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문학동네 청소년 66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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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 매미소리에 그 아이 목소리가 함께 생각난다.

어떤 날은 오래도록 기억된다.

슬퍼서
기뻐서
혹은
평범해서

이꽃님 작가의 책 '죽이고 싶은 아이'와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를 읽었다.
어떤 날처럼 오래도록 기억되는 어떤 책이 있다. 이꽃님 작가의 책들이 그러했다.
내 곁 사람들의 마음을 듣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속 유찬이처럼.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를 티저북으로 먼저 만났다. 열두 살 딸이 먼저 낚아채 읽더니 어서 읽으라 성화다.

티저북은 딱 한 입 베어 문 맛이다.
아... 더 맛보고 싶다...

열일곱 여름 날. 각자의 상처를 안고 만난 두 아이가 있다.

열일곱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엄마를 지키기 위해 유도를 하게 된 하지오. 태어난 것도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듯 이번에도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엄마는 지오를 아빠가 사는 곳 '정주'로 보낸다.

유찬.
5년 전 사건 이후로 아버지를 잃고 사람들의 속마음이 들린다. 세상이 시끄러워 귀를 막고 살아간다.

그 두사람이 만났다.
하지오와 있으면 사람들의 속마음이 들리지 않아 고요한 세상을 얻을 수 있는 유찬.
태어난 일, 버려지기 싫어 엄마를 지키기 위해 시작한 유도, 갑작스런 아빠있는곳으로의 전학. 그 어느것도 선택의 기회가 없던 지오.

두 아이는 한 여름에 만나 잊고 지내온 평범한 날을 맛본다.
이 두아이의 가을은 어떤 맛일지 뒷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이꽃님 작가의 소설엔 번역기가 내장된 기분이 들곤 했다. 소설 속 인물이 저마다 다 살아있어 그 소리를 낸다. 이해 못할 그들의 행동과 언어가 다같이 들려 곱씹으며 책을 즐기게 만든다. 그 즐거움은 읽는 이의 마음 속에 이해하기 힘들던 누군가른 이해해 볼 마음의 여백이다.

5 년전 유찬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고, 그 일이 사람의 속마음을 듣게 된 일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지오는 아빠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뜨거운 그들의 성장통이 매미소리만큼 크게 다가오는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의 출간일이 무척 기다려졌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듯 소리없이 자연스레 스미는 이야기.


<문학동네 북클럽으로부터 티저북을 제공받아 쓴 소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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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위한 B컷 문학동네 청소년 64
이금이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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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듯한 아이의 칭찬에 얼떨떨했다.

그리고 그런 애의 부탁을 굳이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콜'을 외치며 선우는 자신과는 다른 세상에 사는 듯한 친구 무리에 들어간다.

인싸 그 자체인 서빈을 포함해 아람, 태하, 정후는 포카리스라 불리는 공부, 성격, 집이 잘사는 사기 캐릭터들이다. 선우는 그들을 이렇게 본다.


우리 교실을 우주라고 한다면 포카리스는 빛나는 별자리이고, 나머지 아이들은 이름 없는 별 무리라고 나 할까. 나는 그중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 별이고 전교 부회장인 서빈이는 포카리스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일등성이었다. 19P


어느 집단이건 그 안에는 주도하는 무리가 있다. 아이들의 교실은 목소리로 그 주도권이 드러난다. 나 역시 학창 시절 선우와 같은 이름 없는 별 무리, 떠도는 행성이었다. 빛나는 별자리 모임의 무리가 가끔 나를 찾을 때는 학교 과제 부탁을 할 때였다.

'이번 미술 과제 좀 도와줄 수 있어?' 선뜻 그러겠노라 답하지 않고 생각해 보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그들에게 인정과 관심을 받은 듯해 표정 없이 우쭐해지곤 했다.


책 속 선우는 영상 편집을 잘하는 편이다. 마침 서빈은 브이로그 형식의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었고, 늘지 않는 구독자와 조회 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선우가 영상 편집 재능이 있는 것을 알고 제안을 한다. 영상 편집 하나당 문화상품권 2만 원! 선우는 서빈의 제안에 하나의 조건을 건다. 자신이 편집을 도와준다는 것을 비밀로 해달라는 것이다.

