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출근하자마자 자리에 앉아서 아들을 생각하며 또다시 후회를 한다.
어제 저녁도 공부, 공부하며 아들에게 짜증을 냈다.
아들이 공부을 잘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또래 아이들 중에 꽤 성적이 우수한 편이다.
하지만 나의 욕심은 더욱더 아들을 다그치게 된다.

아들이 잠들기 전 잠시 지나가는 대화를 나누었다.
"아빠... 나중에 천국에 가서도 공부하라고 할거야?"(아들은 모태신앙으로 천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다)
"아니..."
"왜?"
"천국에서는 공부가 필요없을 것 같아서... 공부는 사람들이 만든거잖아..."
"빨리 천국에 가고 싶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성적 순이 곧 인생의 성공 순도 아니고 행복 순도 아니다.
하지만 오늘도 뉴스에 서울대 상경대 졸업생이 3년째 취업준비 중이라는 기사가 떴다.
갈 수록 경쟁이 치열해 지는 현실 속에서 아들의 미래에 대한 강박관념이 내 머리 속을 끊임없이 뒤흔다. 그리고 혼란스러워진 머리 속은 짜증으로 가득차고 이 짜증은 고스란이 아들이 감당하게 된다.

어쩌면 아들에게 내가 가진 어두운 그림자를 넘겨 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쉽지 않았던 내 인생의 쓴 물은 내 속에 눅눅하고 어둔 그림자를 만들었다.
신앙적인 조명은 나를 밝은 곳으로 이끌었지만 신앙의 흔들림과 갈등으로 인해 조명이 약해지면 다시금 그림자들이 들고 일어난다.

아들에게 물려줄수 있는 것은 '공부'밖에 없다는 생각을 멈출수가 없다. 이런 강박관념은 결국 내 그림자의 부수적인 결과물이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의 영어 제목은 'The education of Little Tree'이다.
부모 없는 고아 '작은 나무'는 조부모의 손에 양육된다.
그의 조부모는 인디언으로 산 속 오두막에서 살고 있다.

내 관점에서 6세의 어린 아이를 산 속에서 키운다는 것은 무척 '곤란'한 일이다.
일단 현대문명와 격리된 산 속이라는 주위 환경이 너무나도 위험하고,
또 그 또래 아이들 그리고 주위 환경(특히 빠르게 변화되는 시대적 분위기)과의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자아를 형성해 가야 하는 시기에 현실 세계와는 완전히 격리된 산 속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결국엔 세상 속에서 홀로서기를 해야만 하는 '작은 나무'에게는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산 속 가정의 주생계수단이 불법 위스키 제조와 판매였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도중 나도 모르게 여러가지 의미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그리고 진정 아름다운 삶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리고 진정 아름다운 교육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가슴으로 어렴풋이 ... 다가온다.

"아빠, 나는 아빠하고 엄마하고 같은 날 천국에 가고 싶어... 그러니 나이 많이 들어서도 먼저 천국에 가면 안돼..."
"너는 나중에 와야지..."
"나중에 가면 천국에서 찾을 수 있을까?, 사람들이 많을텐데."
"찾을 수 있을거야."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교육은 처음부터 그들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작은 나무'는 9살이 되던 해 세상에 홀로 남겨진다.
하지만 '작은 나무'는 외롭지 않았다. 하늘에 이름모를 새들도, 길 옆 나무들도, 지나가는 산 짐승들도, 발을 자극하는 흙과 자갈들도 모두 '작은 나무'의 친구들이고 그들과 끊임없이 교감하기 때문이다.

홀로 남겨진 '작은 나무'는 인디언들의 나라를 찾아 길을 떠난다.
한 때 그의 먼 선조들이 떠나왔던 나라를 찾아 떠난다.
'작은 나무'는 그 나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9살의 '작은 나무'의 걸음에는 힘이 있고 희망이 있다.

지난 2009년 오바마 미국대통령은 인디언 추장들을 초청해 백인들의 추악했던 과거 인디언정책에 대해 사과하였다.
이 책의 출간년도가 2009년이고 실제 집필시기는 1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이 소설은 자전적 소설로서 저자는 절반의 인디언이다.

'작은 나무'의 힘찬 걸음에 투영된 저자의 외침이 이런 시대적 변화를 가져 오지 않았을까?

