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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다 사진관
허태연 지음 / 놀 / 2022년 7월
평점 :
굴착기를 보고 쉽게 지나치지 못한 사람이 있다. 굴착기 기사님이 듣는 노래가 무엇인지, 공사 현장을 지나칠 때 그들이 얼마나 주변을 살피는지 알게 해 준 사람. <플라멩코 추는 남자> 허태연 작가다.
다산북스를 통해 다시 만난 그의 소설 <하쿠다 사진관>.
제목만 보고선 일본 어딘가에 있는 사진관인가? 야자수 나무 보고는 하와이인가? 했다가 배경이 제주도인 것을 알고 보니 귤 나무가 보인다. 스토리에 빠져 휙 읽고 책을 덮고 나니 드라마 한편 본 것 같다. 책 표지에 나타낸 그림을 보니 글로 읽은 장면들이 다시 살아난다.
'남의 행복을 지켜보는 건 정말 지루해.'
어느 날, 일기장에 그렇게 쓰고 사진관을 그만둔 제비는 제주에서 다시 사진관 일을 하게 된다.
'난 언제쯤 내 삶의 주인공이 될까?'라는 생각으로 매일 전철을 타고 오갔던 맥빠진 일상이 어디 그녀뿐이겠는가.. 그 생각들을 거쳐 생각이 사치인 시간을 지나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야겠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을 만났다.
결국 사람이었다.
사람에 지치고 다친 마음을 다시 사람이 다가와 녹여준다. 책은 타인의 행복을 바라보며 함께 축복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날들을 불러들였다. <하쿠나 사진관>의 사장(석영)과 사람들이 그녀에게 하쿠나마타타였다면 내 인생에서 '하쿠나 사진관'은 이 하얀 공간이 아닐까..
'하쿠다'는 제주 방언으로 '뭔가를 하겠다, 할 것입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살아가겠다는 말처럼 느껴지는 그 이름과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따듯함에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비슷한 느낌을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에서 느끼고 실제로 가보고 싶어 검색했던 일이 생각나더라.
'그런데 이 사진.... 제비가 찍은 거예요?'
'그럼 계속 찍어봐요. 잘 찍으면 여기 전시해 줄게.'
'알아둬. 좋은 사진을 찍겠다 결심한 순간부터 나쁜 사진을 찍게 돼. 그래도 계속해야 해. 그러다 보면 언젠가 그런 날이 와. 좋은 사진을 찍겠다는 다짐 따위 잊어버리는 날이. 그때, 너는 진짜 작가가 되는 거야.' 143p
'살아보니 그렇더라, 뭔가를 위해 무슨 일을 하다 보면, 계속하다 보면, 그게 언젠가 너를 구하는 거야.' 200p
'네가 이끌린 뭔가가 있어. 스스로 그걸 찾아야 한다.'
'자기 결핍을 메꾸려는 똑똑이들처럼 무서운 인간도 없어. 이걸 기억해. 네 구멍을 메꾸려고 남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너 자신을 소진해서도 안 돼. 내 말은, 무의미하게 소진해서는 안 된다는 거야.'266p
가족 단위 손님은 아직도 편치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귀여운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제비는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도 일어나 몸을 씻었다. 석영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더 이상 도망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을 테니까. 280p
'너한테 뭐가 부족한지, 그거는 네가 알지. 누구나 그렇잖아. 다른 사람한테 물어볼 필요 없어. 너는..... 지금 살아 있지? 그건 참 대단한 일이야. 나는 네가.... 숨 쉬는 것도 장하다.' 300p
올해 제주도에 가지 않았는데도 여러 곳에서 접하고 있다. 제주도가 배경인 드라마와 책 몇 권을 우연히 읽은 터다. 남편도 혼자 제주도를 다녀오며 보여준 사진, 이야기들이 하쿠다 사진관에 조금씩 담겨있다.
저마다 고민을 안고 살아가다 일상에서 한 발짝 이동하면 여행이 된다. 그 여행에서는 삶의 무게를 내려두고 관광객처럼 마냥 웃으며 행복하게 사진 찍고 싶어진다. 카메라를 마주했을 때는 말이다. 자연이 내어주는 광활함 앞에서는 카메라 세례 후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본다.
넋을 놓고.
살면서 넋 놓고 행복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하쿠다 사진관>을 드라마로 만들어도 참 좋겠다. 장면 속 사진들이 실제로 전시되었으면 좋겠고 말이다. 사람이 사람으로 만나지는 곳. 뭔가를 하려는 곳. 하려는 일이 당신의 행복한 순간을 위한 일이고, 그 일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곳. 가고 싶어지는 곳. <하쿠다 사진관>
누군가의 믿음에 부합된 사람이 되고 싶고, 믿어주는 만큼 성장할 수 있음을 다시금 느낀다.
결핍의 구멍은 막는 게 아니라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도_
결핍이 아팠던 건 곪아서라는 걸_
새살을 돋게 하는 건 환기다.
그래서 바람에 쓰라린데도 바다가 보고 싶은 것은 아닐까? 호오~ 입바람에 통증이 가라앉듯이.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