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개정판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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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머리말 소통, 경합, 횡단의 정치, 페미니즘>

 

1. 아는 것은 상처받는 것

 

남성 중심 사고의 기본 구조는, 세상을 인식자를 중심으로 대립적으로 파악하는 이분법이다. 이분법 사유에서는 독자적으로 자율적인 타자를 허용하지 않는다.

 

낮과 밤의 구분의 모호한 해질녘 황혼과 동트는 여명이 아름다운 것은 경계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경계에 선다는 것은 혼란이 아니라 기존의 대립된 시각에서는 만날 수 없는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상상력과 가능성을 뜻한다. 대립은 서로를 소멸시킬 뿐이다.

 

2. 장애, 나이 듦 ...... 다양한 사회적 모순과 페미니즘

 

평소 나를 열 받게하는 비장애인 남성과의 대화에서 나는 여성이지만, 장애 남성과의 대화에서 나는 장애 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성찰 없는 보통 비장애인이었다. 다중적 주체인 우리는 상황에 따라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인간은 누구나 소수자이며, 어느 누구도 모든 면에서 완벽한 진골일 수는 없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성별과 계급뿐만 아니라 지역, 학벌, 학력, 외모, 장애, 성적 지향, 나이 등에 따라 누구나 한 가지 이상 차별과 타자성을 경험한다.

 

3. ‘여성이라는 위치로부터, 매력적인 참고 문헌을 찾아서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주장하고 싶은 이야기는, 남성의 관점으로부터 여성, ‘를 정의하지 말고, 서구(이성애자, 백인, 비장애인, 부자, 서울 사람 ......)와의 관계로부터 우리를 정의하지 말자는 것이다.

 

여성주의는 서구/‘우리’, 남성/여성이라는 이분법 자체가 서구/남성의 권력이라고 보는 대표적인 탈식민주의 사상이다.

 

<1>

 

<“태초에 목소리가 있었다”>

 

1. 위험한 여성들

 

여성주의는 남성 언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사유 방식의 전환을 요구한다. 그들은 이제까지 여성주의는 편파적이고 나는 객관적이라고 믿고 있다가, 자신의 사고 역시 편파적이며 더구나 강자의 경험을 보편과 객관으로 믿어 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2. ‘대중적인여성운동가?

 

3.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여성운동은 여성도 세상으로 나오겠다는(‘출세하겠다는), 남성과 함께 사회를 책임지겠다는(‘권력을 잡겠다), 여성도 먹고 살겠다는(‘파이를 빼앗겠다)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다.

 

4. 협상과 공존의 사유, 페미니즘

 

5. 공략하지 말고 낙후시켜라

 

나는 여성주의가 저항이라기보다는 한 가지 목소리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여성들이 그리고 남성들이 살아남기 위한 협상 수단이라고 본다.

 

차이가 차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차이를 구성한다. 여성주의는 정치적 올바름, 통일성과 단일성의 가치보다는 대화의 가치를 강조한다. 그리고 이럴 때, 여성뿐만 아니라 다른 타자들의 목소리도 들리게 된다.

 

기존 학문은 지배 계급의 도구였다. 만일 여성학이 어렵다면, 그것은 여성학자가 현학적이어서가 아니라 여성주의가 익숙하지 않은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말할 수 있을까?>

 

어머니가 없는 사람들

 

사실 생계 부양자 남성/가사 노동자 여성이라는 성역할 모델은 극히 일부 중산층만의 전향일 뿐, 대부분의 가정에서 여성을 생계 부양자이자 가사 노동자다.

 

잠재적 어머니로 분류되는 여성 노동자는 노동 시장 진입에서부터 임금, 승진에 이르기까지 어머니냐, 노동자냐라는 정체성을 택일할 것을 강요받거나, 택일하지 못할 바에야 둘 다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

 

2. 움직일 수 없는, 변할 수 없는 여성

 

정상인을 중심으로 장애인이 범주화될 때, 몸이 조금만 정상의 기준에서 벗어나면 그들은 장애인으로 분류된다. 이처럼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장애인 사이의 차이가 중요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남성 중심 사회에서 개인으로서 여성의 차이는 의미가 없다. 모든 여성은 어머니라는 생각 때문에 여성은 다 같다고 간주된다. 그래서 한 여성의 실수가 무능력은 언제나 전체 여성을 욕 먹이는 일이 된다.

 

남성이 씨라는 주장은 남성만이 인간 형성의 기원이며 인류의 본질이며 생산의 주체라는 것을 은유한다.