그렇게 포카리스 멤버들의 일상을 담은 영상은 선우에게 전해지기 시작한다.


모든 이의 선망의 대상인 서빈의 편집을 하는 선우는 영상을 보며 아이들의 이미지에 좋지 않은 것들을 잘라내 좋은 영상으로 탄생시킨다. 영상이 잘 빠지고 유튜브에서 반응이 좋으면 능력을 인정받는 것 같아 더욱 영상 편집을 인간적이게 연출해낸다. 인간적이라는 게 편집을 통해 전해질까 싶지만 이제껏 다양한 예능, 다큐를 통해 나 역시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에 선입견을 갖던 마음을 벗어던지곤 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닐 거라 생각하지만 그뿐이다. 그들이 보여 준 영상에 누군가는 선이고 누군가는 악이다. 그렇게 누군가는 악한 사람이 되어 대중에게 질타를 받는다. 그 질타의 끝이 조잡하기 그지없을 즈음 악마의 편집 피해자로 자리를 바꿔 앉힌다.


누가?

영상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나 말이다.

학교 안 교실, 그리고 학원, 집 아이들은 같은 공간에 머무르다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다. 공간에서 벗어나지만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글자들이 즐비한 네모난 공간 카톡으로 서로를 불러들인다. 원해서이기도 하지만 원하지 않는데도 친구 무리에서 제외될까 두려워 문고리 없는 그 안에 식은땀 흘린 채 저만의 갖은 해석으로 지옥과 천국을 오간다.


가장 빛나는 일등성 포카리스. 그 안에 정후라는 아이는 크게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들이 찍어보내 준 영상을 눈을 씻고 편집자의 연출이라는 결과가 아닌 상태로 바라보며 선우는 비로소 자신이 잘라냈던 B 컷들의 조각을 맞춰간다.

휴대폰이 손바닥이 되어버린 지금. 나 역시 SNS에 올릴만한 감성 사진 구도를 눈여겨보고 색감을 보정한다. 지저분한 주변을 잘라내고 지나는 사람들을 삭제한다. 마치 이 우주에 나만이 감성으로 존재하듯이 나를 연출해낸다. 내가 한 편집에서 잘려나간 B 컷들은 흐트러지고 의도가 없다. A 컷으로 거듭난 것들은 잔뜩 의도를 품고 부풀어있다. 의도 없이 흐트러진 B 컷은 아이들이 먹다 둔 과자봉지, 부스러기, 읽으려고 거실에 가득 펼쳐 둔 학습 만화책, 편하게 입은 잠옷 바람의 다리다. 그렇게 내가 의도한 편집의 영상물에 집중하는 동안 아이들은 더욱 B 컷이 되어갔다. A 컷으로 불러들일 때는 그럴싸한 곳에 외출복을 단정히 입고 있을 때다.


책 속 선우가 편집 기술이 향상할수록 의도는 더욱 분명해지고, 현실의 진실은 거짓이 되어갔다.

무언가를 얻으려는 의도.

그 무언가에 배제당한 현실.

무엇을 얻으려 현재를 보지 못했는지 등장하는 아이들을 통해 보게 된다.


딸이 요즘 묻기를 '엄마는 왜 청소년 소설을 읽어?'

내가 답하기를 '너랑 공유하고 싶어서~'

하지만 이 답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청소년 소설은 어른이 읽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퍼즐일지도 모른다.

이해받고, 올바른 길로 성장하기 위해, 자신에게 던져진 물음에 답답한 심정을 찾아 든 책이 던지는 물음은 청소년을 뚫고 그들을 지켜보는 부모까지 찌른다. 이미 지나와 아물어 버린 흉터로 '아는 척'말고, 새로운 생채기로 쓰라린 그 시기를 어른 역시 적절한 약을 발라 잘 아물도록 한다. 그 경험으로 아이들 손에 밴드를 가만히 쥐여주고 스스로 붙일 수 있게 만드는 일. 그 일을 해 준 '너를 위한 B 컷'이었다.




