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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영혜처럼 누구나 꿈을 꾼다.
그것은 일탈의 꿈이다. 자아 깊숙한 어둠 속을 향한 꿈이다.
영혜와 그녀의 언니가 다른 것은 단지 무엇인가 그 어둠 속을 향한 여행을 하지 않도록 잡고 있는 이 쪽 세상의 끈이 있는가이다.
예술과 욕망의 모호한 경계선에서 처제인 영혜와 섹스를 한 그를 우리는 욕한다. 하지만 우리 맘 속 깊숙한 곳에는 그와 같은 행위에 대한 욕구가 우리 삶을 삼키기 위해 조용히 도사리고 있다.
우리가 그를 욕하는 것은 우리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것을 그가 이미 정복했다는 것에 대한 질투가 아닐까?
우리 속에 깊고 강렬하고 탁한 냄새와 옅은 어둠 속에 있는 그것들이 화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강남역 묻지마 살인으로 우리 시대 속에서 일탈하며 떠들썩하게 미디어를 장식하고 있는 그들은 결국 그들이 아닌 그 어둠 속 그것들이 아닐까?
우리 모두는 일탈을 꿈꾼다. 현대 사회의 숨막히는 규제와 질서 속에서 벗어나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욕구에 따라 살아가는 자유로움을 내면 깊숙이 그린다.
이 세상은 우리가 살아가야 할 모습을 이미 만들어놓았고 세뇌시키고 있다.
이러한 세뇌로 인해 우리는 이성이라는 틀을 만들고 이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살고 있다.
일탈의 범위는 주위 사람이 용납할 수 있는 정도와 용납할 수 없는 그 이상이 있다.
우리는 전자의 일탈을 통해 내면의 그것들을 겨우겨우 통제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 사회의 과도한 압박은 내면의 그것들을 더이상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게하고 결국 거대한 폭발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밀고 가고 있다.
어쩌면 영혜는 그것들을 완전히 내면에 묶어버림으로, 그녀를 범한 그는 그것들에게 집어 삼켜져 더이상 자기가 아닌 그것들이 되어버렸는지도.
다만 영혜의 언니만이 6살난 아들 지우라는 세상의 끈에 연결되어 끊어지지 않는 아슬아슬한 삶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삶가운데도 끊임없는 일탈의 욕구가 나를 압박하고 있다.
마음 속 깊숙한 그것들이 마치 진정한 나인양 주장할 때마다 나는 더욱 또다른 만들어진 나로 겹겹히 둘러쌓고 방어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진정한 나는 사라져 찾을 수가 없고 결국 나 아닌 나들로 내 삶은 피로해져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결말로 나를 이끌어간다.
결국 모든 것들이 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누군가를 배려하거나 누군가를 위하는 것이 아닌 오직 자신만을 위한 폭발을 우리는 모두 욕망하고 있다.
'자기애'는 모든 사람의 가장 본능적인 욕구의 중심에 있고 그것이 진정한 나이면서 또 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