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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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 지하차도에는 노숙자들이 많이 있다. 그 길을 지날 때마다 빠른 속도로 지나쳐 버린다. 특히 그들과 눈을 마주치는 일은 없다. 그들 눈속에서 슬픔을 발견할까봐 걱정이다. 때로는 혹시 내 인생에 저런 모습이 끼어들면 어쩌나하고 걱정도 된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빠른 속도로 그 길을 지나던 어느날 특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침울하고 쾌쾌한 노숙자들의 틈 속에 밝은 기운의 젊은이들을 발견한 것이다.
그들은 그 틈바구니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중국 관광객들이었다. 물론 노숙자를 찍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 눈에는 지저분하기만 한 그 지하차도가 그들의 눈에는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마치 멋진 예술작품이라도 발견한 듯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는 산책할 좋은 장소, 멋진 풍경 등을 찾아 길을 떠난다.
하지만 그 중국 관광객들을 보면 좋은 풍경만이 다는 아닌 듯하다.
내 마음의 문이 그것들을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있다면 비록 지금 있는 곳이 어디든 좋은 장소가 되고 멋진 풍경이 될 것이다.

나는 비를 싫어한다. 나는 대로의 매연냄새를 싫어한다. 특히 나는 내 주위가 사람들로 가득차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런 내가 빗방울이 떨어지는 어느날 남대문 대로 옆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 쌓였다.
하지만 그 날은 내 속에 잠자고 있던 감정의 화산이 폭발한 날이다.
끓어 오르는 감정의 흐름은 침울했던 내 감정에 불을 붙인다. 
빗방울 소리와 대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의 소리가 마치 잘 어울리는 오케스트라처럼 들렸다. 멀리서 큰 경적소리가 들린다. 마치 이제 절정으로 달려가고 있음을 알리는 듯하다.
나를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그들의 삶 속에 개입하고 싶다. 괜히 궁금하다. 모든 것이 네모난 세상, 네모난 건물과 네모난 컴퓨터와 네모난 서류뭉치, 네모난 자동차 모든 것이 네모난 세상에서 우리네 마음만은 둥글어야 한다. 우리 마음까지 네모나면 세상가운데 우리를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획일화되어가는 시대... 네모난 건축물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반영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찌그러진 이상한 형태의 건물, 꽈배기처럼 꼬인 건물, 동대문에 우주선을 닮은 건물 등등이 세계적인 건축물로 인정받고 있는가보다.
솔직히 이상한 건물들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저자는 건축을 소주와 포도주에 비교했다.
소주는 화학주이다. 소주는 인간의 가치와 격리된 술이다.
포도주는 자연에서 추출한 술이다. 포도주는 만든 사람에 따라, 환경에 따라 변하는 술이다.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아파트처럼 인공적인 소주같은 건축물도 있지만 산속의 정자처럼 자연과 동화되는 건축물도 있다.
물론 어떤 건축물이 더 좋다 혹은 나쁘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좁은 골목길 포장마차에서 어묵 국물에 소주한잔이 그리운 사람도 있는 반면 고급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즐기고픈 사람도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건축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다.
어떤 건축물이든 그것이 가진 아름다움과 실용성 등등을 발견할 수 있고 그것을 그대로 인정할 수 있다면 그만인 것이다.

저자는 한옥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이고 회색빛의 각진 아파트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건축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옛 건축물인 한옥은 그 환경 속에서 자연스레 만들어진 건축물이듯 아파트도 현대 환경 속에서 자연스레 만들어진 건축물이라는 것이다. 만약 현대 환경 속에서 한옥을 고집한다면 우리는 아파트에만 있고 한옥에는 없는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놓칠 수도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서 먼 미래에는 아파트도 지금의 한옥과 같은 대접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이야기 중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건축물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지만 욕심이 개입된 건축물은 우리를 아프고 낙심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거대한 자본주의 논리 속에 완전히 매몰되어 있다.
사회복지제도의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이 자본주의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 시대이다.
요람부터 무덤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화와 상품, 삶이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이루어지는 시대이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TV광고 속의 멋진 집에서 멋진 자동차를 몰고 휘트니스로 가꾸어진 멋진 이성과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그런 이상향을 바라보며 죽을 것처럼 달려가지만 그런 이상향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그런 이상향을 만들어낸 대기업들 뿐이다. 

저자는 좋은 거리는 많은 이벤트와 상점들이 있는 거리라고 말한다. 그 곳을 방문하는 사람의 자기주도적인 선택권을 줄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그 거리는 자본주의에서 주장하는 각종 상품들과 상점들과 그들이 만들어 낸 문화들로 가득차 있다.
과연 그 곳에서 주어진 선택권이 자기주도적 선택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진정 좋은 거리는 지친 우리들에게 조금이나마 쉼을 주는 거리이다.
아무런 끌림없이 그냥 그렇게 흘러갈 수 있는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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