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위한 B컷 문학동네 청소년 64
이금이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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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듯한 아이의 칭찬에 얼떨떨했다.

그리고 그런 애의 부탁을 굳이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콜'을 외치며 선우는 자신과는 다른 세상에 사는 듯한 친구 무리에 들어간다.

인싸 그 자체인 서빈을 포함해 아람, 태하, 정후는 포카리스라 불리는 공부, 성격, 집이 잘사는 사기 캐릭터들이다. 선우는 그들을 이렇게 본다.


우리 교실을 우주라고 한다면 포카리스는 빛나는 별자리이고, 나머지 아이들은 이름 없는 별 무리라고 나 할까. 나는 그중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 별이고 전교 부회장인 서빈이는 포카리스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일등성이었다. 19P


어느 집단이건 그 안에는 주도하는 무리가 있다. 아이들의 교실은 목소리로 그 주도권이 드러난다. 나 역시 학창 시절 선우와 같은 이름 없는 별 무리, 떠도는 행성이었다. 빛나는 별자리 모임의 무리가 가끔 나를 찾을 때는 학교 과제 부탁을 할 때였다.

'이번 미술 과제 좀 도와줄 수 있어?' 선뜻 그러겠노라 답하지 않고 생각해 보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그들에게 인정과 관심을 받은 듯해 표정 없이 우쭐해지곤 했다.


책 속 선우는 영상 편집을 잘하는 편이다. 마침 서빈은 브이로그 형식의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었고, 늘지 않는 구독자와 조회 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선우가 영상 편집 재능이 있는 것을 알고 제안을 한다. 영상 편집 하나당 문화상품권 2만 원! 선우는 서빈의 제안에 하나의 조건을 건다. 자신이 편집을 도와준다는 것을 비밀로 해달라는 것이다.

그렇게 포카리스 멤버들의 일상을 담은 영상은 선우에게 전해지기 시작한다.


모든 이의 선망의 대상인 서빈의 편집을 하는 선우는 영상을 보며 아이들의 이미지에 좋지 않은 것들을 잘라내 좋은 영상으로 탄생시킨다. 영상이 잘 빠지고 유튜브에서 반응이 좋으면 능력을 인정받는 것 같아 더욱 영상 편집을 인간적이게 연출해낸다. 인간적이라는 게 편집을 통해 전해질까 싶지만 이제껏 다양한 예능, 다큐를 통해 나 역시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에 선입견을 갖던 마음을 벗어던지곤 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닐 거라 생각하지만 그뿐이다. 그들이 보여 준 영상에 누군가는 선이고 누군가는 악이다. 그렇게 누군가는 악한 사람이 되어 대중에게 질타를 받는다. 그 질타의 끝이 조잡하기 그지없을 즈음 악마의 편집 피해자로 자리를 바꿔 앉힌다.


누가?

영상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나 말이다.

학교 안 교실, 그리고 학원, 집 아이들은 같은 공간에 머무르다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다. 공간에서 벗어나지만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글자들이 즐비한 네모난 공간 카톡으로 서로를 불러들인다. 원해서이기도 하지만 원하지 않는데도 친구 무리에서 제외될까 두려워 문고리 없는 그 안에 식은땀 흘린 채 저만의 갖은 해석으로 지옥과 천국을 오간다.


가장 빛나는 일등성 포카리스. 그 안에 정후라는 아이는 크게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들이 찍어보내 준 영상을 눈을 씻고 편집자의 연출이라는 결과가 아닌 상태로 바라보며 선우는 비로소 자신이 잘라냈던 B 컷들의 조각을 맞춰간다.

