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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즈 앤 올
카미유 드 안젤리스 지음, 노진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6월
평점 :
"사람에 대한 허기를 느끼는 소녀의 성장 이야기 "
카미유 드 안젤리스의 <본즈 앤 올>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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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먹으면 안 되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사람을 먹는 소녀가 피로 얼룩진 비참한 삶 속에서 자신과 닮은 소년을 만난다-
'세상에는 먹으면 안 되는 것들이 무엇일까?' 처음에 이 책 『본즈 앤 올』 제목을 보았을 때 설마, 이 책이 식인자에 대한 이야기일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끔찍하고 잔인한 식인 이야기를 이렇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을까. 정말 이 책을 읽으면 식인 행위를 빼고는 평범한 소녀의 성장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것도 십대인 소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손톱 끝까지 피로 빨갛게 물든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이 책 『본즈 앤 올』은 정말 식인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상에는 먹으면 안 되는 것들, 즉 사람을 먹는 사람들 특히 소년과 소녀에 대한 이야기이다. 열여섯 살 소녀 매런에게는 용납되지 않는 허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람을 먹는다는 사실이다. 사람을 어떻게 먹을 수 있을까. 사람을 먹는 것은 살인죄보다 더 한 죄가 아닐까. 아마존이나 아프리카에는 아직도 식인족이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지만, 사람을 마치 음식 먹듯이 먹어치우는 식인 소녀라니 이거야말로 엽기적이고 싸이코틱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야기 전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소녀가 식인 행위하는 것만 빼고는 평범한 십대 소녀의 성장 이야기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그런데 사실은 전혀 그 소녀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 이 소설의 매력일지 모른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비밀, 그런 비밀을 유일한 가족인 그 소녀의 엄마는 알지만, 모른 척 한다. 왜 그녀는 자신의 딸의 식인 행위를 모른 척하고 덮어주는 것일까. 그건 분명 잘못된 일인데도 한번도 그녀의 엄마는 그녀가 잘못했다고, 사람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녀는 자신의 딸이지만 너무 무섭고 두려워서 소녀의 곁을 떠난다. 아무리 딸인 식인자이지만, 딸인데 무책임하게 버릴 수도 있는 것일까. 이 책에서 보여주는 매런의 엄마의 모습은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같은 엄마로서 이해하기가 좀 힘들기도 했다.
소녀는 자신의 유일한 가족인 엄마에게조차 버림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꿋꿋히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엄마조차 자신을 두려워하고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쩌면 자신의 아빠는 식인자인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을거라 생각하며 아빠를 만나러 길을 떠난다. 아빠의 고향이 미네소타주에 있다는 것만 알고 버스를 타고 히치하이이킹을 하면서 그 곳을 향해 떠난다. 왠지 자신의 아빠도 어쩌면 소녀와 닮았기 때문에, 자신의 곁을 떠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식인 행위도 유전이 되는 것일까. 이 책 속에는 왜 그녀에게 사람에 대한 참기 힘든 허기를 느끼고 결국 사람을 먹을 수밖에 없는지는 잘 나타나 있지 않다. 마치 저자는 식인 행위 또한 취향이나 사람의 특성처럼 진술한다. 채식주의자처럼 '카니발니즘'을 취향의 문제로 다룬 점도 정말 파격적이고 충격적이기도 했다. 그런데 세상에는 식인자가 그녀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닌가보다. 피로 얼룩진 불행한 그녀의 삶 속에서 소녀와 닮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십대 소년 '리'와의 만남은 그녀에게 운명과도 같았고, 그 소년과의 만남을 통해 그녀는 식인자로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성장하게 된다.
“걱정 마.” 청년이 말했다. “네가 한 짓을 본 사람은 나뿐이야.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야. 아직 아무도 그 직원의 차를 보지 못했어. 우린 무사해.”
‘우린 무사해.’ “혹시 너…….”
우리는 걸음을 멈췄고, 우두커니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이 몇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맞아. 나도 그래.”
-p.142
아빠를 찾으러 가는 여정에서 소녀는 자신과 닮았고, 기꺼이 그녀와 그 길을 함께 하고자 하는 소년 '리'를 만난다. 매런은 리와 함께 미국 동부를 횡단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간다. 매런은 리와 함께 있으면 더이상 자신의 식인 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고, 리와 함께 있으면 매런은 안정감을 느낀다. 심지어는 그 편안함이 리에 대한 사랑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미국 동부로 가는 여정 속에서 매런과 리는 예측불허의 상황을 만나게 되는데, 과연 그들은 그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매런은 자신의 아빠를 만나서 그녀의 정체성을 되찾게 될까. 그들의 여정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그들이 어떤 결말을 향해갈지 자못 궁금하다.
더군다나 이 작품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감독인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영화화하기로 결정이 되었고, 티모시 살라메 배우도 출연한다고 하니 너무나 기대가 된다.
식인자인 소녀를 주인공으로 해서 그 소녀가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이야기는 기묘하게 매혹적이었다. 여전히 식인 행위 자체는 협오스럽고 끔찍하지만, 그들이 식인자이긴 하지만, 그들 또한 우리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한다는, 서로 소통하고 연대하고 싶어한다는 그 평범한 깨달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리고 협오스럽고 잔인한 소재를 가지고 성장 소설로 연결지은 작가의 탁월한 상상력과 구성력에 감탄을 하게 된다.
그리고 또한 작품 속 매런의 말처럼 '책을 읽는 동안에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식인자가 책을 좋아하고 책을 읽는다는 것이 참 이상하긴 하지만, 역시 책은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물론 이 책의 내용이 때론 거북하고 불편할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단순히 식인 행위에만 중점을 두지 않고, 그 행위를 넘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성장에 초점을 둔 것 같다. 그런 점을 유념하면서 이 책을 읽으면 색다르고 독특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어.
2, 300페이지를 읽는 동안 보통 사람의 고민을 공유할 수 있다고.
비록 그 보통 사람이 시간 여행을 하거나 외계인과 싸운다고 해도.
(…) 나는 책이 필요해. 내가 가진 건 책뿐이야.”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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