[이 책을 읽으실 분들께]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에 새로운 작품으로 독자 여러분과 만날 생각을 하니 기쁘고 설레네요.

우리는 개인이 직접 콘텐츠를 만들어 자유롭게 세상에 내보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이미지나 영상들은 아마도 콘텐츠를 만든이가 선택한 최상의 컷들이겠지요.

하지만 삶의 진실은 오히려 잘리고 버려진 B컷들 속에 있는 것 같아요.

이 소설 또한 무수히 지워 버린 B컷들이 있었기에 완성 할 수 있었습니다.

A컷보다 더 큰 의미와 빛을 지녔을 여러분의 B컷을 응원합니다.


사랑을 담아 이금이 드림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첫 장을 펼치고 덮을 수 없어 한달음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버린 성질 급한 책입니다.>


#이금이

#문학동네

#너를위한B컷

#청소년소설

#어른소설

#나를위한A컷은실사판

#내가잘라버린B컷에BEST가있다

"어디서 연락 올 거 있어?"
엄마가 막걸리 잔을 든 채 나를 빤히 보았다.

"왜?"
나는 콜라 캔을 입으로 가져가며 되물었다.

"자꾸 휴대폰 보길래." - P07

비리를 관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눈감았다면 결국은 나도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이 됐겠지. 그럼 계속 너나 네 엄마, 그리고 나 자신한테 부끄러웠을 거야. 아빠는 그게 제일 싫었어. - P144

언젠가 엄마 아빠가 창피함과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를 놓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엄마는 사전적인 의미는 비슷할지 몰라도 창피함은 외부와 연결되고, 부끄러움은 내면과 연결된 감정 같다고 했다. 아빠는 부끄러움은 사유할 줄 아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이며, 그게 사람을 인간답게 하는 거라고 했다. - P150

멈춰 선 동안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아도 우리는 살아가고, 변하고, 자라는 중이다. 그 사실은 이 세상 그 누구도 편집할 수 없는 진실이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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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부 종이접기 클럽 (양장) 소설Y
이종산 지음 / 창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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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을 언제부터 접었는지 모르겠다. 학을 멋지게 만드는 건 꼬리와 입 부분을 완성하는 섬세함이다. 종이의 뽀족한 각에 집중해서 양 면을 나란히 접어나가야 한다. 그래야 날렵한 학을 접어 날개를 펼칠 수 있다. 

어느새 종이를 잡으면 기억을 짜낼 필요없이 학을 접어낸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학을 접어 모으면 소원이 이뤄진다 전해졌다. 믿거나 말거나 했지만 나 역시 천개의 종이학을 고이 접어 커다란 유리병에 모았더랬다. 누군가의 추억속에든 접은 이와 받아든 이가 있다. 수십년이 지나도 남은 기억의 흔적은 색종이를 아무 생각없이, 나도 모를 염원을 담아 접어낸다. 


[도서부 종이접기클럽]도 그렇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함께 읽기 좋은 성장 판타지 소설. 

시대를 건너가며 그시절의 너를 지금의 나를, 우리를 위해 기도하게 만든다. 


도서부원이자 종이접기가 좋아 도서부 종이접기 클럽원인 세 소녀 소라, 모모, 세연이 있다. 도서관이 가진 특유의 공기 속에서 책장 넘기는 소리와 함께 종이가 접혔다 펼쳐지는 소리가 사각거린다. 그러던 어느날 세연은 종이접기를 하다 창밖 나무 아래 서있는 소녀를 보게 된다. 그리고 의문의 한복 저고리에 치마를 입은 한 사람도 마주하고 부탁을 받는다.

"종이학 하나 접어 줄래요?"


나는 종이접기를 어려워한다. 고비를 넘기지 않고 쉽사리 포기하고 밀쳐내며 구겨지는 마음이 싫어 애초에 시도하지 않는다.


어려운 고비를 넘기면 

그 만큼 모양이 잡히는 것도 종이접기의 묘미다. 

-도서부 종이접기 클럽-

어려운 고비를 넘기면 그만큼 내공이 생겨나는 생이라는 걸 종이의 접힌 옅은 자국과 빗대니 새삼 얼굴에 잡힌 주름이 떠오른다. 

