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에 대한 찬양 - 개정판
버트란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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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기 그지없는 현대 사회에 필요한 것은 도그마엔 언제든 의문을 제기하는 마음 자세와 모든 다양한 관점들에 공정할 수 있는 자유로운 정신을 가지고 차분하게 숙고하는 일이다.'

머리말에 제시된 역자의 이야기다.

독서는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책을 통해 경험하게 하고 다양한 사고를 접하게 함으로써 종국적으로 '책 읽는 사람'의 사고영역을 확장한다.
하지만 '다양한 관점들에 공정할 수 있는 자유로운 정신'이 없는 독서는 자신의 사고영역 둘레에 확고한 요새같은 담을 쌓는다.
자신의 사고에 큰 틀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권장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영역에서 이해할 수 없는 다른 관점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공격하거나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요새를 만드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위험에 우리는 지속적으로 노출된다.
한때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하는 그 친구가 왜 저리 독단적일까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벼가 익어야 고개를 숙이듯 아직 익지 않아서...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벼는 계속 익지 않았다.
그는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강력한 요새를 구축한 것이다.

요새를 구축하면 자신이 구축한 요새의 강건함과 웅장함에 압도되어 그리고 도취되어 요새 밖에 것을 볼 수가 없다.
결국 우물한 개구리가 되는 것이고 사고영역은 확장되지 않는다.

러셀의 글은 자신만의 사고의 틀에서 자유롭게 써내려간다. 그러면서도 다른 시각을 가진 내가 보기에도 부담스럽지 않다.
그래서 좋다. 그래서 러셀의 다른 책도 몇권 추가 구매했다.

직원들과 식사중 여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한 직원이 여가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여가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학문상의 여가는 무엇을 할 것인지 대상을 설정하고 계획을 세우고 또는 활용방안에 대한 컨설팅도 받아야 한다.
그래서인지 체육관에는 트레이너들이, 도서관에는 독서컨설턴트가... 그들이 있다.

현대의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쉬는 시간조차도 이제 무엇인가를 빼곡히 채워넣어야만 하는 것이다.
현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하는 것 같다.
어쩌면 성과가 모든 것인 시대에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게으름을 싫어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러셀은 창의적인 성과는 게으름 속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창의적인 것은 일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닌 그들이 생산하는 것을 소비하며 게으름을 피우는 극소수의 사람들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현대기술은 소수 특권 계층만의 전유물인 여가를 모든 사람들의 권리로 만들어 주었다.
과학의 발달은 과도한 노동력의 투입없이도 모든 사람들이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생산을 약속해 주었다.
특히 인공지능의 발달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상당부분 빼앗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을 의도치 않은 게으름으로 몰아넣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대체로 일하는 사람들은 장시간 일하면서 과로로 인해 힘들어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일자리가 없어 굶어죽는 아이러니한 근대화의 유물을 가지고 있다. 러셀은 이러한 어리석음을 지속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던진다.

그런 관점에서 최근 정부의 일자리 창출 방향은 러셀의 주장과 상당히 유사하다.
예를 들어 시간제근무를 활성화하여 개인당 근무시간를 줄이고 그 빈 자리를 또다른 시간제근무 일자리로 충원하는 것이다.
시간제근무로 여유로워진 시간은 여가를 통한 창의적인 시간을 가지면 된다.
비록 급여수준이 낮아지겠지만 복지사회로의 흐름은 이러한 급여가 낮아지는 공백을 충분히 채워줄 것이다.

현대 사회는 생산과 성과에만 너무 집중하다 보니 생산한 것을 향유하는 즐거움과 행복을 잊어버렸다.
향유하는 즐거움의 망각과 여유로움의 소멸, 그리고 과도한 압박은 단기적인 성과는 기대할 수 있지만 결국 우리를 부서지게 할 것이다.

최근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새로운 인간 영역의 구축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지금처럼 성과위주의 단순한 전진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다.
지금처럼 기계적인 성과창출 분야의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에서 결코 인간은 승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이즘으로 세계적인 획일화를 이루었고 강력한 통제력으로 움직이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인공지능의 등장은 어쩌면 인간역할의 종말을 고하는 것이다.
때문에 창의적 활동을 통한 인간의 새로운 영역 구축은 아직까지는 성과주의의 산물인 인공지능에게 다소 우위에 설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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