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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매 소녀 ㅣ 안전가옥 쇼-트 14
박에스더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9월
평점 :
"입시 문제와 오컬트 판타지가 결합된 기묘한 이야기 "
박에스터의< 영매 소녀 >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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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진학률을 유지하기 위해선 하나가 필요했다. 3년에 한 명씩"
-입시문제, 오컬트, 판타지 3가지 요소가 결합된 기묘한 이야기 -
오늘 포함해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3주 정도 남았다. 올해의 수능은 어떨까. 불수능이어서 고3 학생들이 힘들어하게 될까. 왜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교육은 제자리이고, 왜 아직도 우리는 입시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오직 수능을 잘 봐서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찹살떡, 엿 등과 같은 합격기원 상품들과 백일기도, 백일부적 등 무속적인 요소도 끼여들었다. 이런 현상을 보면 수능은 실력보다는 이런 무속적인 신앙과 운이 더 중요해보인다.
이 책 『영매 소녀』는 이런 대한민국의 입시 문제와 오컬트 판타지 요소가 결합하여 만들어졌다. 대학 진학률이 높아서 광역시가 아닌 지방 도시의 평범한 고등학교처럼 보이는 Y여고는 주인공 최은파 학생이 다니는 학교이다. 타로 점을 잘 보기로 유명한 그녀는 사실은 남이 보지 않는 '그 어떤 것'을 보는 능력이 있다. 그녀가 무당의 딸이라서 이런 신묘한 능력을 가진 것일까. 이런 이유로 그녀는 남들이 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까지도 볼 수 있다.
은파는 자신의 신적 능력을 이용하여 점괘를 토대로 같은 학교 학생들의 문제 해결을 돕는다. 이런 사건 해결을 통해 그녀는 다른 학생들에게 관심을 얻고 돈도 번다. 이런 은파를 도와주는 학교의 마스코트인 검은 고양이 이채이 있다. 겉모습은 까만 고양이처럼 보이지만, 이채는 이미 죽은 존재인 잡귀이다. 이채가 비록 잡귀이긴 하지만, 이채는 제령 솜씨가 은파보다는 뛰어나고 잡귀들을 잡아먹는 맛에 푹 빠져 은파의 숨은 조력자로 자처하면서 은파를 도와준다. 은파와 이채는 여러 건의 사건들을 해결하는 과정 속에 학교에 전해 내려오는 오랜 전설에 대해 알게 된다.
"소문인즉 이러했다. 우리 학교는 이 도시에서 대학 진학률이 가장 높았다. 광역시가 아닌 지방 도시의 평범한 고등학교에서 이렇게 높은 입결을 보이는 건 드문 사례긴 했다. 그 좋은 진학률을 유지하기 위해선 하나가 필요했다. 3년에 한 명씩.
옛날이나 지금이나 미신적이고 무속적인 요소는 수능과 관련해서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 속에 등장하는 Y여고에는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3년에 한 명씩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한 명이 죽으면 그 해 수능을 잘 볼 수 있는데, 만약 제물로 바칠 사람이 없다면 그 해 수능은 망치고 되고 그와 관련해서 사람이 다친거나 죽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는 아직도 안 나왔다는 말이잖아."
"그래서 저런 미친 짓까지 한 거지."
소문에 따르면 그 전설이 실현되지 않은 때도 있었다. 피를 본 '누군가'기 나오지 않은 지 3년 째가 되는 해의 입시는 그야말로 전멸 수준이었다. 성적 비관 자살이 이어졌고 재수를 준비하다가 미치광이가 된 사람이 생겼고 수시 시험을 보러 가다가 사고를 당한 경우까지 나왔으니, 수험생들은 불운으로 줄줄이 엮어 들어갔다.
p. 98~99
이 책은 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각각 에피소드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처음에는 각각 다른 내용을 가진 에피소드일 거라 생각했는데,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학교의 오랜 전설, 은파 엄마의 죽음의 비밀, 이채의 정체 등을 통해 하나로 연결된다. 에피소드 1. 금기, 택일 에서는 은파와 검은 고양이 이채는 의뢰받은 학생의 문제 해결을 해준다. 그러나 에피소드 2.청신에서는 오랜 전설과 인공 연못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학생들은 오랜 전설으로 인한 불안과 공포에 떨게 되고, 급기야는 인형들 머리를 죽 매달아 놓고 축원을 하게 된다. 대학 진학이라는 목적 아래, 자신의 큰 목적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이런 무속적이고 미신적인 행위까지 서슴치 않는 것이다. 또한 다른 학생들이 그들의 대학진학을 위해 제물로 바칠 희생양이 나오길 바라는 모습에서는 과연 인간으로서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물론 학생들에게 입시가 중요하고 어느 대학에 입학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과 성공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해 가능하기도 하다. 물론 어찌 이렇게까지 인간이 잔인하고 이기적일 수 있는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전설을 완성하기 위해 피해자를 물색하는 은밀하고도 바쁜 시선들의 얽힘이 내는 소리는, 알아챌 줄 아는 자의 귀에만 들렸다.
-p. 161
이 책에서 입시 문제도 중요하지만, 은파의 엄마인 '한경이'의 죽음의 진실도 중요하게 다룬다. 은파의 엄마는 은파가 고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죽은 것으로 나온다. 왜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은 채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은파가 이채와의 관계를 파악하고 졸업앨범 속 낡은 사진을 통해 엄마의 죽음의 진실을 밝혀나간다. <에피소드 3. 송신> 부분을 통해 서서히 밝혀지는 은파 엄마 한경이의 죽음의 진실은 다소 충격적이긴 하지만, 한경이와 이채와의 관계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그동안 은파는 엄마의 죽음에 대해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엄마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조차 알지 못했는데, 엄마인 한경이와 이채와의 우정을 통해 엄마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꼈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죽음이 친구였던 이채와 관련있음을 알게 된 은파는 비로소 엄마의 진심과 죽음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어쩌면 학교에 오래도록 내려오는 전설은 엄마의 죽음과 과거에 이르는 온갖 비밀을 밝힐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이 과정 속에서 주인공 은파의 마음을 흔들고 현혹시킨 사람이 있는데, 그는 바로 김지율, 즉 지율 선배이다. 처음에는 은파는 지율 선배를 선배로서 존경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나 또한 이 지율 선배라 불리는 인물이 이채와 같이 은파의 조력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은파를 조종하고 은파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이었던 것이다. 마치 악마처럼 은파를 현혹시켜 나쁜 행동을 하면서 주어진 업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은파는 학교에 전해오는 오랜 전설의 핵심에 접근하게 되면서 그 전설은 각자의 운명과 깊게 관련이 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자신의 가진 신적 능력에 자신감과 확신을 가지지 못했는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신과 교류하는 영적 능력을 가진 '영매 소녀' 로서의 자아정체감을 확립하고 성장하고 발전해간다.
이 책 『영매 소녀』가 오컬트 판타지 요소가 결합된 소설이긴 하지만, 학교에 전해져오는 오랜 전설로부터 현행 입시 시스템의 문제점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이제 곧 수능이 다가오고 그에 따라 전국의 고3 학생들은 불안과 긴장감에 잠조차 편하지 자지 못하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것이다. 3년에 한 명씩 죽는 것을 통해 대학 진학이라는 요행을 바라기 보다는실력을 통해 당당히 대학에 진학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이 책 속에 나타난 오컬트와 판타지 요소를 가지고 입시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고, 이런 요소들로 인해 작품을 읽는 재미도 한층 더 크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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