나는 그 고비들을 넘겼던가.

한 귀퉁이만 접어두고 대충 도망쳐 나오지 않았나.

나는 그 고비들을 넘겼던가...

한 귀퉁이만 접어두고 대충 도망쳐 나오지 않았나...

청소년 소설을 읽을 때면 그렇게 접어두고 도망쳐온 어느 시절을 만난다. 주인공들이 중학생이니 나는 읽는 동안 중학교 시절을 불러들였다. 각기 다른 성향의 세 소녀가 서로 손을 잡고 어려운 단계의 종이접기를 익힌다. 결코 상대의 종이를 접어주지 않는다.

곁에서 천천히 접으며 익히도록 한다. 그 기다림에 응하려 포기하지 않는다. 기다림 밧줄에 고비를 넘겨낸 소녀들은 그만큼의 우정을 쌓는다. 


의문의 소녀와 저고리 입은 사람의 등장은 학교 내 전해지는 종이학 귀신과 관련되어 있다. 소녀 중 세연이 종이학 귀신을 만난거다. \

세 소녀는 무섭지만 한걸음 다가선다. 왜 자신에게 보인것인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두려움을 넘어서 진실에 귀 기울인다. 서로를 믿기에 용기를 내는 우정.


학교 종이학 괴담안에는 시대를 지나서도 지켜야 하는 약속이 있었다. 그 간절함이 종이학과 맞닿아있다. 시대와 시대의 약속이 한 모서리를 향해 정교하게 접혀진다. 비로소 종이학이 접히고 잊힌 줄 알았던 기다림이 이어져 끝내 전해진다. 



"우린 한 팀이잖아. 무모한 일이든 용감한 일이든 다 같이 하자."

도서부 종이접기 클럽"


"우린 한 팀이잖아. 무모한 일이든 용감한 일이든 다 같이 하자."

어려운 고비를 넘기면

그 만큼 모양이 잡히는 것도 종이접기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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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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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 상이 뭔지 검색을 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 덕분에 천명관 작가님을 알게 되었고, '고래'를 읽을 수 있었다. 혼자 털레털레 손에 잡히고 눈길 끄는 제목의 책을 읽고 있었을 내게 필사방에서 언급해 준 '고래'는 그렇게 내게 물을 뿜으며 자연스레 다가왔다.

훌륭한 상의 최종 후보작이니 당연히 그 의미가 깊겠지. 접근성이 사실 내가 좋아하는 방식이 아닌 터라 초반 다이슨급 몰입감 속에서도 혹시 내가 놓치고 가는 건 없는지 은근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어쩌랴... 다이슨급 흡입력이라 불러주고 싶을 만큼 책은 두께감이 있는데도 거리낌 없이 넘어갔다.

춘희.

벽돌 공장에 등장한 한 여인은 왜 그곳을 찾았을까..에서 아주 먼 이야기 속으로 잡아채갔다.

춘희가 춘희가 아니었던 시대 속으로 말이다. 드라마를 기획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머릿속에는 등장인물들이 차근히 그려져갔다.

금복.

춘희의 엄마다.

복을 금한 것인지 금과 같은 복을 지닌 것인지 모를 이름 하나로 이야기는 태풍처럼 불어닥친다.

19금, 저급한 영화, 사랑과 전쟁에 등장할 법한 의미심장한 향을 가진 그녀는 숱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사연 많은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곳이 소설 속에만 있는 게 아니겠지. 그렇기에 말도 안 되는 사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을 마주하게 된다.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길을 나서고, 결국엔 외로워, 초라하기 싫어 거대한 것을 향한 욕망을 허기지게 쫓는 그녀다.

노파, 애꾸눈, 쌍둥이 자매, 코끼리, 걱정, 칼잡이, 생선 장수, 약장수, 文 씨, 운전자...

바람 타고 떠나 바람 따라 떠돈 인생들이다. 머물지 못해 떠도는 이들이 사실은 머물고 싶은 곳을 찾아 방랑한다. 싯다르타를 읽고 넘어와서 이들의 굴곡진 인생이 그저 글로는 박복하나, 진한 경험으로 피가 되고 살이 되겠거니 퉁쳐버렸다.

