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치에 누워서
어빈 D.얄롬 지음, 이혜성 옮김 / 시그마프레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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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얄롬의 책을 세권 읽었다. 처음엔 호기심에서, 두 번째엔 기대에서, 세 번째에는 또 다른 감동을 느끼고 싶어서 그의 책을 찾았다. <나는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 싫다>를 읽고 이 책은 그냥 집어들었다. 당연히 재미있으리라. 의심이란 눈꼽만큼도 없었고, 책은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다.

 

 책은 탐정소설 뺨치게 흥미진진하다. 탐정소설보다는 오히려 소설같지 않은 현실감을 느끼면서 읽게 된다. 저자가 정신과 의사이기 때문에 그의 직업인 심리치료에서 오는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반영되었다고 본다. 책은 치료자의 에로틱 전이 문제와  정신과 의사도 사기당 할 수 있다는 일반인의 상식을 깨는 두 개의 큰 주제를 담고 있다.


 주인공인 정신치료자 어니스트는 일흔 한 살의 시모어 트로터라는 미국 정신과 학회의 전회장의 서른 두 살의 여자 환자 성추행 사건을 인터뷰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환자 저스틴이 아내를 떠날 수 있도록 5년 동안이나 상담치료를 해 오고 있다. 그런데 그가 5년동안 성공하지 못했던 것을 저스틴의 새로운 애인이 해낸다. 저스틴의 이혼선언은 그의 아내 캐롤이 어니스트에게 복수를 시도하게 만든다. 캐롤은 저스틴에게 에로틱 전이문제를 야기 시키고, 어니스트가 슈퍼비전을 받았던 마샬은 자신의 전 환자였던 마콘도에게 이중사기를 당하게 된다.


환자가 치료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쓸데없는 말은 잊어버려요! 환자가 치료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치료자에게 환자를 치료할 치료법이 준비되지 않은 것이지요. 치료자는 각 환자에게 알맞은 새로운 치료법을 찾아내는 데 철저해야 하고 창의적이어야 해요.(p19)


 책은 치료자와 환자 사이에는 언제든지 전이와 역전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특히 얄롬은 치료자의 윤리문제,에로틱 전이문제 환자에게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다 주고 치료자 역시 망가진다고 말한다. 또한 어니스트는 치료자의 자기개방이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범위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소설에서 마샬이 마콘도라는 소시오패스에게 사기당하는 것을 보면서 치료자의 개방문제는 치료자의 안전과도 직결된다는 것을 을 알 수 있다.


 나는 양육문제로 코칭을 자주 받는다. 코칭과 심리치료는 다르지만 비슷한 부분도 많다. 심리치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은 코칭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소설에서 어니스트는 내용이 아니라 과정에 초점을 마추어야 하며, 치료자와 환자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치료의 성공여부는 관계맺는 방식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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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 싫다 - 실존심리치료, 개정판
어빈 D. 얄롬 지음, 최윤미 옮김 / 시그마프레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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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가는 서점 길목에 중고서점이 있지만 들어가 볼 용기를 내보긴 처음이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처음엔 사람이 많아서,그 다음엔 생각보다 책이 많아서 놀랐다. 너무 많아서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감당이 안 될 정도였다. 우선은 내 발걸음이 안내하는 대로 따랐다. 그리고 심리학서가에서 발길이 멈췄다. 그 중 끌리는 책을 한 권 집어들었다. 얄롬박사의 <치료의 선물>을 읽어봤기 때문에 이 책도 기대가 됐다. 대충 훓어보고 의외로 내용이 맘에 들어 더 자세히 읽기 시작했다.그리고 책값의 3/1 가격에 구입했다. 횡재했다.


