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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부엉이 - Me and Owl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문자에서 추론하는 사실이 언제나 예측가능한 것은 아니다. '양공주'라는 단어는 금발무리에 드레스를 입은 바비인형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고, 오히려 사회적인 선망과 동경의 정반대편에 있었다. 그리고 양공주라는 단어의 모순과 역설은 기지촌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먼저 달러수입의 일꾼으로 격려하는 한편 미군과의 마찰문제는 외면하는 국가의 관리가 그러했으며. 자신들이 마지못해 선택한 길에 들어선 외국인 여성들의 인권을 챙기지 못하는 마마상도 그러했다.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에서 회원모임으로 마련한 영상은 그 땅의 모순에 대한 정직한 기록이었다. 인권과 여성, 그 이상을 알지 못했던 내게 한국여성에서 필리핀 여성으로 이어지는, 생계를 위협한다는 이유는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해야 하는 그들의 '가난'이 보였던 것이다.
술맛을 알아버린 박인순씨가 살아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나물을 따거나, 귀뚜라미를 잡기도 했지만, 다리를 벌려야 술을 마실 수 있었다. 그리고 술을 마셔야 고통스런 기억들이 재생되는 불면의 시간이 멈추고 잠들 수 있었다. 울고 웃으며 토해내는 그녀의 이야기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내면적인 고백이었던 만큼, 과거 그 지역 여성들의 보편적인 삶을 대변했다. 손과 발이 없이 떠다니던 나와 부엉이의 자화상에서 화려한 색상의 옷으로 그려진 친구그림에 이르기까지. 마당전시회의 그치지 않던 그녀의 함박웃음에서 미술치료로 그녀가 얻은 위안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케이블 프로그램의 무례함에 비한다면, 잔잔한 내래이션으로 등장하는 <나와 부엉이>의 박경태 감독은 너무 선한 시선을 가졌다. 노골적으로 카메라를 들어대지 않고서도 선명하게 그녀의 삶을 그려냈고, “더이상 카메라를 들고 쫓아갈 수 없었다”는 고백에서 주인공을 매체의 대상으로 전락시키지 않기 위한 조심스러운 마음이 읽혔다. 덕분에 박인순씨의 삶은 가난했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고단했지만 생기 넘쳐보였다.
박인순씨의 아픔이 치유가 필요한 과거의 상흔이라면 예전 양공주의 자리를 대신하는 이주여성노동자들의 좌절은 현재진행형이다. <길 위에 집을 짓는 사람들>의 김동령 감독은 증언을 바탕으로 영상을 재구성했고, 말이 통하지 않은 낯선 외국땅에서 그녀들이 직면했을 당혹감과 억울함을 다양한 사진자료로 묘사했다. 그녀들은 촬영중에 강제추방 되거나, 클럽을 탈출해 미군병사와 동거를 하고, 혹은 버림을 받는다. 외국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대한민국 땅에서 성장해도 아무런 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
수도권 인근의 미군부대가 철수하면, 그 곳의 기지촌은 폐허가 되겠지만, 기지촌 문제는 사라지지 않고 평택으로 옮겨갈 뿐이다. 성매매특별법은 현재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까닭에에 박인순씨처럼 과거 성매매에 종사했던 여성들에게는 이주여성노동자들의 관리하는 마마상 역할이 아니고서는 가난의 굴레를 벗어 수 있는 재활지원이 미흡한 형편이라고 한다. 실질적인 성매매종사자라 할 수 있는 이주여성노동자들의 경우, 불법체류자라는 불안정한 지위로 강제출국의 위험부담이 상존한다. 그래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법적분쟁으로 끌기 보다는 덮어두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국적만 교체되었을뿐, 착취의 악순환을 반복시키는것은 고질적인 '가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