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발견 1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10
스텐 나돌니 지음, 장혜경 옮김 / 들녘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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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은 여유를 필요로 한다.하지만 현대인들은 속도에 취해 있어서 느린 것을 견디지 못한다.이 책의 주인공 존은 천성적으로 너무 느리다. 존은 너무 느리기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것들을 보게 된다.속도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그 무엇도 천천히 관찰하려 하지 않는다.하지만 존은 너무 느리기때문에 무엇이든 관찰하게 되고 남들이 놓치는 부분을 발견해 낸다. 

  정상적이라는 기준이 뭘까? 내가 생각하기에 정상이란 그 시대의 생활습관과 사고방식에 잘 쫒아가는 것쯤으로 알고 있다.하지만 전문가는 공감하는 능력을 정상이라고 말한다.그래서 같은 또래보다 속도가 쳐지는 존의 느림은 장애일 수밖에 없다.하지만 존의 느림이 과연 장애일까? 이 소설을 통해서 우리가 놓치고 지나가는 느림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한다.

  

 영국의 탐험가 존 프랭클린(1786~1843)은 성공보다는 실패로 명성을 얻은 특이한 탐험가였다. 그의 세 차례의 북극 탐험은 실패로 돌아갔고 마지막 탐험길에서 그는 사망한다.이 소설은 프랭클린이 남긴 편지와 기록에 작가적 상상력을 보태 그의 일생을 문학적으로 재조명한 전기소설이다.

 스필스비 마을의 존 프랭클린은 열 살이나 먹었는데도 공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할 만큼 동작이 느리다.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다른 아이들을 위해 줄을 잡아 주는 것이 전부다.그래서 존은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감이고 아버지는 그를 구타한다.존은 자신을 느리다고 생각할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서 가출을 한다.존은 속도를 탐구하고 싶어 한다.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지금 자신보다 빠른 사람들을 추월할 날이 올 것이다.그는 태양처럼 되고 싶어한다.겉보기에는 느릿느릿 하늘을 지나지만 그 빛은 사람의 시선만큼 빠르기때문이다.

 

 그는 숲에서 자연의 느린 변화를 관찰한다.존은 항해사가 되고 싶어한다.그러나 서른여섯 시간 만에 아버지에게 붙집혀 방안에 갇힌다.그로 인해 앓고 있을 때 그를 이해 해준 사람은 선원인 매슈밖에 없다.존이 학업을 마치면 해군사관학교 생도 자격으로 그의 배에 태워준다는 매슈의 말을 믿고 학교에 들어간 존은 그 때만을 기다린다.모두들 존이 지금 이대로 멈춰 있을 거라고 믿고 있지만 존은 그 때를 위해 스스로 많은 노력을 한다.버나비선생님은 존을 괜찮은 재목이라고 생각한다.모두들 존이 배를 타는 것을 내켜하지 않지만,열 네살이 된 존은 결국 배를 탄다.그들은 존이 거친파도와 배에서의 생활을 견뎌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열 다섯살에 선장 매슈와 함께 인베스티게이터(크세노폰)호의 선원이 된다.존은 이제 자신이 더 이상 느리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고 미지의 세계로 탐험을 떠난다.암초를 만나 53일만에 모두 포기해 버렸을 때 희망을 버리지 않은 존 덕분에 선원들이 모두 살아나기도 한다.열여덟살에 해군사관학교 생도 존은 동인도 선박 얼 캄덴에서 기수를 한다. 존은 배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을 치루기도 하고,힘겨운 생활을 견뎌낸다.어쩐 일인지 총알도 그를 비켜간다.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모두가 빈곤해졌을 때도 존은 새로운 꿈을 꾼다.존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호기심이 있다.존의 또 다른 호기심은 어떤 것일지 2편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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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미술의 해학 - 사찰의 구석구석
권중서 글.사진 / 불광출판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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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소풍 갈 때나 수학여행 갈 때마다 빠지지 않고 꼭 들렀던 코스가 바로'사찰'인데,절에가면 울긋불긋한 그림들이 정말 무서웠다.커서 돌아보니 그 탱화들은 지옥의 사천왕이었다. 사찰에 가면 무서워서 빨리 빠져 나오고만 싶었지, 한번도 제대로 살편 본 적이 없다.의례히 가던 코스이기 때문에 절마다 다 똑같은 절인줄 알았고,수박 겉핥기 식으로 구경만 해 왔다.사람들은 누구나 욕망으로 인한 번뇌가 끊이지 않는다.잠시 모든 것을 내려 놓고 고즈넉한 불교의 세계로 떠나보는 것을 어떨까?