 나는 일반인이다. 그래서 정신과의사인 심리학전문가가 쓴 책을 좋다 나쁘다 평할 아무런 전문적인 지식이 없다. 그냥 일반독자로서 이해하기 쉬웠고, 흥미진진했다고 느낌 그대로 평할 뿐이다. 오히려 전에 읽었던 <치료의 선물>보다 더 쉽고 재미있으며 흥미진진했다. 심리학전문가가 다루는 문제들이 아주 잘 드러나 있어서 치료자의 입장을 이해하기도 쉬웠고, 내담자의 입장을 이해하기도 쉬웠다. 특히 이번책에서는 치료에 꿈이 잘 활용되고 있어서 놀라웠다. 치료의 성패가 치료자와 내담자의 관계에 기초함은 책 전반에 흐르고 있는 주제다.


 얄롬박사는 책에 열개의 사례를 싣고 있다. 젊은 치료자와 사랑에 빠졌던 8년전의 삶을 살고 있는  70대의 노인이야기를 다룬 사례. 만약 강간이 합법적이라면 그 일을 저지르겠다는 암환자가 변해가며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는지를 다룬 사례.110KG의 여인이 심리치료와 더불어 다이어트에 성공하게 되는 사례. 잃은 아이에 집착하여 남은 아이들을 소홀히 하게되는 여인의 사례. 지갑을 소매치기 당한 사건을 계기로 모든 것이 변해버린 미망인의 사례. 치료자에게 자신의 지난 연애편지를 보관해 달라고 하는 내담자의 사례.남편 사망후 모든 삶의 흐름이 얼어버린 여인의 사례.뜯지 않은 세 통의 편지로 인해 어려움에 빠진 내담자의 사례.경계선 장애를 앓고 있는 여인의 사례.편두통과 성생활의 관계 이면의 문제가 드러나는 내담자의 사례등이다.


 나는 사랑에 빠져 있는 내담자와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어쩌면 나 역시 매혹적이고 싶은 부러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좋은 치료자는 어둠과 싸워 불빛을 찾는 것인데, 낭만적인 사랑은 신비로워야 지속이 되고 그 사랑을 자세히 살펴보면 신기루가 되어 날아가 버린다. 나는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가 싫다.. 사랑이란 항상 고통과 어우러져 있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델마의 고통은 사랑과 고통 사이에 전혀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그녀의 사랑에는 기쁨이 전혀 없고 오로지 삶을 고문만 하는 것이었기에 나는 놀라고 있었다.(p17)


 책에서는 전이, 역전이, 라포,내담자와 관계맺는 다양한 방법,치료자의 윤리문제,꿈해몽의 방법등 다양한 심리학적 상황을 만나볼 수 있다. 얄롬교수는 치료 상황에서 역전이의 문제와 부딪히기도 한다. 다양한 문제들의 표층을 제거하고 나면 그 내면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들을 만나게 된다. 또한 치료자는 매순간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는 것 같은 긴장감이 느껴진다. 얄롬교수가 다양한 꿈들을 실제 치료에 적용하는 것을 보면서 감탄사가 절로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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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1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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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석주 작가의 책에서 소개된 작품이다. 이 책의 어떤 부분이 내게 끌림을 유발했는지 모르겠다. <로빈슨 크루소> 다시쓰기라서? 그것보다는 장석주작가가 인용한 몇 문장이 나의 뇌리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p240)야생의 상태로 되돌아간 염소들은 이제 인간들에게 강제로 사육되는 동안 강요받았던 무질서 속에 살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가장 힘세고 똑똑한 숫염소들이 지배하는, 계통과 서열이 확실한 무리로 나누어졌다...책을 읽다가 이 문장에 턱 걸렸다.

 이 작품은 다니엘 디포의 소설 <로빈손 크루소> 다시쓰기다. 소설은 <로빈손 크루소>의 신화 자체를 전복시키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로빈손 크루소>가 산업 사회의 탄생을 상징하는 소설이라면 <방드르디,태평양의 끝>은, 그 사회의 추진력이 되는 사상의 폭발과 붕괴.그에 따라 인간의 신화적 이미지가 원초적 기초로 회귀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소설은 고도에 혼자 버려진 로빈슨 크루소가 타자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고독한 삶과 타자인 방드르디의 등장으로 교육과 식민시대인 공동생활로 나뉜다.  

