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황금 사과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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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상징과 징조로 가득하다




이 책에 실린 단편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가 예사롭지 않다.
레이 브레드버리의 서정적인 감수성은 책의 장르를 넘어 동화적이기도, 때로는 판타지적 상상력으로 조용히 그의 책에 스며들게 만든다.
읽으면서 폰에 순간순간 남긴 것들로 연결해 본다.

<금빛 연 은빛 바람>

두 도시
금빛 연 은빛 바람

˝이런식으로 계속할 수는 없사옵니다.˝

˝우리의 백성들은 매일 매시각 도시를 새로운 모양으로 만들 뿐,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모든 일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왔다

연의 가치는 하늘을 날고 있을 때다
연에 생명을 불어 넣는 것은 바람
하늘과 바람을 아름답게 만들려면?

금빛 연과 은빛 바람의 관계
금빛 연은 바람의 줄기를 타고 높이 높이 올랐다. 금빛 연은 바람의 흐름에 목적과 의미를 부여한다.
함께 하는 아름다운 협동은 서로에게 힘이 될 것이다. 긴 평화와 안정적인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두 도시
금빛 연, 은빛 바람의 도시
이제 각자의 삶에서 활력을 찾았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살점이 붙고 생기가 돌았으며 질병은 이제 겁먹은 이리처럼 도망쳤다. 그리고 연의 도시는 매일 밤, 그들을 지탱해주는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바람의 도시는 연이 노래하고 속삭이고 날아올라 그들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그렇게 될 지어다.˝




< I see you never >


이  순간을 깨닫는 순간은 이미 그가 떠난 후였다. 항상 떠난 후 우리의 늦은 깨달음은 후회와 안타까움이다. 오브라이언 부인은 라미세스씨를 떠나 보낸 후 일상에서 그의 빈자리를 알게 된다.

˝이제야 알겠구나˝
˝I see you never˝
˝나 당신 못 봐요˝






<자수>

˝세상을 바꾸는 모든 일은 손으로 하는 거니까˝

˝그 모든 일을, 과거를 돌아보면 수많은 손들이 보였다˝

흠이 있다. 하나의 아름다움을 위해 우리는 그 흠을 제거한다. 다 뜯어 고칠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과거 누군가의 손에서 희생양이 되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사람들이 있다.

자수를 두는 그녀

˝ 풍경은 완벽했다. 단 한 가지, 자수 속의 태양이 수놓은 푸른 들판과 수놓은 분홍 집과 그를 향해 굽어 있는 수놓은 갈색 길 위에 내리쬐고 있음에도, 길가에서 서 있는 남자의 얼굴에는 어딘가 문제가 있었다.˝

˝그녀는 작은 가위를 번쩍이며 재빠르게 실밥을 뜯기 시작했다. 점점 포악해지는 그녀의 손은 실밥을 뜯고 잡아당겼다. 남자의 얼굴은 사라졌다. 길 위의 남자는 사라졌다. 그녀가 완전히 없애 버린 것이다.˝

그리고 번쩍이는 섬광은 그녀들을 태운다. 불길은 자수 속의 태양이 수놓은 모든 것을 뜯어냈고 그녀들을 길 위에서 무참히 뜯어냈다. 그렇게 어떤 실험으로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이 무서운 암시, 작가의 문명 비판





<저 너머의 드넓은 세계>

이제까지 그녀가 생각조차 해 보지 못했던 일을 경험하는 코라
자신이 브래범 부인의 허풍에 기죽어 하찮게 여겨졌던 시간을 알게 된다. 그동안 브래범 부인의 거짓 편지에 관한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조카 벤지의 등장은 코라를 다른 경험의 순간으로 이동하게 한다.

저 너머의 드넓은 세계는 가지 않아도 편지를 통해 코라에게 전해진다. 하지만 코라는 문맹인이다. 한 번도 연필을 만져보지 못했다. 그녀에게 편지는 두려움이었다. 브래범 부인의 거짓 편지에 속아 막연하게 자신도 편지를 받고 싶었던 것이다. 막상 편지를 쓰려고 해도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그녀의 절실함은 그저 자연에서 맴돌뿐이다.  여지 껏 생각도 해 본 적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저 그녀는 편지를 받고 싶을 뿐이다.