 

밭은 씨에 의해서만 의미를 획득한다. 그래서 개척지는 처녀지이고 원시림은 처녀림이다.

 

3. “성을 갈다”, 어머니의 섹슈얼리티

 

남성은 공적 영역에서 만난 여성도 자신이 사적 영역에서 만난 여성의 연장으로 본다. 그들은 휴식처인 가정에서 만나는 어머니·누이와 놀이터인 술집에서 만나는 접대 여성이, 남성이 여성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과 동료나 경쟁자로 관계 맺어본 경험이 없는 것이다.

 

여성은 상황에 따라 정숙하면서도 섹시한’, 이 모순된 요구를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대개의 부부 싸움, 아내에 대한 폭력은 아내가 어미니 같은 이해심성판매 여성의 섹시함을 동시에 감당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유흥업소를 찾는 남성 고객이 성판매 여성에게 사고자 하는 것은 단지 그녀의 성이 아니다. 그는 그녀의 배려·대화·보살핌 그리고 오빠’, ‘당신의 최고라는 칭찬과 격려를 원한다.

 

남성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여성은 존재의 근거도 의미도 없다. 그러므로 미혼모는 자기 존재를 숨겨야 하면 그들이 낳은 아이는 사회적 존재가 아니다.

 

4. ‘더러운노동, 불가능한 임무

 

인간 사회는 이러한 자신들의 이중성을 필요악이라는 모순된 말로 합리화한다.

 

고기는 먹고 싶지만 백정은 인간이 아니었듯이, 매춘을 하고 싶기 때문에 매춘 여성은 필요하지만 성판매 여성은 이다.

 

노동 현장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본래 업무 외에 추가된 성역할 노동을 하면서 아니, 그러한 이중 노동은 하기 때문에저임금이 합리화된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문화, 미풍양속, 전통으로 합리화한다.

 

어머니는 남을 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5. 혐오스런 아줌마, 신성한 어머니

 

문제는 어머니의 권력과 여성의 권력은 정반대라는 것이다.

 

어머니의 권력은 결국 출세한 아들의 권력에서 나온다.

그런 어머니가 남녀고용평등법을 찬성할 리 없다.

 

여성의 자아실현과 인생의 성공은 자녀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한국의 사회적 합의다.

 

여성은 평생토록 서비스를 하는 주체이지 받는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타인의 서비스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여성은 모두를 불편하게 한다.

 

딸은 어머니를 자신에게 투사하지 말고 스스로 욕망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사회는 여성과 어머니를 분리하고, ‘성스러운어머니의 일을 남성에게도 부과해야 한다.

 

<여성주의, ‘가장 현실적인세계관>

 

여성주의가 필요한 이유

 

잘 살펴보면, 이 모든 변화의 주범은 여성들의 의식 변화이다. 이제 여성들은 더 이상 엄마처럼 참지 않는다.” ‘집안일과 바깥, 육아의 삼중 노동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며, ‘현모양처 겸 커리어우먼이 되라는 이중 메시지 사이에서 분열과 고통을 감수하지 않는다.

 

다른 목소리는 혼란이 아니라 다양성과 창조력의 원천이다.

 

자기 시대의 지배 규범에 삶을 일치시키기를 거부한 여성은 가족에게 버림받고 노숙자가 되거나 정신병원에서 죽는다는 신화 나혜석 콤플렉스는 잘못은 사회가 아니라 똑똑한 여성에게 있다는 가부장제 사회의 협박일 뿐이다.

 

2. 말과 성차별

 

왜 박완서는 3세계문학이고, 괴테는 세계문학인가? ‘유색 인종, 희색은 하나의 색이 아니라 색의 기준이 된다는 백인 우월주의의 표현이다. 왜 한국의 프로야구 최종 결선은 코리안 시리즈인데, 미국은 아메리칸 시리즈가 아니라 월드 시리즈인가?

 

우리가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는 거의 모든 말은 백인, 남성, 중산층, 성인, 비장애인, 이서애자, 서울 사는 사람의 시각에서 구성된 것이다. 중립적인 말,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로댕의 (생각하는 남성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 앵그르의 (욕탕의 사람들이 아니라) <욕탕의 여인들>이다.

 

3. 여성주의 언어란 무엇인가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 라는 사회적 위치와 삶의 경험은, 주류의 시각에서 보면 열등함의 근원이고 극복되어야 할 장애이다. 그러나 반대로 억압받는 자의 시각에서 기존 사회를 보면, 이들의 타자성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력과 지성을 가능하게 하는 자원이 된다.