 

 이 책을 읽기 전, 불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내가 과연 불교미술을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그런데 사진과 함께 저자의 글을 접하고 나니, 소경이 눈을 뜬 듯 전혀 몰랐던 세계에 빠져들었다.어렵게만 생각했던 불교에 다가서기에 좋은 책이다.전국방방곡곡의 심산유곡에 꼭꼭 숨어있는 사찰에서 찍은 많은 사진들 중 우리가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쳤던 그림들이 너무 많다.불교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내 눈에는 모두 같은 그림들로만 보였던 것이다!!

 

 유머는 인간이 가진 다양한 정서 가운데 가장 고차원적인 것으로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공통적인 언어다.여유로움 속에서 유머는 생겨난다.불교가 가진 비움과 여유로움의 미학이 바로 이런 해학을 제공하는 것이 아닐까? 불교미술은 그런 해학(익살,유머)을 다양한 재료와 주제로 표현하고 있다.이 책은 2008년 <불교신문>에 1년간 연재되었던 글들을 다듬어 엮은 것이다.그러다보니 타 종교에 대한 비판의 글이 조금은 섞여 있다.하지만  저자가 겨냥한 독자계층이 어차피 불교에 관심이 많은 이들을 상대로 쓴 글이라면 읽히는데 큰 무리가 없겠다.

 

<토끼와 거북>으로 표현된 그림이 중생과 부처란 것을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니 아이들이 상당히 재미있게 본다.거북이 토끼를 데리고 가는 곳이 어디일까?  바로 유토피아다!! (피안의 세계.이상향의 세계).아이들에게 익숙한 그림이라서 거부감이 없는 것 같다.<잠자리보다 작은 용>그림을 보자마자 아이가 요술램프가 있다고 해서 우리는 깜짝 놀랐다.

 

 개구리 밑에 고생하는 용.술 취해헤롱거리는 용.불 붙인 긴 담뱃대를 호랑이에게 전달하는 토끼.해학적인 모습의 장승.앉은 모습이 파격적인 미륵부처석상.가려움을 참지 못해 곰방대같은 것으로 등을 긁고 있는 수행자의 모습.술취한 이태백이 파도타기 하듯 구부린 자세로 물고기 등에 올라타서 술병을 싣고 극락으로 향하는 그림은 정말 재미있다.잘못을 하고도 신에게 대드는 여자 중생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하는 해학이다.

 

