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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 개정판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박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너에게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느릿느릿 어렵사리 읽어내는 독서패턴으로 한권의 책을 성실하게 읽는 까닭은 그 책을 공들여 한자한자 적어 내려갔을 작가의 땀방울을 하나하나 담기 위해서이다. 책으로 말을 거는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 사람에 세계 속에서 내 이야기를 발견하는 것. 너무나 당연한 기대이리라. 때문에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는 배신이었다. 일본어로 발행되어진 책이 특별히 번역되어 내 손에 쥐어졌을때에는 이유가 있을 법도 하건만, 슬프게도 이책에 닿을 수 있는 길을 나는 모른다.
의미를 잃어버린 기호의 언어.
역자가 후기에서 밝혔다시피, 이 소설에 등장하는 대개의 재료들은 시대 풍속에 너무 밀접하게 다가간 나머지 보편성을 지니지 않는 단어이다. 그 시대를 알지 못하는 내게는 산만한 기호에 불과하고, 배경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원래의 의미가 강하게 각인되어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지식에 따라, 언어의 수용정도에 차이를 초래한다. 결국 ‘문장 안에 모든 언어의 의미나 이미지, 중요함과 가벼움이 왜곡되어서, 문장은 거기에 쓰여 있는 언어 이상의 무엇인가를 표현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만, 여전히 그 궁극의 무엇인가가 무엇일는지 가늠할 길이 없다.
상실의 공백과 몰입의 광기
애초에 기대했던, 어렵사리 추리한 결론은 이러하다. 이외수의 장외인간이 ‘달’을 유일하게 기억해내는 자를 중심으로 미친세상을 반추했던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은 야구를 잃어버린 세상에서 ‘야구’의 기억을 붙들고 있는 사람들의 처절한 몰입으로 미친세상의 광기를 드러내고자 한다. 지만,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을 야구와 연계시키는 그들의 몰입은 너무나 태연하고, 야구 없는 세상은 별탈없이 안녕하시다. 왜냐하면 야구는 절대적인 필요성을 지니고 있지도 않고, 행위의 조건이 될 이유도 없이 그저 우아하고 감상적인 사유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즐기는 야구란 야구가 되고 싶은 캐치볼에 불과하며, 소설의 구성은 등장인물로 위장한 선수들의 경기내용으로 재구성된다. 그리고 야구가 중심에 있는 세상에서 진짜 현실의 단서는 아주 살짝 잠깐씩 스쳐갈 뿐이다.
그리고 대단원.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해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았던 ‘일본야구의 행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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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팬들은 응원에 열중하곤, 시합 쪽은 별로 보고 있지 않은 것 같은데, 내 기우일까?’
‘리치, 네 말대로야. 아무도 시합 같은 건 보고 있지 않아. 시합 경과는 집에 돌아가서 ‘프로 야구 뉴스’를 보면 알게 돼. 모두, 응원하러 나온 거야.’ – p.1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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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 타이거즈가 우승을 했다’는 이데올로기의 지배하에 있는 1985년 시즌에 대하여, 전쟁터화된 경기장의 선수 군인들의 신음소리는 제법 생생하다. 우승을 목전에 두고 홀연히 빗속으로 자취를 감춘 자들의 의외성에 ‘우리들이 하고 있는 것은 야구가 아니다’라는 선언의 개연성이 숨어있다. ‘승리’를 위한 ‘승자 중심’의 야구는 그렇게 종적을 감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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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나는 매일, 읽고 있어. 지금의 내 감상을 말하자면 말야, 야구는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이야. 이것만은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어.” – p.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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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지간, 야구를 살아있게 만드는 것은 ‘믿음’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