 

한국이 왜 극동 아시아인가? 그것은 객관이 아니다. 제국주의 지도를 만든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의 입장에서 그럴 뿐이다. ‘우리가 지도를 만들면 달라진다......”

 

4. ‘위안부 누드의 재배 에로티시즘 정치학

 

현실에서 권력과 자원이 있는 집단은 포르노그래피의 대상으로 구성되지 않으며, 이러한 재현물은 흥행에 실패한다. 현실 세계에서 인간성을 박탈당하고 열등한 자로 낙인찍힌 사람이 화면에서 고문당하는 경우와, 권력 있고 존경 받는 사람이 고문당할 때의 관객의 반응은 완전히 다르다. 전자의 경우 쾌락을 느낀다면 후자의 경우는 심한 불쾌감으로 다가온다.

 

5. 여성 정치인 시대?

 

남성 정치인은 지역, 정치적 입장, 경력, 학연 등으로 분류되는데 왜 여성은 성별이 유일한 기준이 될까.

 

6. 공주는 여성일까

 

박근혜 후보는 여성이 아니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첫 숫자가 ‘2’라는 사실 외에는, 여성과 가장 거리가 먼 여성이다. 그녀는 여성도 국민도 대변하지 않는다. 그녀의 몸은 아버지 박정희를 매개한다.

 

대통령 박근혜는 여성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근대 민주주의 성과가 아니라 신분 사회의 부활이다.

 

<사랑과 섹스>

 

남자는 외롭다? 여자는 더 외롭다!

 

여자에게 독신은 홀로 광야에서 우는 일이고, 결혼은 홀로 한 평짜리 감옥에서 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사회의 지배 원리가 여성적 가치가 아니라 남성적 가치라는 것이다. ~ 외로움을 호소하는 것을 의존성이나 하지 못함으로 연결하는 사고방식은, 남성 중심적인 의식

 

이제까지 여성은 남성의 외로움을 해결해주는 사람들이었지, 자심의 외로움을 표현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었다. ~ “업무 경쟁이 치열하고 스트레스가 많은데, 집에 오면 집안일도 내 차지고...... 남편 짜증과 비위 맞추기에 지쳤다.”, “나도 마누라가 필요하다.”고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스트레스 탈출을 위한 술, 담배, 스포츠, 섹스, 여행, 낚시 등의 기호·취미 생활 역시 남성들에게 훨씬 더 개방되어 있다. 사회는 남성의 외로움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공감하지만, 여성의 외로움은 사소한 일로 취급한다.

 

전통적으로 성과 사랑의 주체는 남성이지만,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은 여성이 담당한다. 여성이 노동을 그만두는 순간, 대부분의 관계도 끝난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배려, 보살핌, 사랑의 생산을 위해 별다른 노동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 성별 분업인데, 남성들은 주로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사적인 영역이라고 간주되는 가족이나 연애 관계에서 관계성을 경시 혹은 부정함으로써 여성의 육체 노동, 감정 노동, 정신노동에 무임승차한다.

 

그러나 이제 여성들은 더 이상 성공에 대한 공포때문에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는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가시화되고 성 평등 의식이 확산되면서 여성들이 보살핌 노동을 거부하기 시작하자, 모든 사람이 외로운 이른바 전 사회적인 보살핌의 위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남성들은 타인을 보살피고 배려하는 감전 노동의 영역에 참가하는 것이 남녀 모두가 사는 상생의 길이다.

 

2. 여성의 섹스, 남성의 섹스

 

여성은 애인이거나, ‘어머니이지, 남성의 동료일 수 없다는 것이다.

 

남성 문화는 남녀 간계의 진도를 대화나 가치관의 공유보다는 상대 여성의 몸에 어디까지 도달했는가를 중심으로 생각한다. 이는 남성의 본능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학습의 결과이다. 섹스가 남녀 관계의 종착역이라면, 섹스 이후 두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하나? 종착역에서는 버스에서 내리거나 다름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가부장제 사회의 의미 체계에서, 갈아타는 사람은 남성이고 여성은 버스로 간주된다. 누가 상처받을까?

 

남성 권력의 징표 중 하나는 성이다. 남성에게 섹스는 그의 사회적 능력의 검증대이기 때문에 다다익선이지만, 여성에게 섹스는 적을수록 좋은 것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은 권력과 자원을 가질수록 많은 여성과 섹스를 한다.(‘가질 수 있다’)

 

여성은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한 명의 남성하고만 섹스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많은 남성을 상대해야 한다.

 

남성은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성욕이 생기지만, 분노했을 때 성 욕구가 일어나는 여성은 거의 없다.

