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입자
엘리에트 아베카시스 지음, 길해옥 옮김 / 여백(여백미디어)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처음보는 작가의 책.

엘리에뜨 아베카시스. 대부분 책 날개에는 작가에 대한 설명과 사진이 나와있는데 이 책은 정말 깔끔하다. 작가에 대한 설명도 작가의 글도 들어있지 않다. 바로 이야기가 시작되어 이야기가 끝나면 책이 끝난다. 도서관에서 내가 좋아하는 양장에 얇은 책에 제목이 왠지 추리소설 같아 고른 책인데 내용은 전혀 딴판이었다. 원래 연애소설, 사랑을 주제로 하는 소설은 골라 읽지 않는편인데 이 책은 그런 내용을 담고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그 남자와 그 여자. 서로 이름을 알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시간은 기차를 타고 가서 내려서까지의 시간. 장소도 기차 안과 플랫폼으로 한정된다. 그 짧은 시간과장소에서 일어나는 무한한 이야기. 마음의 변화들.

덤덤한 문체 속에 담겨있는 커다란 의미들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를 정도이다.

 

자유의 땅을 찾아 조국을 버리고 나온 남자. 수용소를 탈출하고 도망다니다 마지막 희망을 걸고 트럭을 타러 떠나던 길에 기차에서 만난 여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녀를 바라보고 앉아있다가 검표원에게 들키고 만다. 그의 눈길을 느낀 여자.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에게 끌리는..

 

검표원에게 들킨 남자는 옷을 벗고 도망가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플랫폼에서 그녀를 기다리게 된다. 그녀의 짐을 들어주고 걸어간다. 그녀는 자신을 기다리는 유능한 남자에게로 걸어가다가 경찰들이 지키는 것을 보고 남자를 지켜주기로 마음 먹었는지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함께 바람이 부는 곳에 서 있는다. 서로 대화는 없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무수한 생각들. 그와 그녀는 과거에 어느 교회에서 만난적이 있다. 그의 형은 그날 경찰과 대치하다 죽었으며 그녀는 경찰쪽 사람이었다. 하지만 서로 말은 꺼내지 않은 채 ..

그 후 길 잃은 아이를 데리고 있어 주다가 아이의 부모(눈이 멀은)를 찾아준다. 아마도 그녀는 이때 자신을 기다리는 남자를 버리고 이 남자를 택하기로 한 것 같다. 그리고 그는 먼저 도망간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그를 만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도 그런 마음을 알았던 것일까. 다시 돌아온다. 둘이 만나서 가까이 서 있는 시간. 둘은 평생 함께 할 수 있다 생각한 것일까? '한 여름의 단비는 샤워를 하듯 우리의 가슴을 씻기고, 맑게 하고, 다음을 준비시키며 우리의 마음을 적시고 있다.'

 

하지만 이때 또 경찰이 나타나고 신분증이 없는 그를 잡아가려 할때, 더이상 수용소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그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도망치려 한다. 그때 경찰이 총을 꺼내고..

아.. 그녀가 총을 쏘는 경찰 앞으로 나선다. 그녀도 죽게 되고.. 다시 그도 총을 맞는다.

하지만 아무도 그와 그녀가 왜 함께 그곳에 있었는지 왜 그녀가 그 대신 죽으려 했는지 모른다.

 

마지막 부분의 글

'어느날 여름, 플랫폼에서였다.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은 이야기는 곧 잊혀지는 것이다.

기억 또한 마찬가지다. 기억이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중요한 사건들을 애써 지우려고 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그 누구도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가 도망치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죽기 전에 왜 그녀가 먼저 죽음을 향해 모을 던졌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서류를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른 기차가 도착했다.'

 

익명성, 자유, 밀입국, 진정한 사랑.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자유를 찾아 떠났지만 그곳에도 그들이 원하는 것은 없고, 여자 또한 진정한 사랑을 확인하려 했지만 사실은 그것이 사랑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이 죽은 후 아무것도 남는게 없다. 참 씁쓸하다.

 

기다린다는 것.. 모든 사람은 기다린다. 기다리는 것 말고 사람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기다리는 것 말고 사람이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사람은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낸다.

.

.

결국 사람은 오직 기다릴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