 사찰에서 산신을 모시는 산신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상식을 깨뜨리는 동물의 모습으로 표현한 다산의 상징인 성적인 표현의 작품들도 있다는 사실! 우리가 쓰는 일상어인 건달,아수라장도 불교에서 유래한 말이다.불교미술작품들은 불교의 포용성과 관용성을.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질책하는 교훈적 해학으로.약자와 강자의 공존을.종교가 표현한 관념의 세계를 여성이나 동물등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부처의 음성을 상징하는 가릉빈가(새),범종,부처님을 상징하는 탑,사찰에 있는 작은 것 하나도 의미가 없는 것이 없다.저자의 글을 읽고 나니 사찰에 그려진 탱화나 석탑 등 많은 많은 불교 문화제가 상당히 은유적으로 표현된 것이란 걸 알겠다.모든 곳에 부처가 있다는 말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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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라, 미드에서 과학을 보다 하리하라 사이언스 시리즈 3
이은희 지음 / 살림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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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과학을 못 할 뿐만아니라,지독히도 싫어한다.중학교때 물상시간에 심하게 아파서 책상에 누워있다가 과학시간에 엎드려 있었다는 벌로 선생님은 쉬는 시간 10분안에 까막지(깜지:16절지 백지에 단어를 까맣게 써서 외우는 것) 100장? 을 써 오라고 했다.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나는 해냈다!!!  물론 내가 한 것이 아니고,반 친구들이 자진해서 한장씩 써왔다!!! 거의 20년전의 일이다.그래서 나는 그 선생님 성함은 잊었지만 지금도 그때 그 시간에 배웠던 '기화,액화,승화'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ㅎㅎ 추억의 깜지사건.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책 제목이 참 희안하다고 생각했다.하리하라는 뭐지? 책의 앞날개를 펼쳐보니 답이 나와있네^^* 하리하라는 저자 이은희님의 필명으로 인도 신화에서 창조의 신 비슈누와 파괴의 신 시바가 서로 맞대고 결합한 상태를 의미한다.저자는 '하리하라'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고,이미 하리하라 시리즈도 여러편 출판했다.그럼 미드는 또 뭐지? ^^*  이 책에 실린 내용은 미국 드라마 '미드'를 보면서 생각한 의문들을 모은 책이라고  들어가는 말에 저자의 답글이 있네.그러니까 이 책은 신경생물학을 전공한 저자의 직업병의 산물인 것이다.

 

 저자는 깜지같은 것은 만들지 않아도 쉽게 배울 수 있는 재미있는 과학을 선사하고 있다.드라마와 함께 관련지식을 연결시켜 홈즈시리즈처럼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게 집필했다.과학책을 읽는다기보다는 추리소설을 읽는 착각이 든다.그러면서도 중요한 기초과학지식을 모두 전달하고 있다.경악할만한 사건들이 많아서 놀랐다.실제 사건에서 모티브가 된 드라마도 있어서 더욱 놀랍다.

 

 <하우스>시즌1에서 유치원 교사 레베카는 어는 날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간다.어떤 검사로도 증상의 원인을 진단해 낼 수 없었고,점점 심각해지기만 한다...덜 익힌 돼지고기 햄 속에 있던 촌충의 유충이 레베카의 뇌로 들어가 신경을 자극한 것으로 밝혀지고,결국 생명이 위독할 정도로 심각한 증세를 보였던 레베카에게 내려진 치료법은 겨우 '구충제 2알'이었다.이글을 읽어줬더니 초등학생 두 아이가 얼마나 웃어대던지..^^

 

<CSI라스베거스>시즌 2에서 '전자코'로 범인을 찾아낸 이야기는 현대 과학의 발전까지 연결되고 .<NCIS>시즌 2에서 선천적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이의 놀라운 청력 덕분에 납치현장을 찾아내는 이야기는 초음파이야기까지 이어진다.<CSI 라스베이거스>시즌 7에서 현장에 나타나지도 않은 범인이 어떻게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는지.시즌9에서는 무지한 수혈이 부른 살인사건을 통해 혈액형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을 배운다.<프리즌 브레이크 >시즌1에서 청년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일부러 범행을 저질러 ,형과 함께 탈옥하기 위한 정보를 온 몸에 문신으로 새긴 채 감옥으로 들어간다.이 이야기를 통해서 피부의 단면에 대해서,문신에 대해 놀라운 사실들을 접한다.