'버지니아 호'의 선장 피터 반 데셀은 로빈슨 크루소에게 타로 카드 점을 쳐준다. 선장의 예언을 남긴채 배는 침몰하고 로빈슨 크루소는 홀로 무인도에 살아 남는다.그는 탈출호 제작에 열중한다.그러나 혼자서 배를 바닷물 속까지 끌고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절망한 나머지 그는 진흙탕에서 뒹굴며 죽은 여동생의 환영을 본다. 로빈슨은 타인이란 우리에게 있어서 강력한 주의력 전환 요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타자가 없는 고독한 세계에서 그는 광기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 항해일지를 쓰고,섬을 스페란차(희망)이라고 명명하고 스스로 총독이 된 후 섬에 질서를 부여한다.
로빈슨 크루소는 아라우칸 족의 제물로 지정된 인디언 혼혈아를 본의 아니게 구해 준후, 소설에는 타자가 등장하게 되고 타자의 이름을 방드르디(금요일)이라 정한다. 로빈슨은 방드르디에게 문명의 흔적을 부여하려 애쓰지만 방드르디는 로빈슨에게 오히려 질서를 거부하는 세계, 호모 파베르에서 호모 루덴스로 거듭나게 한다.

 그는 이제 인간이란 소요나 동란 중에 상처를 입고 군중에 밀리면서 떠받쳐 있는 동안은 서 있다가 군중이 흩어지는 즉시 땅바닥에 쓰러져버리는 부랑자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를 인간성 속에 지탱시켜 주고 있던 그의 형제들인 군중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갑자기 물러가 버리자 이제 그는 두다리에 의지하여 혼자 서 있을 힘마저 없어진 자신을 느낄 수가 있었다.(p48)

 소설은 <로빈슨 크루소>다시쓰기를 너머 '새로운 시작'으로 끝나는 다차원적인 유희 구조다. 로빈슨 크루소는 방드르디를 교육시키고 복종시키려 한다. 그것은 물질 문명에 길들여진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나 방드르디는 물질문명과는 다른 세계를 이상으로 상징한다. 애초에 인간이 만들어놓고 질서라고 부르는 것이 오히려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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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영감 한길 헤르메스 7
장 그르니에 지음, 함유선 옮김 / 한길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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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작가의 책에서 만난 장 그르니에는 어떤 작가일까 무척 궁금했다. 먼저 그의 추천작 <섬>을 읽고 싶었지만, 도서관의 서가에 책이 없었다. <지중해 영감>도 도서관의 문서보관실에서 찾았다.<지중해 영감>은 추석연휴 동안 시골가는 차안에서 좋은 벗이 되어 주었다. 좋은 책이란 이런 책이구나!  장 그르니에의 아름다운 시선에 감탄하면서..이해되지 않는 철학적인 시선에 답답해 하면서 읽었다.


 장 그르니에는 알베르 카뮈의 스승이자, 카뮈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아름다운 산문작가이다. 1961년 발간한 <지중해 영감>은 시인 폴 발레리가 어느 강연에서 발표한 산문의 제목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지중해를 떠올리면 작렬하는 태양과 청명한 대기, 짙푸른 바다와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지중해적 기질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장 그르니에 역시 일반인처럼 이런 지중해를 바라보면서 인간 세계와 비인간 세계를 아우르는 모습을 포착해 보여준다.

