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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킬리만자로의 눈 (한글판+영문판) ㅣ 더클래식 세계문학 285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구자언 옮김 / 더클래식 / 2013년 12월
평점 :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소설 '킬리만자로의 눈', '두 심장을 지닌 큰 강', '살인 청부업자들', '어느 다른 나라에서', '깨끗하고 환한 곳' 5편을 묶어 놓은 책이다.
얼마전에 읽은 피츠제럴드의 단편소설들이 들뜬 광란의 분위기였다면 헤밍웨이의 단편소설들은 너무 조용하고 차분하다.
'두 심장을 지닌 큰 강'은 불탄 숲을 지난 강에서 야영을 하고 숭어낚시를 마치는 것으로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주인공의 행위와 생각들을 잔잔하고 간결한 글로 묘사하고 있다. 솔직히 소설을 읽을면서 계속 긴장을 유지하였다. 숲에서 갑자기 늑대떼가 나타나 야영지를 공격한다던지, 강에서 악어나 나타나 주인공을 곤경에 빠트린다던지.... 주인공의 낚시바늘을 굉장히 큰 숭어가 물었을 때 바로 이것이다. 분명히 이제부터 괴물숭어와 주인공의 사투가 벌어지는 거야... 올 것(?)이 왔구나하고 극적인 긴장감과 반전을 기대했다. 하지만 낚시바늘이 떨어져 나가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난다. 다른 소설들도 마찬가지다.
피츠제럴드와 소설을 읽을 때와는 또 다른 '허탈감'이 찾아왔다. 과연 저자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
피츠제럴드나 헤밍웨이나 1차, 2차대전의 중심을 살다간 인물들이다. 그들은 1차대전의 승리에 도취된 사람들의 흥분과 반면 흥분속에 묻혀진 전쟁의 상처를 안고 있었을것이다.
피츠제럴드가 광기어린 흥분의 중심에 섰다면, 헤밍웨이는 조용히 비켜나 관조적인 자세를 취한 것같다.
'두 심장을 지닌 큰 강'에서는 불탄 숲, 재로 인해 새까만 그 숲에서 사는 메뚜기떼가 등장하고 주인공은 그 메뚜기를 잡아서 어둡고 깊은 물 속에 있는 숭어를 낚는다.
1차대전이후 전쟁의 잔해는 고스란히 남았고 그 속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승리감에 도취된 흥분되어 있다.
전쟁의 어두운 새벽이슬에 젓어 있을 때는 숨죽이고 있던 그들도 어둠이 끝나고 햇볕이 비치면 흥분의 광란 속에서 메뚜기처럼 뛰어오르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그 광란 속에서 홀로 벗어나 강으로 왔다. 하지만 그냥 온 것은 아니다. 광란의 기억들, 메뚜기를 잡아서 왔다.
그리고 메뚜기들을 미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깊은 강 속에서 숨어있는 숭어를 잡는다.
비록 광란 속에 빠져있지만 꿈을 가진 그들을 통해서 미지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잡는 것이다.
많은 것을 잡으려 하지 않는다. 다만 먹을만큼만 잡는다. 헤밍웨이의 말처럼 '앞으로도 늪에서 낚시할 수 있는 날은 많을 것이다.' 전쟁끝난 지금 우리에게 미래의 꿈을 낚을 날은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