 

그래서 가해자인 남편은 부부 싸움 후 섹스로 화해했다고 만족하지만, 피해자인 아내는 구타 후 강간당했다고 생각한다.

 

3. 다이어트와 섹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몸무게는 절제와 인내력 등 자기 관리의 지표일 뿐 아니라, 여성의 인격과 정체성의 기준이 된 지 오래다.

 

여성의 체중은 곧바로 취업·결혼·대인관계·자존감으로 연결되는,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다.

 

음식과 성을 노동으로 강요받는 사람은 여성이지만, 여성은 음식과 성을 즐길 수도 없고 욕망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폭식증은 음식이 아니라 먹는 행위에 대한 집학이다. 그래서 감정과 정치적 영역에서의 나의 심리 행동을 외면한 상태에서, 음식 자체에 집중하는 살 빼기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음식이 아니라 마음이기 때문이다.

 

4. 스와핑에 대하여

 

일부일처제가 실현된 사회는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 ~ 일부일처제는 여성에게만 강요된 규율이었다. 일부일처제 현실은 가면극일 뿐이다. 남성 사회는 일부일처제를 보완하기 위해 성매매, 축첩, 혼외 정사 등 다양한 제도를 발전시켜 왔다.

 

반면, 스와핑을 옹호하는 대표적인 논리는, 그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프라이버시라는 것이다.

 

가정이 사적인 공간일까? 아마도 남성에게는 그럴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여성에게 가정은 노동의 공간이고, 프라이버시를 침해받는 영역이다.

 

5. 여관의 정치경제학

 

한국인들은 보다 길 위의 섹스를 즐기는 것 같다.

 

오히려 순기능적이다. 사람들은 외도의 즐거움으로 가족 제도의 고통과 지루함을 견딘다.

 

6. 늑대와 여우의 사랑?

 

누가 동성애를 허용하거나 금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지도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여성이나 흑인, 장애인 모두 누군가 찬성하지 않아도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동성애자 역시 누군가의 동의허락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7. 그들이 화학적 거세를 선호하는 이유

 

섹스는 뇌로 하는 것이지 성기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화학적 거세는 과학적 근거도 없고 실제 효과도 없다.

 

가해자들의 절실한 호소는 두 가지, 피해의식과 분노이다.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라는 피해의식과 지산을 이 지경으로 만든 사법 체계와 신고한 여성, 그리고 여자들이 판치는 세상에 대한 분노다. 이러한 사고방식과 심리 상태의 근거는 성범죄 불가피론이다.

 

감자기 길 가다가 오줌이 마려우면 선생님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길거리에서 그냥 해결할 수도 있고(성폭력을 의미한다), 화장실을 찾을 수도 있고(성 구매), 참으며 집까지 갈 수도 있겠죠(파트너와 성교). 그런데, 화장실이 없으면 그 자리에서 싸는 사람이 많겠어요, 참고 집에 가는 사람이 많겠어요? 또 집에 간다고 해서 쌀 수 있는 것도 아니란 말입니다.(파트너가 없거나 동의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가부장제 성 문화의 핵심을 이루는 것 중 하나는 여성의 몸을, 남성을 위한 용기로 취급하는 것이다.

 

남성 문화는 왜 이토록 성범죄가 아니라 성범죄를 혐오할까. “나는 아니다.”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아닐까.

 

소수 변태의 문제로 축소하면 성범죄는 남성 문화의 결과가 아니라 특정한 개인의 문제가 된다. 그럴수록 여성들은 밤거리나 여행에서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등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고 억압해야 한다. 반대로 국가와 사회를 통치하는 안 걸린남성들은 사회적 약자를 제대로 보호하지도 못하면서 보호자, 시혜자, 감시자의 지위를 획득한다. 이것이 화학적 거세의 배경이다.

 

<2>

 

<가정폭력의 정치학>

 

진보와 보수는 누구의 전선인가

 

자신만이 인식 주체라고 믿는 남성의 생각 속에서 가장 중요한 억압은 자기가 경험한 억압이다. 그 외의 사회 문제는 부차적이고 특수하고 주변적인 것이 된다. 심지어 앞에 언급한 두 남성의 주장의 실상은, 여성이 당하는 억압과 고통이 (자기가 모르므로) “없다는 것이다.

 

자신을 진보인사로 정의하면서 남성 중심적 계급 정치의 이름으로 여성이 경험하는 억압은 시시하거나 존재하지 않으며, 여성운동가를 역겹다고 하는 것은 무식을 넘어 지극히 우파적이다.

