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란 무엇인가 태학산문선 102
심노숭 지음, 김영진 옮김 / 태학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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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읽었던 동화의 주제는 한결같이 고진감래 인과응보 권선징악이 세상의 이치인양 선을 독려했다. 하지만 한해 두해 세상살이의 결이 두터워질수록 착한사람이 복을 받는 다는 진리는 다만 동화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회의만 짙어지기 마련이다. 가문의 대를 이어야한다는 여자의 사명감, 가부장적 질서하에서의 폭력성은 차치하고서라도 노파에서 아내로 이어지는 순정한 염원을 몰라주는 하늘은 어찌 그리도 무심한가. 

 내세, 혹은 사후세계는 다만 좌절을 위로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서점가를 휩쓰는 처세술은 약삭빠르게 이익을 챙기는 나쁜 사람이 되라고 공공연하게 충고한다. 돈을 사회적 미덕으로 간주하는 자본주의에서는 양심에 근거한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흥부보다 당장의 실리와 이해관계를 우선으로 삼는 놀부가 긍정적인 인간상으로 재평가 받기도 하지 않는가. 종교에서 벗어난 근대적 인간이 일면 명확한 현실인식을 기반으로 불필요한 패배감을 피하기 유리할 지도 모른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내 친구 김군은 1000원으로 구할 수 있는 여섯 개 숫자에 즐거운 희망을 품고 일주일을 성실하게 살아낸다. 대물림하는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하는 그가 흥부에 날아든 제비와 끊임없이 재화가 쏟아지는 박처럼 일확천금의 꿈을 기대한다고 모질게 타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의 성정과 행실은 하늘의 복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서울이란 공간은 그에게 창문 없는 고시원의 방 한 칸만을 허락했을 뿐이다. 그가 기억할 수 없는 전생에 얼마나 큰 죄를 지었든지, 그가 상상할 수 없는 내생에 얼마나 큰 부를 누릴지 현실의 처지를 그저 수긍하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늘 생기와 활력이 넘치고 나눌 수 있는 작은 것들에 감사하고 행복할 수 있는 긍정적인 기운을 가지고 있다. 

 보살할멈 박씨와 심노숭의 아내가 득남하지 못했기 때문에 현생이 불운했던 것은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당대의 사회적 요구 때문이었다. 그리고 가난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는 이 시대 숙명처럼 그 짐을 짊어진 사람들은 내내 불운할 수밖에 없다. 가부장적 질서를 타파한 세상에서 출산만으로 축복받을 수 있는 것처럼 가난을 자처하는 생태적인 삶의 미덕이 사회적으로 존중받을 수 있게 된다면 로또 없이도 희망이 샘솟게 될 것이다.  

 이상적으로 혹은 이성적으로 선을 지향한다. 경쟁과 욕망으로 피폐해진 마음을 다독이며 그래도 지켜야할 정의와 진리를 쫓아 철학과를 선택했고, 진보의 신념을 부지런히 행동으로 옮겼다. 스펙으로 명명되는 조건들로 치장하기보다 내면의 덕을 쌓을 수 있는 고전을 탐독했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마음이 풍요로워서 “배우고 또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구절을 체득할 수 있었다. 

 선의 이유가 복의 추구에 있지 아니하므로 “선행 그것이 바로 선보요, 악행 그것이 바로 악보”라는 작가의 견해는 전적으로 옳다. 악인에 대한 하늘의 벌을 구하느니 차라리 타인에게 해를 가한 ‘양심적 죄책감’을 신뢰할 일이다. 설령 우리 사는 세상이 선함을 조롱하며 악함을 권하더라도 나누고 베풀면서 커지는 즐거움은 퇴색될리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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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제였다. 더 말해서 무엇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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