-07 12:45   좋아요 0 | URL
제 말이요! 마틴 스콜세지인데다, 티저 예고편을 보면 판타지와 <올리버 트위스트>의 결합같다고
생각해서 당연히 -나름- 대작인줄 알았거든요ㅠ 스콜세지 옹의 근래작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영화만큼은 꼭! 그것도 (아바타 이후로 처음으로) 3D에 대한 열의를 태웠는데...

수도권 안 사는 설움은 이럴때 봇물 터지듯 나옵니다ㅠ 제 몫(?)까지 즐거이 보고 오세요,
맥거핀님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