 

여성의 계급성은 그녀 자신이 가진 물적 기반에 의해 정해지기보다는, 여성이 맺는 가족 관계, (‘여성을 소유한’) 남편이나 아버지의 계급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 진보의 개념을 넓히다?

 

3. 인류 공통의 역사, 가정폭력

 

남편이 아내를 때리다가 죽이는 것은 과실치사지만, 아내가 정당방위로 남편을 죽이는 것은 살인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때리는 남편이 가정파괴범이 아니라, 폭력에서 탈출하는 피해 여성이나 이들을 돕는 여성운동가가 가정파괴범이다.

 

4. 가정은 사회가 아닌가

 

사회는 가정폭력 피해 여성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폭력 상황에서도 가해 남편의 권력(=‘버릇’)을 고치고 가정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맞지 않을 권리가 있지만, 아내일 때는 예외이다. 그 인간이 여성이라면, 여성이 아내가 되면, 맞지 않을 인간의 권리보다 여성으로서 참아야 할 도리가 더 강조된다. 여성은 너무도 쉽게 인간의 범주에서 제외된다.

 

5. 무엇이 정치적인 문제이고, 그것은 누가 정하는가

 

<‘피해자다움이라는 성역할>

 

피해의식은 남성의 전유물

성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는남성 젠더 시스템에서, 여자는 남자의 인생을 망치는 존재다.

 

남성의 성욕은 무한대라서 어디로 분출할지 모르지만, 성욕 폭발의 버튼을 누르는 사람은 남자 자신이 아니라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라는 것이다. 이때 남성은, 대부분의 성폭력 가해자들이 합창하듯, 유혹자 여성의 피해자가 된다.

 

폭력에 순종하는 것. 맞으면서, 강간당하면서 가해자의 앞날을 걱정하고 보살피는 것. 이 모든 것은 일종의 여성의 성역할이었다.

 

2. 남성 언어로 말하기의 고통

 

3. 피해자 중심주의와 여성 범주의 딜레마

 

<여성의 눈으로 다시 보는 인권>

 

누가 인간인가? 그것은 누가 정하는가?

 

아내폭력 가해자들이 나는 사람을 때린 것이 아니라 사람을 때렸다.”라고 주장하는 사례 등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인간으로 간주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2. 성폭력 가해자의 인권?

 

3. 개인적인 것은 왜 정치적인 것인가?

 

보장되어야 할 인권에 대한 규정은 객관적인억압 상황뿐만 아니라 가치 판단에 의한 선택의 문제를 포함하는데, 선택의 원리에는 권력관계가 개입하게 마련이다.

 

이제까지 가정 내 폭력에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 주된 근거는 개인(구타 남성)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우려였다.

 

더욱 중요한 시사점은 평화시 남성 중심적인 놀이 문화가 바로 전쟁사에 집단 강간이나 대량 학살과 같은 폭력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집단 강간, 고문 등 전시 폭력은 광기때문에 급작스럽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일상 문화의 연장선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남성들의 폭력적인 일상 문화를 성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4. 여성 인권 문제와 탈식민주의

 

5. 인권의 시각에서 다시 묻는 여성 차별과 폭력

 

정신대 문제는 피해 여성의 인권이 아니라 민족의 수치를 중심으로만 논의된다.

 

현행 성폭력 특별법에서 강간은 남성의 성기가 여성의 성기에 삽입되었을 경우에 한정된다. 성폭력을 피해자의 인권 침해가 아니라 임신 가능한 부녀자 보호라는 가부장적 시각에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대에서 남성 간 성폭력, 성 전환자에 대한 강간, 여성 성기에 이물질 삽입 등은 강간이 아니라 추행죄가 적용되어 강간보다 형량이 낮다.

 

이러한 문화적 규범 때문에 성폭력 특별법이 있어도 아내나 성판매 여성에 대한 강간은 처벌하기 어렵다.

 

성폭력 피해를 문제화하려는 여성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남자 앞길 망친 여자라는 비난이다.

 

사회적으로 피해 여성의 고통보다 가해 남성의 명예가 더 중요하다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6. 무엇이 인간의 권리인가?

