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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망자의 고백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평점 :
"진정한 속죄란 무엇일까 "
야쿠마루 가쿠의 <어느 도망자의 고백>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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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가해자가 된다면, 자신이 저지른 죄와 똑바로 마주할 수 있는가? "
-야쿠마루 가쿠가 묻는 진정한 속죄의 의미-
당신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상황에 빗길 운전을 하고 있다. 그런데 당신은 회식을 하면서 이미 수를 마신 상황이다. 그런데 집에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여 음주운전에 빗길에 운전을 하고 있다. 가로등은 하나도 없고 비는 세차게 내리는 상황에 무언가 부딪힌 것 같다. 개나 고양이같은 동물일 수도 있지만, 만약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까? 어쩌면 당신은 사람을 죽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아직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이 책 『어느 도망자의 고백』은 죄의식괴 진정한 속죄의 의미를 다룬 저자 야쿠마루 가쿠의 사회파 미스터리 작품이다. 전작인 『돌이킬 수 없는 약속』에서 응징과 용서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물었다면 이번에는 진정한 속죄는 무엇인가에 대해 묻고 있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자신이 저지른 죄를 마주하고 그 죄를 인정할 수 있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한다. 음주운전 뺑소니 사고로 인해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살인자라는 낙인이 찍혀버린 주인공 마사키 쇼타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때는 명문대에 다니는 엘리트 학생이었으며,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이었지만, 한 순간의 잘못으로 인해 자신의 죄로부터 영원하 벗어날 수 없다. 20대 대학생이 그렇듯 쇼타 또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늦게 귀가한 밤, 쇼타는 여자친구에게 한 통의 문자 메시지를 받게 된다.
"만나서 할 얘기가 있어. 지금 당장 날 보러 오지 않으면 헤어질 거야."
-p. 14
지금 당장 만나러 오라는 내용의 문자였는데, 이미 그는 술에 취한 상태이고, 밖엔 비가 세차게 내리는 상황이고 이미 시간은 늦어서 전철은 끊긴 상황이라 그는 차를 운전해서 여자친구를 만나러 간다. 이렇게 상황이 최악의 상황이라 설상가상으로 그는 비가 오는 날 운전은 처음이었다. 술도 완전히 깨지 않은 상황에서 비가 퍼붓는 악천후를 뚫고 차를 몰고 가던 중 무언가를 치었다는 느낌이 든다.
차 안에 나나의 울음소리가 울렸다.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평상시와 다른 소리로 울고 있었다. 왜 그럴까 싶어 조수석을 쳐다보며 이동 장에 왼손을 뻗은 순간, 엄청난 충격이 일어 앞 유리를 봤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세찬 빗방울이 부딪히는 가운데, 뭔가에 올라탄 듯한 감촉이 핸들을 쥔 손에 전해지고 빗소리를 지우는 듯한 ‘끄아악’ 하는 기괴한 소리가 귀에 울렸다. 순간 브레이크에 발을 옮기려 했지만, 백미러에 비친 붉은 빛이 눈에 들어와 그대로 액셀을 밟았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절규가 몇 초 만에 들리지 않게 되고, 그 대신 심장이 쿵쾅대는 소리가 들렸다. 차내 온도가 단숨에 10도쯤 내려간 듯한 냉기를 등으로 느끼며 다음 적색 신호등이 나타날 때까지 계속 액셀을 밟았다.