 

 사형수집행일이 얼마남지 않은 연쇄살인범을 수술해야 하는 의사이야기를 통해서 심리학적 애착과 사랑의 본질을 더듬어 보고.법의학자가 연쇄살인일 수 있다는 드라마.자신의 이를 직접 뽑아 실험한 치과의사 호레이스 웨스.방부제로만 쓰이는 줄 알았던 포르말린이 독극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안락사와 존엄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내용.성 정체성과 뇌등 소재가 무궁무진하다.<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에 대한 설명을 통해서, 우리 몸 속에도 우주선에 의해 만들어진 탄소-14가 포함돼 있다는 말은 정말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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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 개정판 환상문학전집 18
메리 셸리 지음, 이미선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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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했던 역사는 인간에게서 잊혀져 가고,복제기술의 발달로 인간은 스스로 인간을 복제해 낼 수도 있다.머지않아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인간창조는 완벽한 신화로 남게 될 것이다.인간은 본디 선하게 태어나지만 환경에 의해 악해진다는 맹자의 성선설처럼 셸리는 루소의 사상과 존 로크의 사상을 프랑켄슈타인에 적용시켰다.이 책을 썼을 당시 1816년 그녀의 나이는 열아홉살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여성의 권리 옹호>를 쓴 메리 울스톹크래프트이고,그녀의 아버지는 <정치적 정의의 원리들에 대한 탐구>를 쓴 윌리엄 고드윈이다.하지만 그녀의 일생은 그리 평탄하지만은 않았다.오히려 그런면에서 이 책은 그녀의 천재성을 발휘할 기회를 주지 않았나싶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대명사처럼 쓰인다.하지만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이름이 아니고 저자 메리 셰리가 창조한 과학자의 이름이다

 

 북극을 향해 탐사를 떠난 월튼이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영국의 누인인 사빌부인에게 쓴 편지 여러통이 등장한다.그는 거대한 몸집의 생

명체가 썰매에 앉아 개들을 몰고 빠르게 지나간 것을 언급한다.그리고 야성과 광기를 띤 낯선 사람이 괴물을 찾고 있는 사람이며,자신과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그래서 이 소설은 그가 월튼에게 해 주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다.자연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프랑켄슈타인은 우연히 알게 된 한 권의 책에 빠져든다.그러나 그것은 파기된 학설이었다.열일곱 살이 되자 그는 대학교에서 자연철학 중 화학에 매달려 생명의 본질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의문을 품게 되고,한 분야에 통달한 자신에게 놀라운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하지만 그 피조물은 자신이 보기에도 끔찍한 모습이어서 그는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만다.

 

 자신의 창조자에게조차 버림받은 괴물은 스스로 힘으로 세상을 헤쳐나가야 한다.원래 선하게 창조된 괴물이지만 그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기절하거나 그에게서 도망쳐버린다.세상에 대해 백지상태와 같은 그는 사람들의 반응으로 자신을 알아가며,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신조차 자신을 싫어하게된다.괴물은 <실락원>등 을 읽으며 역사를 배운다.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자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에게 복수를 하기 시작한다.프랑켄슈타인 주변사람들이 하나씩 희생된다.복수를 멈추기 위해 괴물은 자신과 똑같은 짝을 만들어 달라고 조건을 제시한다.그래서 둘 사이에는 쫒고 쫒기는 관계가 형성된다.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괴물은 이름이 없다.박사와 괴물의 위치가 바뀌어버린 가장 큰 실수는 바로 저자 메리 셸리가 괴물에게 적당한 이름을 부여하지 않았던게 원인인 것 같다.그녀가 괴물에게 특별한 이름을 부여하지 않은 것은 괴물과 박사가 서로 자아의 상반되는 부분의 반쪽으로 남겨두기 위한 의도적인 기술이었을 수도 있다.<프랑켄슈타인>은 과학의 발전이 가져올 무서운 역기능을 예고한 것이다.하지만 세상은 프랑켄슈타인괴물을 수없이 만들어내고 있다.뉴스보기가 무서운 살인범들도 원래는 착하게 태어났지만 사회에서 버림 받아 증오를 품게된 이들이 많다.그래서 이 소설은 공포소설,페미니즘 소설,과학과 철학 사상서등 여러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고,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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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력의 탄생 - 현대인의 지성을 회복하기 위한 강력한 로드맵
매기 잭슨 지음, 왕수민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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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인체비례도)에 제러미 밴덤의 파놉티콘 문장(감시하는 눈)을 합성한 것이다.distracted는 '(정신이)산만해진' 즉 '집중력의 분산'을 뜻하는 단어다.그 반대의 뜻인 집중력은 attention,'정신을 집중하다'는 concentration이다.그래서 한글제목과 영문제목의 불일치 원인이 궁금해진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인체의 중심점을 배꼽으로 보고 인체의 황금비를 만들었다면 제러미 밴덤은 파놉티콘이란 원형 감옥을 만들어 죄수들을 항상 감시할 수 있는 상태를 고안했다.그는 사후에도 자신이 모교에서 오토 아이콘으로 남아있다.두 그림의 합성은  아마도 집중력의 탄생과 집중력의 분산을 가장 잘 말해주는 표현이 아닐까?  수많은 감시카메라와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첨단의 장비등 보이지않는 감옥인 현대사회가 바로 파놉티콘이다.동시에 아무데서나 존재한다는 유비쿼터스,동시에 두가지를 해 낼 수 있는 능력 멀티태스킹이 과연 문명의 발전을 약속한 것일까? 아니면 문명의 후퇴를 예고한 것일까?