벤지는 잡지광고에 있는 주소로 코라 대신 편지를 쓴다. 그리고 코라의 부탁으로 우편함도 만든다. 새로운 경험, 그 신선함은 코라를 행복하게 한다. 난생 첨 편지를 받는 날 코라는 더할나이 없이 행복하다. 벤지가 읽어주는 편지는 저 너머의 드넓은 세계와 코라를 이어주었다. 그 순간은 코라는 ˝혼자도, 세상에서 떨어져 있지도 않았다.˝

조카 벤지가 떠나면서 편지는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눈 앞에 가까이 있는 저 너머의 드넓은 세상을 읽을 수 없는 그녀에겐 편지는 더이상 기쁨을 줄 수 없었다.
다시 세상과의 단절, 그녀에게서 세상의 이야기는 사라져 갔다. 절대 알 수 없는 저 너머의 드넓은 세상 이야기는 이렇게 막을 내린다. 쓰러진 우편함, 아무것도 없는 우편함을 확인하고 들판으로 향한다.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코라는 오롯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저 너머의 드넓은 세상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멋진 여름을 기억하며 새로운 것을 꿈꿀 수 있을테니 말이다.


눈을 뜨지 않으면,  세상을 볼 수 없다.
코라의 짧은 세상과의 소통은 조카 벤지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글을 배울 수도 있었지 않나 생각할 수는 있지만, 코라에게는 첨으로 접하는 이 과정에서 코라는 배움의 중요성을 알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배우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배운다는 생각자체를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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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4-08 00: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이 브래드버리 정말 좋아합니다
SF 판타지, 미스터리 물이 전부 들어간 단편
완죤 소즁!!
이책 찜!! 장버구니로 ~@@@

오거서 2021-04-19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을 바꾸는 모둔 일은 손으로 한다, 일상 속 깨우침이군요 ^^
 
플라톤의 국가·정체(政體) - 개정 증보판 헬라스 고전 출판 기획 시리즈 1
플라톤 지음, 박종현 옮김 / 서광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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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되는 책

왠지...
‘아직은 아니야‘ 라며 두고두고 재낀 책

이제는 그 부담을 재끼고
국가론을 넘긴다

책장을 넘기기 전
가졌던 많은 선입견과 생각이
막상, 책장을 넘기면서 의외성을 발견한다

소크라테스와는 초면이 아니었다

《향연》
마지막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참석한 모든 사람을 말빨과 술로 평정하고
일어서는 소크라테스의 유쾌함
그는 진정한 ㅡ꾼이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자신의 변호를 소홀히 하지 않고 적극적인 태도
소크라테스의 여유에서 긍정의 힘을 발견했다
마지막까지 그의 설득은 논리적이었다
크리톤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파이돈》에서 그가 크리톤에게 부탁한 유언은
죽어가는 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크리톤, 나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마리를 빚졌네.
기억해두었다가 빚을 갚아주겠나?˝

이런 초월적인 힘을 가진 소크라테스를 몇 번 만났더니
《국가》의 소크라테스는 더 반갑다
심지어 차분한 그의 어조와 겸손이 은근, 그를 지지하게 된다
공감과 설득은 그에게 가장 큰 무기가 된다

˝마치 야수처럼, 혼신의 힘을 가다듬어 찢어발기기라도 할 듯 덤벼 오는 트라시마코스˝

아주 유연하게 그를 상대하는 소크라테스의 능력은
미소를 짓게 만든다
어찌보면 뻔뻔함으로 시치미 떼기 식처럼 보일지 모르나,
그의 논박에 늘 상대는 무지의 헛점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의 대화법이 꽤 마음에 든다
분명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긴 하지만,
˝pathos를 통한 mathos(수난을 통한 배움)˝

천천히 읽으면서 소크라테스의 말에 은근 매료된다
부담감은 이제 멀어진다
한동안 이 책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공부좀 해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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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3-12 00: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테스형의 작품들 완주 하셨네요!! 향연 너무 멋지죠 울 나라 정치인들도 이런 책 읽고 제대로된 언어를 구사하며 토론 했으면 ,,,

이뿐호빵 2021-03-12 00:30   좋아요 2 | URL
테스형아 ㅋㅋ
매일밤 만나고 있습니다

정치인 필독서로
공부하고 암기하고 새기고 ...
자격시험,
그런 법안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네요ㅋ
 

작은 나의 일상도 프로답게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킨다
이 말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성실히 책임감있게 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가끔 이 당연한 상식 앞에서 언론의 지나친 찬사가 쏟아질 때가 있다. 그리고 이는 하루 아침에 사회적 영웅을 만든다.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에코는 이러한 사회와 언론을 꼬집는다.