- p.15
그 때 멈춰야했지만, 자신이 음주운전했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는 뺑소니를 쳤다. 그 뺑소니 사고로 인해 길을 건너던 80대 노인이 죽었다. 더욱더 끔찍하고 자신의 용서할 수 없는 그의 잘못은 쇼타는 그 노인을 차로 친 후, 멈추지 않고 그 노인을 200미터를 끌고 가서 죽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신이 심하게 훼손되어 유가족조차도 노인을 식별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 사건은 곧 뉴스로 보도되었고, 사회적인 공분을 샀다. 잘나가던 명문대생에서 살인자로 낙인 찍힌 순간, 그의 인생은 한순간에 망가져버렸다. 촉망받던 미래, 사랑하는 여자 친구,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존경받는 아버지, 행복한 가족 등 그는 이 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쇼타는 재판 결과 4년 10개월의 형을 받고 교도소에 가고 그는 항소도 없이, 집행유예도 받지 못한 채, 만기를 채우고 출소하게 된다. 자신의 형을 다 살았다면 그는 이미 죄값을 치르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저자는 한 인간의 생명을 빼앗고 인생을 끝내게 만든 잘못은 형의 집행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정말 교도소에서 형을 살고 다 살고 나오면 그것으로 속죄는 끝인가. 더이상 피해자 가족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가.
형을 다 살고 나온 쇼타는 이미 인생 낙오자가 되었다. 그는 전과자라는 낙인으로 인해 취직도 못하고 가족과도 떨어져 외로운 삶을 살게 된다. 그는 이미 죄값을 치렀는데도 그는 여전히 불행하고 밤마다 악몽을 꾼다. 한 순간의 잘못으로 인해, 절대 돌이킬 수 없는 행동과 판단으로 인해 쇼타는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길에 들어섰다. 이미 그는 불행하고 자신의 죄값을 남은 인생을 살면서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 쇼타를 피해자의 남편 노리와 후미히사는 만나고 싶어한다. 꼭 그를 만나서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면서 말이다.
내가 과여 이 한을 풀 수 있을까. 오랜 세월 동안 가스메 응어리져 풀리지 않는 이 한을.
마가키 쇼타를 만나야 한다. 그가 죄의식에 몸부림치고 고통받고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한 뒤에 이 한을 풀지 말지를 정할 것이다.
내가 죽기 전까지 이 한을 풀어야 한다. 반드시 한풀이를 해서 뜻을 이루어야 한다.
- p.197
피해자 남편인 노리와 후미히사가 가해자인 마카키 쇼타를 만나서 풀어야 하는 한은 무엇일까. 처음에는 못다한 복수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노리와 후미히사가 죽기 전에 한 말은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자신이 과거의 죄로 인해 평생동안 고통받고 죄책감 속에 살아왔기에 혹시 쇼타도 남은 평생 그렇게 죄책감과 죄의식 속에 평생을 괴로워하며 살까봐 진심어린 걱정을 했던 것이다. 어떻게 자신의 아내를 죽인 살인자 같은 사람에게 이런 자비를 베풀고 배려를 할 수 있는 것일까. 그가 남긴 말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고 어느 새 내 눈에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낙인찍혀 고통 속에 살아온 쇼타의 인생도, 갑작스럽게 아내가 죽고 치매에 걸려 고통 속에 살아온 노리와의 인생도 모두 너무 안타깝고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진정한 속죄는 단순히 법적인 집행을 통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야기 속에서도 마지막 결말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쇼타는 속죄를 하지 못했다. 이 정도면 자신은 죄값을 치렀다고 그러니 더이상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빌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쇼타는 진정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빈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사죄와 용서, 속죄의 과정이 없다면 그는 여전히 그 죄의식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악순환의 굴레를 노리가와 후미히사가 끊어준 것이라 생각한다. 그가 인간이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말이다.
저자인 야쿠마루 가루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누구나 사고의 가해자가 될 수 있는데, 만약 그런 상황이 온다면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이 이야기 속 주인공 쇼타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 아마 자신있게 대답을 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 자신도 그 상황의 당사자가 된다면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 또한 평생 그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진정한 속죄란 상대방을 진정으로 배려하고 걱정하는 것에서 오는 것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법 집행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갚는 것은 아닐까.
전작인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을 통해 우리에 응징과 진정한 용서를 물었다. 이번 책 『어느 도망자의 고백』을 통해 저자는 진정한 속죄와 가해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 등의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어서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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