에라~

모르면 잠자코 있는 법이거늘 섣부르게 지껄이다 이내 그 글들이 실상 책 안에 박제된 삶이 아니란 걸 페이지를 넘기며 알게 되었다. 이래서 안 가본 곳, 안 먹어본 것에 대해 떠들면 안 되는 거다. 딱 가본 곳까지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세상천지다.

성.

음탕하고 음란하고 불경한 것들의 성지.

인간의 본능 중 성이 중요하지만, 어려서부터 입에 언급하기도 어렵고, 늘 자물쇠가 달린 금기였다. 금기라고는 하나 금지가 될 수 없는 그 영역을 부정하는 척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 손가락 사이로 훔쳐 읽는다. 이렇게 훔쳐 읽고 몰래 생각하고 드러낼 수 없는 것이기에 더욱 추잡해지는 게 성욕이다.

책을 털어보면 그런 연관된 것들이 반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불편했냐 물으면 불편했으나 신기하게도 선을 이리저리 지키며 책 끝까지 끌고 갔다.

이 마음 역시 부커 상 최종 후보작이라고 하니 그렇게 받아들인 건 아닌가 싶지만 어찌 되었건 책을 편 순간 덮을 수가 없었으니 잘 읽은 책이다.

오감이 발달한 춘희를 따라, 자연을 읽는 금복의 시선을 따라 시대가 변해가고 각종 법칙들이 등장한다. 그 법칙들이 하나하나 등장할 때마다 턱턱 답답해졌다. 이렇게 우리의 가면이 생겼고, 이렇게 우리는 여전히 고독한 존재며, 이렇게 우리는 여전히 갈망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개인적 한숨을 사이사이에 껴가며 읽었다.

스토리를 세련되게 정리할 능력이 없으면서 구태여 기록하는 건 춘희가 그토록 바라던 것이 자꾸 발에 걸려서다.

책을 다 읽고서 '와~ 진짜 흡입력 장난 아니다' 어쩜 이렇게 맛깔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지?'였다.

판소리와 풍자, 광대극의 혼합형 이런저런 말을 가져다 붙이기 나름인 '고래'

책 제목이 왜 고래인가?

라는 논술 시험을 치를 것이 아니라 다행이다.

그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나는 이 책을 덮고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만 떠올랐다.

'사랑'

사랑이 충분치 못해 그것을 채우려 떠도는 이들의 처참한 공허함이 가득 차 올랐다. 어미의 품에 한껏 안겨있고 싶었던 춘희의 고요가 슬피 울렸다. 사랑을 모르나 사랑임을 알아가는 춘희의 사랑이 차가운 눈 위에서 얼어갈 때 함께 울었다.

개망초가 가득한 그곳처럼 모두 모여 살고 싶던 마음. 사랑하며 자잘하게 흔들리며 피어있고 싶은 마음이 구성진 이야기 꾼의 목소리와 대조되어 책을 덮고 나서야 요동치고 있다.

춘희의 벽돌에 새겨진 기억처럼, 무너지지 않는 집을 만들어 안녕하고 싶은 단단한 사랑을 향한 '고래'였다.

사랑으로 만들어 지은 집은 태풍에 쓰러지지 않는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야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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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다 사진관
허태연 지음 / 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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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착기를 보고 쉽게 지나치지 못한 사람이 있다. 굴착기 기사님이 듣는 노래가 무엇인지, 공사 현장을 지나칠 때 그들이 얼마나 주변을 살피는지 알게 해 준 사람. <플라멩코 추는 남자> 허태연 작가다.

다산북스를 통해 다시 만난 그의 소설 <하쿠다 사진관>.


제목만 보고선 일본 어딘가에 있는 사진관인가? 야자수 나무 보고는 하와이인가? 했다가 배경이 제주도인 것을 알고 보니 귤 나무가 보인다. 스토리에 빠져 휙 읽고 책을 덮고 나니 드라마 한편 본 것 같다. 책 표지에 나타낸 그림을 보니 글로 읽은 장면들이 다시 살아난다.


'남의 행복을 지켜보는 건 정말 지루해.'