˝영웅이 필요한 나라는 불행하다.˝

영웅이 필요한 사회는 조용히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일반적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물론 나의 말이 아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비판이다. 쉽게 말해 ‘프로 정신‘의 부족, 진정한 프로를 찾기 힘든 사회라는 것이다.

사회적인 문제를 떠나서 내 주변에서도 우리는 보통 이 영웅적 인물이 나타나길 기대하며 찾으려 애쓰는 면이 있다. 이 험난한 시간을 벗어나게 할 그 누군가를 늘 그리워한다. 심지어 쓰레기 처리 문제 하나도 누군가의 해결을 기다린다. 사소한 것 하나지만, 그 누군가가 자신이라는 것을 우리는 가끔 잊고 사는 것 같다. 각자의 쓰레기는 각자가 해결해야 하는 것처럼 결코, 누군가가 해결할 수 없다. 내 손을 벗어나 누군가의 몫으로 떠 넘기는 식의 해결은 더더욱 아닌 것이다. 개인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회,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이 넘치는 사회는 나의 잘못된 의식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개개인이 자신의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저 지나가는 시간에 자신을 맡기고 운전대를 놓고 있을 때가 더 많다는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가끔 내가 정신을 차릴 때가 있다. 책장을 넘길 때 갑자기 불편해 지거나 도끼 정도는 아니지만, 돌 맞은 느낌이 드는 순간이다. 멈추고 나를 다시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엘리베이터 손잡이에 누군가 아주 보란 듯이 올려 놓은 일회용 커피 용기를 보고 불편했던 기분을 안고 집으로 들어왔다. 보통은 성격상 내가 그냥 치우고 만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이라 남이 먹다 남은 컵을 만지는 것조차 꺼림직해 만지기 싫어 속으로 욕만 진탕하고 들어왔다. 그리고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을읽다가 이 소제목을 보면서 이것 저것 연결고리가 만들어 진 것이다. 또 궁시렁거리면서 온라인 나의 서재에 풀고 있다. 책 후기도 아닌 개인적인 궁시렁거림
이 이 책을 계기로 제대로 말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에코의 언급처럼 이미 우리는 역사 속에서 증명된 불행한 사건, 히틀러의 <나의 투쟁>에 담긴 이념을 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모를 때 최악의 역사는 다시 시작된다는 것을 말이다.
개인의 책임과 의무는 결코 대단한 것이 아니다. 마치 대단한 의식을 안고 무언가 큰 일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나의 의식이다. 사소한 것, 일상적인 것에서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본다. 기본이고 상식이다. 일상도 프로답게 살아야한다.

삼일절이라는 역사적인 날을 맞이했다. 주절거리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하루를 넘겨버렸다. 불편해진 마음으로 흥분을 퍼내고 있었더니 시간이...가끔, 책 읽으면서도 나는 열을 낸다.
여튼, 우리가 영웅을 찬사하고 지나치게 포커스를 맞추는 것에 대해 지금의 사회가 어떠한지를 생각해봐야 될 것이라는 에코의 말이 더 와닿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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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01 04: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시 에코!
저도 빨리 이 책 봐야 하는데 줄 서 있는 책 본다고 미루고만 있네요. 삼일절은 역사적인 날이기도 하지만 쉬는 날이기도 하죠. 편안한 휴일 되세요.

scott 2021-03-01 1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삼일절날에 읽는 에코옹이 말하는 미친세상을 이해하는법 ! 쵝오의 선택이네요 책커버 넘 예뻐서 뚫어지도록 봄 ㅋㅋ 빨간색 컵 커피향에서 고소한 향이~날것 같네요 전 파란색컵에 먹는데 빨간색에 담긴 커피가 더 맛나보임 ,이쁜호빵님 3월 월요일 휴일 평안하게 ^ㅎ^
 

나에게 한 가지 장점이 있다면 그것은 한눈팔기다




눈 덮힌 하얀색의 세상

˝세상은 그 많은 눈의 무게에 눌려 축 처져 있었다.˝

굽어 보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아주 많은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에게 한눈을 팔게 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도둑>은 그런 이야기다.

