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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1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평점 :
장석주 작가의 책에서 소개된 작품이다. 이 책의 어떤 부분이 내게 끌림을 유발했는지 모르겠다. <로빈슨 크루소> 다시쓰기라서? 그것보다는 장석주작가가 인용한 몇 문장이 나의 뇌리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p240)야생의 상태로 되돌아간 염소들은 이제 인간들에게 강제로 사육되는 동안 강요받았던 무질서 속에 살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가장 힘세고 똑똑한 숫염소들이 지배하는, 계통과 서열이 확실한 무리로 나누어졌다...책을 읽다가 이 문장에 턱 걸렸다.
이 작품은 다니엘 디포의 소설 <로빈손 크루소> 다시쓰기다. 소설은 <로빈손 크루소>의 신화 자체를 전복시키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로빈손 크루소>가 산업 사회의 탄생을 상징하는 소설이라면 <방드르디,태평양의 끝>은, 그 사회의 추진력이 되는 사상의 폭발과 붕괴.그에 따라 인간의 신화적 이미지가 원초적 기초로 회귀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소설은 고도에 혼자 버려진 로빈슨 크루소가 타자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고독한 삶과 타자인 방드르디의 등장으로 교육과 식민시대인 공동생활로 나뉜다.
'버지니아 호'의 선장 피터 반 데셀은 로빈슨 크루소에게 타로 카드 점을 쳐준다. 선장의 예언을 남긴채 배는 침몰하고 로빈슨 크루소는 홀로 무인도에 살아 남는다.그는 탈출호 제작에 열중한다.그러나 혼자서 배를 바닷물 속까지 끌고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절망한 나머지 그는 진흙탕에서 뒹굴며 죽은 여동생의 환영을 본다. 로빈슨은 타인이란 우리에게 있어서 강력한 주의력 전환 요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타자가 없는 고독한 세계에서 그는 광기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 항해일지를 쓰고,섬을 스페란차(희망)이라고 명명하고 스스로 총독이 된 후 섬에 질서를 부여한다.
로빈슨 크루소는 아라우칸 족의 제물로 지정된 인디언 혼혈아를 본의 아니게 구해 준후, 소설에는 타자가 등장하게 되고 타자의 이름을 방드르디(금요일)이라 정한다. 로빈슨은 방드르디에게 문명의 흔적을 부여하려 애쓰지만 방드르디는 로빈슨에게 오히려 질서를 거부하는 세계, 호모 파베르에서 호모 루덴스로 거듭나게 한다.
그는 이제 인간이란 소요나 동란 중에 상처를 입고 군중에 밀리면서 떠받쳐 있는 동안은 서 있다가 군중이 흩어지는 즉시 땅바닥에 쓰러져버리는 부랑자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를 인간성 속에 지탱시켜 주고 있던 그의 형제들인 군중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갑자기 물러가 버리자 이제 그는 두다리에 의지하여 혼자 서 있을 힘마저 없어진 자신을 느낄 수가 있었다.(p48)
소설은 <로빈슨 크루소>다시쓰기를 너머 '새로운 시작'으로 끝나는 다차원적인 유희 구조다. 로빈슨 크루소는 방드르디를 교육시키고 복종시키려 한다. 그것은 물질 문명에 길들여진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나 방드르디는 물질문명과는 다른 세계를 이상으로 상징한다. 애초에 인간이 만들어놓고 질서라고 부르는 것이 오히려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