 

정의로서 평등한 인권은 같아짐이라기보다는 공정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양성 평등은 남성이 여성과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남성과 같아지는 것을 의미했다. 여성은 공적 영역으로 진출했지만, 남성은 그만큼 사적 영역으로 진출하지 않았다. 결국 이러한 남성 중심의 같음을 의미하는 양성 평등이념은, 여성들에게 임금 노동과 가사 노동의 두 영역에서 이중 노동을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같음이 기준이 남성의 경험에 근거한 것일 때, 여성은 남성과 같음을 주장해도 차별받고 다름을 주장해도 차별받는다. 이것이 소위 차이와 평등의 딜레마이다. 예를 들어, 여성이 남성과의 차이를 주장하면 남성 사회는 그것을 차별의 근거로 삼고, 같음을 주장하면 사회적 조건의 다름은 무시한 채 남성의 기준을 따르라고 요구한다. 양성 평등을 여자도 군대 가라.”, “숙직해라.”로 이해하는 것이다.

 

 

<나이 듦, 늙음 그리고 성별>

 

한국 사회의 연력주이 정치학

 

지식인이나 정치인, 재벌 등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노인라고 불리지 않으며 그들도 스스로를 노인으로 정체화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민에게만 노인이란 칭호를 붙인다. 노인이 되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게만 문제가 된다.

 

한국 사회에서 나이에 맞는 지위를 갖지 못한 사람을 보는 시선은 패배자그 자체다.

 

성별과 나이는 사회의 기본 질서이다. 거의 모든 인간 관계는 성별과 나이를 기초로 조직화되어 있다. 사람을 만나고 평가할 때 상대방의 성별과 나이를 모른다면 우리는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것이다.

 

뽑히는 처지일 때는 나이 든 게 죄냐고 생각했지만 막상 직원을 뽑는 위치가 되니 나이가 든 신입사원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 ’니아 많아 취업 쓴 잔‘<한겨례> 200257일자

 

인간의 나이는 임의적인 인식과 제도의 산물이다.

 

2. 여성의 늙음과 남성의 나이 듦

 

남성과 달리 여성은 능력이나 자원보다 나이와 외모가 계급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젊어서 나이 든 남성에게 선택될 가능성 때문에) 10, 20대 초반 여성은 또래 남성보다 권력이 많다.

 

아줌마는 여자가 아니라 제3의 성인 것처럼 계급과 나이, 외모, 결혼 여부 등에 따라 진정한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이 있다. 남성 중심 사회는 ~ 정숙하고 젊고 예쁜 여성만이 여성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여성적 자원인 몸은, 소멸하는 유한한 자원이지만 남성의 자원은 그렇지 않다. 남성은 일생 동안 남성으로 산다.

 

남성은 어떠한 경우에도 몸으로 환원되지 않으며 그들의 정체성은 몸의 기능과 상태(나이)에 의해서가 아니라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에 의해 형성된다.

 

3. 여성의 순환에 의존하는 남성 질서

 

권력을 가진 남성은 젊고 예쁜 여성을 얼마든지 살 수 있고’, 젊은 여성들은 그런 남성에게 사랑받기를 원한다. 성별 사회에서 연애는 결국 성별 자원의 교환이다. 남성이 여성에게 원하는 것은 이거나 보살핌이며, 여성이 남성에게 원하는 것은 자원이다. 사회적 자원을 많이 가질 수 있는 남성은 나이 든 남성일 수밖에 없으며, ‘여성적인 자원을 많이 가진 여성은 젊은 여성일 수밖에 없다.

 

4. 영화 <집으로><죽어도 좋아>의 여성 노인

 

노인이나 장애인, 특히 여성 노인이나 여성 장애인은 탈성화된 존재이다.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각자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심리적 타자들 장애인, 노숙자, 나이 든 여성들 에게는 성과 사랑의 욕망이 없다고 상정하기 쉽다.

 

5. 몸에 새겨진 계엄령

 

나이에 따라 삶의 가능성이 체계적으로 억압된 사회, 이것은 고도로 조직화된 조용한 폭력이다.

 

<3>

 

<‘성판매 여성의 인권>

 

성매매, 근절과 허용의 크레바스로부터

 

 

2.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문제라고 보는가

 

3 ‘성판매 여성이라는 범주

 

가시적인 집결지(‘집창촌’) 단속 중심의 성매매 방지법으로 집결지를 주로 이용해 왔던 가난한 남성들은 타격을 입었지만’, 덕분에 일자리를 잃은 여성들은 더욱 저가공급되고, 해택은 룸살롱 등지에서 은밀히 성 구매가 가능한 돈 많은 남성들에게 돌아갔다.

 

4. ‘강제동의의 구분은 중요하다

 

법 시행 이후, 성판매 여성들이 반발한 핵심 이유는, 성판매 여성들 사이의 차이였다. 이들에게 강제와 동의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다.