죽음의 신에게도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은 ‘한눈팔기‘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 곳곳에서 그가 하는 일은 영혼들을 거두어 들이는 일이다. 하지만 가끔 죽음의 신에게도 견딜 수 없는 시간이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냉혹하고 서늘하고 온통 어둠으로 둘러싸인 죽음의 신, 이 책은 적어도 그런 생각을 일반화하지는 않았다.

책의 배경은 제2차 세계 대전 독일이다. 나치 독일의 어느 한 도시, 전쟁을 일으킨 당사국  그 속에 사는 독일인의 일상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전쟁의 참혹한 면을 상상할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전쟁 속의 피해자는 어느 한쪽에만 생기는 게 아니라는 또 한 번의 진실에 맞닥뜨리는 책이었다. 결코 유쾌할 수 없는 주제를 담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 책은 2권이라는 분량 만큼 무겁다면 충분히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작가 마커스 주삭은 지나치게 이야기를 무겁게 몰고 가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10대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 책도둑인 소녀의 행동보다 어른들의 세상은 더 나빴다. 그리고 그런 어른들은 오히려 세상을 도둑질 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아이들은 현실에 대한 모순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눈 앞에 일어나는 누군가의 불행과 아픔은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시대가 주는 공포와 처절한 상황은 아이들의 현실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소녀는  말의 의미를 배우면서 말의 힘을 느낀다. 또 그런 말의 힘을 원망한다.


˝인간 존재의 모순됨의 또 다른 증거였다. 이만큼의 선이 있으면,  이 만큼의 악이 있다. 그냥 물만 붓고 섞어 주어라.˝ p243


죽음의 신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시작된다. 죽음의 신은 소녀가 그녀의 양부모가 될 사람들을 향해 가고 있는 기차 속에서 그녀를 처음 만난 기억을 떠올린다. 동생의 죽음, 이 비극앞에서 죽음의 신과 소녀의 첫 만남은 이루어졌다. 죽음의 서늘함을 소녀는 직감적으로 느끼고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소녀는 처음으로 < 무덤 파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라는 책을 도둑질한다. 리젤 메밍거라고 부르는 이 소녀를 죽음의 신은 ‘책도둑‘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죽음의 신의 장점인 ‘한눈 팔기‘는 이 소녀에서 시작된 것이다. 소녀와 죽음의 신의 교차는 한 번이 아니었다. 죽음의 신은 소녀를 기억한다. 그리고 그 아이의 책을 수백 번이나 읽으면서  그 아이가 본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아이가 살아남아 세상 어딘가에 자신의 자리를 채워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죽음의 신의 호기심은 소녀를 놓칠 수 없었던 것이다. 죽음의 신에게 소녀의 존재는 가치있는 기억으로 그에게 영원히 남았던 것이다. 그렇게 남은 기억을 꺼내어 죽음의 신은 소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뮌헨의 도시 외곽 지역 힘멜이라는 곳에서 양부모랑 살게 된다. 동생과 소녀를 맡는 대신 이들 부부는 약간의 수당을 받을 터였지만, 동생은 오는 도중에 죽음을 맞이 해야만 했다. 결국 소녀만 양부모 밑에서 보호를 받게 된다.

