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여나 '새만금 살리기' 캠페인용 필름은 아닐런지 조심스러웠지만, 카메라가 사람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와 함께, '새만금'에서 '청계산' '평택' '용산'까지 어느지역에도 적용가능한 통찰을 담고 있었다. 김종광씨의 말마따나 심지어 20대 삶의 현실도 새만금을 닮지 않았는가. 이 영화의 미덕은 선정적으로 포장하지 않은 어민들의 넋두리와 그들의 입장을 취한 관점에 있다. 갈등의 현장에서 미묘한 어긋남을 포착해낼만큼 그들과 가까이 있었지만, 동시에 드라마틱하게 연출가능한 류기화님의 죽음에는 거리를 유지했다. 타인의 죽음과 슬픔을 함부로 대상화시키지 않는 머뭇거림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온갖종류의 다큐멘터리 연출기교가 난무하는 텔레비젼에서는 찾을 수 없는 조심스러움이다. 충분히 비중있게 다뤄질것이라 기대했던 삼보일배는 불과 3컷가량 다뤄졌고, 도올 김용옥의 인터뷰따위는 없었다. 감독은 철저하게 계화도 이모들을 쫓았다. 그녀들은 타협없이 '해수유통'이란 원칙하에 살아있는 갯벌에서 살고자 했다. 투쟁의 전선에서 누구보다 고군분투했지만 정작 대책위원회는 그녀들에게 귀기울이지 않았다. 국가권력은 절대 고분고분하게 살아가는 민중의 편이 아니다. 삶의 터전을 뺏긴 후에야 실감한다. 힘없고 가난한 자들은 자꾸만 내치고 버려지고 밀린다. 건설자본과 지역유지를 위한 국가권력의 횡포에 몇백년동안 갯벌과 더불어 살아왔던 그들의 숭고한 밥벌이는 불가피한 희생으로 치부한다. 막아버린 뚝방위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자들이 누구의 이익을 위해서 봉사하는지 똑똑히 지켜봐야 한다.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긴 하겠다만.) 대법원이 새만금 소송을 기각한 후, 홍선장은 딸에게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판사따위는 되지 말라'고 당부한다. '시인'이나 '철학자'가 되어 사회를 비판하라는 그의 뜻을 딸이 충분히 읽어주면 좋으련만. 자본과 권력에 기생해서 자기 앞길 추스리는게 현명하다고 평가받는 2009년 대한민국에 어울리지 않는 홍선장과 딸의 대화가 뇌리에 박혀 마음을 데웠다. 기도빨이 너무 없는거 아니냐는 이강길 감독의 투정에 문정현신부가 자신은 한번도 이겨본 싸움을 해본적이 없다고 했단다. 이기는쪽에 서서 이긴 결과로 희망을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 희망이 진짜던가. 이길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내가 서 있어야 할 지점은 분명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좌파인가봐. --------------------------------------------------------------------------------- 오래간만에 본 다큐가 싸늘하게 식어버린 내 열정에 불을 붙였다. 하여서 10점 만점에 10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