 

 현대사회는 정말 시끄럽다.버스에 앉아 책을 읽을 때도 라디오의 잡음이 끊이지 않더니 요즘은 광고전용 TV까지 등장했다.집에서는 아이들이 보는 TV와 컴퓨터 소리 때문에 책을 읽기 위해서는 집중하기 위해 기를 써야한다.그래서 나만의 책읽기 집중법은 왠만한 소리는 그냥 무시하기다! 별수없지 않나? 중이 절이 싫으면 절을 떠나야 한다는 속어도 있지 않은가.그냥 시끄러운 세상에 적응해야만 하는 것이다.

 

  '집중력'이란 뭔가 한 가지에 몰두할 수 있는 능력.우리가 접하게 되는 수많은 정보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을 걸러낼 수 있는 능력'쯤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하지만 모든게 너무 빠르게 변하고 시끄럽고 불안한 현대사회는 인간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그것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각하지 못한채 당연시 하며 살아간다. 이렇게 산만한 현대사회에서 한 가지에 집중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한다.뭔가에 몰입하는 즐거움은 다른 감정들을 분산시킬 수 있기때문이다.

 

 많은 발명이 이루어졌지만 가장 암울했던,그래서 기억하기도 두려운 중세.저자는 현대사회가 중세와 같은 암흑시대라고 말한다.책이 읽히지 않고 ,사람들은 현란한 비주얼 문화에 젖어 흥청거린다.그래서 고전은 가장 읽히지 않는 책이 되어버렸다.저자는 집중력의 분산을 예고했던 많은 사상가들의 글이나 소설가들의 작품을 인용해서 설명하고 있다.저자가 상당히 많은 고전을 인용하고 있어서 고전의 힘을 다시 한번 느낄수 있었다.

 

 이 책을 읽기전까지는 시대가 집중력을 떨어뜨린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집중력이 떨어지고 건망증이 생겨나는 것은 다분히 개인적인 문제로만 생각했다.나 역시 혼돈의 시대에 휩쓸려가고 있는 군중이었던 것이다.조금 멀찍히 떨어져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키울 필요를 깨닫게 해 주는 책이다.한문장도 버릴것이 없는,그래서 집중해서 읽어야 할 책이다.느리게 읽으면 집중력 향상에도 좋겠다.표지그림때문에 민망하다면,겉표지를 벗겨내고 들고 다니며 읽어도 괜찮은 상태의 그림이 나온다.저자는 우리에게 속도를 늦추라고 말하고 있다.나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느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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