휴대폰이 손바닥이 되어버린 지금. 나 역시 SNS에 올릴만한 감성 사진 구도를 눈여겨보고 색감을 보정한다. 지저분한 주변을 잘라내고 지나는 사람들을 삭제한다. 마치 이 우주에 나만이 감성으로 존재하듯이 나를 연출해낸다. 내가 한 편집에서 잘려나간 B 컷들은 흐트러지고 의도가 없다. A 컷으로 거듭난 것들은 잔뜩 의도를 품고 부풀어있다. 의도 없이 흐트러진 B 컷은 아이들이 먹다 둔 과자봉지, 부스러기, 읽으려고 거실에 가득 펼쳐 둔 학습 만화책, 편하게 입은 잠옷 바람의 다리다. 그렇게 내가 의도한 편집의 영상물에 집중하는 동안 아이들은 더욱 B 컷이 되어갔다. A 컷으로 불러들일 때는 그럴싸한 곳에 외출복을 단정히 입고 있을 때다.


책 속 선우가 편집 기술이 향상할수록 의도는 더욱 분명해지고, 현실의 진실은 거짓이 되어갔다.

무언가를 얻으려는 의도.

그 무언가에 배제당한 현실.

무엇을 얻으려 현재를 보지 못했는지 등장하는 아이들을 통해 보게 된다.


딸이 요즘 묻기를 '엄마는 왜 청소년 소설을 읽어?'

내가 답하기를 '너랑 공유하고 싶어서~'

하지만 이 답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청소년 소설은 어른이 읽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퍼즐일지도 모른다.

이해받고, 올바른 길로 성장하기 위해, 자신에게 던져진 물음에 답답한 심정을 찾아 든 책이 던지는 물음은 청소년을 뚫고 그들을 지켜보는 부모까지 찌른다. 이미 지나와 아물어 버린 흉터로 '아는 척'말고, 새로운 생채기로 쓰라린 그 시기를 어른 역시 적절한 약을 발라 잘 아물도록 한다. 그 경험으로 아이들 손에 밴드를 가만히 쥐여주고 스스로 붙일 수 있게 만드는 일. 그 일을 해 준 '너를 위한 B 컷'이었다.




[이 책을 읽으실 분들께]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에 새로운 작품으로 독자 여러분과 만날 생각을 하니 기쁘고 설레네요.

우리는 개인이 직접 콘텐츠를 만들어 자유롭게 세상에 내보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이미지나 영상들은 아마도 콘텐츠를 만든이가 선택한 최상의 컷들이겠지요.

하지만 삶의 진실은 오히려 잘리고 버려진 B컷들 속에 있는 것 같아요.

이 소설 또한 무수히 지워 버린 B컷들이 있었기에 완성 할 수 있었습니다.

A컷보다 더 큰 의미와 빛을 지녔을 여러분의 B컷을 응원합니다.


사랑을 담아 이금이 드림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첫 장을 펼치고 덮을 수 없어 한달음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버린 성질 급한 책입니다.>


#이금이

#문학동네

#너를위한B컷

#청소년소설

#어른소설

#나를위한A컷은실사판

#내가잘라버린B컷에BEST가있다

"어디서 연락 올 거 있어?"
엄마가 막걸리 잔을 든 채 나를 빤히 보았다.

"왜?"
나는 콜라 캔을 입으로 가져가며 되물었다.

"자꾸 휴대폰 보길래." - P07

비리를 관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눈감았다면 결국은 나도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이 됐겠지. 그럼 계속 너나 네 엄마, 그리고 나 자신한테 부끄러웠을 거야. 아빠는 그게 제일 싫었어. - P144

언젠가 엄마 아빠가 창피함과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를 놓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엄마는 사전적인 의미는 비슷할지 몰라도 창피함은 외부와 연결되고, 부끄러움은 내면과 연결된 감정 같다고 했다. 아빠는 부끄러움은 사유할 줄 아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이며, 그게 사람을 인간답게 하는 거라고 했다. - P150

멈춰 선 동안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아도 우리는 살아가고, 변하고, 자라는 중이다. 그 사실은 이 세상 그 누구도 편집할 수 없는 진실이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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