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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평점 :
판매중지
"그런데도 계속했던 건, 상상의 경계를 넘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내 사회적 자아가 견고하다고 믿었다. 즐거운 한때와 인생을 맞바꿀 만큼 분별력이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나에 대한 과대평가, 나를 제어할 수 있다는 헛된 믿음이 어젯밤 운명의 손에 내 목을 내주게 만든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 속에 내재한 악을 약소평가한다. 또는 눈에 보이는 가식적인 모습이 자신의 전부인 양 속고 있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다.
밝은 자리에 모인 '우리'는 사랑과 우정을 이야기하며 빛을 내지만 어둔 자리의 '나'는 결코 사랑도 우정도 논할 수 없는 추한 존재이다.
이러한 사실은 누구나 바로 확인할 수 있지 않나? 스스로 알고 있지 않은가?
유진은 선천성 '파괴자'일까, 후천성 '파괴자'일까?
유진의 살인들은 피할수 있는 것이었을까?
어느 책에서 세상 가운데 어둠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전쟁으로 해소시킨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인간들이 범하는 각종 범죄로도 결국 다 해소하지 못한 악의 기운을 전쟁으로 풀어버리는 것이다.
"깜부기불처럼 깜박대면 되살아나는 살인의 기억들, 어두운 공사장에서 느낀 충만한 감정과 경이로운 기분을 평생 잊지 못하리라는 불길한 예감"(살인 후 유진이 느끼고 있는 감정들)
3류 좀비 영화에서 '인육을 먹어보지 못한 좀비는 있어도 인육을 한번 밖에 먹지 않은 좀비는 없다."라는 대사를 본 적이 있다.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에서는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다.
우리는 사이버상 유선상 떠돌아다니는 타인의 고통의 순간들을 가학적인 쾌락의 눈으로 본다.
악이 주는 쾌감은 마치 마약과 같은 것이다. 의지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유혹인 것이다.
주인공 유진은 악에 중독된 것이다.
세상 가운데 신의 사랑은 치료제이면서 진통제이다.
인간 속의 악을 통제하기도 하고 치료하기도 하니까.
"진화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버스에 따르면, 악은 우리 유전자에 내재된 어두운 본성이다. 그리고 악인은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누구나'일 수 있다."
"도덕적이고 고결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깊은 무의식 속에서는 금지된 행위에 대한 환상, 잔인한 욕망과 원초적 폭력성에 대한 환상이 숨어 있다. 사악한 인간과 보통 인간의 차이는 음침한 욕망을 행동에 옮기는지, 아닌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오늘도 나는 내 속의 낯선 그것과 마주한다.
나와 유진이 뭐가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