 

5. 권력은 듣는 자에게 있다

 

나는 1980년대 중산층 출신 운동 진영의 민중 판타지를 떠올렸다. ‘어디에도 없는민중의 목소리를 자기 주장의 근거로 내세움으로써(물론, 그렇게 말하는 사람, 그 자신은 민중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말하기의 위치를 선점하고 관념적인 정치적 올바름을 경쟁하며 관계를 파괴하는 경우가 숱했다.

 

6. 성과 사랑은 노동이어야 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은 감정 노동, 관계 유지를 위한 노동을 면제받는다.

 

남자의 일생 중, 여자와 소통하기 위해 자아를 조절하는 기간은 연애할 때가 유일하다. 결혼하면 남자들이 돌변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성매매를 둘러싼 차이의 정치학

 

국가, ‘포주에서 보호자

 

2. ‘성판매 여성페미니스트

 

성판매 여성들의 계속된 시위는, 여성운동가가 고통받는 성판매 여성을 대변할 수 있다는 기존 여성주의 시각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

 

3. 왜 구매자인 남성의 이름은 없는가

 

4. 성폭력, 인신매매로서 성매매

 

성매매가 필요악이라는, ‘필요의 이중 시선은 모두 남성의 관점과 이해를 대변한다. 남성의 입장에서 필요하고, 남성의 입장에서 악인 것이다.

 

성매매와 포르노그래피는 남성이 여성의 몸을 사용하는 것을 정상화, 정당화하는 남성 중심 시스템의 핵심이다.

 

자율적 의지로 성판매를 선택했다고 주장하는 성판매 여성들의 주장은 남성들엑 세뇌허위의식에 불과하다.

 

5. 성 노동자로서 성판매 여성

 

6. ‘제국적 상황, 성폭력과 성 노동을 넘어서

 

7. 여성 억압을 누가 말할 것인가?

 

<군사주의와 남성성>

 

<알 포인트>의 근대성과 남성성 비판

 

2. 군사주의와 성별화된 시민권

 

남성성은 이러한 이중 논리의 핵심 기제인데, 군대에 끌려간남성은 군대를 면제받은 특권층 남성들의 계급적 지위에 대해서 남성으로서 열등감을 갖지만, 군대를 경험하지 않은 남자는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군 면제를 받을 수 있는 능력 있는 남성’, , 계급성도 남성다움을 구성하지만, ‘근육질’, 노동 강도, 고된 훈련도 남성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3. 한국 평화운동의 군사주의와 남성성

 

한국 사회에서 남성의 목소리, 남성의 자존심, 남성의 기, 남성의 상처는 너무나 중요하고 지나치게 존중받는다.

 

여성주의 세력의 지속적인 항의에도 불구하고 고 윤금이씨 사진이 전시된 것은, 사회적 약자의 피해를 개인의 인권이 아니라 민족적 분노를 촉발시키는 수단으로 동원하는 것이다.

 

그녀는 살아서는 진보남성들도 침을 뱉는 가장 더러운’ ‘양갈보였다가, 죽어서야 순결한 민족의 누이’, ‘우리의 딸이 되었다.

 

<Fucking USA>는 한국 남성도 미국 남성처럼 여성을 강간하고 싶다는 미국 남성에 대한 동일시 욕망, 남성 연대이지, 반미가 아니다.

 

4. 남성 섹슈얼리티와 군사주의

 

남성문화에서 능동적인 동성애는 남성의 힘을 보여주는 수단이지만, 수동적인 동성애는 굴욕의 상징이다. 남성에게 성적 공격을 하는 남성과 당하는 남성 사이에는 지배/종속, 남자다움/남자다움을 잃음(여성화), 권력의 획득/권력의 상실 등의 의미가 만들어진다.

 

남성 문화에서 강간은 대개 격렬한 섹스쯤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이성애 섹스와 성폭력은 이질적이거나 반대개념이 아니라 연속선상에서 행해지고 수용된다. 남성의 섹스는 폭력, 분노, 스트레스와 동반 상승한다. 남성의 성적 오르가슴과 폭력은 동일한 생리적 현상을 공유하는데, 한편으로는 욕망을, 한편으로는 공포를 추구한다.

 

여성은 남성 정치학의 충격 흡수대다. 가장 낮은 계급의 병사라 할지라도, 여성에 대해서만큼은 지배자가 될 수 있으며, 섹스를 통해 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군대 내 성매매를 위안이나 휴식등의 용어로 표현하는 것은, 정치적 권력 행위로서의 성폭력 문제를 신체의 요구라는 생물학적 주제로 이동시켜, 가해 남성의 책임을 비가시화하고 여성의 고통을 주변화한다.

