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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파리 - Breathles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버나드쇼의 묘비명이라고 하던가?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지.
감을 잡긴 했다. 끝없이 반복되는 폭력의 악순환. 우물쭈물하다가 당하겠거니 했다. 한국식 드라마 문법에 익숙해서 상훈이 연희 엄마의 죽음에 관련되었을거라는 상상도 했고, 영재와 연희와 상훈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는 위기가 등장할 줄 알았다. 보기좋게 예상을 빗나가서 참 다행스럽고 고맙긴 하다만, 우물쭈물하다가 그럴건 예상가능했다. 상훈에게 어울리지 않는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들이 준비되어 있었던 까닭이다.
정형화된 영화문법을 충실히 따른듯 하지만, 신인감독으로 실험가능한 패기와 열정이 묻어나는 독립영화다웠다. 하지만 감독 양익준보다 배우 양익준의 발견이 훨씬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사채업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만큼 자연스러운 연기가 배어나왔다. 더해서 각본과 감독이라는 타이틀의 후광이 입었으니 이 인물에 대한 호기심은 어쩔 수 없지 않는가. 그런고로 감칠맛나는 욕과 인정사정볼것없는 폭력이 난무하는 가운데, 양익준만 보였다.
조금 건조하게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긴급출동 SOS에나 나올법한 캐릭터의 주인공이 솔루션위원회의 도움없이 내상을 치유하게 되는 과정이다. '세상은 엿같고, 핏줄은 더럽게 아프다'는 주옥같은 카피마냥 상훈이를 통해 사채시장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대학진학을 종용하는 고등학교 선생님뿐 아니라 등록금 인하 시위, 포장마차 철거에 동원되는 용역이 적나라한 이시대를 반영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엄마가 집을 비운사이 혼자 노는 유치원생과 조폭이 되고 싶다며 스스로 찾아오는 고삐리까지 세상살이 곳곳이 상처투성인게다.
용산에서 플스를 구입하고 남대문에서 칼국수를 나눠먹는 일상적이고 흔한 풍경이 상훈과 연희에게는 간절했을 것이다. 그들의 소박함이 실현될 수 있는 곳은 결국 가족이란 테두리일지언데, 문제는 폭력인가. 가난인가. 근본적인 '철학의 부재'때문인가.
실컷 미워할 수 없는 아픈 상처를 품고 살아야 하는 주인공의 행복과 사랑을 비는 마음 한편으로, 의심이 도사리고 있었다. 공주님과 왕자님이 결혼을 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의 결말이 의심스러운만큼 나는 이들의 풋풋한 로맨스가 불안했기 때문이다. 이 남자, 진정 그 폭력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으련가. 참회와 반성을 시간을 딛고 되풀이되는 사슬을 끊을 수 있으련가. 우생학적인 유전자가 아니라, 30여년 그의 신체에 각인된 폭력의 개선가능성을 신뢰할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 그는 조카에게 사과를 했지만, 안타깝게도 우물쭈물하고 말았다. 그랬기 때문에 이 영화의 비극적인 결말이 내게는 해피엔딩이 되었다. 더이상 의심하지 않아도 되므로.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고, 차디찬 마음을 확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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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벌하게 연기하던 이 아저씨,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타이거상 들고 웃는 모습은 너무 선한거 아니냐구. 왜 난 속은것 같은 기분이냐구. 자신이 쓰고 출연해서 감독한 영화들고 너무 잘 나가는거 아니냐구. 부러운 마음 별점에 담아 다섯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