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계 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
코너 우드먼 지음, 홍선영 옮김 / 갤리온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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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업무게시판에서 공정거래에 대한 홍보 글을 보았다. 회사의 공정거래 정책에 대해 찬성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작은 반발의 씨앗이 꿈틀거리는 것은 어찌 할 수가 없다. 언젠가 이 씨앗이 자라면 어떠한 형태의 모습을 가질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들이 보고 싶은 부분만을 보고 이면에 있는 보고 싶지 않는 부분은 마치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기억 속에서 지우고 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대도시에서 생활하는 우리들은 라오스의 자연 속에서 여전히 전통을 유지하며 옛날식으로 살아가는 부족을 보면서 기뻐하면서도 동시에 그 지방에서 생산되는 고무제품을 누구보다도 많이 사용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노동집약적 농업으로 생산되는 고무의 생산을 위해서는 라오스부족의 삶의 터전을 훼손해야만 한다는 것까지는 생각지 못한다는 것이다.

193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한 조지오웰의 ‘위건부두로 가는 길’ 내용 중에는 임신한 여자가 땅속을 기어서 석탄을 캐고 있는 현실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석탄 없이 살 수 없는 시대적 현실 속에서 이를 묵인하는 시대적 모습을 고발하는 내용이 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공정거래’를 외치고 공정거래 마크가 있는 상품의 사용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 상품이 과연 공정거래의 의미에 부합한 상품인지, 단지 상징적인 마크만 새긴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고민하지 않는다.
즉, 이것이 진정한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움직임인지 아니면 좀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한 자본주의의 탐욕스러운 얕은 수인지는 누구도 관심이 없는 것이다.
단지, 판매자는 ‘공정거래’ 마크가 있는 상품을 판매한다는데, 소비자는 그것을 소비한다는데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한 유명 레스토랑의 경우 식당에서 제공되는 랍스타의 유통경로를 확인한 결과 그 랍스터가 식탁위에 오르기 위해 남미 어느 섬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잠수병으로 반신불구가 되어 가고 있음에도 이 식당은 랍스터가 공정거래 상품이라고 광고하고 있었다.

공정거래 마크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고 있는 기업들은 그에 상당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잠수병으로 반신불구가 되는 젊은이들의 희생의 댓가는 결국 기업의 추가이윤으로 돌아가게 된다. 기업은 이 이윤을 그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공정거래인 것이다. 공정거래를 인증해 주는 기관에 일정한 수수료를 내고 공정거래 마크를 제품에 새기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나아가 공정거래 마크를 얻기 위해서는 그 상품에 대한 최초 원산지에 대한 확인도 겸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랍스터 판매 식당은 남미의 젊은이들까지 확인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진정한 공정거래라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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