 

5. 남성 연대 대신 타자와의 연대를

 

전쟁과 군대는 성별화된 제도이자 남성들 간의 계급 정치다. 평화를 위해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지배 계급 남성의 아들은 군대에 가지 않는다. 이들은 전쟁으로 돈을 벌고 권력을 얻는다. 정작 전쟁에 참가한 혹은 끌려간 남성은 전쟁의 이익과 무관하다.

 

<글로벌 자본주의와 남성성, 폭력의 시장화>

 

오래된 논쟁, 폭력의 이유

 

정당방위를 제외하고, 상대방의 잘못이 폭력을 정당화해서는 안된다.

 

가해자가 생각하는 피해자의 잘못은 언제나 자의적이다.

 

폭력과 이유는 무관하다.

 

일단, ‘잘못이라는 개념 자체가 전혀 중립적이지 않다. 철저히 성별적, 계급적, 인종적, 연령주의적 개념이다. 잘못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위계)에 의해 구성되고 판단된다.

 

폭력은 이유가 없다. 권력 행동에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폭력에 이유가 있다면, 그것을 가능케 하는 조건이 있을 뿐이다. 사회운동은 그 이유를 묻는 것이 아니라 조건을 파악해 그것을 제거하고 제약하는 것이다.

 

2. 남성 실업과 폭력의 산업화

 

전통적으로 폭력은 남성 실업과 관련이 있다. 일자리가 없을 때 여성은 가사 노동, 결혼 시장, 성 산업으로 흡수되지만 남성은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 가난한 흑인 여성들에게 군대는 학업, 취업, 의료를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이다.

 

가난한 자만이 군대를 선택하게 된다는 의미에서 모병제는 빈곤 징병제라고 하는데 이는 젠더화되어 있더. 한국 사회에서 IMF 사태 이후 남성들이 상대적 고임금을 보장하는 이라크 파병 지원단에 경쟁적으로 지원한 현상, 한국에서 여군의 비중이 높아지는 현상과 비슷하다.

 

이제 전쟁 대행 회사가 정권을 바꿔준다. 전쟁은 점차 국민이 아니라 전 세계의 가난한 국가에서 지원한 자들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 그간 국제정치학에서 전쟁은 국가 간 안보의 역학을 극적으로 변화시키는 사건이었지만, 전쟁 대행 주식회사의 등장은 전쟁을 정치가 아니라통제 불능의 무역 행위로 만들었다.

 

3. 폭력의 시장화와 노동 개념의 변화

 

애인 알바라든가 중매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어떨까? 인간의 특정 행위가 각종 대행업체들에 의해 상품화 되면, 기존에 없던 노동 철학 논쟁이 불가피하다. 공부, 연애는 노동이지만 타인의 몸을 빌려 수행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상품이 되고 있다.

 

4. 국가의 탈영토화와 국민에 대한 방치

 

국가는 관계이자 제도이고 상징이지, 실체가 아니다.

 

이미 국가는 글로벌 대도시들의 연합, 그들만의 클럽으로 변화한지 오래다.

 

첨단 도시들 간의 연대는 국가가 국경을 재정의했다. 자본 축적을 통한 교통과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은 공간적·시간적 거리를 단축했다.

 

요약하면, 국민과 영토 없는 국가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대도시들만의 커뮤니티가 존재하고, 개별 국가에서는 0.1퍼센트의 부자들이 공간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격리되어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국민 보호라는 국가의 규범적 의무는 자연스럽게 면제되었다. 미셸 푸코의 오래된 지적대로 국민을 억압함으로써가 아니라 내버려둠으로써 통치가 저절로이루어지는 것이다.

 

5. 인간 개인, 타자, 잉여로

 

인간의 존재가 자본주의를 거치면서, 개인에서 타자로 다시 잉여로 축소된 것이다. 국가가 없는 국민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주체인 이동하는 유목민이 아니라 어디에도 존재가 등록되지 않은 기민, 즉 잉여이다. 이들이 법을 지켜야 할 이유가 있을까.

 

“...... 그들은 귀찮고 성가신 존재들이다.......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피곤하게 만드는 이 대중들을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흥을 깨어버리는 이들, 거머리같이 들러붙어 피를 빨려는 이들, 꼭 필요한 자들이 되겠다고 조르며 모든 권리를 누리면서 존재하고 싶다고 성사시게 구는 이들, 이들이 없다면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될까! 이들이 있기에 재정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울화가 치미는 일인가! 그들만 없다면 남은 사람들끼리 정말 잘 지낼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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