어느 날, 일기장에 그렇게 쓰고 사진관을 그만둔 제비는 제주에서 다시 사진관 일을 하게 된다.


'난 언제쯤 내 삶의 주인공이 될까?'라는 생각으로 매일 전철을 타고 오갔던 맥빠진 일상이 어디 그녀뿐이겠는가.. 그 생각들을 거쳐 생각이 사치인 시간을 지나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야겠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을 만났다.


결국 사람이었다.

사람에 지치고 다친 마음을 다시 사람이 다가와 녹여준다. 책은 타인의 행복을 바라보며 함께 축복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날들을 불러들였다. <하쿠나 사진관>의 사장(석영)과 사람들이 그녀에게 하쿠나마타타였다면 내 인생에서 '하쿠나 사진관'은 이 하얀 공간이 아닐까..


'하쿠다'는 제주 방언으로 '뭔가를 하겠다, 할 것입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살아가겠다는 말처럼 느껴지는 그 이름과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따듯함에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비슷한 느낌을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에서 느끼고 실제로 가보고 싶어 검색했던 일이 생각나더라.


'그런데 이 사진.... 제비가 찍은 거예요?'

'그럼 계속 찍어봐요. 잘 찍으면 여기 전시해 줄게.'


'알아둬. 좋은 사진을 찍겠다 결심한 순간부터 나쁜 사진을 찍게 돼. 그래도 계속해야 해. 그러다 보면 언젠가 그런 날이 와. 좋은 사진을 찍겠다는 다짐 따위 잊어버리는 날이. 그때, 너는 진짜 작가가 되는 거야.' 143p


'살아보니 그렇더라, 뭔가를 위해 무슨 일을 하다 보면, 계속하다 보면, 그게 언젠가 너를 구하는 거야.' 200p


'네가 이끌린 뭔가가 있어. 스스로 그걸 찾아야 한다.'


'자기 결핍을 메꾸려는 똑똑이들처럼 무서운 인간도 없어. 이걸 기억해. 네 구멍을 메꾸려고 남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너 자신을 소진해서도 안 돼. 내 말은, 무의미하게 소진해서는 안 된다는 거야.'266p


가족 단위 손님은 아직도 편치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귀여운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제비는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도 일어나 몸을 씻었다. 석영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더 이상 도망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을 테니까. 280p


'너한테 뭐가 부족한지, 그거는 네가 알지. 누구나 그렇잖아. 다른 사람한테 물어볼 필요 없어. 너는..... 지금 살아 있지? 그건 참 대단한 일이야. 나는 네가.... 숨 쉬는 것도 장하다.' 300p


올해 제주도에 가지 않았는데도 여러 곳에서 접하고 있다. 제주도가 배경인 드라마와 책 몇 권을 우연히 읽은 터다. 남편도 혼자 제주도를 다녀오며 보여준 사진, 이야기들이 하쿠다 사진관에 조금씩 담겨있다.


저마다 고민을 안고 살아가다 일상에서 한 발짝 이동하면 여행이 된다. 그 여행에서는 삶의 무게를 내려두고 관광객처럼 마냥 웃으며 행복하게 사진 찍고 싶어진다. 카메라를 마주했을 때는 말이다. 자연이 내어주는 광활함 앞에서는 카메라 세례 후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본다.


넋을 놓고.

살면서 넋 놓고 행복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하쿠다 사진관>을 드라마로 만들어도 참 좋겠다. 장면 속 사진들이 실제로 전시되었으면 좋겠고 말이다. 사람이 사람으로 만나지는 곳. 뭔가를 하려는 곳. 하려는 일이 당신의 행복한 순간을 위한 일이고, 그 일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곳. 가고 싶어지는 곳. <하쿠다 사진관>

누군가의 믿음에 부합된 사람이 되고 싶고, 믿어주는 만큼 성장할 수 있음을 다시금 느낀다.


결핍의 구멍은 막는 게 아니라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도_

결핍이 아팠던 건 곪아서라는 걸_

새살을 돋게 하는 건 환기다.

그래서 바람에 쓰라린데도 바다가 보고 싶은 것은 아닐까? 호오~ 입바람에 통증이 가라앉듯이.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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