'작은 나무'의 교육과정 중 가장 큰 위기는 문명과의 접촉이었다.
그 당시에도 나와 같은 이유로 '작은 나무'의 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나 보다.
그의 조부모들은 '작은 나무'의 양육문제로 고소를 당했고 결국 '작은 나무'는 도회지의 기독교 기숙학교로 보내진다. 자연과 공존하는 법을 배운 '작은 나무'의 모습은 자본주의가 기승하며 자연파괴와 성장만을 주장하고 있는 시대에서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것이었고, 특히 인디언들을 종교적 배척의 대상으로 보던 시대적 분위기는 결국 '작은 나무'를 다시 산 속으로 몰아내었다.

이전 자연에서 먹을 것을 찾던 시대에서는 인간과 자연은 동화되어 함께 살았다. 자연의 생명은 인간의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인간과 자연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였고 때문에 인간은 자연을 인정하고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하지만 물질문명의 발달은 인간의 욕심을 폭발시켰다. 더이상 인간과 자연은 하나가 아니었다.
과학의 발달은 인간을 신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공공연히 신의 영역에 도전함을 슬로건으로 내건다.
자연의 우위에 서게 된 인간들은 자연을 파괴한다.
이전에는 먹을 만큼만 사냥했다면 이제는 재미로 사냥을 한다.
숲은 파괴되어진다. 

할아버지는 인간을 '칠면조'에 비유한다. 머리를 너무나 꼿꼿하게 처들고 있는 바람에 자기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보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연이 파괴되면서 인간도 파괴되어져 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지 못하는 것같다.
일부 과학자들은 과연에도 이 지구를 정복한 종이 인간종일까? 하는 의문을 제시한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다. 그런데 자연이 파괴되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 기계와 시멘트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2050년에는 인간과 비슷한 인공지능이 개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리고 인공지능에 의한 초인의 등장도 예고되고 있다.
어찌보면 우리는 그들에게 이 세계를 물려주는 준비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기계와 시스템과 시멘트 건물이 우리와 함께 한지는 인간종의 수만년의 역사 중 몇백년 밖에 되지 않지만, 그들은 기계와 시멘트 위에서 태어났고 그런 환경에 최적화되어 있다.

사랑은 이해는 것이다. 이해하는 만큼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해는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사랑할 수 있다.
저자는 '너구리 잭'이라는 체로키족 인디언을 통해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사랑은 눈물이나 낭만보다는 하루밤의 육체적 사랑이다. 이런 육체적인 사랑의 밑바탕에는 생리적인 욕구해소라는 극단적인 개인적인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남여간의 사랑에서 육체적인 하나됨이 사랑의 농도를 더욱 짙게 하는 것이고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이런 사랑은 결국 상대방에 대한 성적 매력이 사라져가며 위기를 맞이할 수 밖에 없다. 
어떤 책에서는 사랑하던 남여의 이별에 대한 전조로 성적 쾌락이 약화되는 것을 제시하였다.

저자는 사랑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죽이고 상대방의 있는 모습 그대로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그대로를 이해할 수 있을 때 일어나는 것이다.

융이 말한 것처럼 진정한 사랑은 남여가 서로에 대한 콩깍지가 완전히 사라지고 서로를 민낯으로 볼때 시작될 수 있다.

초겨울 산수유열매가 떨어지지 않고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아들에게 빨리 가자고 재촉하던 나는 많이 부끄러웠다.
찬 바람이 들어닦치고 있는데 있는데 산수유 열매는 왜 겨울준비를 하지 않고 여전히 나무에 매달려 있을까?

때를 아는 자의 여유일 것이다.
산수유 열매는 여유를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자연은 때를 알기에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작은 나무'의 할아버지는 나비를 통해 죽음을 이야기한다.
'나비는 다가오는 죽음을 놓고 안달하지 않는다. 나비는 자신이 할 바를 다했으니 이제 죽는 것만이 자신의 유일한 목적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에도 때가 있다. 우리가 급하게 서두르며 안절부절 못하는 것은 때를 모르기 때문이다.
자연과 우리가 하나였을 때는 우리도 때를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과 분리되어지고 자연을 파괴하는 우리가 되었을 때 우리는 급하게 서두르게 되었다. 우리는 더이상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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