양부모 한스 후버만과 로자 후버만

한스 후버만은 제 1차 세계대전 부대에서 유일한 생존자가 되어 살아 남았다. 그는 전투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년의 시간에서도 죽음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운이 제법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소장품이 있었다. 아코디언이다. 전쟁 내내 그의 손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아코디언은 자신의 생명을 구한 친구의 유품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에게 아코디언을 배우기도 했다. 에릭 판덴부르크의 아코디언은 한스 후버만의 친구이자 삶의 의미였다. 시간이 지나 그의 아들 막스를 도와야 하는 의무감도 여기서  만들어진 것이다.  한스에게 막스는 책임이자 의무였다. 그렇게 유대인 막스는 한스의 집 지하실에서 오랜 시간 보호를 받게 된다.
한스 후버만의 일은 히틀러가 권좌에 오르면서 큰 타격을 입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공정성을 존중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친구였던 에릭 판덴부르크는 유대인 독일인으로 그의 목숨을 구해준 친구였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그는 히틀러를 따르지 않겠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렇기에 독일인이지만 히틀러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된다.  참혹하고 냉정한 전쟁 속에서도 그는 따뜻함이 있는 사람이었다. 전쟁 말 독인이 전세에 밀려 위기에 빠졌을 때 한스에게 잠시 호황이 찾아왔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의 행복은 짧은 순간으로 사라진다.

전쟁의 아픔은 어느 한 쪽의 일상도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전쟁은 일반인에게 무방비 상태에 놓여지고 최악의 상황을 만든다. 하지만 유대인과 독일인 어린 리젤의 불행한 시간에서 그래도 리젤은 유대인이 되는 것보다 나았다는 점이다. 유대인은 여자도 남자도 아니었다. 사람도 아니었다. 당시 유대인은 ‘유대인‘이었다. 독일인들은 그래도 살아갔다. 그런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책은 어느 한쪽도 벗어날 수 없는 불행에서 이유없이 자신들의 삶이 무참히 짓밟혀 사라져가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전쟁이라는 참혹한 역사 속에서 어린 10대의 눈은 세상의 어떤 부조리함과 부당함을 발견한다. 이해 할 수 없는 세상이다. 기차 안에서 목격한 동생의 죽음과 친엄마와의 헤어짐은 어린 소녀에게 충격이었고 적응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리고 밤마다 악몽으로 시달려야 했다. 그렇게 미쳐있는 세상에서 불안한 어린 소녀를 양아버지 한스가 지켰다.

소녀의 양어머니 로자 후버만은 위기 속에서 강한 힘을 발하는 인물이다. 책의 표현처럼 ˝매일이 절뚝절뚝 지나갔다.˝
그런 시간에서 로자는 일의 순서를 제대로 인지하고 실천하는 인물이다. 그녀의 양부모 한스와 로자는 히틀러를 지지하지 않는 10%의 독일인이다. 그래서 나치당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순수독일인 후버만 가족은 지하실에 유대인 막스를 숨겨주는 엄청난 모험을 한다.


리젤의 책도둑

책을 훔치는 것 리젤의 행동은 그래도 암묵적인 허락이 있었다. 그래서 진정으로 훔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달랐다. 아이들에게 진정한 도둑은 어른들이었다. 부자 나치들 그리고 군대였던 것이다. 그들은 내 아버지, 가족을 데려가는 가장 나쁜 도둑이었다.


힘멜의 거리가 폭탄과 함께 사라졌다.
소녀가 사랑한 친구 루디, 후버만 가족 그렇게 최고의 영혼들이 사라졌다.유일한 생존자 리젤은 최후의 한 명으로 살아 남는다.
굽어보는 자(죽음의 신) 조차도 이 상황이 눈물나게 슬프다.
남겨진 리젤의 아픔을 그저 바라만 봐야하는 안타까움에 더 슬퍼한다.
이제 리젤에게 말은 아름다움이 아니다. 세상의 가장 추악한 힘을 담고 있는 저주스러운 말이다. 글을 읽을 수 없었던 리젤에게 말이 주는 힘을 느끼게 했던 책 속의 말들이 있었다. 그리고 리젤은 그 능력을 보았다. 하지만 사랑했던 모든 것이 사라지던 날 말의 가혹함을 알게 되었다. 지젤은 그런 말을 증오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말이라는 것은 없었어야 한다고.