나는 기쁨으로 두근대는 가슴의 숨가쁜 고동소리가 가라앉은 뒤에야 숲의 넓고 깊은 숨소리를 들었다. 이리하여 음악과 같은 아름다운 소리는 때때로 우리를 느닷없이 스타카토에서 레가토로 옮겨놓는다. 처음에는 꽃다발처럼 묶여 있던 우리의 사고가 풀어졌다가 꽃처럼 행복하게 피어난다.어쩌면 나는 이 순간을 살기 위해서만 태어난 것이 아닐까. 푸르스트가 말한 '음악적 순간'이 바로 이런 것은 아닐까..p26

 마음에 와닿는 하나의모습, 이것이야말로 지중해의 정신이다. 공간? 그것은 어깨의 선, 갸름한 얼굴의 윤곽이다. 시간? 그것은 이 해변에서 저 해변으로 달리는 어느 젊은이의 경주이다. 햇빛은 그 특징들을 뚜렷이 드러내고, 수많은 것들을 나타나게 한다. 모든 것이 인간의 영광과 일치한다. 그 사라짐과도 일치한다.
 만일 인간이 어떤 가치를 갖는다면, 그것은 그가 풍경보다 훨씬 더 멀리 있는 죽음을 늘 자신의 배경처럼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죽음이 없다면 인간은 자기를 깨달을 수 없을 것이다. 언제나 존재하는 자신의 최후에 대한 첨예한 직감만이 오로지 욕망에 한계가 있음을 알려준다. 이 두 개의 힘에서 비극 철학이 태어났다.p111

 장 그르니에는 지중해의 모든 곳에서 과거와 만난다. 그는 산 피에트로 성당에서 살아 있는 것들과 함께 있을 때 오히려 더 많은 외로움을 느낀다고 말한다.그리스의 질서는 경험의 총체 다음에 온다고 말하며,그리스에서는 모든 것에서 어떤 인물의 흔적이나 도시 국가의 흔적을 발견한다. 이탈리아는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위험스럽게 걸려 들지도 모르는 덫을 놓고 있다고도 말한다. 장 그르니에의 시선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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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리야르와 시뮬라시옹 살림 H classic 1
배영달 지음 / 살림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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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철학서적을 파고들었다. 먼저 장석주작가의 책에서 만난 보드리야르의 서적을 뒤적거려본다. 그런데 보드리야르의 원작 <시뮬라시옹>은 너무 어려워 이해하기 힘들다. 중간에 읽다말고 <시뮬라시옹>에 대해 해석을 하고 있는 <보드리야르와 시뮬라시옹>을 먼저 읽기로 했다.


시뮬라크르는 실재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놓은 인공물을 지칭한다. 우리말로는 가장<假裝>으로 번역하는 것이 제일 가까운 표현이다.시뮬라시옹은 시뮬라크르의 동사적 의미로 <시뮬라크르를 하기>이다.<시뮬라시옹>1981년에 발표된 현대사회의 현상들을 새롭게 분석한 사회.문화이론서다.<시뮬라시옹>이 태어난 시대적 배경은, 생산과 노동에 집중되었던 종래의 관심이 소비사회의 출현과 함께 삶의 다른 영역 또는 일상생활 전반으로 확장되었고 소비능력의 향상이 새로운 역사적 조건과 사회적 배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시뮬라시옹>에서는 실재.초과실재.시뮬라크르.시뮬라시옹이 분석과 성찰의 초점을 이룬다.

 보드리야르는 시뮬라시옹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실재가 이미지와 기호의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고 주장한다.보드르야르에 따르면 현대사회에서는 사물이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기호가 소비된다. 기호/이미지가 판을 치는 현실세계에서 실재는 증발하고 뒤로 밀려나며, 초과실재(시뮬라크르)가 지배한다. 끊임없이 증식하는 시뮬라크르의 지배.그는 초과실재의 단적인 예로 디즈니랜드를 보여준다.

 결국 그는 기술결정론에 빠져든다.보드리야르가 바라보는 현대사회는 과포화와 투명성,황홀경등으로 특정지어진다.이 책의 사상적 맥락으로 기호학,포스트모더니즘,후기구조주의,니체의 허무주의를 손꼽을 수 있다.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은 명품을 소비하는 현대인들의 심리를 잘 말해준다. 현대인들은 그의 지적처럼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기호와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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