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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평점 :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까.
이 책을 지인들에게 이렇게밖에 소개 못했다.
"<이토록 사소한 것들>의 확장판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너무 재밌어서 너무 아팠어요. 눈이 퉁퉁 부었어요."
아이가 죽었다.
시시 래들리. 일곱 살. 금발 머리다.
스타 래들리, 실종된 소녀의 언니.
스타, 워크, 마사, 빈센트 그들 넷은 각별한 사이다. 그들의 나이 열다섯.
태어났을 때부터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쭈욱 살다 보면 모르고 싶어도 알게 되는 일들이 있다. 담장을 아무리 높여도 소리는 담을 넘고, 담을 넘은 소리는 선을 넘어 그 지역에 퍼진다.
열다섯이던 아이들이 자랐다.
워크는 경찰이 되어 지역을 두루 살핀다. 그가 주로 살피는 대상은 스타와 그녀의 두 아이 더치스와 로빈, 래들리가의 아이들이다. 동생을 상실하고 그 충격으로 엄마까지 잃게 된 스타도 어른이 된 것이다. 그리고 동생의 사고가 있는 시절의 나이를 가진 아이들이 있다. 동생 시시는 각별했던 친구 중 한 명인 빈센트의 운전 사고로 벌어진 일이었다.
살면서 드라마 같은 사건들을 만날 확률은 얼마일까라는 추측을 하며 살진 않는다. 뉴스 속 사건은 끝없이 잔인하고 이를 데 없이 마음을 불편하게 해 하루 이틀 안타까워하다 흘려보낸다. 흘려보냈다고는 하나 그 사건들이 심어놓은 불안감은 언제든 비상등을 켤 준비를 한다. 이건 지극히 제3자의 입장이다.
워커, 결코 항구를 떠나지 않는 배의 선장 같은 지역을 떠나지 않고 지킨다. 스타의 아이들 다섯 살 로빈, 그리고 그런 어린 동생을 지키는 저도 아이인 더치스.
30년이 지났지만 그 사건에서 헤어나지 못한 다 자라지 못한 열다섯의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여문 어른이 필요한 두 아이는 지붕 없는 집에서 누나 더치스가 두 손으로 만든 처마로 비를 피한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다.
읽고 나니 이렇게 길었던 책인가 싶게 그들의 삶 속으로 걸어들어가 손을 데기도 어려워 숨어서 지켜보며 읽었다.
18p
날마다 똑같은 밤이 이어지며 소녀를 완전히 삼켜버려, 더치스는 두 번 다시 낮을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다른 아이들이 보는 방식으로는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강하게 키워야 하는 더치스는 자신을 무법자라 칭한다. 위태로운 엄마의 삶인 밤을 지탱하느라 여명이라는 희망 역시 거짓임을 일찍 알아버린다.
호기심 어린 눈빛이 아닌 경계와 경멸의 눈빛을 가진 더치스의 무수한 밤들은 어린 동생을 엄마를 대신해 보호하느라 잠들 수 없다. 스스로를 무법자라 칭하며 소중한 이를 지키는 소녀의 상처는 아물 틈이 없다.
결혼을 하고 자녀를 두고 가장 슬픈 일은 이렇듯 아이들이 겪는 고통이다.
어른이 되었다고는 하나 30년 전 해안 도시에서 벌어진 사건 당시 어렸던 이들의 상처 역시 아물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책은 '죄와 벌의 어디쯤일까?' 아니면 '고통의 끝은 어디일까?', '우리는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까?'
읽는 이로 하여금 어디까지 이 아픔을 손쓸 수 없이 지켜봐야 하는지 책 중반부를 넘어가면서는 눈이 붓이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서 이토록 울어본 게 얼마 만인지... 작가가 작정했다고 하기엔 모든 인물들이 우리들의 삶이라 누굴 몰아세워 미워할 힘조차 앗아간다. 그래서 더 미친 책이었다.
누가 누구를 벌하고, 탓할 수 있을까. 소설 한 편을 읽고 났는데 여운이 가져온 질문의 반경이 넓다. 그래서 주변에 추천하고 싶어진 것이다. 그들은 이 책을 읽고 어떤 생각에 이를까?
'정의', '구원', '사랑', '의리', '진실', '모순'
삶의 무게를 모든 세대에 걸쳐 반추한다. 모든 세대를 거쳐 인생을 걷는 우리에게 어린아이들 눈에 박혀버린 불신의 빛이 밤을 조명한다. 그 작은 몸이 마음이 이끄는 본능에 따라 최선을 다해 지키고, 자신을 파괴하는 모습을 보며 부끄럽게 만들었다.
바로잡을 수 있던 그 순간 우리는 내 무엇을 지키느라 그것을 외면했던가?
그리고 어른이라는 시간으로 접어든 내가 주위에 남겨야 할게 뭔지 톡톡히 보여준다.
111p
"넌 그 애한테 온갖 좋은 것들을 떠오르게 해. 넌 그 애 인생에서 중요한 남자 어른이야. 거짓말을 하거나 바람을 피우거나 사람들을 짓밟고 다니지 않는 사람 말이야."
"자신을 잃어버리지 말거라."
401p
소녀가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게 막아주는 것은 워크였고, 그는 소녀를 좋은 쪽에 고정해 주고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게 해주었다.
488p
"넌 정의가 뭘 뜻한다고 생각하니? 나는 개념을 묻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행동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그게 뭘 뜻한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거야."
사랑해서 지켜야 하는 순간과 사랑받지 못해 파괴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무너진 인생 앞에 나아가길 거부하는 선택과 내디뎌 보는 선택이 있다. 그 순간과 선택 곁에는 사람이 있다. 관심을 주는 사람과 외면하는 사람. 그리고 우리 앞에 선택이 놓인다.
어느 길로 나아갈 것인가?
<나의 작은 무법자>는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걸.'
그걸 보여주고 싶었던.
그걸 알려주고 싶었던.
그리 살아가자 말한다.
<앵무새 죽이기>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확장판으로 영화 한 편을 보고 난 기분이었는데, 디즈니에서 영상화 확정이라 한다. 읽어보지 않을 이유가 없는 책임이 분명하다.
소원은 바라는 걸 비는 거고, 기도는 필요한 걸 비는 거지. - P119
"뭘 알아내요?"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었다는 걸." - P194
소녀가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게 막아주는 것은 워크였고, 그는 소녀를 좋은 쪽에 고정해주고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게 해주었다. - P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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