제2차 세계 대전의 하늘은 회색 빛의 하늘로 채워졌다.
찬란하게 빛을 발하던 태양도 푸르름을 자랑하던 자연도 다른 쪽을 보고 있었던 것처럼 세상은 온통 한 가지색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죽음의 신은 세상을 굽어본다. 하지만 신의 심장도 그 시간은 객관적일 수 없었다. 한 소녀의 아름다운 이야기, 회색빛 세상에서 그래도 인간적인 영혼을 보았던 죽음의 신은 자신의 장점인 한눈팔기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작지만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실 하나
오랫동안 많은 젊은이들이 다른 젊은이들을 향하여 달려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나를 향해 달려왔다.˝



마지막 덧
정말 죽음의 신이 존재한다면,  전쟁 중 그는 업무과다로 한계에 달할지도 모르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죽음의 신도 피해갈 수 없는 한계는 전시에 더 극으로 치닫지 않았을까
책의 앞 부분에 죽음의 신을 묘사하는데, 낫이 아닌 빗자루를 들고 있다는 부분이 생각났다. 갑작스럽게 빗자루를 든 죽음의 신이 상상되었다. 인간적인 죽음의 신 모습에 잠시 미소짓게 된다.
그리고 조만간 다시, 영화로 책도둑을 만날 날을 기대하며 이 여운을 접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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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2-28 00: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뿐 호빵님 책도둑 완독 추카! 이책의 저자 부모님이 실제 겪은(호주로 이민오기전 고향 독일에서 목격함) 걸 작가가 쬐끔 픽션 허구를 섞어서 (아마도 ‘죽음의 신‘ )장면은 썼다고 합니다. 영화도 좋아요 아이들 넘 연기 잘하고 양부모의 연기도 잊을수가 없어요 ^.^

이뿐호빵 2021-02-28 00: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먼저 감사합니다
무거운 주제를 차분하고 잔잔하게 풀어내는 작가가 좋았습니다

늘 풍부하고 즐거운 스콧님과의 인연에 감사합니다

바람돌이 2021-02-28 03: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 아주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도 잘 안나는데 이뿐호빵님 덕분에 다시 기억을 휘리릭 돌려봤습니다. ^^
 


책 헤는 밤에~~~


오랜만에 쇼핑을 다녀왔다
돈 쓰는 재미는 수많은 재미 중에 빠지지 않는 즐거움이다
이 소비 본능은 사람이라면  어쩔 수가 없는 것인가? 라는 의문과 함께 바구니를 들었다

오늘 쇼핑 품목은 책이다
무엇보다 무겁고 그 어떠한 것보다 즐거운
그리고 제법 시간이 걸리는
그리고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쇼핑이다

이곳에서 이제 나의 책을 향한 집요함은 날개를 단다
두 눈에 빛을 발한다
하지만 두 발은 의식적으로 속도를 줄인다
그리고 완전 광적으로 천천히 아주 집요하게 달려든다

모처럼 들린 대형서점의 유혹에서
넘쳐나는 텍스트들의 수다장에서 
잠시 정신줄을 놓지만
다시금 두 눈은 할 일을 찾는다

즐비한 책들 그 위용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도 당연 눈에 띄는 따끈따끈 신간들은
내 발걸음이 닿는 곳곳을 선점했다
전략적으로 유혹하는 손길을 나는 놓칠 수가 없다
결국엔  매혹적인 그 손을 잡고야 말았다
이 무게를 어찌 다 감당하려고 말이다

모처럼의 서점 나들이에서
그렇게 일년의 양식을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
쇼핑의 유효기간이 가장 긴 것이
그래도 책으로 장바구니를 채웠을 때다

이 무겁지만 설렘 가득한 즐거움을 만끽한 시간
내 손에 쥐어진 책들의 수많은 이야기는
벌써 아우성이다

나의 손을 제일 먼저 끌고 가는 책은
움베르트 에코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이젠
미친 세상을
에코를 이해하는 척이라도 해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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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2-26 2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에코옹 가죽 커버네요 ㅋㅋ 이뿐 호빵님 오늘 지식의 양식 두둑히 쟁여 놓으셨네요 ^.^

이뿐호빵 2021-02-26 23: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네 에코~특별박스세트 충동구매입니다
조만간 또 몇 권을 쟁여 놓지...싶습니다
그리고 야금야금 챙기려고요ㅋ

레삭매냐 2021-02-27 09: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네 책은 쇼핑하기에 부담스러운
아이템이지 않나 싶습니다.

이것저것 쟁이면 손모가지가 다
아프더라구요...